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2012년 11월 8일 11시 56분 등록

만남

 

 "이번이 마지막이야"

 "엄마, 벌써 네 번째 전학이야"

 소년은 애원하며 말했다.

 "미안해, 이번엔 아빠 고향으로 가는 거야, 이제 다시는 이사 가지 않을 거야"

 "지난번에도 똑같은 말을 했잖아"

 이제 막 학교에 적응하려던 참이었다소년은 도시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다. 새로운 초목을 찾아 이동하는 유목민과 같은 생활이었다. 소년의 마음은 항상 메말라 있었다. 누군가 가까이 다가오면 이별을 생각해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년에게는 친구가 없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세 번의 전학이 있었고, 이제는 마지막이라는 엄마의 말을 다시 떠올렸다. 다행히 이번에는 도시가 아닌 시골이었다. 그 곳은 아빠의 고향이기도 했으며, 친할머니가 있는 곳이었다.  

 

 전학하는 날엄마 손을 잡고 교실로 들어갔다. 매번 낯설었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누구의 눈도 마주치기 싫었다. 도시로 빠져 나가는 사람들로 교실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맨 뒷자리에 가서 앉았다. 창가 바로 옆자리였다. 책상위로 햇살이 쏟아져 따뜻했다. 창문 넘어 넓은 운동장을 가로 질러 가는 엄마의 뒷모습을 소년은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의 모습처럼 외로워 보였다.

 다음 날, 엄마는 직장에 나가기 위해 짐을 꾸리고 있었다.

 "엄마, 오늘 무슨 날인지 알어?"

 "아니, 무슨 날이니?"

 "달력 봐봐, 무슨 날인지"

 엄마는 달력을 유심히 쳐다보며 말했다.

 "아빠 생일이구나, 엄마가 바빠서 깜빡 했어, 미안해 지상아"

 할머니는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소년은 할머니가 사주신 도시락을 가방에 챙겨 넣고 엄마와 함께 집을 나섰다. 소년의 아빠는 작년에 돌아가셨다. 큰 눈이 오는 날, 집으로 퇴근하고 오는 길에 사고를 당했다. 엄마는 잠시 가방을 내려 놓고 소년을 꼭 안아주었다.

 "잘 다녀와, 전화하는 거 잊지 말고"

 "그래, 우리 지상이 다 컸구나전화할께" 

 

 소년은 엄마하고 어디든 가고 싶었다. 하지만, 엄마가 힘들어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참아야 했다. 그래서인지 소년은 학교에 가기 싫었다. 오늘 만큼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생각이 간절했다. 소년은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보았다. 조금 전 엄마가 건네 준 용돈이 찰랑거렸다. 무언가 사고 싶은 생각에 소년은 문구점에 들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이 폭죽이었다폭죽 하나를 손에 들고는 만지작거렸다. 왠지 폭죽 터지는 것을 보면 가슴이 뚫리고, 밤 하늘에 있는 별을 아침에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갑자기 주인 아저씨 목소리가 들렸다.

"이 녀석, 내가 모를 줄 알았지"

그제서야 소년은 폭죽을 들고 문 밖으로 나가는 자신을 발견했다.

"깜빡 했어요, 아저씨, 용서해 주세요"

"계속해서 물건이 없어진다 했더니, 네가 다 가져갔구나, 문 앞에서 무릎 꿇고 손 들고 있어"

 주인은 소년의 귀를 붙잡고는 문 앞으로 데려갔다. 소년에게는 저항할 힘이 없었다. 지금까지 없어진 모든 물건을 변상해야 할 처지였다. 소년은 무릎을 꿇고 두 손을 높이 들었다. 등교 시간이어서 수 많은 아이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분명 저 속에 같은 반 아이들도 있으리라. 소년은 눈을 마주치기 싫어서 고개를 숙였다.

"고개 들어!, 창피를 당해봐야 반성을 하지"

소년은 고개를 천천히 들었지만 눈은 여전히 바닥을 향하고 있었다. 선생님과 엄마에게 야단 맞을 생각 때문에 소년은 두려웠다. 가슴이 쿵쾅거리더니 이마에서 식은 땀이 베어 나왔다.

 

 멀리서 아이들 소리가 들려왔다.

 ", 똥차 간다"

언덕 아래로 트럭 한 대가 내려오고 있었다. 초록색 탱크에 푸른 색 호스를 얹는 똥차였다. 그 뒤로 뛰어가는 아이들은 신이 났다. 똥차 아저씨는 멀리서부터 소년에게 눈길을 보내고 있었다. 똥차가 소년 앞으로 지나갈때, 소년은 그와 눈이 마주쳤다. 잠깐이었지만, 그의 눈빛은 오래 전에 만난 사람처럼 따뜻했다.

 "너처럼 나쁜 짓하고 그러면, 어른이 되어서 저렇게 똥차를 몰고 다니는 거야"

주인 아저씨는 지나가는 똥차를 가리키며 말했다. 곧 이어 소년의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더니, 혀를 찼다. 소년은 금새 눈시울이 붉어졌다. 엄마 생각이 떠올랐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오른손으로 눈물을 닦아내며 연신 훌쩍거렸다. 소년은 엄마가 금방이라도 나타나서 힘든 손을 잡아줄 것 같았다. 매일 저녁 별을 보면 엄마가 항상 가까이 있었는데, 지금은 소년 혼자였다.

 

 누군가 걸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진한 남색 장화가 가까이 다가 왔다. 고개를 들자, 조금 전 눈을 마주쳤던 똥차 기사였다. 몸집이 작아서 신고 있는 장화가 유난히 커 보였다. 초록색 점퍼에 푸른색 모자를 쓰고 있었다. 똥차 색깔과 어울렸다. 얼굴은 햇빛에 그을려서 어두웠지만, 그의 눈빛은 밝고 빛났다. 다시 한 번 소년을 쳐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소년은 문구점 안으로 들어간 아저씨를 보기 위해, 두 손으로 창틀을 잡고는 머리를 쭉 밀어 올렸다. 주인과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이 보였다. 주인은 처음엔 큰 소리를 치더니 점점 조용해졌다. 곧 이어 아저씨는 바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더니 테이블 위해 누런 지폐 한 장을 올려 놓았다.

 

 그는 문을 열고 나와서는 소년의 지친 손을 잡아주었다. 그리고 소년의 눈을 쳐다보았다. 그는 소년의 마음을 알 수 있었다. 소년은 어릴 적 아빠와 함께 폭죽 놀이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리고, 폭죽을 터트리면 금방이라도 아빠를 볼 수 있을 것 같았다소년은 아저씨의 뒷 모습을 물끄러미 쳐다 보며 눈물을 닦았다.

 

 

IP *.246.73.37

프로필 이미지
2012.11.09 06:34:27 *.246.73.87

선배님,

꼭지글 아래에 있는 세가지 글은 각 장이 끝날 때마다 작은 이야기로

넣어두거나, 아니면 서문이 끝나고 난 뒤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에 넣어두려고 하는데, 어떠신지요?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