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레몬
  • 조회 수 232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12년 11월 5일 01시 39분 등록

나는 누구인가?

 

이 물음에 답할 수 있는 자가 세상에 과연 몇일까?

 

가진 것이 많을수록 더욱 답은 가려져 어쩌면 평생 알지 못한 채 살아가기도 한다. 사람들이란 손에 쥔 것만을 바라보기 마련이다. 상황이 생을 꾸역꾸역 밀고 올라가듯 억지로 살아간다. 궁극의 질문을 사치라고 생각하면서.

 

알 방도가 없었다. 가슴이 답답하지만 짊어진 짐이 너무 무겁다. 어깨가 너무 아프면 가슴의 체증은 이내 잊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사로운 증상이 실은 더욱 근본이요 실존의 뿌리임을 알게 될 때 우리는 이미, 황혼의 붉은 빛을 바라보고 서 있다. 그 빛에 넋을 잃는다. 지는 해는 아름답다. 그리고 서글프게 사무친다. 그제서야 나는 누구인가? - 심장이 멎을 듯이 쓰려온다. 우리는 가슴을 움켜쥔 채, 타오르는 태양이 뜨는지 지는지 가늠하려 들다가 정신을 잃는다. 익숙한 것과 결별할 준비가 되었는가? 죽어서 다시 태어날 준비가 되었는가? 그렇다면, 가자! 우리는 가자! 우리를 닮은 땅으로. 우리가 부활하고 다시 묻힐 땅으로, 그러나 아직 죽지 않은 땅으로 가자! 나는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을 이끌고 무모하게 죽으러 가자고 말하곤 했다. 자신의 장례식을 치러낸 사람들을 데리고. 해가 지는 방향을 따라 갔다. 아직 해는 떨어져서는 안돼. 우리는 변방으로 가자. 아직 세속이 때묻지 않은 곳으로. 그래서 우리는 시칠리아로 갔다.

 

 

 

 

 

 

 

 

 

마지막 회. 시칠리아 미칠리아 _ 더 보스

 

 

 

 

 

박제는 신화의 섬 시칠리아에서 산 하나와 여자 하나를 보는 것이 목표라고 하였다. 그 산은 활화산 에트나요, 여자는 성모영보의 마돈나를 의미하였다. 여인이란 활화산만큼 종잡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일행 중 N은 명멸하듯이 무리를 점점 이탈하더니 마침내 우리의 영역에서 종적을 감춰버렸다. 그녀가 이 섬의 어느 구멍으로 빠져버렸는지 추측만이 난무한 가운데 나머지 사람들은 할 수 없이 흩어져 그녀의 자취를 훑기 시작하였다. 반골의 사람들에게 단체의 책임을 지우는 것은 미안한 일이었다. 어깨의 고통 대신 가슴을 치유하기 위해 따라나선 여행길이었다. 이 곳에서 다시 삶을 닮은 부역을 나누는 것은 가장 예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우리는 N을 찾는데 실패하였다. 그리고 여행의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나는 연구원들에게 연락하여 다시 수렴할 것을 요청하였다. 이제 갈 시간이다. 해가 지평선을 건드리고 있었다. 여행이 끝나간다는 아쉬움은 삶을 종결 하는 순간의 느낌을 많이 닮았으리라. 우리는 빛줄기가 붉어짐을 느끼며 한 번씩, 두 번씩 죽음을 예습한다. 우리는 어떠한 최후를 맞이하길 원하는가? 눈꺼풀이 감길까? 아니면 감겨질까?

 

[그래수고들 했다. 마지막은 돈나 푸가타에서 모이자. ]

 

나는 연구원들에게 돈나 푸가타(도망간 여인)라는 와이너리에 모일 것을 부탁하였다. 마지막으로 와인잔을 기울이며 고생한 연구원들이 회포를 풀게 할 생각이었다. 마침 그 와이너리에서 페스티발 소식이 있었으므로 그리 외롭지는 않으리라. 즐거워하는 대중들 사이에서 즐거움의 죄책감을 덜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N을 찾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고대하였다.

 

나는 와이너리에 가장 먼저 도착하였다. 넓은 포도밭에는 별을 닮은 흰 불빛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와이너리는 벌써 와인을 시음하는 인파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나는 일행들을 기다리면서 와인을 시음하였다. 목줄기로 떨어지는 화이트 와인이 시원하다. 약간의 취기는 사람의 정신을 순간적으로 더욱 맑게 하는 모양이다. 별들이 더욱 밝게 빛나고 사람들의 영혼도 더욱 또렷하게 느껴졌다. 흔하지 않은 동양인의 출현에 관심을 보인 이들이 인사를 청하였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커플은 나에게 어떤 와인이 괜찮았는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푸른 눈의 그가 웃으며 말하였다.

 

[저도 사실 나파벨리에 와이너리를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이 돈나 푸가타의 품종은 포도가 좀 작긴 해도 훌륭한 풍미를 가지고 있죠. ]

 

[, 그렇다면 와이너리에 관한 전문가시겠군요. ]

 

[. 그런 셈이죠. 사실 이 와이너리가 경매에 나왔을 때 우리도 입찰에 뛰어들었었는데 아쉽게도 낙찰받지 못했죠. ]

 

[돈나 푸가타가 경매에 들어갔었나요? ]

 

[. 사실 오늘 페스티발도 경매 낙찰을 축하하는 페스티발이죠. 일본 재벌에게 낙찰되었는데거의 야쿠자들이죠. 검은 돈을 세탁하는 데 와이너리 사업은 꽤 좋은 방편이거든요. ]

 

[왜 그렇죠?]

 

[아무도 일본에 와이너리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을 테니까요이태리 내에서 벌어들이는 돈이 얼마인지 일본에서 확인하긴 쉽지 않을테고. 게다가 애초에 물장사는 투명하질 않으니까요. ]

 

[그렇군요. ]

 

바로 그 때, 익숙한 웃음 소리가 들렸다. 반사적으로 눈길이 향했다. 그곳엔 N을 닮은 피사체가 보였다. N인가? N이 분명하다. 내가 조금씩 더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려는 순간 인파들이 내 앞을 우르르 지나쳤다. 새로운 와인을 개봉한 테이블로 옮겨가는 무리였다. 황급히 그들을 헤치고 나자 N은 사라진 후였다.

 

[사부님! ]

 

때마침 다른 연구원들이 나를 발견하곤 뛰어왔다. 나의 얼이 빠진 표정을 눈치챈 듯 다들 반갑고도 의아한 표정으로 나의 의중을 살폈다.

 

[사부님, 어디 편찮으십니까? ]

 

[, 그래. 내가 방금 여기서 N을 본 것 같은데. ]

 

N이었을까? 거의 확실하다. 거의. 나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을 찾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연구원의 중 H가 놀란 듯 커진 눈으로 대답하였다. ", 방금 어디서 보셨는지요?" 내가 그녀가 사라진 방향을 가르키자 모두의 고개가 손가락 끝을 바라보았다. 우리의 시선에 걸리는 것이라곤 오로지 포도밭과 서양인 무리에 지나지 않았다.

 

[사부님, 방송을 해보는 게 어떨까요? ]

 

전 아나운서 출신인 S가 제안하였다. N은 우리가 찾는 걸 알면 굳이 회피하진 않을 거예요. 이제 그 아이도 지쳤을테고 돌아갈 시간도 되었고

 

[그럼 어디서 방송을 하죠? , 저 메인 건물로 가보면 되겠다. ]

 

수학 선생인 R이 말했다. 우리는 그럴 듯하게 여겨 관계자를 찾아 이동하였다.

 

 

 

 

[안녕하세요. 우리는 사람을 찾고 있습니다. 젊은 여자인데… ]

 

연구원의 리더인 W는 경비로 보이는 자에게 우리의 의중을 전달하였다. 경비는 영어를 잘 하지 못하는 듯 곤란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마침 와이너리의 이름인 돈나 푸가타(도망간 여인)인 것을 생각해내고 W는 다시 이렇게 말하였다.

 

[, 우리는 돈나 푸가타를 찾고 있습니다. 돈나 푸가타혹시 방송을 하고 싶은데. ]

 

경비는 이제서야 알아 들었다는 듯이 우리에게 따라오라는 제스처를 취하였다. 우리는 야외가 내려다보이는 테라스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마치 당장이라도 귀빈들을 맞이할 준비가 된 듯이 화려하게 세팅 되어 있었다. 테이블에는 와이너리의 최고급 와인들이 줄을 서서 나열되어 있었고 크리스탈 와인잔들이 마호가니 테이블에 줄줄이 셋팅 되어 있었다. 우리는 의자를 내어주는 정장들을 어안이 벙벙한 채로 쳐다보았다. 아무래도 앉으라는 표시 같은데

 

붉은 정장 차림의 여인이 나에게 다가와 악수를 청하였다. 나는 망설이다가 그녀의 손을 잡고 조금 흔든 후 내려놓았다.

 

[우리는 돈나 푸가타를 찾고 있습니다. 그녀를 만나고 싶은데요? ]

 

[. 제가 돈나 푸가타입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선 저희 와인을 드셔보시죠. ]

 

그녀는 옆의 사람을 불러 와인잔을 채우게 한 후 나에게 건넸다. 뒤를 돌아보니 철없는 젊은 연구원들은 이미 자리에 앉아 히히덕거리며 와인들을 시음하고 있다. "멀리서 온 외국인들에겐 특별히 잘해주나봐요?" L이 소리쳤다. L의 말에 금융 전문가인 K는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며 테이블에 앉았다.

 

[어휴, 그래서겠니? 이건 우리에게 와인을 강매하는 거잖아. 그냥 몇 잔 마시고몇 병 산다 그래.]

 

K의 말에 나머지 연구원들도 하나 둘 테이블에 앉았다. "그래, N이 무슨 여기 와이너리에 있겠냐. 아까 보니까 동양인은 딱 우리밖에 없더구만. 있어도 그 앤 우리가 찾는 줄 알면 안 와. 분명히." 연구원들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기울였다. 어느덧 분위기는 점점 무르익었고 우리는 모두 즐거운 마음으로 반가움을 주고 받았다. 그 동안 서로 겪었던 이야기들을 풀어내느라 밤이 깊어가는 줄도 몰랐다. 그 사이 훌륭한 음식들이 끊임없이 대접되었다.

 

[이거, 가격이 꽤 될 것 같은데 이래도 될까요? ]

 

특수 교사인 D가 총무인 L에게 넌지시 눈치를 주었다. L은 이미 약간 취한 채로 히죽 히죽 웃어댔다.

 

[뭐 어때요, 페스티발인데이거 아무 말도 없이 주는 걸 봐서는 다 서비스 같은데? 우린 먼저 요청하지 않았으니 괜찮아요. 나중에 술이나 많이 사 언니! ]

 

 

그리곤 동갑내기 R과 함께 건배를 외치며 술을 연거푸 마셔댔다. 크리스탈 와인잔의 소리가 촤랑 울렸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우리는 예약해 둔 버스의 시간을 생각해서 자리를 정돈하였다. 연구원들은 마음에 든 와인을 이리 저리 골라서 손에 쥔 상태다. 나는 마지막 날인만큼 연구원들의 와인을 계산해 줄 생각으로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지폐들을 계산하여 붉은 정장의 여인에게 건넸다.

 

[… … ]

 

[모자랍니까? ]

 

[… … ]

 

[그런가요? ]

 

나는 와인의 가격 대조표를 보면서 다시 계산을 시도하였다. 옆에서 수학 선생인 R이 열심히 거들었다. "사부님, 이 정도 돈이면 충분한데요?" 그녀의 말에 나는 다시 돈을 내밀었다.

 

[이 정도 돈이면 충분합니다. ]

 

[… … ]

 

[, 됐죠? 우리가 많이 사는 겁니다. ]

 

붉은 정장의 여인은 잔뜩 굳은 얼굴이 되어 나와 다른 연구원들의 얼굴을 쳐다보고는 마지못해 지폐를 건네받았다. 조금 이상하다고 여겼지만 우리는 하릴없이 왔던 길을 되돌아서 테라스를 내려왔다.

 

[사부님, 아까 그 여자분 표정이 이상하던데요. 혹시 뭐가 잘못된 것 아닐까요? ]

 

직관이 뛰어난 S의 말이었다.

 

[, 아니예요. 분명 팁을 더 달라는 뜻 같은데 그 정도면 충분한 팁일걸요? 5% 정도 붙여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와이너리에 무슨 팁이람… ]

 

구두쇠 총무인 L의 말이었다. 우리는 조금 찜찜하긴 하였으나 그렇게 마무리하기로 하고 와이너리를 조금 더 둘러보았다. 사람들 사이에 어울려 페스티발을 즐겨볼 요량이었던 것이다. 우리는 포도밭 사이로 들어가 그 공터에 하나 둘 드러누워 하늘의 별을 바라보았다. 과연, 아름다운 여름 별자리였다. 저 북두칠성에 와인을 담궈 마시리라. 분명 천상의 맛일테지.

 

[ 여기 있어요, 바로 저 들이예요! ]

 

그 순간, 누운 우리들 위로 검은 그림자들이 들이닥쳤다. 당황하여 일행들은 벌떡 일어섰다. 경찰들 대여섯 명이 우리들을 근엄한 표정으로 내려보고 있었다. 아니,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지?

 

[, 이거 뭐지? 너무 심하지 않아? 팁을 안줬다고 경찰까지 출동시키다니? ]

 

일행들은 불만과 공포어린 표정으로 서로의 눈치를 살폈다.

 

[(이태리어) 당신들이 돈나 푸가타와 계약을 한 사람들입니까? ]

 

[네 그렇습니다. ]

 

나는 돈나 푸가타라는 명칭을 알아듣고 경찰들에게 수긍의 뜻을 내비쳤다. 붉은 정장의 그녀는 경찰 뒤에 서서 두려운 눈빛으로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무엇인가 착오가 있는 모양이다. 돈 문제인 것 같고, 그렇다면 내가 해결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돈이 모자랍니까? ]

 

[당신이 디오니소스입니까? ]

 

[? ]

 

[디오니소스가 누구요? ]

 

[… … ]

 

나는 경찰의 질문에 순간 침묵하였다. 저 말의 의미란 도대체 무엇이지? 디오니소스라니? 어쩌면 그들이 나를 다른 누군가와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그 때 처음 들었다.

 

[, . 우리보고 더럽게 쳐 마셨다고 디오니소스라고 하나보다. ]

 

다혈질의 L이 도끼눈이 된 채 말을 쏟아내었다. S가 얼른 그녀의 팔을 뒤로 잡아 당기는 것이 눈에 보였다. 아무래도 상황이 심각하다. 나는 신중하게 경찰들을 바라보았다.

 

[나는 디오니소스가 아닙니다. ]

 

[… … ]

 

[무엇인가 착오가 있는 것 같습니다. ]

 

[당신은 디오니소스요. ]

 

[… … ]

 

[아까 당신이 돈을 지불했다고 들었소. ]

 

[…아니라고 하잖습니까. ]

 

[당신이 디오니소스가 아니란 증거를 대보시오. ]

 

[… …!!! ]

 

우리는 그저 관광객일 뿐입니다. 나의 외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경찰들은 내게 점점 다가왔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남자 연구원들은 나를 막아서며 소리를 질렀다. ", 됐어요, 됐어요. 이러지 맙시다. 알았으니 돈을 더 낼게요. 얼마면 됩니까?"

 

리더인 W는 호기롭게 자신의 카드를 꺼내었다. "설마 카드가 안되지는 않겠죠?" 부릅 뜬 W의 눈을 보고 붉은 정장의 그녀는 경찰을 올려다보았다. 그리곤 계산할 수 있는 부스로 따라오라는 손짓을 하였다. 그리하여 우리 일행과 경찰들은 서로 경계하며 광장 한쪽 켠의 간이 천막으로 이동하였다. 그 곳에는 판매를 앞둔 와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세상에 기가 막히다. 아니, 우리가 요청도 안 한 서비스에 대해 바가지를 씌우다니… ]

 

D는 나지막히 항변하였다. 뭐 저런 마피아 같은 자식들이 다 있어? 그녀의 읖조리는 듯한 목소리는 이상하게 호소력이 있었다. 정말 마피아가 따로 없군. 우리도 페스티발을 즐길 권리가 있다구그러라고 있는 축제 아니었어? W의 손을 떠난 카드가 기계에 읽혔다. 카드 명세서가 한도 끝도 없이 이어져 나왔다. 찌지직 찌지직그리곤 삐빅 소리

 

[카드 한도가 다 되었다는데요? ]

 

K의 말에 W는 기가 막히다는 듯 허리에 손을 한 채 부스 안을 오고 갔다. "~ 이 날강도들, 우리가 얼마를 먹었다고 바가지야 바가지가. 와 이 자식들, 진짜 안되겠구만???"

 

[, 웨버님, 이 사람들 진짜 경찰 아닌 것 아닐까요? ]

 

G가 넌지시 말하였다.

 

[제가 빌라 로마노에서 경찰들이랑 하룻밤을 지내봐서 아는데, 이 사람들 배지가 좀 허술한 것 같습니다. 혹시 짝퉁 아닐까요? ]

 

[G. 정말 확실하니? 경찰 아닌 것 같아? ]

 

HG의 말에 그에게 바짝 다가섰다. ", 이상합니다. 한 번 제가 당겨볼게요."

 

G는 어디서 그런 확신이 들었는지 선뜻 경찰 중 한 명에게 다가섰다. 그리곤 그의 어깨팍에 달린 뱃지를 휙 잡아뜯어냈다. 경찰은 놀란 듯이 악 소리를 내며 G가 배지를 뜯지 못하도록 씨름하였다. 반사적으로 총에 손을 대었다. G는 놀라서 얼떨결에 경찰 손에서 총을 뺏어들었다. 어느 덧 G는 경찰을 겨누는 신세가 되었다. 자기 총을 뺏긴 경찰이 번쩍 두 손을 들었다. 우리는 모두 놀라 얼음처럼 굳어버렸다. G는 그 와중에도 자신이 뜯어낸 배지를 H에게 던졌다.

 

[형님, 허술하지 않습니까? 한 번 확인해 보시죠. ]

 

[G그렇게 뜯어내면 뭐든 다 뜯기겠다. ]

 

[아닙니다. 진짜 허술한데이 총도 가짜일걸요? ]

 

G는 공중을 향해 총을 쏘았다. 타앙 --! 엄청난 굉음과 함께 실탄이 발사되었다. 우리는 모두 어깨를 움찔하였다. 페스티발의 관중들은 부스 안에서 난 소리에 한 번씩 고개를 움추렸다. 때마침 하늘로 폭죽이 오르기 시작했다. 화려한 불꽃 축제가 시작되었다.

 

[-- --! ]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그 사이 우리가 있던 공간에는 정적만이 감돌았다. 경찰들은 이미 총을 다 꺼내든 상태였다. 모두들 G를 겨누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G가 볼모로 잡고 있는 그 경찰 - 방금 배지를 뜯긴 - 을 겨누고 있었다. 이제 누가 봐도 인질극이 되어 버렸다.

 

[쏘지 마! ]

 

놀랍게도 D가 비명처럼 고함을 외쳤다. "오빠, 한 놈만 쏴!" L이 철없이 소리 질렀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나는 사람들에게 침착할 것을 요구했다. G, 총 내려놔라. 어서나의 말에 G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천막 위로 뻥 뚫린 구멍이 실탄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이러다가는 정말 큰 일 날지도 모른다.

 

[제가 디오니소스입니다. ]

 

[...사부님? ]

 

[이 사람들은 전혀 관련이 없습니다. , 이제 제가 어떻게 하면 됩니까? ]

 

[(이태리 어) 총 내려! ]

 

"너네나 내려!" H가 직감적으로 알아듣고 경찰들에게 외쳤다. H의 말에 G도 에라 모르겠다 싶었는지 위협하듯 총구를 흔들었다. "쏜다, 확 그냥!" 그의 말에 경찰들은 총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그 사이, SR은 무슨 꿍꿍이인지 일행들을 방패 삼아 수풀 사이로 내달렸다. 경찰들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다시 외쳤다. "내버려 두시오! 그들은 아무 상관이 없소! 내가 바로 디오니소스요!"

 

[사부님, 못알아듣는 것 같은데요? ]

 

내 옆에 선 L은 둘러맨 가방에서 이태리어 책을 꺼내 바삐 뒤적거렸다. "사부님 발음이 안 좋아서 그래요. 디오니소스도 못 알아듣는 것 같아요. 디오니소스가 뭔지는 모르겠고 우리 사부님이라고 이야기 해야 할 거 같은데..." 그리곤 L은 책에서 무엇인가를 찾았는지 다급히 외쳤다.

 

[(이태리어)이 남자가 보스다! ]

 

[… … ]

 

나는 왠지 불길해져서 L에게 다그쳤다. "좀 더 순한 말은 없니?"

 

[순한 말이요? ]

 

[그래, 내가 마치 야쿠자 두목이라도 된다는 뜻 같잖아, 보스라니… ]

 

경찰들은 야쿠자라는 말에 움찔 - 표정이 썩어 들어갔다. L은 다시 책을 뒤척였으나 적당한 표현이 없는지 눈알을 굴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답답하게 쳐다보던 D는 좋은 생각이 떠올랐는지 공손한 표정으로 경찰들에게 말했다.

 

[스쿠지(미안합니다.)… ]

 

D는 자신이 학생들에게 하던대로 바디 랭귀지를 활용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녀는 한쪽 손의 엄지로 썸 업을 만들어 리더를 형상화 했다. 그리곤 다른 손으로는 no라는 제스처를 손을 흔들었다. 그리곤 그 엄지를 힘껏 아래로 귀울였다.

 

[… … ]

 

그녀는 그 제스처가 이탈리아 사람들에게 네로 황제가 노예들을 처단할 때 보이던 행동과 동일하다는 데까지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녀가 확인시키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그들에게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들의 표정은 더욱 어두워졌다.

 

[아무래도 안되겠어일단 본사에 돈을 더 보내달라고 요청해야겠어. ]

 

기업의 CEO W는 결심한 듯 핸드폰을 꺼내들었다. 그의 비서가 받는 듯했다.

 

[어 나야, 미안한데지금 긴급 상황이라 돈이 급하게 필요하거든? 응응그래그래. 아니, 카드나 현금이나 가능한 빨리 되는 쪽으로… ]

 

그 때 마침 와이너리 한 구석으로 즐비하게 주차된 차량들 사이로 검은 차 한 대가 들어왔다. 차에서는 검은 정장 차림의 동양인들이 세 넷 내리기 시작하였다. 대치 상황에 있던 경찰들과 연구원들은 일제히 이들의 움직임을 눈치채고 고개를 돌렸다.

 

[그래. 여기 이태리 지점에도 사람들이 좀 있지? 오는데 얼마나 걸리나? 아무래도 현금 박치기가 좀 더 편할 것 같긴 한데… ]

 

통화에 열중하던 W는 가장 마지막으로 다가서는 일행들을 확인하였다.

 

[, 벌써 왔어? 빠르긴 빠르네, 벌써 왔는데? 이야... 하여간 고마워. 그래그래. ]

 

W는 전화를 끊고 자신에게 다가서는 동양인 일행에게 다가서라고 고압적인 제스쳐를 취했다. 경찰과의 대치 상황을 주시하던 동양인들 무리는 약간 주춤하는 듯 하였으나 W의 자신감 넘치는 행동에 안심한 듯 스스럼 없이 다가섰다. W는 그들 중 리더로 보이는 사람과 악수를 청하였다. 그리곤 그에게서 007 가방을 건네 받았다.

 

[와따시와 디오니므 소스 데스… ]

 

[그래. ]

 

정신이 산만한 W는 그들의 언어가 한국어가 아니라는 걸 파악할 겨를도 없이 가방을 챙겨받은 채 붉은 정장의 여인에게 손짓했다. 그리곤 이제 다 해결되었다는 듯이 경찰들과 연구원들에게 무장을 해제하라는 의미에서 손을 내저었다. 이제 그만하고해결보죠? 경찰들은 그제서야 안심한 듯 바닥에서 총을 챙겨 옆구리에 채웠다. 그제서야 G도 멋쩍게 경찰을 놓아주었다. 경찰은 튕겨나가듯 G에서 떨어진 후 그를 힘껏 흘겨보았다.

 

W는 가방을 열었다. 투둑 - 하고 가방이 열리는 소리가 장쾌하다

 

[… …]

 

이건 좀 과한데. 지폐들은 모두 프랭클린이 그려져 있었다. 그러면 100달러가 이 만큼이거 좀

 

[너무 많이 가지고 왔는데? ]

 

[… 하이!]

 

[일본분이세요? ]

 

[… ..에에? ]

 

이 와이너리를 사기로 했던 일본인들은 통역사가 일본인이 아닌 것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하였다. W는 자신의 계속되는 그들의 일본어에 미간을 좁힌 후 일단 다시 가방을 덮었다. 얼마나 사람이 없으면 일본인을 쓰냐 참... W는 부하 직원으로 추정되는 그들에게 영어로 돈의 양이 맞지 않는다는 말을 연신 했다. "이건 우리가 약속한 돈의 액수가 아니잖아? 어떻게 다 감당하려고 그래?" 그러자 일본인들의 표정 역시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바로 그 때였다.

 

[(이태리어) - - 여러분! 페스티발 축하해요! 여기 술 다 공짜! 진짜 다 공짜! ]

 

와이너리의 스피커를 통해 익숙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S R의 목소리였다. 그녀들의 목소리에 사람들의 환호로 하늘이 쩌렁쩌렁 울렸다. 수백만의 인파들이 우르르 우리가 있던 부스 안으로 들이닥쳤다. 그리곤 쌓여 있던 와인들을 허겁지겁 챙기기 시작하였다. 경찰들은 인파들의 도둑질에 깜작 놀라 반사적으로 옆구리에 손을 가져갔다. 그 모습을 본 야쿠자들도 다들 옆구리에서 총을 꺼내들었다. - - 몇 번의 총성이 울렸지만 폭죽 소리와 인파들의 소리에 묻혀 스러졌다. 겨우 자리를 피한 연구원들은 인파에 떠밀려 내려가는 경찰들과 야쿠자의 대치 상황을 바라보면서 멀거머니 서 있었다. 그 때 SR가 유쾌하게 하하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괜찮았어요? ]

 

[…… ]

 

[우리가 돈을 너무 많이 낸 거 같아서여기 있는 술 다 먹으라구 그랬어요. 히히. ]

 

우리는 W의 손에 쥐어진 007 가방을 멀거머니 쳐다보았다.

 

[… …]

 

K가 말했다.

 

[이제 우리 떠나야 할 시간 같네요. ]

 

 

 

 

 

 

 

 

------------------------------------------

 

그리고, 모두가 함께 회포를 풀며 시칠리아를 떠난 후, 우리가 떠난 자리에 뒤늦게 도착한 N이 풀썩 주저 앉으면 소설이 끝난다 - full story 인데(사부님과 팔팔이가 짜준 스토리) 그건 다음에 보충해서 써보도록 하겠습니다.

 

언제까지? ASAP!!!!

IP *.68.172.4

프로필 이미지
2012.11.05 15:01:19 *.196.23.76

첫 부분 멋있다.

"우리와 닮은 곳으로 갔다."

 

그나저나 사부님이 디오니소스야? 경찰들은 디오니소스를 잡으러 온건가?

왜 그랬지?

 

읽으면서 계속 웃었는데, 캐릭터가 너무 웃겨. 특히 D가 한 말 스쿠지에서 빵 터짐. ㅋㅋㅋㅋㅋ

L이 계속 급한 상황인데 책 찾는 것도 웃기고.

읽는 내내 돈나프가타 상황을 상상하며, 그곳에 영화 한 장면을 오버랩해서 상상해봤엉. 재밌당.

 

이제 L의 이야기 기대하겠음!!

 

 

프로필 이미지
2012.11.05 17:36:02 *.68.172.4

"우리와 닮은 곳으로 간다"는 건, 사부님의 시칠리아 관련 시에서 따온 거고 내 말은 아님. 사부님과 디오니소스를 연계해서 이야기를 만든 건 맞어. 원래 돈나 푸가타에서는 자신들의 와이너리를 살 야쿠자 일당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우리와 그들을 착각한 것이지. 그래서 사부님을 야쿠자의 암호명인 "디오니소스"로 오해해서 그에게 계속 디오니소스냐고 물은거고... 우리가 와이너리 값으로 딱 와인값만큼만 지불하려고 하자 경찰(사실은 사설 경비업체가 더 타당할 듯...)들이 출동해서 잡으려고 하는 상황임. 플롯이 엄청 허술함.ㅋㅋㅋㅋㅋㅋㅋㅋㅋ

 

뭔가 계약서를 오해하는 장면도 나와야 할 것 같고.=_= 디오니소스의 철학도 들어가야 하는데...

그리고 스쿠지가 웃기냥?ㅋㅋㅋㅋㅋ 왜 웃기지.;;;;;;;;;;;;;;;;;ㅋㅋ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11.06 08:43:50 *.35.158.67

넘 재미있게 잘 읽었어. 웨버님의 행동을 상상하면서

어찌나 웃었는지 안그래도 회사일로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단번에 날려보냈다.

오늘 하루, 준이 글 덕분에 빵빵 터지는 즐거운 하루가 될 듯.

 

바쁜 가운데, 마지막까지 우리들의 이야기를 써 준 준이에게

박수를 보낸다. 고생 많았어~^^

다음 번 L의 이야기 기대하고 있을께!!!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992 러셀의 무대 공포증 file [2] 샐리올리브 2012.10.29 3699
1991 시칠리아 미칠리아 8.황야를 떠도는 승냥이 [2] 레몬 2012.10.29 2519
1990 그녀, 인간의 산 [4] 장재용 2012.10.29 2220
1989 쌀과자#26_내려가는 길 [2] 서연 2012.10.29 2260
1988 예비 독자들의 속마음 - '세린쌤을 도와줘!' 프로젝트 1 [2] 세린 2012.10.29 2311
1987 40에 숲으로 가자 [4] 콩두 2012.10.29 2906
» 마지막회. 시칠리아 미칠리아 _ 더 보스 [3] 레몬 2012.11.05 2325
1985 수상한 뿌꼬 아저씨 #1 [2] [1] 한젤리타 2012.11.05 2474
1984 중년여성이 다산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들 [2] id: 깔리여신 2012.11.05 3263
1983 21세기 샐리올리브 끌림의 법칙 file [7] [1] 샐리올리브 2012.11.05 2420
1982 쌀과자#27_경제기사 읽는 코드 [5] 서연 2012.11.05 2171
1981 ‘지금 여기’ 에 기초 해야 한다. [3] 학이시습 2012.11.05 2540
1980 나의 오지 (prologue) [3] [1] 장재용 2012.11.05 2200
1979 쌍둥이는 합동일까? 닮음일까? file [4] [1] 세린 2012.11.05 4042
1978 사람이 날아다니고 물이 거꾸로 흐르는 곳 [3] 콩두 2012.11.05 3827
1977 꿈쟁이 뿌꼬 - 서문 [2] 한젤리타 2012.11.07 2710
1976 꿈쟁이 뿌꼬 - 꼭지글 [1] 한젤리타 2012.11.08 2602
1975 11월 OFF 수업 과제 (서문, 꼭지글 포함) 장재용 2012.11.09 2205
1974 11월 오프 수업 과제 서문과 대표 꼭지글 file [1] 세린 2012.11.09 6720
1973 11월과제 서문과 꼭지글 서연 2012.11.09 23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