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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5일 09시 06분 등록

정민 교수

 

보스턴에 무사히 안착했습니다. 오늘 새벽에는 챨스 강변을 혼자서 한시간 넘게 걸었습니다.

조정 경기 연습을 하는 젊은이들이 리더의 구호에 따라 힘차게 노를 저어 물살을 가릅니다.

강변에는 청둥오리와 가마우지 들이 떼를 지어 다니는 아름다운 풍경입니다.

오는 날 뉴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고 보스턴으로 오는데 갑자기 돌풍이 몰아치고 기상이 악화되어,

기체가 몹시 흔들린다 싶더니 겨우 착륙을 했지요. 사람들이 다 내리질 않아 이상하다 여기며 내렸습니다.

알고 보니 악천후로 보스턴이 아닌 로드 아일랜드 공항에 긴급 착륙한 것이었습니다.

방송을 못 알아들은 것이지요. 그러더니 갑자기 공항 전체가 두 시간 가량 정전이 되었습니다.

곡절 끝에 다시 수속을 밟아 들어가서  그때까지도 뜨지 못한 채 상황이 좋아지기를 기다리던 비행기에 다시 올라타

겨우 보스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특별한 환영을 받았던 셈입니다. 이따금 이곳의 일상을 사진과 함께 올리겠습니다.

오래 못했던 주인 노릇도 조금 해볼까 하구요.

아직은 일상이 낯설고 경황이 없군요. 첫 소식을 이렇게 전합니다.

 

이 글은 길수가 우리에게 보내준 메일이다.

 정민교수가 지난 여름 하버드 옌칭 연구소에 안식년을 간 이후 보낸 첫 소식이라고...

길게 편지글을 쓰지 않을 양반처럼 보였는데, 장문의 편지를 받고 정민교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내심 기뻤겠구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민 교수 인터뷰에 다녀오지 못해서 그를 본 적은 없지만

한시미학 산책을 보기 전에 이번에 읽은 [다산 선생 지식경영법]과 [미쳐야 미친다]를 저자와 상관없이 사 본 책이다.

 

정민 교수도 그렇고, 지난번 사기열전 김원중 교수 북 콘써트를 가서도 느낀 것인데,

원전에 접속할 실력과 능력이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부러운 적이 없었다.

마치 그들은 금광을 가지고 있는 느낌 이랄까?

그들은 우리가 알고 있는 좋은 스펙의 학교를 나온 사람들도 아니다.

다만 자신의 일에 몰두하다보니 이제 빛을 발하고 있는 상태가 된 것이다.

 

 

한겨례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고전 사랑을 잠시 엿 보았다.

 [고전서 퍼올린 ‘교감’ 더 즐거운 일은 없다.] - 정민 교수

 

“고전은 고리타분? 쉽게 쓰면 읽히죠! ‘한시미학산책’ 독자와 소통 신호탄

잠언집·‘죽비’등 고전 속 문장 넘어 문화사로 “글 쓰고 나면 세번 소리내어 읽어요”

 

정 교수가 처음으로 독서대중들과 만난 것은 1996년 <한시 미학 산책>이란 책이었다.

이후 정 교수는 그야말로 물을 만난 고기처럼 책을 쏟아냈다. <마음을 비우는 지혜> 같은 잠언 소품집부터 <비슷한 것은 가짜다>같은 묵직한 에세이, 교과서속 암기대상이었던 위인들이 생생한 우리 이웃처럼 살아서 등장하는 <미쳐야 미친다>, 고전 속 문장을 곱씹어 들려주는 <죽비소리> 등 내는 책마다 한결같이 좋은 반응을 얻었다.

 

 

정 교수가 사람을 놀래키는 점은 저술 작업량도 많지만 항상 책의 수준을 유지하는 점이다.

게다가 요즘에는 그가 다루는 주제의 폭이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점점 넓어지고 있다.

가장 고리타분할 것 같은 전공을 가진 고전학자가 가장 모던한 감각으로 무장하고 독자들을 이끌어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인문학자들과 달리 정 교수가 이런 작업을 해낼 수 있는 이유는 뭘까.

아니 그 이전에 그는 왜 이렇게 저술작업에만 매달리는 것일까.

 

 정 교수에게 묻자 너무나 간단하고 명쾌한 답이 돌아왔다. “그거보다 더 즐거운 게 없으니까.”

 

 

정 교수는 지금껏 골프를 쳐본 적도, 스키를 타본 적도 없다.

지식을 탐구하고 글쓰는게 재미있어 다른 일을 할 틈이 없었다는 것이다.

 “지식을 통한 창조의 욕구는 묘한 쾌감을 동반해요.

어떤 정보 하나를 찾으면 그 뒤로 연관 정보들이 줄서서 대령하고 있었던 것처럼 계속 나와요.

심지어 글쓰다가 피곤해서 무심코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펼쳤는데 논문과 관련된 페이지나 막힌 생각을 뚫어주는 힌트가 들어있는 대목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자주. 그럴 때는 소름이 쫙 끼쳐요.”

 

 

정 교수는 궁금한 것, 재미난 것이 생기면 거의 자동적으로 뇌가 작동을 시작한다.

요즘 구상중인 ‘조선의 여행문화’란 주제도 그렇다. 어느날 우연히 근대 일본의 여행문화를 다룬 <에도의 여행자들>이란 책을 읽다가 자연스럽게 생각이 떠올랐다. ‘그러면 우리 조선 선비들은 어떻게 여행을 다녔을까?’

 

 

그러면 곧바로 메모가 시작된다. 제목을 정하고, 논문이되건 책이되건 어떤 내용들이 들어가야 할 지 목록을 짠다.

여행의 준비물은? 경비와 규모는? 놀러갔을 때 놀이의 규칙은?….

다시 며칠 뒤 2차 메모에 들어가 전체 목차의 얼개를 마련한다.

관련된 스크랩이나 복사물도 덧끼운다. 이렇게 매일매일 정리한 파일을 연구실 곳곳에 비치한다.

 

 

 

정민.jpg

 

 

이 곳에는 다른 교수 연구실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것이 있다.

수 백개의 의료차트를 둥그렇게 꽂아 빙빙 돌려가면서 꺼내볼 수 있게 만든 차트 보관대다.

자료 정리에 골머리를 앓다가 우연히 보고는 ‘저거다’ 싶어 거금을 주고 그 자리에서 산 것으로,

 정교수 일생에서 가장 성공한 쇼핑이 됐다.

 

 

 

 ‘조선의 여행문화’처럼 차트집 하나가 책 한 권의 기획안 모양을 갖추면 여기에 꽂아놓고 추가할 것이 있을 때마다 꺼내서 보충한다. 정 교수는 이 물건을 ‘씨앗창고’라고 부르는데, 이미 수백개 파일로 가득차서 더이상 끼울 칸이 없는 상태다.

 

 

정 교수는 내용과 문체에서 모두 ‘전달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한다.

대중들은 정교수의 문체가 유려하다고 평하지만, 정작 정교수는 글쓰기에 있어 아름다움을 전혀 중시하지 않는다고 잘라 말한다.

형용사와 부사를 최대한 줄이고, 접속사를 피해 문장을 나눈다.

 

 

가장 중시하는 것은 글의 리듬, 그리고 언어의 경제성이다. 아무리 공들여 쓴 표현이라도 퇴고과정에서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과감하게 도려낸다. 그럴수록 전달력이 강해지기 때문이다. “글을 쓰고 나면 3번 소리 내서 읽어요.

제가 읽고 고치고 아내에게 부탁합니다. 아내가 읽어가다 멈추는 곳이 있으면 그건 문장이 잘못된 거에요.

그런 곳들을 한번 더 고칩니다

 

연암 다산이 ‘지식 정보화’ 스승

더 큰 차원에서는 문체의 힘이 아니라 담고 있는 내용의 힘으로 주제를 전달하고자 한다.

그 주제란 시대를 초월하는 사람들 내면 풍경의 보편성, 그리고 지금 사람들에게도 와닿는 옛사람들의 생각이다.

이는 곧 문학을 통해 문화를 지향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은 늘 변하지만 사실 변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선인들의 관심사가 지금 우리 고민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죠.

그래서 잘 들여다보면 현실의 이야기가 옛 사람들 이야기와 포개지는 지점이 있습니다.”

 

그에게 이런 철학을 심어준 사람은 그가 책 속에서 만난 스승 연암 박지원이다.

정 교수는 “연암을 만나 생각하는 방식, 글쓰기 습관, 문화를 바라보는 시각과 콘텐츠에 대한 이해를 배웠다”고 말한다.

 연암에 이은 요즘 스승은 다산 정약용.

 

그가 보기에 다산은 “진정한 지식과 정보의 기획편집자”이며, 그에게 나아갈 방향을 가르쳐주는 새 스승이다.

새 스승에게 배운 바는 조만간 책으로 나온다.

제목은 <다산의 지식경영>. 다산이 어떻게 당대의 지식과 자신의 문제의식을 책으로 기획,

편집했는지 살펴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통할 수 있는 ‘지식 정보화 작업’의 고갱이를 탐구하는 책이다.

글 구본준 기자 bonbon@hani.co.kr,

 

 

아마도 다산 지식경영이 나오기 전에 인터뷰 한 글인가보다.

그의 인터뷰 내용을 보며 그는 정말 스승의 길을 잘 벤치마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의료차트 보관대는 욕심이 나는 물건이다. “심지어 글쓰다가 피곤해서 무심코 아무 책이나 집어들어 펼쳤는데, 논문과 관련된 페이지나 막힌 생각을 뚫어주는 힌트가 들어있는 대목이 나올 때도 있어요. 그것도 생각 이상으로 자주. 그럴 때는 소름이 쫙 끼쳐요.”

 

 

 

아마도 다산이 말하는 ‘정보가 걸어와 내게 알려주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끌림의 법칙에 의해 정보들도 내게 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자신의 집필 주제에 집중을 하는 것이겠지? 지식경영 머리말에 이런 말이 있었다.

 

 

’안식년의 절반 이상을 오롯이 다산을 위해 바쳤다. 길을 가면서도 다산만 생각하고, 밥먹으면서도 다산만 떠올렸다.

 생각들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나와 정보들끼리 부딪히며 정리되었다. 생각이 고갈되면 저 원두로부터

신선한 물줄기가 다시 차 올라오는 것을 느꼈다.

꽉막혀 더 나갈 수 없을 때는 책속의 다산이 알려주고 이번에 보니 다른 책들도 길을 열어 주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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