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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0일 06시 49분 등록

서문

그 날은 회사에서 프리젠테이션 교육이 마무리 되는 날이었다.

다 마치고 올라가려다 만 U 이사는 슬그머니 내게 다가와

다음과 같은 사실을 털어 놓는 것이었다.

 

 

“ 소장님, 그런데 말입니다. 전 어려운 분들 앞에 서면 더 잘 안된단 말이에요,

어떻게 하면 어려운 분들 앞에서도 잘 할 수 있을까요? 좋은 방법이 없을지...“

 

이렇게 시작된 그와의 대화는 우리를 잠시 그의 중고등학교 시절 사춘기로 돌아가게 했다. 그의 어려워진 가정형편, 뜻하지 않게 맡게 된 임시 반장, 우물쭈물 집안 사정을 이야기 하지 못하게 되어 덜컥 맡아버린 1학기 반장. 그로인해 시작된 담임 선생님의 구박과 멸시, 수치심. 바로 우리는 그 수치심이 지금도 남아 U이사를 괴롭힌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뿐만 아니라 아주 오래전의 일이고 너무 부끄러워 아무에게도 이야기 하지 못했다며 털어논 사실이다. 그런데 바로 그 케케묵은 감정이 지금의 나를 괴롭히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는 눈치였다. 우리는 곧바로 내 몸에 남아 있는 그 추억의 선생님에 대한 수치심을 찾아 내기로 했다. 이어진 몇 번의 감정코칭 그리고 수치심으로부터 풀려난 마음의 자유.

 

이제 U이사는 어떤 어려운 사람 앞에서도 프리젠테이션을 잘 하는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내가 책을 내야겠다고 생각한 첫 번째 사건이었다.

방송을 했던  나는 처음으로 건설 설계 턴키 시장에서 필요한 스피치 기술을 알려주기 위해 기업에서 교육을 시작했다. 실전 경험이 없던 나는 방송현장에서 배운 스피치 노하우와 설계 시장의 접목점을 찾아내기 위해 고심했다. 다행히 시간이 갈수록 많은 아이디어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결정적으로 감정코칭을 프리젠테이션에 도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야말로 프리젠테이션과 코칭의 결합, 두 전문 분야를 통합하는 통섭의 과정이었다.

 

 

그 과정을 접한 임직원들은 신기해 했고, 나 또한 놀라운 결과들을 볼 수 있었다.

이제 내가 근무하는 내 외부엔 스피치 달인들이 생겼으니 제자들을 많이 배출 해낸 셈이다. 그 회사에 가서 처음 인연을 맺은 부사장님은 이제 설계 현장에서 스피치를 하게 되면 “ 방송인 출신이신가요?” 하는 농담을 들을 정도로 ‘프리젠테이션 선수’가 되었다. 그 분은 처음에 프리젠테이션을 배울 때 나를 귀찮으리만치 쫒아다니며 얼마나 많은 연습을 했는지 모른다. 영어에 왕도가 없듯이 스피치에도 난 왕도가 없다는 생각을 한다. 오직 연습, 트레이닝, 훈련만이 있을 뿐이다.

 

스티브잡스를 스피치의 달인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린 무대 뒤에서 열심히 노력하는 피티의 달인 잡스는 알진 못한다. 백조가 우아하게 물 위에 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물 밑에서는 마구마구 물장구를 친다는 이야기를 우린 익히 들어서 알고 있다. 많은 연습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연습을 전략적으로 내 삶에 적용하고 나의 부정적인 히스토리를 올바르게 긍정의 에너지로 바꿔 스피치에 접목 시킬 수 있느냐는 스피치의 성패를 가름한다.

 

스피치 스킬 보다도 나 자신을 믿는 힘, 자존감 등에 대해서도 프리젠테이션과 통합 시켰다. 오래도록 경쟁 현장에서 있어보니 스피치는 청중에게 끌려 갈 것인가? 청중을 끌고 올 것인가에 대한 싸움이기 때문이다. 청중을 넉넉하게 휘어잡을 수 있는 힘이 내게 있다면, 어떤 사람을 만나도 나는 두려울 것이 없다. 내 의식의 그릇을 넉넉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선행되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데이비드 호킨스의 ‘ 의식혁명’에 따르면 ‘불안하고 두려운 에너지’는 100에 해당한다. 그러나 긍정으로 올라가는 시작점에 있는 ‘용기’는 200이다. 무려 두배가 차이나는 숫자다. 이 100의 차이는 단순한 차이가 아니라 큰 차이가 있는 수치다. 이 어마어마한 차이가 두려움으로 청중에게 전달 할 것인지 자신감으로 전달될지가 정해지는 것이다. 결국 모든 에너지는 전달 되어서 청중과 결정권자로 하여금 “ 아 ! 나 저 사람의 프로젝트를 선택하고 싶다.” 라는 마음을 먹게 한다. 그럴 경우 당신은 청중을, 결정권자를 설득한 것이다.

 

 

감정코칭을 받고 스피치를 하게 되면 그 의식의 에너지를 채우고 무대에 나선 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자신감은 나를 존중하고 나를 믿는 의식인데, 그 자신감은 결국 나에게 말을 잘 하는 에너지를 준 다는 것을 알게 되는 일은 신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또 그 자신감은 어떻게 하면 높일 수 있는지 프리젠테이션의 길라잡이가 되려고 한다. 교육을 하며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 처음엔 왜 스피치 교육은 안하고 의식 이야기를 자꾸 하나 의아해 하던 이들도 교육을 마치면 정말 많이 좋아하곤 했었다. 교육이 시작할 때와 마칠 때의 교육장 분위기는 180도 달라짐은 우린 모두 체험하곤 했다. 그런 많은 경험과 깨달임이 있는 현장이 있었다는 것이 정말 내겐 행운이고 축복이었다.

 

 

매년, 매 분기 지루하지만 의미 있는 교육을 나와 함께 만들어 간 회사의 임직원들 얼굴이 스쳐지나 간다. 내게 그 교육장이 아니었더라면 지금의 이 책은 없었을 테니 말이다. 모든 회사의 임직원들과 건설 설계 현장에 있는 이땅의 역군들에게 “고맙습니다.”라고 전하고 싶다.

 

 

대표 꼭지글

내 몸의 에너지는 청중에게 전달된다.

몸은 정지 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몸은 정지 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다. 누군가 뒤에서 나를 쏘아 볼 때의 그 느낌을 아는가? 우리는 뒤에 눈이 달려 있지 않음에도 인기척을 느낀다. 어느 공간에 들어 갔을 때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나를 웰컴 하는지 나를 밀어내는지 나는 ‘느낌’으로 알아 차릴 수 있다. 우리나라 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싸이의 열풍이 뜨겁다. 오늘 뉴스를 보니 옥스퍼드 대학에서 강연을 하는 모습이 보인다. 마치 내가 정말 옥스퍼드에서 강연을 하는 내가 맞는 것인지 스스로 정말 대견해하며 “감개무량하다는 말을 몇 번씩이나 한다. 영국인들과 옥스퍼드에 있는 한국 유학생들이 졸졸 그를 따라 다니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노라면 한국인임이 자랑스럽다. 저 학생들이 싸이를 따라다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에게서 나오는 당당함, 자신감, 유쾌함, 즐거움때문일게다. 이렇듯이 사람들은 저마다의 의식의 에너지를 내뿜으며 살고 있다. 어떤 사람은 만나고 나면 또 만나고 싶고 보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 둘을 극명하게 가르는 결정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그 사람의 에너지 때문이 아닐까 싶다.

 

김대리는 어젯 밤 프리젠테이션 걱정에 한 숨도 못 잤다. 밤을 걱정으로 보낸 그는 사장님 앞에서 하는 스피치가 너무 큰 중압감으로 다가온다. 그렇다고 딱히 방법을 알지 못하는 그는 별다른 행동을 하지 못하고 걱정만 하다 오후 세시 정각 사장님 앞에 섰다. 두근 거리는 마음을 아무리 진정하려고 하여도 여지없이 떨려 버린다. “ 아 어쩐다.! 본부장님께 못한 다고 할까? 꼼수를 써보고 싶지만 그럴 수도 없는 상황이다.

 

자 이런 불안하고 두려운 에너지는 김대리에게만 머물게 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이미 스피치를 듣기 위해 모인 사람들에게 전달되고, 그 공간의 분위기에도 전달된다. 김대리가 말을 꺼내기 전에 이미 그 프리젠테이션은 이미 실패한 스피치 인 것이다.

 

위대한 탄생의 국민 할매 김태원에게 기자가 물었다. ‘무엇을 보고, 어떤 모습을 가수감이라고 판단을 하느냐?’ 김태원은 마이크 앞까지 걸어 나오는 모습에서 이미 판단이 선다고 대답한다. 열정이 있는 사람은 걸음걸이에서도, 말 하는 모습에서도 티가 난다는 것이다. 특히 손은 숨길 수 없는 자신감의 표현이라고...사랑과 기침은 속일 수 없다고 했던가? 자신감이 없는 사람도 그 부분을 도저히 숨길 수가 없는 것이다. 이렇듯 스피커 (프리젠터)의 에너지는 반드시 공간과 청중에게 전달되고 만다. 숨길 방법이 없는 것이다. 스피커의 자신감도 전달 되고, 스피커의 교만함도 전달 된다. 하지만 청중들은 스피커의 자신감과 함께 청중을 존중하는 눈빛도 원한다. 그래서 프리젠테이션은 청중에 대한 존중이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무대에 서면 또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은 Eye-Contact이다. 눈을 마주보고 뚫어지게 쏘아보며 스피치를 하진 않아도 청중을 잘 쳐다 볼 수 있는 힘은 나의 내면에 있는 에너지에서 나온다. 예전에 다니던 교회 성가대 앞줄에 한 자매가 있었는데, 그 자매는 지휘자를 쳐다 보는 법이 없었다. 늘 그녀의 눈은 악보에만 매달린다. 처음부터 끝까지 잠시 눈을 들어 지휘자를 보더라도 힐끗 보고는 이내 눈을 돌리고 만다. 왜 어떤 이는 눈 맞춤이 가능하고 어떤 사람은 그것이 그토록 힘든 것일까?

 

몇 년 전 그룹 상담에서 만난 집사님이 계셨다. 우린 돌아가며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피드백을 하는 정신과 치료에서 하는 싸이코 드라마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있다. 강원도 출신인 그 분은 부모와의 문제보다는 작은 삼촌과의 경험이 그의 인생을 발목 잡고 있었다. 부모님이 들에 나가서 일을 하시면 공부를 가르치는 몫은 작은 삼촌 담당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삼촌은 집이 조용한 상태에서 꼭 수학을 가르치다가 이 분이 잘 못할라치면 폭언 폭력을 휘두르기 일쑤였던 것이다. 그런데 중대한 사건이 어느 날 일어났다. 그 삼촌이 실연을 당하고 들어 온 것이다. 그에 대한 화풀이를 그 집사님에게 퍼붓다가 그것이 성에 차지 않는지, 그 조카를 데리고 우물가로 나간 것이다. 시간은 오후 5시 무렵. 그 삼촌은 우물가에서 그를 발가벗긴 채 거기에 세워두는 벌을 주었다. 옛날 시골에서 그 시간이면 동네 처자들이 저녁밥을 짓기 위해 우물가로 나오는 시간이었단다. 초등학교 5학년인 그에게는 그 사건이 일생 일대 지울 수 없는 치욕스러운 사건이 되었다. 그 이후로 그 어린 아이는 사람의 눈을 똑바로 쳐다 볼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람에게 수치심은 이렇게 일생을 좌우하기도 하는 것이다.

 

수치심은 부정적인 에너지 중에서도 가장 낮은 20의 에너지다. 이 수치심의 에너지가 계속 되면 사람은 자살을 선택한다. 수치심이 자신감보다 많은 사람은 아무리 스피치 스킬을 알려줘도 자신감을 회복할 길이 없는 것이다. 수치심을 제거 하는 방법으로만 그의 망가진 자존심을 회복하며 자존감을 높일 수 있는 길이다. 내 몸에 남아 있는 수치심을 없애고 나면 내가 경험한 그 경험은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긴다. 마치 나의 일이 아니라 남의 일처럼 볼 수 있는 것이다.

 

 

스피치에서 이런 선행 작업을 하는 것은 무척 중요한 일이다. 자신감과 자존감을 회복하기 시작하고나서 다음에 발성과 발음등 구체적인 스킬 작업에 들어가도 늦지 않다. 높은 건물을 짓기 위해 터파기 작업을 아주 깊숙이 하는 것처럼 스피치에서 이 감정을 다루는 부분은 아주 깊이 땅을 파는 작업인 것이다. 자존감이 업그레이드 되면 두렵고 불안해서 프리젠테이션을 어떻게든 회피하려고 했던 에너지는 점점 차오르기 시작한다. 그래서 어느 순간 두려움을 넘어 행동하기 시작하면 이제 두려움은 사라진다는 것을 경험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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