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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07시 12분 등록

열하일기

-. 박지원 지음, 리상호 옮김

-. 보리출판사, 2004

 

 

저자에 대하여 - 박지원

 

1. 명문 양반집에서 태어나다(1737~1751)

 연암은 1737(영조13) 음력 2 5일 한양 도성의 서쪽 반송방 야동(冶洞)에서 박사유와 함평 이씨 사이의 2 2년 중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한양 서부 11개 방() 중의 하나인 반송방은 지금의 서울 서대문구 속하는 지역이다. 연암의 집안은 당대 명문 양반인 반남(潘南) 박씨 가문에 속했다. 어렸을 때부터 경제에 밝고 똑똑하여 할아버지 박필균(연암이 다섯살 때부터 스물두살 때까지 경기도 관찰사, 사헌부 대사헌, 예조 참판 등의 요직을 역임함)의 사랑을 받음. 그러나 재산 축적에 관심이 없는 할아버지의 별다른 벼슬을 하지 못한 아버지 집안 형편이 어려워 글공부를 하지 못함.

 

2. 이른 결혼과 학업에의 정진(1752~1758)

 열여섯 살 때인 1752년 전주(全州) 이씨와 결혼한 연암은 장인 이보천과 그 아우인 이양천의 지도를 받으면서 본격적인 학업 정진했다. 차숙 이양천은 문과 급제 후 홍문관 교리를 지냈으며, 호를 영목당이라 하였다. 그는 한시와 산문 창작에 뛰어나 주로 문학 면에서 연암을 지도했으데, 그에게서 배운 <사기>는 연암의 작품 세계에 특히 깊은 영향을 끼쳤다.

 연암은 스무 살 무렵부터 같은 명문가 자제인 김이소, 이희천, 황승원 등과 함께 한양 근교의 산사를 찾아다니며 과거 공부에 전념했다. 단릉처사 이윤영의 집에서 <주역>을 배우기도 했다.

 

3. 청년시절의 번민과 소설창작(1759~1769)

 연암은 스무 살 무렵부터 한양 근교의 산사를 찾아 다니며 과거 공부에 전념했지만 우울증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여 사나흘씩 잠을 이루지 못하였다. <서광문전후>에 의하면 열여덟에 병을 심하게 앓았다고 한다. 이 시기에 밤새워 가며 머슴부터 기인까지, 여러부류의 사람에게 시중의 이야기를 즐겨들었으며 이 이야기들이 뒷날 소설의 소재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소설 창작을 통해 연암은 양반 사회의 우정의 도의가 사라진 현실을 개탄하고, 하층 민중과의 사귐에서 도리어 참된 우정을 기대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의 초기 소설들은 <마장전> <광문자전>의 떠돌이 거지들, <예덕선생전>의 똥 치는 인부, <민옹전>의 한미한 무반, <김신선전>의 불우한 중인들과 같이 주로 이름 없는 민중을 주인공격으로 내세우고 있다.

 

4. 과거를 포기, 은둔하며 북학파를 형성하다(1770~1776)

 1770 (영조 46) 그는 소과 초시에 응시하여 초장과 종장 두 번의 시험에서 모두 일등으로 뽑혔을뿐더러, 영조의 특명으로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뵙고 크게 칭찬까지 받았다. 이러한 그가 이듬해의 대궐에 들어가 임금을 뵙고 크게 칭찬까지 받았다. 이듬해 소과 복시에는 주위의 강권에 못 이겨 응시하기는 했으나 시험 답안지를 제출하지 않고 나와 버렸으며, 그해 이후로 다시는 과거를 보지 않았다. 1772 1773년 사이에 연암은 일단 처자를 경기도 광주에 있던 장인의 시골집으로 보낸 뒤 혼자 지내기로 했다. 당시 연암이 거처하던 집은 한양 중부 전동에 있었다. 지금의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속하는 지역이다. 이 시절에 연암은 홍대용, 정철조,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 등과 친밀히 교제하면서, 자신의 사상과 문학을 심화해 나갔다. 이들은 당파나 신분의 차이에 개의치 않고 서로 진정한 우정을 추구했으며, 문학 창작뿐 아니라 음악 연주와 감상, 서화와 골동품 애호 등 폭넓은 예술적 취향을 공유하고 있었다. 이들의 가장 큰 특징은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자 하는 '북학'(北學)을 지향한 데 있었다.

 

5. 대망의 중국여행과 <열하일기>을 저술하다. (1777~1785)

 영조가 승하하고 세손인 정조가 즉위하자, 평소 연암을 미워한 홍국영 일파가 실력자로 부상하여 연암은 가족을 이끌고 황해도 금천군 연암 골짜기로 피신하였다. 그해 겨울 친구 유언호가 개성 유수로 부임하여 연암을 물심양면으로 크게 도와주었다. 1780 (정조4)홍국영이 정권에서 물러나자 가족을 이끌고 서울로 상경했다. 그 때 마침 팔촌형인 금성도위 박명원이 중국 사행의 정사(正使)로 임명된 덕분에, 연암은 대망하던 중국 여행의 기회를 얻게 되었다. 그해 음력 5월 조정에서 청나라 건륭황제의 70세 생신을 축하하기 위해 박명원이 인솔하는 특별 사행을 파견했는데, 여기에 연암은 정사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참여하게 된 것이다. 청나라 황제의 여름 별장이 있는 열하(熱河)까지 여행하고 돌아와서, 다시 연암 골짜기에 들어가 <열하일기> 25편을 지었다.

 

6. 드디어 벼슬길에 나서다. (1786~1790)

 1786년 연암은 음보로 선공감 감역(9)에 임명되어, 나이 쉰 살에 비로소 벼슬길에 나서게 되었다. 이는 벗 유언호가 이조 판서로 있으면서 천거한 덕분이라고 한다. 1789년 그는 평시서 주부(6)로 승진했으며, 이듬해 의금부 도사로 전보되었다가 그해에 다시 제릉 영(5)으로 전임되었고, 1791년에는 한성부 판관(5)으로 전보되었다. 1787년 부인 이씨가 세상을 떠났다. 연암과 동갑으로 평소 부인 이씨의 부덕(婦德)을 존경했던 연암은 부인이 사망한 뒤 종신토록 독신으로 지냈다. 같은 해 7월에는 형님 박희원이 별세하였으며, 이듬해에는 맏며느라 덕수 이씨와 시집간 맏딸이 죽었다. 부인에 이어 맏며느리마저 사망하여 집안 살림을 맡길 데가 없었으므로, 주위에서 재혼을 권했으나 연암은 이를 마다하였다.

 

7. 안의(安義) 현감이 되어 왕성한 창작활동을 하다. (1791~1797)

 1791(정조15)음력 12월 연암은 경상도 안의(安義) 현감에 임명되었다. 안의에 부임한 즉시 연암은 엄정한 판결로 송사를 처리하여 백성들 간에 분쟁을 일삼던 풍조를 바로잡고, 아전들의 상습적인 관곡 횡령을 근절했으며, 관아에까지 침범하던 도적을 퇴치했다. 또한 그는 자신의 녹봉을 털어 흉년에 굶주린 고을 백성들을 구제하기에도 힘을 다했다. 정조 임금은 <열하일기>를 읽어 보고는 직각 남공철을 불러 <열하일기>의 문체를 비판하고 속죄하는 뜻에서 연암에게 순정한 글을 지어 바치라고 명하기도 하였다. 안의 고을을 계속 다스리면서 <열녀함양박씨전>을 지었으며, 1797년 면천 군수(4)에 부임하여 순정한 글을 지으라는 정조 임금의 명에 부응하여 <과농소초>를 지었다.

 

 

8. '계산초당'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다. (1798~1805)

 1800년 음력 6월 정조가 승하했다. 연암은 자신의 하찮은 글 솜씨를 알아준 정조의 은혜에 제대로 보답하지 못했다고 하여 몹시 애통해하였다. 그해 8월 연암은 강원도 양양 부사로 승진했다. 그러나 이듬해 봄에 연암은 관직에서 물러났다. 정조가 승하한 뒤 순조가 어린 나이에 즉위하자,정국이 극도로 경색되어 갔다. 그 무렵 이조 판서, 호조 판서 등에 중용된 이서구가 연암에게 누차 관직에 복귀할 것을 권했으나, 연암은 굳이 사양하고 한양 축촌 가회방 재동의 '계산초당'에서 조용히 말년을 보내는 길을 택했다. 연암은 면천 군수 시절 이래 풍비(뇌졸증)로 고생했는데, 1804년 여름 이후 그 증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죽음을 예감한 듯 약을 물리치고 더 이상 들지 않았으며, 자제들에게 장례를 검소하게 치르도록 지시했다. 1805(순조5) 음력 10 20일 연암은 계산초당에서 향년 69세를 일기로 서거했다.

 

내가 저자라면

 

 연암은 명문가 출신에다 문학적 재능을 가지고 있어 과거시험을 통해 출세 할 수도 있었지만, 현실과 타협하기를 거부하고 재야의 선비로 살아가는 길을 택했다. 또한 그는 우물 안 시야에서 벗어나 천하의 대세를 살피고 나라의 낙후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중국을 다녀온 뒤 북학 사상을 집대성한 거작 <열하일기>를 남겼다. 그가 남긴 <열하일기>는 사진 없이도 탁월한 묘사로 그 당시 중국의 문화와 생활을 상상할 수 있었다.

 

 정민 선생님의 한시미학산책에는 연암의 글로 시작해서 연암의 <답창애2>로 마무리 짓고 있다. 20년 만에 눈이 열린 장님에게 다시 눈을 감으라고 말한다. 눈에 현혹되지 말고 본래의 제자리로 찾아가라는 의미이다. "다시 눈을 감고 먼저 내가 들어가야 할 대문부터 찾아라" 마지막 문구는  글을 쓰면서 흔들릴 때마다 항상 떠올리고 있다. 그 때 접했던 연암은 단지 한시를 잘 짓는 선비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열하일기>에서 연암이 우리 문학사에서 얼마나 위대한 위치를 차지 하고 있는지 깨닫게 되었다. 또한 내가 쓰고 있는 ''이라는 주제에 도움이 되는 그의 작품을 발견하고는 얼마나 기뻐했는지 모른다. 무릎을 치고 소리까지 내질렀다. 그의 작품들을 읽으면서 나의 주제를 새롭게 읽어냈다. 벌써 200년 된 그의 작품이 깊고 새롭게 다가오는 것은 필시 세상을 바라본 그의 마음이 진실되고 따뜻했기 때문이 아닐까? <열하일기>를 읽는 동안 세상의 일면을 드러난 현상과 단순한 의미만을 바라본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그 속에 다채롭고 값진 보물이 숨어있음을 연암을 통해서 찾게 되었다.

 

  <열하일기>에는 연암의 열정적인 탐구심, 나라와 백성에 대한 사람이 담겨져 있었다. 그의 해박한 지식과 설득력 있는 서술도 탁월하지만, 아름다운 자연과 인간들의 생활 모습을 묘사한 부분에서는 감동으로 연신 탄성을 자아냈다. 또한 양반 사회의 모순을 꼬집으며, 모든 낡은 것을 버리고 새것을 창조하여 더 좋은 나라로 거듭나기를 열망하는 연암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열하일기>은 일기 쓰듯이 중국기행의 다양한 경험과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지만, 그 구성을 깨뜨리지 않으면서 자신의 소설을 넣어두었다. 그리고, 전체적인 흐름 또한 소설적 구성처럼 극적인 요소들이 들어가 있어서, 마치 신화에 나오는 영웅들의 여정을 느낄 수 있다. 첫 관문을 통과하고, 시련의 길을 통해서 깨달음을 얻고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다시 귀환하게 되는 영웅의 모험 구성이 떠올랐다. 따라서, 내가 저자라면 이러한 영웅의 모험 구성으로 이야기를 써 나가도 흥미로울 것 같다.

 

 나는 이번 <열하일기> 부록에 수록된 그의 작품을 우연히 보다가 '예덕선생'이라는 소설을 발견했다. 그리고, 원문을 찾아내어서 '예덕선생'을 읽고 또 읽었다. 나와 똑같은 '똥쟁이'가 등장해서 일까? 엄행수 라는 주인공을 통해서 그 당시 시대적 편견에서 벗어나 사물을 늘 새롭게 인식하고 있는 연암을 알게 되었고, 창작과 학문에만 전념한 연암을 내 안에 들어오도록 하였다.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압록강을 건너서

 

27 천하에 정말 그 사람이 있었다면 나는 그를 보았을 것이다. 그 사람인즉 키가 72촌이요, 눈썹과 수염은 시꺼멓고 머리는 삐죽하고 두 볼은 축 늘어진 친구라도 해 둘까? 무엇으로 그런 줄 알았던가? 나는 혜풍의 시를 읽고 혜풍의 속을 짐작하고 이것을 알았다.

 

30 “세상 인심은 갈수록 간드러지고 도심은 갈수록 메말라든다고 했네.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한 획의 선을 변증할 때도 선이라고만 해서는 그 정미한 점을 표현할 수 없다 하여 빛이 있고 없는 짬으로 표현하였고, 불교에서 말하는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므로 그 짬에 잘 처할 수 있다.’는 바로 그 으로써, 이는 도를 아는 자라야 할 수 있는 노릇이니, 이런 사람은 정나라 자신 같은 이를 들 수 있을 것이네.”

 

38 마두배들이 서로를 다투어 가면서 낚싯대를 던진다. 나도 취한김에 낚싯대를 빌려 무심코 던졌더니 앉은자리에서 작은 고기 두 마리를 낚았다. 까닭인즉 이곳 고기들이 아직 낚시 맛을 별로 못 봤던 때문이다.

 

44 예로부터 말하기를 삼각산 도봉이 금강산보다 낫다고들 한다. 금강산은 골이 깊은 산으로 일만이천 봉이라 하여, 별난 봉우리가 깎은 듯이 서로 우람차고 깊은 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길짐승, 날짐승이 깃들고 신선이 오르내리고 부처가 도사려 앉아 음산하고 침침한 품이, 무슨 귀신 사는 동굴에 든 느낌이 없다고 못 할 것이다.

 

45 금강산을 바라볼 때 마침 가을 하늘이 쪽같이 푸르고 석양이 산봉우리들을 가로 비쳤다. 그러나 산색이 어데고 뽑아 낸 듯한 빛깔과 기름진 맛이 없어 미상불 금강산의 흠절을 두고 한번 탄식해 본 적이 있다.

 

45 또 나는 일찍이 남한산성 남문에 올라가 북으로 한양으로 바라볼 때에, 물에 비친 꽃그림자 같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달그림자 같기도 하였다. 더러는 이것을 공중에 뜬 밝은 기운이라고도 한다. 이는 즉 운수가 뻗은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왕기라고도 할 수 있으니, 우리 나라 서울이 억만 년 도읍지로서 움직일 수 없는 산세는 그 주산이 보통 산들과는 마땅히 다른 바 있을 것이다.

49그러나 나는 여기서 크게 반성을 하면서 혼잣말로, ‘이것은 질투심이구나했다. 내 본성이 담박하여 일찍이 부럽다든가 질투나 시기가 없었는데, 한 번 국경을 넘어 타국의 경내에 발을 들여놓았을뿐, 아직 그 만분의 일도 못 본 내가 벌써 이런 그릇된 생각을 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는 아직 본 것이 적은 탓일 것이다. 이른바 시방 세계를 들러본다는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본다면 세계는 모두 평등이라고 한다. 만사가 평등이면 질투도 없을 것이 아닌가?

 

54 “득룡이가 참 용하기는 용하단 말이야. 아까 득룡이가 말한, 연전에 휘항이니 칼이니 주머니를 잃었단 말은 헛소립니다. 공연히 탈을 잡아 한 놈을 욕질로 쥐어질러 놓으면, 여럿은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멍멍하여 서로 얼굴들만 쳐다보다가 수그러지는 법입니다. 이런 수라도 안 쓴다면 사흘이 지나도 낙착을 못 지을것이요. 언제 입책을 할지는 모릅니다.

 

57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요,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이 될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만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가?

 

59 서남쪽은 광활하여 번번하게 터졌고 산은 맑고 물은 오리오리 갈라져 버들숲 그늘은 짙을 대로 짙은데, 농가 집들의 듬성듬성한 울타리가 숲 사이로 간간이 보였다. 푸른 잔디로 덮은 동둑 여기저기는 소와 양 떼가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다리 위에는 무엇인지 메거나 들고 길 가는 행인들 모습이 그림 같다.이런 풍경을 멀거나 바라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피곤이 다 풀리는 듯만 같았다.

 

60 저녁녘이 되면서 날씨가 몹시 더워나기에 빨리 숙소로 돌아와 북창을 훨씬 젖히고 옷을 벗고 누웠다. 뒤뜰은 펀펀하게 넓은데 파 심은 이랑, 마늘 심은 둔덕들이 다들 곧고 반듯하며 오이, 호박 넝쿨을 올리는 시렁들이 정갈하여 뜰에 그늘이 자욱하게 덮었다.

 

60 짐짓 응석을 부려 내게 정성을 보이려고 하는 꼴이 한편으로는 밉살스럽고 한편으론 우습다. 허나 술은 내가 즐기는 바요, 닭알까지 가져왔으니 눈을 감을밖에

 

62 글을 배우는 데는 소위 송서강의두 가지가 있어서 우리 나라와는 아주 딴판이다. 우리 나라에서는 처음부터 음과 뜻을 한목으로 배우지마는 중국에서는 초학자가 먼저 사서의 문장을 입으로 읽기만 하고, 읽는 것이 완전하게 숙달된 뒤에야 다시 선생에게 그 뜻을 배운다. 이것을 ‘강의’라고 한다.

 

64 수레 한 채에 보통 노새가 대여섯 마리씩 붙었지마는 떠들고 분주한 것이 없음을 볼 때에, ‘깊이 간직한 것은 빈 것 같아 보인다.’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 같았다. 모든 사물의 규모가 말같이 째여 서로 티각태각이 없었다.

 

67 우리 조선에서 새벽 흙에 말똥을 섞어 이기는 것이나 같다. 까닭인즉 질겨서 터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요, 때로는 오동나무 기름을 타서 젖갈이 부드럽고 미끄럽게 하여 떨어지고 터지는 탈을 막는다.

 

67 한 장은 엎치고 한 장은 젖히고 암수로 서로 맞아 틈서리는 한 층 한 층 비늘진 데까지 온통 회로 발라 붙여 때운다. 이러니까 쥐나 새가 뚫거나 위가 무겁고 아래가 허한 폐단이 절로 없게 된다.

 

69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은

     수염 털보 눈알을 쏘아 뽑았네.

라는 구절이 있고, 목은 이색은 정관음이란 제목으로 지은 시에,

 

   독안에 든 쥐로만 생각했더니

      흰 깃에 검정 꽃 빠질 줄이야.

라고 하였으니, ‘검정 꽃이라고 함은 눈알을 이름이요, ‘흰깃이라고 함은 화살을 말한다.

이상 두 분이 읊은 시는, 물론 우리 나라에서 옛날부터 내려오는 전설에서 따온 것이다.

 

70 원래 김부식은 <삼국사기>를 지으면서 다만 중국의 사서를 무턱대고 베껴 사실로 삼았을 뿐이다. 심지어는 유공권의 소설까지 인용하여 당 태종이 포위당한 것을 입증하였다.

 

89 해가 몹시 길어 하루가 일 년만 싶었다. 저녁녘이 될수록 더 더워나 몸이 나른하고 졸음을 견딜 수 없었다. 곁방에서는 방금 여럿이 모여 투전을 하기에 떠들썩하고 야단스럽게 다투는 소리가 들렸다.

 

89 “성공한 곳에는 두 번 안 가고, 만족을 알아차리는 것이 위태롭지 않으이!

 

90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장맛비는 활짝 걷고 맑은 바람이 이따금 불어드는데 날씨가 이렇게 청명하니 한낮은 무던히 더울 것 같다. 석류꽃은 떨어져 땅에 질펀히 깔린 채 짓이겨져 붉은 흙탕이 되었다. 수구꽃은 이슬에 젖고 옥잠화는 눈 속에서 뽑은 듯하다.

 

95 나는 이자의 꼴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뜻하는 것이 용렬하고 더럽고 아니꼬워서 데리고 이야기할 위인이 못 되기에 오래 앉았기가 견디기 어려워 곧 일어섰다.

 

106 밤에는 약간 취하여 어렴풋이 잠이 들었는데, 내 몸은 별안간 심양성 안에 있고 궁궐이며 성곽이며, 주택 시가들이 번화하고 질펀하여 나는 혼잣말로 ‘이렇게 장관일 줄은 생각도 못했구나.’ 하면서, ‘당장에 집으로 돌아가 자랑을 하리라.’ 하고는 이내 훨훨 날아가니 산이고 물이고 모두가 발 밑이요,

 

110 옛날부터 영웅은 잘 울고 미인은 눈물이 많다지마는 불과 두어 줄기 소리 없는 눈물이 옷깃을 적실 뿐이요, 아직까지 그 울음소리가 쇠나 돌에서 짜 나온 듯하고 하늘과 땅 사이에 가득 찰 만한 소리를 들어 보지 못했거든!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 가운데 ‘슬픈 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다네. 까지껏 기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골이 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미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하고 싶으면 울 수 있으니, 맺힌 감정을 한번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네.

 

110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에 비할 수도 있는 것일세. 북받쳐 나오는 감정은 언제나 이치에 맞아 발작하는 것이니 웃음만 하더라도 그러한 감정의 발로라네.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 못하고 보니 공연히 까다롭게 칠정으로 나누어 ‘슬픈 감정’에다가 울음을 짝 맞추어 둔 것이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나면 즉시 억지로라도 ‘아이고!’ 하고 부르짖는 것이지.

 

111 “그래, 시방 울 만한 자리가 저토록 넓으니 나도 당신을 따라 한바탕 통곡을 해야 할 터인데, 칠정 가운데 어느 ‘정’을 골라잡아야 하겠소?

 

111 ‘정’인즉 응당 즐겁고 웃을 일인데 도리어 분하고 서러운 생각에 벅차서 울부짖네. 혹은 인생은 잘나나 못나나 죽기는 일반이요, 커서는 더구나 백 가지 근심 걱정에 성화를 받을 터이니 갓난 아이는 세상에 태어난 것을 후회하여 먼저 울어서 제 조문을 제가 하는 것이라고 하네. 이것은 갓난애의 본정과는 당토 않은 소리지. 아이가 어미 태 속에 자리 잡고 있을 때 어둡고 갑갑하고 졸립고 비좁다가 하루아침에 어미 뱃속을 벗어나자 팔을 펴고 다리를 뻗고 정신이 툭 트이게 될 터이니 어찌 한번 있는 ‘정’ 그대로 참된 소리를 쳐 보지 않겠나? 그러매 갓난애의 울음소리에는 거짓차림이 없다는 것을 마땅히 본받아야 할 것이네.

 

112 비로봉 꼭대기에 동해 바다를 굽어보는 곳에 한바탕 통곡할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거싱요. 장연의 금모래톱에 가서 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요,

 

112    이름은 들은지라 말을 세우고

        향내를 찾아 수레를 멈추다

 

하는 글귀가 쓰여 있었다. 글귀를 보니 한잔 먹을 만도 하다. 둘러선 구경꾼들이 어찌나 많은지 어깨를 마주들 비빈다.

 

117 비장 역관들은 말 위에서 만주 여자나 한족 여자를 보는 대로 말로써 첩을 하나씩 정하는 장난을 한다. 만약 다른 사람이 먼저 점을 찍으면 감히 겹쳐서 정하지 못하고 서로 피하는 법이 매우 엄격하다. 소위 구첩이라 하여, 때로는 서로 질투를 하여 새움질까지 하는 농지거리를 하니, 이것도 먼 길 가는데 한 소일거리가 되는가 보다.

 

122 오늘, 허물어진 흙벽을 삥 두르고, 남아 있는 깨진 벽돌 조각 흔적을 보면서 당시 삼사가 논죄한 글을 읽다 보니 넉넉히 웅정필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슬프다, 명나라가 망하는 운명에 처하매 쓸 것, 버릴 것을 거꾸로 고르고 상과 벌이 흐리터분하여 웅정필, 원숭환 같은 장수들이 죽은 것을 본다면 만리장성을 제 손으로 헐어 버리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어찌 후대의 비웃음을 받지 않을 것인가.

 

125 두 사람은 모두 새파란 젊은이들로서 이곳을 처음 지나면서 탑을 구경코저 들른 모양이다. 길이 바쁘기에 미처 그들의 이름도 물어보지 못했다. 아마도 수재들인가 보다.

 

성경의 이모저모

 

131 돌이켜 요양성 밖을 멀리 바라다보니 나무숲은 자욱한데 수없는 새벽 갈까마귀는 들판에 날아 흩어지고, 한 줄기 아침 연기는 하늘가에 가로 뻗쳤는데, 눈부신 햇발이 처음으로 솟아올 제 상서로운 아지랑이가 네 둘레를 가없이 퍼져도 걸리고 막힐 데가 없었다.

 

131 어허 참! 여기야말로 영웅들이 수없이 싸웠던 땅이로구나. 영웅장사들이 범과 용처럼 날고 뛴다 해도 높고 낮은 거야 제 맘에 달렸겠지마는 천하를 두고 마음을 놓고 못 놓는 것은 오로지 요동벌에 달려 있으니 요동벌이 한번 조용하면 나라 안에 난리가 일어날 턱이 없을 것이요, 요동벌이 한번 소란하면 천하의 병마들이 쇠북 소리를 한꺼번에 요란하게 울릴 것이다.

 

134 집주인은 긴 수염을 늘이고 머리는 반백인데 구들간 위 앉은 뱅이 책상앞에 우뚝 앉았다. 구들간 아래 놓인 의자에는 웬 노파가 앉았는데 모리에는 붉고 흰 접시꽃을 꽂고 도화 수를 놓은 아청빛 치마를 입었다. 노파의 가슴팍에서도 개 짖는 소리가 나는데 아까 주인영감 치보다 더 사납게 짖었다. 집주인은 슬그머니 품속에서 삽살개 한 마리를 끄집어 내는데, 크기는 토끼만 하고 털은 길이가 한 치나 되고 털오리는 눈빛같이 희고 등골은 푸르스름하고 눈은 노랗고 주둥이는 빨갛다.

 

137 변군이 한잔하자고 하여 저마끔 한잔씩 마시고 몇 리를 못가서 바라다보니 희멀쑥한 탑들이 띄엄띄엄 나타나면서 눈 안에 쑥 들어온다. 틀림없이 심양이 점점 가까워진 모양이다.

 

    강성이 보인다고 사공이 손짓하자

    뱃머리에 솟은 탑은 보는 동안 더 커지네.

 

하는 옛 시가 생각난다. 그림을 모르는 자는 시를 모를 것이다. 그림 그리는 화가는 반드시 짙음새가 있고 원근감이 있다. 오늘 여기서 탑 그림자를 볼 때에 옛 사람이 지은 시가 반드시 그림의 뜻을 잊지 않고 있음을 절실하게 깨닫겠다. 성이 멀고 가까운 것은 다만 탑의 길이로 보아 짐작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143    하늘에는 주 성 한 알 반짝이고 있건마는

땅에는 둘도 없는 술 샘이 여기라오.

 

술집에 들어선즉 붉은 난간, 푸른 문짝, 흰 바람벽, 그림 기둥에 선반 위에는 꼭 같은 주석으로 만든 큰 술병을 죽 늘어놓았고 붉은 종이에다가 술 이름을 각각 써 붙였는데 그 종류는 이루 다 기록할 수가 없었다.

 

158 “조금도 잠이 오들 않습니다. 귀한 손님을 모시고 좋은 이야기로 하룻밤을 밝힌다는 것은 참말 일생에 얻기 어려운 좋은 인연인가 봅니다. 세상살이가 이렇기만 하다면 촛불 아래 백 날을 마주 앉아도 싫증이 나질 않겠습니다.”

하면서 다들 신이 나서 새로 술을 데우고 다시 과실이며 안주를 바로 손질해 놓는다. 내가,

술을 데울 필요야 있나요?”

했더니, 여럿이들,

안 데운 술은 허파에 나쁘고 또 주독이 이빨에 든답니다.

 

161 한 번 선생 같은 점잖은 분을 만나고 보니 백 사람 부럽잖은 친구를 얻은 것만 같은 터에 어찌 일시라도 속여 넘겨 백 년 믿을 마음을 저버리겠습니까?”

 

167 이날 저녁에 더위는 더 심하고 하늘 끝에는 붉은 햇무리가 끼었다. 나는 밥을 재촉해서 먹고 잠시 상방에 들러 조금 앉았다가 곧 일어서면서 혼잣소리로,

  너무도 덥고 곤해서 일찍 자는 것이 수로구만!”

 

167 뜰에 내려와 거닐면서 빠져나갈 궁리만 하는 중인데 내원과주 주부와 노 참봉이 식후에 뜨락을 거닐면서 배를 쓰다듬고는 트림을 한다. 이윽고 달은 차츰 돋아 오르고 사방은 괴괴해졌다.

 

175 나는 다시 검은 용 한마리를 그렸다. 붓을 툭툭 쳐서 시커먼 구름과 소낙비가 몰아드는 모양을 그렸다. 그려 놓고 보니 용의 수염이 너무 뻣뻣하고 비늘이 고루 잡히지 못하고 발톱이 상판보다 크고 코가 뿔보다 길어 여럿이들 한목 웃으면서 좋아라고 한다.

 

176 “만약에 그 용이 화룡을 변한다면 단번에 큰 난리가 날 것 아니겠소?’

하여, 모여 앉았던 사람들은 한목 웃었다. 배생이 말하였다.

용에도 좋은 용, 나쁜 용 두가지 용이 있는데 그중에도 화룡이란 놈은 가장 독하답니다.

 

176 구름도 없는데 뇌성 소리가 나고, 비도 오지 않는데 번개가 번뜩거려 그 지방의 늦은 봄 일기가 갑자기 6월 염천으로 변하고 용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백 리 어란은 이글이글하는 홍로 세계같이 되어 더위에 지쳐서 죽은 사람과 집짐승이 부지기수였답니다. 장사고 요행이고 할 수도 없고 집안에 있는 사람들도 밤낮없이 옷을 홀딱 벗고 손에서 부채를 놓지 못했답니다.

 

176~177 몸을 뛰쳐 하늘로 오르려고 할 때는 처음은 장히 꾸물대면서 머리를 쳐들고 꼬리는 땅에 끌며 약대사 선 것처럼 하여 길이는 겨우 서너 길밖에 되지 않았다가 입으로 불꽃을 뿜으면서 꼬리로 땅바닥을 치고 몸뚱이를 한번 꿈틀하니까 비늘마다 번갯불이 번쩍이고 이어 우렛소리를 내면서 허공에는 비가 쏟아지고 몸뚱이를 고목 버드나무 위에 걸쳤는데 꼬리는 이쪽 나무에, 대가리는 저쪽 나무에 걸쳐 두 나무 사이에 여남은 발이나 되게 뻗었더랍니다.

 

181 세 사람이 걸음을 함께하면 반드시 제 스승이 있는 법이요, 두사람이 마음을 같이하면 단단하기가 쇠라도 끊는다는데, 세상에 이보다 더한 낙이 어데 있겠습니까? 몸에 천 나부랭이나 걸치고 밥술이나 먹는 작자들은 이 재미를 모릅니다. 세상에는 흔히 몰취미하고 못생긴 자들은 누에 붙인다는 것이 옷가지나 밥술뿐이요, 친구 사귀는 낙이란 이자들의 배짱에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답니다.”

 

191 나는 시골서 나고 자라나 마음이 소박하고 속이 허탈한 것은 가위 타고난 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참말 연석을 보배로만 여기고 고기 눈알과 진주를 분간 못 했습니다. 형편인즉 할 수 없었다 하겠사오나 더구나 분한 일 인즉 웃음거리가 될 값으로 물건을 사 들인 것입니다. 이야말로 도척에게 곱리를 준폭입니다.

 

194 꼭두새벽에 일어났다. 세수하고 머리 빗는 것이 왜 이토록 싫증이 나는지! 새는 새벽 하늘에는 총총한 별들이 마주 눈을 깜박일 때 마을 닭들은 번갈아 홰를 쳤다. 몇 리를 못 가서 안개는 자욱이 넓은 들을 먹어들어 수는 바다처럼 되었다.

 

194~195 이윽고 동이 트면서 버드나무 가지마다 가을 매미들은 한목으로 울음이 터져 제 놈들이 부러 와서 일러 주는 건 아니겠건만 벌써 한낮의 불볕더위를 아는 것만 같았다. 들에 자욱하던 안개가 사라지면서 멀리 보이는 마을 절간 앞에 세운 깃대가 돛대처럼 솟아있었다. 돌이켜 동편 하늘을 바라다볼 때 불빛 구름은 뭉게뭉게 퍼지면서 수레바퀴 같은 붉은 해가 수수밭 속으로부터 반은 솟고 반은 잠겼다가 슬금슬금 둥그렇게 돋아 올라 온 요동벌을 덮는다. 지평선 위로는 가는 말과 오는 수레, 말 없는 나무와 움직이지도 않은 집들이 깃털처럼 늘어선 채 햇발 속에 휘덮여 있었다.

 

195   원앙새 노는 모습 한 폭의 그림인가

      갓 피어난 연꽃이야 저 선경을 어이 알랴!

 

197 ‘하기야 소읍 장사치들이 어데라고 심양 사람들을 따를랴고! 벽창호 촌뜨기 놈들이 주제에 글씨 잘 쓰고 못 쓰는 것을 알아볼 것이 무어람!’

 

201 해는 땅으로부터 벌써 발 나마 올라왔건만 그 밑에 구름층들은 수없는 금 빛깔, 용 모양으로 틀어오르고, 꿈틀거리고, 신출귀몰하다시피 빛깔은 천변만화인데 해는 느릿느릿 중천만 바라보고 치솟을 뿐이다.

 

202 요동벌 천리 어간은 밀가루나 다름없이 흙이 부드러워 비가 한번 내리면 엿을 녹인 것처럼 아주 풀죽이 되어 길 걷는 사람들이 보통 다리나 허리까지 바지는 것은 예사요, 한쪽 다리를 겨우 뽑으면 한쪽 다리는 더 깊이 들어가 얼른 다리를 뽑지 못할 때는 땅속에 부슨 빨아 당기는 귀신이나 있는 듯이 온 몸뚱이가 빨려 들어가 사라지면서 빠진 자리조차 흔적이 없어진다고 한다.

 

205 “주인이 응당 주과를 대접할 것입니다. 조금 기다려셔야지 너무 빨리 일어나시지 말고 또 드린 음식을 안 잡수시는 것도 큰 실례랍니다.”

 

211    이 늙은이 즐기는게 산림이라오.

        그대 역시 물 경치 즐김을 알리라

 

211    하늘에는 조각달 높다랗게 걸렸건만,

      땅위에 일 만 가닥 등불도 못잖으리.

 

217    여산이 다한 곳에 십삼산이 솟아나니

        굽이굽이 골짝 물은 그림에 본 그대로네.

 

 

일신수필

 

228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린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동리 집들의 문전 뜰에는 형세가 닿잖고 보니 벽돌은 깔 수 없고 오색 빛깔의 유리 기와 쪽과 냇가에서 동글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주워다가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 무늬, 나무 무늬, 새 무늬, 짐승 무늬를 놓아 가면서 깔아 놓아 비가 와도 땅이 질 걱정이 없이 만든다. 한 번 자갈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으니 천하의 명화는 다 여기 있지 않은가.

 

229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락같이도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렇게 모은 똥을 거름간에다 쌓아 두는데 혹은 네모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 모양으로 만들고 보니 한 번 쌓아 올린 똥거름의 맵시를 보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그러매 나는 힘차게 말할 수 있다. 기와 조각, 조약돌이 장관이라고. 똥거름이 틀림없이 장관이라고. 하필 성곽과 연못과 궁실과 누각과 점포와 사찰과 목축과 광막한 벌판, 자욱한 수림의 꿈속 같은 풍광만을 장관이라고 부를 것인가?

 

237 사람이 타는 수레는 이름을 태평차라고 한다. 바퀴으 높이는 팔굽까지 닿을 만하다. 서른 가닥 바퀴살이 굴대통에서 뻗어 나갔고 대추나무로 둥글게 테 바퀴를 만들고 나무테 바퀴 위에는 철편을 붙이고 쇠못을 박아 조였다. 바퀴 몸위에는 서너 사람이 들 만한 둥근 가마틀을 만들어 올리고 푸른 천이나 혹은 공단이나 우단 같은 것으로 휘장을 만들어 늘이기도 하고 더러는 누런 주렴을 늘이고 은으로 단추를 만들어 열고 다고 한다. 좌우쪽에는 유리창을 붙이고 가마 틀 아 v에는 판자를 가로 대고 그 위에 차부가 앉는다. 가마 틀 뒤에는 따르는 하인이 앉고 당나귀 한 마리로 끌게 했다. 먼 길을 갈 때는 말이나 노새를 한 마리씩 더 메기도 한다.

 

239 수레는 단지 짐수레나 사람 타는 수레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전투에 쓰는 수레, 공사에 쓰는 수레, 불 끄는 수레, 대포를 실은 수레 등 그 제도는 수백, 수천 가지로 시방 창졸간에 이것을 다 이야기할 수는 없으나 사람 타는 수레나 짐수레이고 보면 더욱이 사람의 생활에 직접 관계되는 물건이므로 무엇보다도 먼저 이것들을 바쁘게 이야기해야만 되겠다.

 

240 우리 조선은 산협 지대라 수레를 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이런 당토 않은 소리가 어데 있을 것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고 잇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일 것이 아닌가? 거리가 비좁고 산마루들이 험준하다는 것은 아무 쓸데없는 걱정이다.

<중용>배와 수레가 닫는 곳에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도다.”하는 말이 있는데, 수레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안 가는 곳이 없다는 말

 

242 그러나 이 지방에는 흔한 것이 저 지방에는 귀하고, 이름만 들었을 뿐 물건을 볼 수 없는 까닭은 대체 무엇 때문일까? 이는 곧 가져올 힘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도 넓이가 수천 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까닭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한마디로 말하자면 국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다시 한번 물어 보자. 수레는 왜 못 다니는가? 이것도 한마디로 대답한다면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들의 죄다. 이 양반들은 평생에 읽는다는 글이 <주례>란 성인의 저술로서, 툭하면 거인이니 윤인이니 여인이니 주인이니 하지마는 입으로만 외울 뿐이요, 정말 수레를 만드는 법은 어떠하다든가 수레를 부리는 기술은 어떠하다든가 하는 데는 연구가 없으니 이야말로 건성으로 읽는 풍월뿐이요, 학문이야 무슨 도움이 될 것인가? 어허! 한심하고도 기막히는 일이다.

 

246 체로 가를 치는 법식을 보자. 밀폐한 방 안에 바퀴 셋이 달린 흔드는 수레를 두었는데, 앞바퀴가 두 개고 뒷바퀴는 한 개다. 수레 위에는 기둥 넷을 세우고 큰 체를 두 층으로 위태위태하게 올려 놓았는데, 가루 두어 섬은 넣을 만했다. 위층 체에서 친 가루는 그 밑에 비워 둔 아래층 체가 받아 다시 가는 가루를 뽑게 된다. 체를 흔드는 수레 바로 앞에는 나무 막대기를 하나 걸치고, 막대기의 한쪽 머리는 수레에 물리고 한쪽 머리는 방 바깥을 뚫고 나오도록 하고, 거기는 기둥을

한 개 세워 벽을 뚫고 나온 나무 끝을 기둥에다 이었다. 기둥 밑바닥에는 땅을 움푹하게 파고 큰 널판으로 기둥뿌리를 받쳤다.

 

247 우리나라 부녀들이 몇 말도 못 되는 가루를 한번 치자면 머리와 눈썹을 하루아침에 새하얗게 세고 손목은 저리고 물러 녹을 지경이고 보니 같은 일인데도 힘들고 편하고, 덕 되고 손 보는 정도를 한번 이것과 비교해 봄이 어떨까?

 

269 “가만있자, 자랑을 어떻게 할까? 양귀비 같은 놈이 없는가, 서시 같은 놈이 없는가? ‘유색이라고 부르는 기생은 꽃이 부끄러워하고 달이 얼굴을 못 들 만큼 자색이 곱고, ‘춘운이라는 기생은 가는 구름을 멈추고 남의 창자를 녹일 만큼 소리를 잘한답니다.”

 

277 당시의 명나라 군사는 13만 대군으로 각라가 인솔한 불과 2천년도 못 되는 군사에게 포위되어 바로 눈앞에 마주 쳐다보면서 썩은 가랑잎 부스러지듯 망하고 말았다.

 

282    첫 경사 맞은 좋은 재목

       네 대를 잘도 가꾸었네.

       구슬이 빛을 뿌려

       천추를 두고 기리리.

 

282    나라 떠받들 무인

       육중한 성벽인 양 미더워라.

       조정이 내려준지시

       쇠 가마에 새겨 표창했네.

 

287 해는 원래 임금의 상이라고 한다. 요 임금을 해에 비겨 찬양하기를, “멀리 바라다보면 구름이요, 가까이 나아가 보면 해로다.”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해가 채 돋기 전에는 반드시 하고 많은 구름이 해의 변두리로 모여들어 마치 해돋이 앞장을 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해돋이 뒤를 따라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수천 수만의 수레와 말을 탄 군사가 옹위를 해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휘날리고 용틀임, 뱀 굽이를 쳐 한바탕 뒤흔든 뒤에야 비로소 장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구름이 너무 많이 끼면 도리어 캄캄하도록 해를 가려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된다.

 

287 대체로 날이 샐 녘에 밤에 몰렸던 음기가 태양의 직사를 한꺼번에 받고 나면 바윗돌 구멍에서는 구름을 뿜고 내와 못에서는 안개를 토하여 이것들이 서로 얽히고설켜 해가 방금 돋을까 말까 할 무렵은 원망을 하는 듯 수심을 하는 듯, 흙비 속에 잠긴 듯, 빛을 잃는 법이다. 나는 총석정에서 해돋이 구경을 하고 시를 지었다.

 

288  밤길 걷는 나그네들 마주 불러 대답컨만

     먼 곳에서 홰치는 닭 울어도 대답 없네.

     먼저 난 닭 울음은 어디서 들려오는가?

     파리 소린 양 가느다랗게 맘속에서 들리누나.

     마을 개 짖는 소리 컹컹 나곤 뚝 그치자

     찬바람이 절로 일고 가슴속엔 소름이 으쓱

     귓결에 들려오는 난데없는 무슨 소리

     목을 늘여 드자니 참새 소리 재작인다.

    

     이곳서 총석정은 십 리 나마 떨어진 곳

     오늘이야 틀림없이 해돋이 구경하리.

     물과 하늘 맞닿을 뿐 아무 기척 없는데

     밀려드는 성난 파도 부딪치니 벼락 소리

     뿌리째 산을 뽑고 바위더미 무너지 듯

     거센 폭풍 몰려들어 바닷물을 뒤엎는 듯

     고래 곤어 싸우다가 뭍으로 튀어났나

     대붕 새가 뒹굴면서 바다를 옮겼을까?

 

     이 밤이 오래도록 새잖으면 어쩔거나.

     지금껏 이 북새를 뉘라서 증거하리.

     아마도 까막나라 큰 난리가 났다 보다.

     해 드나드는 땅 밑창에 구멍이 막혔는가?

     하늘을 비끄러맨 동아줄이 끊어졌나?

     세 발 가진 까마귀의 발 하나를 잡아 맸지.

     바다 신령 옷자락은 물이 뚝뚝 듣듯 검고

     용궁 여왕 쪽튼 머리 차디차게 쌀쌀하이.

 

289  큰 물고기 제멋대로 용마인 양 내달릴 제

     붉고 풀 날개미를 제 신대로 폈으려니

     천지 배판 혼돈할 적 누가 있어 보았기에

     미친듯이 큰소리쳐 등불을 밝히려나.

     청날 같은 혜성 꼬리 불살을 드리운 듯

     우뚝 선 나무 위에 올빼미 울음 고약코나.

     어느덧 물 바닥엔 작은 멍울 돋아났네.

     용님 발톱 조심하소, 건드리면 터진다오.

 

     빛 멍울은 점점 커져 가도 끝도 없이 뻗쳐

     물결 위에 금티 은티 꿩 가슴팍 무늬인 듯

     어둠속에 하늘 땅은 붉은 줄로 금을 그어

     아래위 두 층대로 뚜렷하게 갈라졌네.

     천 오리 만 오리 산듯 깨운 색실 가음

     금단수단 오색 비단 물감들이 가마인 듯

     산호가지 꺽어내어 숯불 장만 누가 했나.

     부상의 뽕나무를 하늘하늘 태우는 듯

 

290 염제는 불 불기에 주둥이가 쑥 나왔고

    축융은 부채질에 오른팔이 녹아났다.

    새우 수염 기다라니 맨 먼저 탈 것이요

    조개 껍질 더 굳어져 절로 익을 참이렷다.

    구름이란 구름장은 동쪽으로 몰려들어

    저마끔 상서인 양 뽐내 보기 한창이다.

    자신전 조회 마당 미처 차비 못 됐으니

    금관조복 늘인 휘장 그대로 걸렸을걸.

 

 그래도 새벽달을 태백성과 마주 서서

     내가 밝나 네가 밝나 손꼽 장난 한창이다.

     붉은 기운 잦아들고 오색빛깔 서리더니

     멀리 솟은 파도머리 맨 먼저 툭 터졌네.

     바다 위에 갖은 괴물 다 어데로 사라지고 

     해남타신 수레 모는 희화 님만 남았구나.

     6 4천여 년 나마 한결같이 둥근 얼굴

     오늘 아침 망령 나서 네모로 변할랴고.

 

     만 길 물 깊은 바다 뉘 감히 길러 내랴.

     하늘닿은 바다이매 금방도 올라갈 듯

     등림에 을 드니 빨간 여름 한 알인 듯

     해 아드님 찬 쭝방울 반만 솟다 말았는가.

     과보는 헐떨이며 뒤를 따라 쫓아오고

     육룡은 신이 나서 앞장서서 끄덕대네.

     하늘 끝은 암담하여 얼굴을 찡그리며

     제 힘껏 용을 써서 바퀴끌어 어기여차.

 

     아직도 덜 둥글고 동이처럼 길쭉하이

     물을 빠져나오는데 출렁 소리 들리는 듯

     사방을 돌아보아 어제 보던 그대로다.

     어느 누가 두 손으로 번쩍 끌어올렸을까.

 

304 한 사람은 머리 위에 쌍뿔이 나게 붉은 비단으로 머리를 묶고, 몸에는 좁은 소매 초록색 비단 두루마기를 껴입고, 어깨에는 벽려를 걸치고, 두 겨드랑 위까지는 범가죽을 두르고, 허리에는 붉은 비단으로 넓은 띠를 만들어 두르고, 발에는 푸른 신을 신고, 등에는 비단축으로 된 오악도를 지고, 허리에는 금 호로병을 차고, 손에는 도서 한 갑을 지녔는데 얼굴은 희고 잘 생겼다.

 

307 연도의 분묘들은 반드시 담장을 둘러쌌는데 주위가 수백 보씩은 되고 소나무, 전나무, 버드나무 들을 심되 반드시 줄을 지어 심었다.

무덤 앞에는 다들 화표를 세우고 물상을 세웠는데, 이것들은 다 지나간 왕조의 귀인들 무덤이다. 문들은 세 개로 내거나 더러는 패루도 세웠는데, 제도는 전에 본 조가 패루에는 미치지를 못하나 역시 크고 화려한 것도 많았다. 문앞에는 무지개를 튼 돌다리에 난간을 둘렀는데 영원 서문 밖에 있는 조대수의 선영이나 사하점의 섭가분 같은 것이 가장 웅장하고 사치한 편이다.

 

312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이 얼마나 큰 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모를 것이요, 산해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이 얼마나 장한지를 모를 것이다.

산해관을 1리쯤 못 미처 동으로 자리잡은 네모난 성이 있으니, 높이가 여남은 길이나 되어 있고 둘레가 토굴이 되어 수십 명은 들어갈 수 있게 되었다. 이런 토굴은 전부 스물네 군데다. 성의 아랫둥이에는 네 개 토굴을 만들어 병기를 간직하고 땅굴을 파서 장성 안까지 통하게 되어 있다.

 

관내에서 본 이야기

 

322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 습자하는 사람들이 옛 사람들의 필적을 직접 보지 못하고 평생에 대한다는 것이 다만 금석문뿐이다. 금석문이란 옛 사람 글씨의 전형만 상상될 뿐이요, 그 붓과 먹 사이에 어린 한없이 미묘한 감정의 표현은 벌써 선천에 속한 만큼 글씨의 체나 세는 비슷하게 본 뜰 수 있으나 힘차고 세찬 글씨의 뼈다귀에 스며들어 이는 글씨의 감정은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먹이 짙은 데는 먹돼지처럼 되고 여윈 데는 마른 등넝쿨같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돌의 새김질이나 쇠에 새긴 획에 습성이 젖어버린 까닭이다.

 

322 종이란 먹빛을 잘 받고 필태를 잘 먹어 들이는 것을 쳐 주는 것이지, 하필 여물고 질겨 찢어지지 않는다고 쳐줄 것은 못 된다. 서위의 말에 따르면 조선 종이는 그림에 적당하지 못하고 다만 약간 두터운 놈은 조금 낫다고 했다.

 

323 중국서 좋은 붓은 반드시 호주치라 하여 전부 양털을 쓰고 다른 잡털을 섞지 않는다. 양털은 다른털에 비하여 가장 보드랍다. 보드랍기 때문에 가장 잘 닳지 않고 종이에 대면 먹이 제 마음대로 놀아 흡사 효자 자식이 부모의 뜻을 지레 알아차리고 받드는 것처럼 된다.

 

331 대체로 우리 나라에서는 서화나 그릇 등속에 연호를 밖아 넣지 않고 시축 같은 데도 이름 밝히는 것을 싫어하고 그저 강호산인이라고들 많이 쓰고 보니 어느 시대, 어데 누구의 그림이며 글씨인지 알 길이 없다. 이 책만 해도 두 자 별호들은 적혀 있지마는 누구란 것을 꼭 집어 알기 어려울 만큼 애매하다. 정군이 겸재, 현재를 청인이라 하는 것도 괴이쩍은 일이 아니다.

 

339 일행은 일제히 채찍질을 다그쳐 말을 모는데 등 뒤에서는 천 대만 대 수레가 앞을 다투어 몰려오는 듯, 산은 미쳐나고 들은 뒤엎어져 성난 나무, 취한 수풀…… 하인들은 손발 어지럽게 놀려 비옷을 바쁘게 끄집어 내려고 했으나 전대에 꽉 잠겨 빠져나오지 않고 비 귀신, 바람 귀신, 우레 귀신, 번개 귀신은 가로 세로 달리고 뛰어 지척을 분별할 수 없었다.

 

345 배를 같이 탄 사람들은 돌아다보면서 좋아라고,

산수가 그림 같구먼!”

하기에, 나는,

자네들이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말일세. 산수가 그림에서 나왔겠는가, 그림이 산수에서 나왔겠는가?”
했다. 이러므로 무엇이든지 비슷하다, 같다, 유사하다, 근사하다,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다들 무엇으로써 무엇을 비유해서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과 비슷한 것으로써 무엇을 비슷하다고 비겨서 말하는 것은 어데까지라도 그것과 비슷해 보일 뿐이지 아주 같은 것은 아니다.

 

349 글방 선생은 여수를 차리고 고비 나물에다가, 당시 술을 금하여 술대신 꿀물을 타서 꽃항리에 잔뜩 담아 놓았다. 그 꽃항아리 바닥에는 대명성화년제라고 써 있었다. 술잔을 따르는 자마다 항아리 바닥을 굽어보았으니 춘추대의를 잊지 말자는 뜻이다.

이윽고 돌림 시를 짓게 되어 한 아이가 시 한 수를 지었다.

 

      무왕이 은주와 싸움에서 졌던 들

      천백 년 역사에는 역적이 되었을 걸

      강태공이 백이를 살렸다지만

      필경은 역적 두둔하고 말았지.

      오늘도 춘추대의 그대로라면

      오랑캐놈 역적이란 무슨 수작고.

 

350 이 시를 보고 좌중은 한바탕 웃었다. 글방 선생은 계면쩍게 아이를 나무라면서,

어린애들에게는 <춘추>를 일찍 읽혀서는 못쓰겠군! <춘추>의 해석을 잘못하다 보니 이런 고약한 소리를 하는 것이지. 어디 즉경을 두고들 한 수 지어보렴!”

하니까, 다른 아이가 있다가,

 

     고비를 캐 먹어도 배는 안 불러

     백이는 마침내 굶어 죽었네.

     우리 먹는 꿀물은 술보다 다니
    
꿀물 먹고 죽는다면 원통도 하리.

 

355  쓰르라미 울고울어 세월은 총총

     산에서도 물에서도 모기 떼는 잉잉

     간밤의 비바람에

     간 곳이 없네.

 

     두루미에 남은 술은 다 말라가고

     달 아래 하염없이 그대 노래 들을 적

     부귀와 공명을 나는 몰라라.

     닥쳐오는 뒷일일랑 묻지 말아 주.

 

366 “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사람들에게 한 번씩 읽혀 그들로 하여금 배를 틀어쥐고 넘어지도록 웃게 하되, 먹던 밥티가 벌 날 듯 튀고 갓끈이 썩은 새끼처럼 끊어지게 될 것이오.”

 

375 네가 세상 이치를 펴 늘어놓을 때는 걸핏하면 하늘을 둘러메고 나서지마는 참말 하늘이 마련한 대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물건이어든, 천지만물이 살아나가는 어진 도리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다 사람과 함께 같이 살기마련이지, 서로 등지고 지낼 터수가 아니렷다. 또 이것을 선악을 두고 따져 본다면 드러내놓고 벌과 개미집을 털어 가는 놈이 천하에 큰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제 마음대로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훔쳐가는 놈이 의리로 보아 대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379 옛날 사람들은 이런 하늘의 마련을 두고 설마 하늘이 그러랴 하고는 성인에게 물어 본 적도 있었다. 이럴 적에 성인은 분명이 하늘의 뜻을 받아서 말하기를.

하늘은 말이 없이 행동과 사실로 보여준다.”

고 했는바 어린 나로서는 일찍이 이대문을 읽을 때마다 실상 의혹이 없지 않았다.

  나는 묻겠다. 하늘이 행동과 사실로 보인다 치고 보면 오랑캐로써 중국을 바꾸어 놓은 사실은 천하의 큰 치욕이매 백성들의 원통함을 어떻게 하랴? 향내 나는 제물과 비린내 나는 제물은 각각 제물 임자들이 닦은 공덕이 다를 것이매 대관절 귀신이 먹을 때는 무슨 냄새로써 짐작을 삼았을 것인가?

387 뜨락에는 높이 수십 길씩 되는 백송 두 그루가 있어 껍질이 하얗다. 동쪽에는 작은 부도가 다섯 개나 있고, 부도의 좌우 옆에도 백송 세 그루가 서서 뜨락을 내리덮었고 물소리는 듣기만 해도 서늘했다 바람 쐬는 정자를 백간이라고 하는데, 백산송의 백간을 단 것 같다.

 

394 나이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한 처녀가 섰는데 예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을 보고도 수줍어하는 기가 없이 얌전스레 서서, 하던 일을 천연스레 그대로 하고 있었다.

안개 같은 망사 속으로 새하얀 팔뚝이 연뿌리처럼 포동포동해 보였다. 아마도 진씨네 여종으로서 아침밥을 차라는 모양이다.

 

398 보자! 옥으로 궁전과 누대를 지은 자는 소위 걸, 주가 아니었던가. 산을 깍고 골짜기를 메워서 성을 만 리나 쌓은 자는 몽염이 아니었던가. 천하의 곧은 길을 낸 자는 소위 진 시황이 아니었던가, 천하에 어떤 일이고 법이 아니고는 안 된다고 하여 나무 기둥을 옮기고 재를 길에 버리면 처벌을 하기까지 하는 법을 만들어 강한 법제를 실시한 자는 소위 상앙이 아이었던가.

 

401 성인은 일찍이 그 제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는 방안을 물을 때 대답하면서 말로는 그럴듯하게 벌여 놓았지마는 몸소 실천을 못 했다. 그러나 후세에 소위 하늘의 뜻을 받아 위에 올라서게 된 임금이란 학문으로 보아서는 반드시 성인보다 낫다고 할 수 없더라도 하루아침에 능히 들고 나서 제 손으로 실천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하필 중국 사람들만 이럴 수 있었던 것이 아니라 오랑캐의 임금으로서 중국을 정복한 자도 모두 다 이 법도를 계승하고 있다.

 

410 나는 어느 다락집에 올라가 난간을 기대고는 한숨을 쉬면서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여한이 없을 일이거든!”

애달프다. 사람들은 늘 제 스스로를 알고자 하나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때로는 아주 위대한 백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짐짓 미친 행세를 하여 숫제 자기란 것은 없애 버리고 제 몸을 일체 만물이나 다름없이 처하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몸 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 없이 여유로우리라.

 

410 성인들은 때로 이런 길을 취하여 세상을 버리고 숨어 살면서도 답답한 줄을 모르고 홀로 나아가도 겁날 것이 없었다. 공자는,

   남이 나를 몰라준다 해도 노여워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닐까 보냐.”

했고, 노담은 또,

나를 알아주는 자야말로 드물다.”

 

하였으니, 나란 것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알도록 하고 싶잖다는 의미다. 이러고 보니 더러는 의복을 변복하기도 하고 더러는 형보를 달리하기도 하고 더러운 성명까지 바꾸었으니 이것이 다 성인이나 부처나 현인, 철인들이 하는 노릇으로서 그들은 세상을 주물러 놀리면서 천하의 제왕으로서도 이들의 취미와는 바꿀 수 없었는 것이다.

 

411 미상불 진정에 들어가 본다면 세상에 단 한사람쯤은 자기를 알주기를 못내 바라고 있으니, 그렇기 때문에 요 임금은 평복을 하고 큰 거리에 나갔다가 격양가를 부르는 농부를 만났고, 석가는 아난을 만났고, 태백이 몸에 먹침질을 하고 돌아다닐 때에 중옹이가 있었고, 예양은 몸에 옻칠을 하고 다녔지마는 알아보는 친구를 가졌고, 굴원에게는 어부가 있었고, 치이에게는 서자가 잇었고, 장록에게는 수가자가 있었고, 자방에게는 황석궁이 있었다.

 

412 이제 나는 홀로 유리창에 서 있고 보니 입성이나 갓은 천하가 알바 없을 것이요, 얼굴 생김새는 세상이 처음 보았을 것이요, 반남 박가는 누구 하난 들었을 바 없을 터로 나는 이참에 성인도 되고 부처도 되고 철인, 현인이 되어 미친 행세는 기자나 접여에 다름이 없다고 하자. 누구와 더불어 이 아깃자깃한 취미를 이야기할 것인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묻기도 했다.

공자는 송나라로 쫓겨다닐 적에 머리에 무엇을 썼던가?”

나는 한바탕 웃고 대답했다.

동에 번뜩 서에 번뜩 별의별 차림을 하고 다닌 것을 누가 알 것인가.”

그러나 선생님이 계신데 내가 감히 어떻게 먼저 죽겠습니까?”

라고 한 안회야말로 공자를 알아보았고 또 천하에 둘도 없는 지기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북방 여행기

 

420 천자가 북쪽 변방에 두류하면서 자주 사냥질을 돌아다니고 본즉 오랑캐 족속들은 감히 남쪽으로 내려와 방목을 하지 못하기 때문에 천자가 들고 나는 철은 언제나 풀이 무성하다가 마르는 계절인바, 이 행차를 가져다가 피서라고 이름을 붙이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금년 봄만 해도 황제는 남방을 한 바퀴 돌아서는 줄곧

 

430 세상에 무엇이 괴롭다. 무엇이 괴롭다 해도 한 사람은 가고 한 사람은 남은 생이별보다 더한 괴로움이 또 어디 있을 것인가. 그러나 이별의 괴로움에는 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곳이 이별하는 괴로움을 자아낼 만한 곳일까? 집도 아니요, 정자도 아니요,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 그러나 물이란 풍정은 적실히 이별의 괴로움을 자아냄 직한 이 될 것이다.

 

431 ? 물의 정취를 나는 알고 있다. 옅도 않고 깊도 않고 잔잔도 않고 급하지도 않은 물결이 바윗돌을 알싸안은 채 흐느껴 우는 것이 물이었다. 바람도 없고 비도 없고 그늘도 안 들고 볕도 안 나는 음산한 날, 눈에 보이는 경물들이란, 한 번은 무너지고 말 가 위에 놓인 다리, 필경은 죽고 말라 버릴 강둑에 선 나무, 앉고 서고 뒹굴 수 있는 강가의 모래사장, 솟았다 잠겼다 숨바꼭질하는 강 복판의 물새들! 이런 경물 속에 선 사람인즉, 셋도 아니요, 넷도 아닌 단 두 사람이 소리도 없고 말도 없이 마주 설 때야말로 세상에 이런 괴로운 자리가 또 있을 것인가.

 

432 그대를 보내는 이 강둑에서 돌아설 제

    그리운 그대 모습이로부터 멀어지네.

 

이야말로 천고에 다시 없을 남의 창자를 끊는 소리다. 무슨 까닭일까? 이는 다름 아니라 물에 다다라 이별을 하게 된 까닭이니, 말하자면 이별하는 이 그럴듯했던 까닭이다.

432 예보던 그 숲 보고 내가 탄 말 울음 울 제

    그대가 탔던 그 배 산굽이로 사라지네.

 

한 많은 귀양살이 손이라 하자. 무엇 때문에 이토록 괴로웠던가? 이것은 오로지 물의 정취 때문이다. 우리 나라는 워낙 지역이 좁고보니 그토록 괴로울 만한 먼 길 생이별을 모르고 있지마는 유독 물길로 중국을 갈 때가 생이별의 괴로운 정리를 가장 쉽게 알 만한 때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433 그러니 우리 나라 대악부 에도 배따라기곡이 있다. 우리 말로 배가 떠나간다는 말인데 그 곡조가 창자를 에이듯이 구슬프다. 그 법식인즉 꽃배를 만들어 마당에 내놓고 어린 기생을 한 쌍 뽑아 장교 복색으로 꾸며 붉은 옷에 갓을 씌우되 갓에는 자개 갓끈에 범수염과 흰 깃을 단 화살을 꽂고 왼손에는 활을 잡고 오른 손에는 채찍을 쥐고는 먼저 군례로 창을 하고, 첫 번째 나팔을 불면 온 마당은 풍악을 잡힌다. 배 좌우에는 기생들이 한 패씩 모두 비단 치마에 수놓은 옷을 입고 한목으로 어부사를 부르면 풍악이 뒤를 따른다.

 

434 슬프다! 벌레 같은 이 몸이건만 백년이 지난 이날에 와서도 한번 그 당시 일을 돌이켜 생각할 적엔 혼담이 서늘하고 뼈가 녹는 듯 쓰라리거든, 하물며 당시에 있어서 이국에 붙들려 와 있는 그 임과 또 다시 작별까지 하는 그 자리일까 보냐. 더구나 굴욕적인 약속의 협박 아래 감시의 눈초리가 날카로운 처지에서 눈물을 잔주리고 소리를 들이삼키면서 설움에 터질 듯한 가슴을 못내 숨겨야만 하는 그 처지일까 보냐.

 

443 소위 까오리가 아무런 연통도 없이 예까지 오고 보니, 이곳 북방 사람들로서는 첫 대면이라 응당 안남 사람인지 일본 사람인지 유구 사람인지 섬라 사람인지, 머리에 쓴 모자는 둥근 테가 널찍하고 꼭대기에는 검정 모자처럼 발라 처음 보는 눈에는 이상야릇도 했을 터이니, 이것은 또 무슨 갓일꼬? 걸친 입성이란 소매는 넓디넓어 펄렁펄렁하여 활개춤이라도 출 것 같으니 처음 보는 꼴이라, 이것은 또 무슨 복장일꼬? 그 말하는 소리는 더러는 짹짹! 더러는 깍깍! 처음 듣는 소리일 터이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일꼬? 모두가 이상야릇도 하렷다.

 

447 길바닥은 폭우에 깍여 돌들이 삐죽삐죽 톱날처럼 솟은 데다가 등불은 새벽 바람에 꺼져 동북쪽으로 보이는 큼직한 별빛을 따라갔다. 앞 냇물에 닿고 보니 물은 좀 빠졌으나 아직도 말 배때기까지 잠겼다. 창대는 굶주리고 춥고 아프고 졸리고 또 그나마 차가운 골짝물까지 건너자니 참말 걱정스러운 일이다.

 

452 말의 한쪽 눈깔은 이미 말몰이꾼에게 가렸고, 다른 한쪽 눈깔은 모는 사람 눈치를 보다 보니 말은 길바닥을 온전스럽게 보지 못하게 되어 때로는 발굽을 잘못 디뎌 넘어질 때도 있다. 이것은

말의 잘못도 아닌데 채찍질만 사정없이 하고 보니, 일러서 넷째 위험이다..

 

452 우리나라 안장과 마구들은 둔하고도 육중한 데다가 더구나 굴레, 가슴걸이 뱃대끈이 성가신데 잔등에 사람 하나를 태우고도 아가리에는 또 한 사람이 매달린 폭이 되어 말 한필 에다가 두 마리 몫의 짐을 지운 셈이니, 말은 언제나 기운이 잦아들어 고꾸라질 판이다.

 

453 사람이 몸 쓰는 버릇은 대체로 오른쪽이 왼쪽보다는 들고 보니 말도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그런데 말의 오른쪽 입 아귀를 모는 사람이 자갈로 잡아 눌러 아파 못 배기도록 하고 본즉 말은 부득불목을 아래로 꺽게 되고 옆걸음을 쳐서 채찍을 피하게 된다. 모는 사람은 말이 목을 아래로 꺾고 옆걸음치는 것을 좋아하건마는 언제나 목을 꼿꼿이 하는 천품을 가진 말로서는 벌써 이것이 고통이다.

 

454 이일 장군이 상주에 진을 치고 있을 때 멀리 숲 속에서 연기가 오르는 것을 보고는 군관 한 사람을 시켜 가 보도록 했더니 그 군관은 좌우로 쌍견마를 잡히고 어깨를 으쓱대면서 가다가 갑자기 다리 밑으로부터 왜놈 두 놈이 튀어나와 칼로 말 복통을 찌르자 군관의 머리는 벌서 달아나고 말았다.

 

454 오늘밤에 이 물을 건넌다는 것은 정말 아슬아슬한 노릇이다. 그러나 나는 말을 믿고 말인즉 제 발굽을 믿고 발굽인즉 땅바닥을 믿어 벌써 견마잡이를 세우지 않는 덕이 이만큼이나 되는 셈이다.

 

455 “장님을 보는 사람은 결국 눈이 성한 사람일 것이네. 장님의 위험은 눈이 성한 사람이 보다 보니 위험으로 생각되는 것이지, 장님 된 자야 위험을 위험인줄 알 재주가 없을 것 아닌가. 장님이야 보지를 못하는데 위험이고 뭐고 있을 것이 무엇이람.”

서로들 한참 웃었다. 이 대목은 따로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에 쓰기로 한다.

 

464 하늘을 기대고 곧추 솟아 석양 햇발이 가로 비껴 금색이 찬란했다.

 

464 열하는 옛날 한나라 적 요양, 백단, 활염현들의 지역이다. 한나라 경제가 이광에게 명령하기를, “군사를 거느리고 백단으로 가서 주둔하라.” 한 데가 바로 여기요, 거란의 아보기가 폐허가 된 활염성을 다시 쌓은 뒤에는 세상에서 대흥주라고 했고, “명나라의 상우춘이 원나라의 야속을 추격하여 전녕에서 이기고 대흥주까지 밀고 나갔다는 곳이 바로 여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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