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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7일 23시 35분 등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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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의 건달 ‘재즈’는 유복한 가정의 요조 숙녀 파샤에게 한 눈에 반한다. 그러나 사회의 통념 상, 무엇보다도 파샤의 부모의 눈에 재즈는 자신의 딸에게 결코 어울리는 청년이 아니다. 더이상 파샤를 만나지 못하게 된 재즈는 생각한다. 전쟁으로 파괴된 채 방치된 다리 교각의 한쪽 편에서 다른 편으로 오토바이를 타고 건너 뜀으로써 세계적 명성을 얻으리라고. 그리고 그녀를 되찾겠느라고. 오토바이에 자신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재즈의 점프는 실패하고 만다. 그렇게 그의 사랑을 향한 도약은 죽음의 추락으로 막을 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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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이야기는 폴란드 작가 휄레의 ‘첫사랑’이란 소설의 짧은 줄거리입니다. 저는 위 이야기를 오사와 마사치의 ‘연애의 불가능성에 대하여’란 책에서 만났습니다. 이 철학자의 말에 따르면 만약 일반적인 통념처럼 사랑이 만약 “나라는 동일성이 타자라는 차이성과 완전히 등치되는 관계”가 되는 것이라면, 즉 내가 네가 되는 것이라면 사랑은 절대 불가능한 것입니다.


왜냐면 ‘나’라는 동일성(아이덴티티)을 지닌 하나의 우주는 ‘너’라는 타자와의 차이성에 동화되는 순간, 사라져버리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나는 너를 사랑함에도 영원히 너와 내가 하나는 될 수 없다’는 조금은 슬픈 결론에 도달하게 됩니다. 하지만 제가 희망을 가지는 것은 바로 우리가 실패할 수 밖에 없는 이 지점입니다. 재즈가 추락할 것이 틀림없음에도 불구하고 끊어진 교각을 넘기 위해 점프하는 것처럼, 우리는 영원히 혼자일 수 밖에 없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을 합니다. 


자본주의란 불완전한 체제에 균열에 가기 시작한 21세기의 초입에서 마르크스의 ‘코뮤니즘(communism)‘을 다시 생각해봅니다. 만약 그가 꿈꾸었던 공동체(community)가 배부른 돼지가 지배하는 동물농장의 ‘관료주의’ 같은 것이 아닌, ‘공산당 선언’의 한 구절처럼 “계급과 계급 대립이 있던 낡은 부르주아 사회 대신에, 각자의 자유로운 발전이 모든 이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한 조건이 되는 연합체” 즉, '자유로운 개인의 공동체'라면 저는 그의 꿈을 지지합니다. 


또한 ‘독일 이데올로기’에서 말했듯이 그의 코뮤니즘이 “조성되어야 할 상태나 이상이 아니라, 현재의 상태를 지양해 나가는 현실적 운동”, 즉 현재의 상태를 폐기해나가는 '적극적인 실천의 과정'이라면 저는 그 또한 열렬히 지지합니다. 엘뤼아르의 유명한 말처럼 “별이 없는 꿈은 잊혀진 꿈”이니까요. 사랑이 없는 삶이, 살아 있어도 죽은 삶인 것처럼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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