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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7일 08시 55분 등록

서문

 

 대학교 2학년 때였다. 아침 수업시간을 맞추느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뛰어가고 있었다. 수 많은 사람들 틈 사이로 몸을 이리저리 움직였다. 누군가 소리쳤다.

 "! "

 순간, 나는 뒤를 돌아 보았고 사람들의 시선은 내 얼굴에 집중되었다. 왜 뒤돌아 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선배가 놀린다고 부른 그 단어는 그렇게 내 마음에 꽂혀 버렸다. 이후부터 똥은 나의 별명이 되었고, 첫 직장 생활에서 세상의 온갖 똥을 접하는 인연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똥을 물로 만드는 일이었다. 똥을 푸기도 하고, 똥차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똥차에서 바라본 세상은 현실과는 달랐다. 평소에 느껴보지 못했던 특별한 경험이었다. 주변의 차들과 친하게 달릴 수 없었으며, 식당 앞에 마음 놓고 주차할 수 없었다. 차에서 내릴 때면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곱지 않았다. 심지어는 바로 옆, 차 주인에게 욕설까지 듣기도 했다. 세상은 겉으로 보여지는 사물과 사람을 인식하고 있었다. 자신들이 늘 가지고 다니는 똥은 의식하지 않은 채 말이다. 하지만 무의식 세상인 꿈에서 똥을 보면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사람들은 상상한다. 이렇게 '' 만큼 이원화되고 대극의 모습을 보여주는 단어도 흔치 않을 것이다.

 

 언젠가부터 나는 더러운 냄새가 나면 피하고, 똥차가 보이면 얼른 차선을 바꾸는 인간으로 변해 버렸다. 누군가 나를 똥이라고 부르면 불쾌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갈수록 마음의 문이 닫혀지더니 어느 새 굳게 잠겨버렸다. 누군가 나의 마음을 열어주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열어주지 않았다. 아빠가 되어서야 알게 되었다. 내 스스로 열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어느 날, 두 아들이 똥 이야기에 열광하는 모습을 보았다. 문득 똥차를 타고 다니던 그 때가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스꽝스럽고 부끄러운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서 아이들에게 똥차를 타고 세상을 누비고 다닌 아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빠의 별명도 말해주자, 아이들은 "!"이라고 놀렸다. 아이들의 웃는 모습에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마음의 문을 열어준 열쇠는 바로 ''이었다.

 아들이 말했다.

 "아빠, 지금 행복해?"

 ", 아빠라서 행복해, 똥이라고 불러줘서 행복해"

 

 아이들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어린 왕자가 모자 속 보아뱀을 알아보듯이 마음의 눈으로 사물을 보고, 마음이 말하는 것에 귀를 기울인다. 비록 냄새로 가려져 있다 해도 그 안의 보물을 아이들은 찾을 수 있다. 그런 아이들의 눈으로 나의 발자취를 들여다 보았다. 그리고 나의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침 출근부터 전쟁을 치르는 직장인들, 일에 매달리는 시간 동안 행복과 불행이 수없이 교차한다. 그 안에서 삶의 의미를 찾아보려 하지만, 퇴근 후에는 모든 기억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고 만다.

 

 오랜만에 부산 출장이었다. 무언가 새롭게 시작하고 싶을 때, 나는 기차를 탄다. 빨리 가는 KTX기차가 아니라 무궁화 호다. 시간에 쫓겨 사는 현실이 싫어서일까? 내 삶의 도착시간을 잠시나마 줄여 보고 싶어서일까? 나의 존재보다는 시간만 존재하는 느낌이었다. 해가 떠 올랐다. 차창 틈으로 햇살이 비집고 들어온다. 기차보다 빨리 지나가는 차들이 보인다. 그런데 기차보다 천천히 달려가는 차가 눈에 들어왔다. 초록색 탱크 위에 푸른 색 호스가 올려져 있는 똥차였다. 마치 큰 푸른색 뱀이 또아리를 틀고 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이었다.

 

 여전히 똥차 주변에는 차들이 가까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달리는 모습이 여유로워 보였다. 운전기사의 모습을 멀리서 당겨 보았다. 아침 햇살에 얼굴이 환하게 비춰졌다. 운전대를 양손으로 움켜잡고 엉덩이를 들썩이는 모습이 통통 튀는 어린 아이 같았다. 잠시 고개 돌린 아저씨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나는 뿌꼬 아저씨를 발견하게 되었다. 마음의 눈을 뜬 순간이었다.

 

 우주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 외에도 지구와 비슷한 수 많은 행성이 있다. 은하계에서는 4천억 개의 별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우주에서 인간만이 유일한 생명체라고는 믿기 힘들다. 분명 다른 생명체들이 인간의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 가까이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들이 지구에서 인간들에게 들키지 않고 살아간다면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먼저 인간들의 가까이 하기 싫은 일을 선택할 것이다. 더럽고 냄새 나는 일이라면 인간들은 얼씬도 하지 않는다. 우연히 마주치더라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인간들은 알아서 먼저 피해주기 때문이다. 마음 놓고 인간들의 세상을 활보할 수 있는 직업은 바로 똥 푸는 일이다. 이렇게 먼 우주에서 지구를 찾아온 생명체는 똥을 푸면서 똥차를 타고 다닌다. 그 아저씨의 이름은 뿌꼬다. 뿌꼬아저씨는 지구의 인간들이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보물을 찾아 다닌다. 뿌꼬아저씨의 정체를 알아본 어느 소년과 함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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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09:00:56 *.246.77.241

먼저 서문부터 올립니다.

선배님, 오프수업때 엄하고 따끔한 지적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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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10:28:31 *.51.145.193

역시 행님, 빠릅니다. ^^

도저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중에 올리신 서문을 보고 마음을 다잡습니다.

시원하게 웃는 모습만큼이나 상쾌하게 출발하는 서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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