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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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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08시 53분 등록

열하일기

* 박지원 씀, 리상호 옮김, 보리, 2004.11.15

 

1. ‘넓고 깊은 산(저자에 대하여)

연암.JPG

■ 연암 박지원 (1737~1805)

 

박지원은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였다. 그는 또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였다.

 

정치적 불운 속에서 찾은 은둔의 여유, 연암에 정착하다

박지원의 청장년 시절은 그리 유쾌한 시간만은 아니었다. 서울 반송방 야동(지금의 중구 순화동과 의주로 2가 일대)에서 태어나 삼청동 백련봉 아래 이장오라는 인물의 별장에서 세들어 살았고 얼마 뒤에는 백탑 인근으로 이사하였다가 다시 백탑 서쪽 전의감동으로 옮기며 생활해야만 하였다. 그가 20~30대에 [양반전]이나 [예덕선생전]과 같은 세태를 비판하는 작품을 집필하게 된 것도 이런 생활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 과정에서 당시 탑골을 무대로 활동하던 이서구나 이덕무, 유득공 등을 만나 교류한 것이 기쁨이라고 할 수는 있겠다.

 

대대로 서울에서 살던 명문가의 후예로 태어난 박지원이었지만, 그 당대에는 별로 여유로운 삶은 아니었던 듯하다. 한때 생원진사시에서 장원을 하며 촉망받던 재원이었던 박지원은 끝내 과거를 포기하고 1771(영조 47) 황해도 금천의 골짜기인 연암골을 찾고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였다. 박지원의 호는 여기서 유래하였다. 이같은 박지원의 청장년 시절의 삶은 선조들의 청렴한 삶과 유람을 즐기는 그의 생활관에서 연유한 것이지만, 그밖에도 당시 실력자 홍국영과의 불화도 한 몫을 하였다.

 

박지원이 연암골에 정착하기 직전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언호는자네는 어쩌자고 홍국영의 비위를 거슬렸나. 자네에게 심히 독을 품고 있으니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르겠네. 그 자가 자네를 해치려 틈을 엿본지 오래지만 자네가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니라고 늦추어 온 것 뿐이라네. 이제 복수의 대상이 다 제거되었으니 다음 차례는 자네일 걸세. 자네 이야기만 나오면 그 눈초리가 심히 험악해지니 필시 화를 면하기는 어려울 걸세. 이 일을 어쩌면 좋겠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서울을 떠나게나”(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에서 재인용)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유언호 이외에도 정조의 역작인 [무예도보통지] 편찬 실무를 주관하였던 친구 백동수도 이처럼 권하였다. 사실 당시까지도 이렇다할 정치적 활동이 없었던 박지원이었기에 홍국영과 직접적인 마찰은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정조 즉위 초 홍국영을 중심으로 정조의 적대세력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1776(정조 즉위년) 11월 기장현에 유배된 심종질인 박종악의 활동을 통해서 유추해 볼 수 있겠다. 이때 박종악이 유배된 것은 정조와 홍국영에 의해 1차 제거 대상이었던 홍인한정후겸과 밀착되었다는 이유였다. 이를 통해서 유추해본다면 박지원 가문이 이들과 밀착된 것이 아마도 홍국영과의 관계를 껄끄럽게 했던 요인이 아닐까 한다.

 

‘북벌’에서북학으로, 열하일기의 집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두 차례를 경험한 조선에서는 북벌론이 팽배하였다. 후금, 후일의 청나라 황제에게 조선을 대표하던 국왕 인조의 굴욕적인 항복은 조선의 사림들에게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항복 후 형식적으로는 사대 외교를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군비를 증감함과 동시에 이른바소중화론을 내세우며 문화적 우월성을 강조하면서 청에 대한 북벌을 준비하였다. 북벌은 한동안 조선의 정치 사회를 지배하는 이념으로 자리잡았다. 그러나 18세기 중반을 넘기면서 서서히 북벌의 이념은 점차 퇴색해가고 그 자리에 북학이 자리잡게 되었다. 이는 당장이라도 멸망할 것 같은 청나라가 멸망은커녕 오히려 중국의 주인으로 굳건하게 자리잡은 뒤 정치적 안정뿐 아니라 문화적 발전을 이룩해가는 상황과도 관련되었다. 이제 청나라는 정벌해야 할 대상에서 배움의 대상으로 변화한 것이었다.

 

같은 해 6월 압록강을 건넌 뒤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박지원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열하는 건륭황제가 별궁을 건설하면서 북경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박지원은 사행 기간 동안 청국의 학자를 비롯해 몽골과 티베트 사람까지 접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를 접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몇 년의 작업 끝에 그동안 오랑캐로만 치부하였던 청나라의 경제적, 문화적 발전상을 소개하며 북학론을 개진한 역작 [열하일기]를 발표하였다. [열하일기]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그 문체에서도 당시로써는 파격적이면서 직접적이고, 해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체반정의 대상이 되다

 

[열하일기]를 발표하면서 주가를 올리던 박지원은 이어 친구인 유언호의 추천으로 선공감 감역에 제수되면서 벼슬생활을 시작하였다. 이후 평시서 주부와 사복시 주부, 의금부 도사, 사헌부 감찰, 한성부 판관 등을 거쳐 1791(정조 15) 경상도 안의현감에 제수되었다. 안의현감에 재직하던 1792년 뜻밖의 편지 한 통이 날아왔다. 다름 아닌 규장각 직각 남공철의 서신이었다. 이때 남공철이 편지를 보낸 것은 국왕 정조의 명에 따른 것으로,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문체가 바르지 못하니 이를 반성하라는 내용을 전달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는 중앙의 조정에서 국왕 정조에 의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이 추진되던 시기였다. 문체반정이란 당대 과거시험지를 비롯해 지식인들의 일부 저술에 보이는 문체가 잘못되었다고 하여 그 문체를 단속해 기강을 바로잡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박지원의 [열하일기]가 바로 문체반정의 주 표적이 되었다. 이와 관련해서 후일 김택영(1850∼1927)이 찬술한 [박연암선생전]에는 다음과 같은 일화가 실려 있다.

 

[열하일기]가 발표되자 이를 얻어 본 국왕 정조는 1792(정조 16) 남공철을 불러들였다. 그리고는 근래 신기한 것만을 따르는 문체의 주범은 박지원의 [열하일기]라고 하면서 남공철로 하여금 편지를 보내도록 해서, 속히 문체의 잘못을 인정하고 순정하게 수정한다면 관직 제수도 마다하지 않겠으나 그렇지 않으면 중죄로 다스릴 것이라고 전하도록 한 것이었다. 남공철의 편지를 받은 박지원은 자신의 문체가 잘못되었다는 속죄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를 받아 본 정조는 그의 문재(文才)를 칭찬하며 더 이상은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하였다.

 

현장에서 실현된 북학 정신

 

한때 정조의 문체반정 대상이기도 하였던 박지원은 그가 평소 저술에서 강조하였던 북학의 정신을 직접 현장에서 구현하는데 주력하였다. 안의현감으로 재직하던 당시 고을 내 노인들을 초청해 잔치를 베풀어 효의식을 고양시키고, 옥사를 관대하게 처리하였으며, 백성들의 구휼에도 주력하였다. 그는 뿐만 아니라 각종의 수차나 베틀, 물레방아 등을 제작하여 사용하게 하였고, 하풍죽로당이나 연상각, 공작관 등의 중국식 건물을 지었다. 중국 사행길에서 보고 들었으며, 자신이 [열하일기]에 기록한 중국의 실용적인 문명을 실천하는 과정이었다.

 

1796년 안의현감에서 물러나 군직(軍職)을 받고 상경한 박지원은 이후 계산동(오늘날의 종로구 계동 일대)에서 생활하던 중 역시 벽돌로 총계서숙을 지었다. 그리고 다시 제용감 주부와 의금부 도사, 의령 령 등을 거쳐 1797년 면천군수에 제수되었다. 면천군수에 재직하던 1799년에는 농서를 구하는 교지에 응하여 농서인 [과농소초]를 지어 올렸다. [과농소초]는 그가 금천의 연암골에서 생활하던 당시 경험에 바탕한 농서로써, 여기에 그가 후일에 찬술한 [한민명전의]를 첨부하여 올린 농서였다. [과농소초]에서 박지원은 중국 농법의 도입 및 재래 농사 기술의 개량을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첨부한 [한민명전의]에서는 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한전론(限田論)을 제안해, 심각한 토지 소유의 불균형을 해소하려고 하였다. 박지원은 결국 현실에 안주하지 않고 당시 허위의식에 빠진 세태를 비판하면서, 당시 중국의 선진 문물을 배우고 실천하려고 하였던 북학의 선두 주자였다고 하겠다.

 

마지막으로 박지원이 후배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서 지은 서문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치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당시 조선 내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우리를 저들과 비교해 본다면 진실로 한 치의 나은 점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튼 것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면서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산천은 비린내 노린내 천지라 나무라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고 욕을 하고, 그 언어는 오랑캐 말이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배척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본받아 행하겠는가. …(중략)…남들은 물론 믿지를 않을 것이고 믿지 못하면 당연히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는 성품은 편벽된 기운을 타고난 데서 말미암은 것이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원인은 중국의 산천을 비린내 노린내 난다고 나무란 데 있다.”(박지원, [연암집] ‘북학의서에서)

 

2. ‘熱河日記(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 : 본문 내용, Ü : 나의 언어)

 

열하일기

 

압록강을 건너서 渡江錄

1780 6 24일 신미일부터 7 9일 을유일까지,

압록강에서 요양까지 15일 동안.

 

Ü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232년 전의 일이다. 아득하지 않다.

 

머리말

 

□ 청인들이 중국땅에 들어가 통치를 한 뒤로 옛날의 문물제도는 오랑캐로 변해버렸으나 다만 우리 나라 몇 천 리 어란이 강을 경계로 나라를 삼고 홀로 옛날 문화를 지키면서 빛을 내고 있다. 명나라의 문화는 오히려 압록강 동쪽에서 부지되고 있는 셈이다. (p. 20)

 

Ü 다산은 말한다.

지금 여기를 살면서 그때 거기만 기웃거린다면 결국 비슷한 가짜가 되는 데 그친다.

차라리 형식을 버릴 망정 눈앞의 진실을 노래하겠다는 선언, 다산이 말한 조선 시정신의 핵심이다. 내 생각으로는 이른바 중국이라는 것이 가운데 가 되는 까닭을 모르겠고 소위 동국이 동쪽이 되는 이유를 모르겠다. 내가 서 있는 곳이 남북의 중앙임을 알게 되었다.

 

□ 고려의 마자수는 그 근원이 말갈의 백산에서 출발했으니 물빛이 오리 대가리빛처럼 푸르다 하여 압록강이라고 한다. 했다. 이른바 백산은 장백산을 가리킨 것으로 산해경에는 불함산 이라 쓰여 있고 우리 나라에서는 백두산이라 한다. 백두산은 여러 강물의 발원지로 그 서남쪽으로 흐르는 물이 압록강이다. 황여고에서는 천하에 큰 강 셋이 있는데 황하, 장강, 압록강이다.’ (p. 21~22)

 

Ü 오늘 압록강은 중국과 북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국경을 가른다.

 

□ 붉은 단청 다락에서 님마저 이별하고

변방에 선 말 탄 손님 바람도 쌀쌀해라.

꽃배에서 들려오던 피리 소리 끊어질 제

청남땅 이곳에서 이내 간장 끊누나. (p. 26)

 

Ü 분위기 아주 비슷한 시를 인용해본다.

 

저물어 외로운 객점에 드니

산 깊어 사립도 닫지를 않네.

닭 울어 앞길을 물으려는데

누런 잎 날 향해 날려 오누나.’

 

□ 자네 도를 아는가?

그 무슨 말씀인지요?

도를 안다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세. 도는 저 강시울에 있느니

 

세상 인심은 갈수록 간드러지고 도심은 갈수록 메말라든다고 했네. 서양 사람들은 기하학에서 한 획의 선을 변증할 때도 선이라고만 해서는 그 정미한 점을 표현할 수 없다 하여 빛이 있고 없는 짬으로 표현하였고 불교에서 말하는 붙지도 떨어지지도 않으므로 그 짬에 잘 처할 수 있다는 바로 짬으로써 이는 도를 아는 자라야 할 수 있는 노릇이니 이런 사람은 정나라 자산 같은 이를 들 수 있을 것이네 (p. 30~31)

 

Ü 종일 봄을 찾았어도 봄은 보지 못했네

짚신 신고 산머리 구름 위로 가보았지.

돌아올 때 우연히 매화 향기 맡으니

봄은 가지 위에 어느새 와 있었네.

 

로 치환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면 조주의 정전백수자(庭前栢樹子)와 어울린다. 도란 어디에나 편재해 있다. 뜰 앞의 잣나무에도 있고 당나귀 똥 속에도 있고 하늘을 나는 독수리에게도 잇다. 다음에 또 다른 놈이 물으면네 앞을 지나는 똥개니라라고 답해주리라. 스승과 나는 늘 과녁을 매끄럽게 비껴갔지만 우리는 모두 이해하고 박수치고 늘 웃었다. 모든 심각한 자야말로 바보인 것이다. 스승은 도란 평상심이며 사물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사물을 떠나서는 도가 없다고 말씀하셨다.

 

□ 홍립이 싸움도 못 해보고 항복을 하자 (p. 40)

 

Ü 당시 조선은 명나라와 청나라 틈에 기어 외교적으로 곤란한 처지였다. 광해군이 일부러 항복하라는 밀령을 내렸다는 말도 있다. (역자) 광해군이 폐위된 후 인조가 왕에 오르고 결국 남한산성에서 청나라 칸에게 아홉 번 머리를 찧으며 세 번 절을 한 삼전도의 굴욕으로 이어진다.

 

□ 날이 희읍스름할 때 떠나 (p. 43)

 

Ü 좋은 표현

 

□ 예로부터 말하기를 삼각산 도봉이 금강산보다 낫다고들 한다. 금강산은 골이 깊은 산으로 일만 이천 봉이라 하여 별난 봉우리가 깎은 듯이 서고 우람차고 깊은 맛이야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길짐승, 날짐승이 깃들고 신선이 오르내리고 부처가 도사려 앉아 음산하고 침침한 품이 무슨 귀신 사는 동굴에 든 느낌이 없다고 못 할 것이다. (p. 45)

 

□ 물에 비친 꽃그림자 같기도 하고 거울에 비친 달그림자 같기도 하였다. 더러는 이것을 공중에 뜬 밝은 기운이라고도 한다. 이는 즉, 운수가 뻗은 기운을 말하는 것으로 旺氣王氣라고도 할 수 있다.

 

이른 바 시방 세계를 둘러본다는 석가여래의 밝은 눈으로 본다면 세계는 모두 평등이라고 한다. 만사가 평등이면 질투도 없을 것이 아닌가.

 

마침 한 장님이 어깨에 비단 주머니를 둘러메고 손으로 월금을 타면서 지나간다. 나는 깨달았다.

! 이것이야말로 정말 평등한 눈이로구나.’ (p. 50)

 

Ü 장님이 눈을 갑자기 눈을 뜨면 평소에 잘 가던 길을 갈 수가 없다. 다시 눈을 감으면 눈을 뜬 것이 무안하게 잘도 가지 않던가.

 

□ 살위봉법 殺威棒法 (p. 52)

 

Ü 새로 온 죄수에게 살위봉이라는 몽둥이로 마구 때려 기를 죽이는 것, 여기서는 먼저 선수를 쳐서 상대의 기를 죽인다는 말이다. (역자)

 

□ 옳다. 이렇고 난 후에야 이용이라 말할 수 있고 이용이 있은 후에야 비로소 후생이 될 것이요. 후생이 있은 후에야 그 질서를 바로잡을 것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모르고 그 생활을 넉넉하게 할 수는 없는 법이다. 물건을 이롭게 쓸 줄 몰라 생활 자료가 근본 부족하면서 억지로 잘살겠다고 한다면 어떻게 그 도덕과 질서를 바로잡을 것인가? (p. 57)

 

깊이 간직한 것은 빈 것 같아 보인다. (p. 64)

 

Ü 신을 존재를 섬기는 의젓한 인디언의 고집스런 침묵, 온갖 생명을 품은 시커먼 심해, 바다를 바라보는 니체, 폭우를 즐기는 다산

 

□ 집들은 어데고 벽돌이 아니면 못 짓다시피 벽돌을 단벌로 쓰고 있었다. (p. 66)

 

Ü 다산은 벽돌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참작득수하여 수원 화성 축조를 진두지휘 했고 유형거와 기중가를 만들어 건축분야의 획기적 방법을 도입하였으나 벽돌을 쓰진 않았다. 무르다는 이유였다.

 

□ 천추에 대담한 양만춘은

수염 털보 눈알을 쏘아 뽑았네

 

Ü 삼연 김창흡

 

□ 독 안에 든 쥐로만 생각했더니

흰 깃에 검정 꽃 빠질 줄이야 (p. 69)

 

Ü 목은 이색의 정관음’. 검정꽃이라고 함은 눈알을 이름이요, 흰 깃 이라고 함은 화살을 말한다.

 

□ 우리나라 인사들은 기자가 평양에 도읍을 했더라 하면 이 말은 꼭 믿고 평양에 정전이 있었더라 하면 이 말은 넙적 믿고 평양에 기자묘가 있다면 이 역시 믿으나 만약에 봉황성이 평양이었더라 하면 깜짝 놀랄 것이요. 더구나 요동에도 평양이 있었느니라 한다면 아주 괴변으로 알고 야단들일 것이다. (p. 71)

 

Ü 이와 같은 연암의 말과 고운기씨의 말은 유사하다. 그가 삼국유사를 주해하면 썼던 말을 인용한다.

 

큰 나라야 제 일을 제 방식으로 쓰면 된다. 예나 이제나 작은 나라는 거기에 그다지 자유가 없다.

사실을 그대로 써서 저촉되는 것을 상징으로 포장해 놓으면 규범이 만든 규제의 그물망을 벗어난다.’

 

□ 진번과 임둔은 한나라 말년에 부여, 읍루, 옥저에 들어갔고 부여는 다섯 부여가 되고 옥저는 네 개 옥저가 되어 혹은 변하여 물길이 되고 말갈로 발해로 여진으로 차차 변하게 되었다. (p. 72)

 

□ 나의 생각에는 기씨는 처음 영평, 광녕 사이에 자리를 잡았다가 뒤에는 연나라 장수 진개에게 쫓겨나 2천 리 땅을 잃어버리고 점점 동쪽으로 옮겨 중국의 진나라, 송나라가 남쪽으로 밀려가던 것처럼 되었다. 이리하여 가는 곳마다 평양이라고 하였으니 지금 대동 강가에 있는 평양도 그 하나일 것이다. (p. 73)

 

Ü 평양이라는 지명이 그리도 많았던 이유다.

 

□ 역사는 비록 방대해 보여도 기계가 편리하여 벽돌을 운반하고 흙을 실어 나르는 것도 모두 기계로 움직인다 (p. 75)

 

Ü 연암은 벽돌을 찬양한다.

 

□ 벽돌이 돌보다 낫다는 것이 돌 한 개, 벽돌 한 장을 맞비해서 말하는 줄 아는가? (p. 77)

 

□ 이날 70리를 왔다. (p. 79)

 

Ü 17.5km 쯤 되겠다.

 

□ 소나무 송진 불길은 다른 장작보다도 불길이 세다. 소나무는 한번 베면 다시 돋지 않는 나무로 옹기점을 한번 잘못 만나고 보면 사방의 산은 발가벗게 된다. (p. 88)

 

Ü 그래서 소나무는 비싸다. 근데 소나무의 번식 능력은 최고다. 현재의 식생 구조에서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는 종이다.

 

□ 우리나라 구들 놓는 법에 여섯 가지 탈 (p. 102)

 

Ü 연암은 우리가 최고라 믿는 모든 것들에 대해 한 바퀴 비틀어 볼 줄 아는 유연한 사고를 가지고 있다.

 

□ 분수령, 고가령, 유가령을 넘어 연산관에 와 잤다. 이날 60리를 왔다. (p. 105)

 

Ü 15km를 걸었다. 령을 넘었다면 능선의 마루금을 밟으며 갔을 터인데 대단히 먼 길을 걸었다. 나도 연암이 걸었던 북녁의 마루금을 걷고 싶어 써본다.

 

□ 산기슭을 가려 아직도 백탑은 보이지 않는다. 말을 채찍질하여 수십 보를 못 가서 겨우 산기슭을 벗어나자 눈앞이 아찔해지며 눈에 헛것이 보일만치 벌어진 광경은 어마어마했다. 나는 오늘에야 비로소 사람이란 본시 어디고 붙어 의지하는 데가 없이 다만 하늘을 이고 땅을 밟아 제 신대로 다니게 마련임을 알았다. 말을 멈추고 사방을 휘둘러보다가 나도 모르게 손을 들어 이마에 대고 말했다.

한바탕 울 만한 자리로구나!’ (p. 109)

 

Ü 호방하고 크다. 상쾌하고 뚫린다.

 

사람들은 다만 안다는 것이 칠정 가운데 슬픈감정만이 울음을 자아내는 줄만 알았지, 칠정이 모두 울음을 자아내는 줄은 모르고 있다네. 까지껏 기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골이 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즐거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사랑하면 울 수 있고, 까지껏 미우면 울 수 있고, 까지껏 하고 싶으면 울 수 있으니 맺힌 감정을 한번 활짝 푸는 데는 소리쳐 우는 것처럼 더 빠른 방법이 없네 (p. 110)

 

Ü 눈물 흘리는 방법 조차 잊어버린 현대인에 연암은 울어라 울 줄 모르는 인간들아 일갈한다.

 

울음이란 천지간에 있어서 뇌성에 비할 수도 있는 것일세. 북받쳐 나오는 감정은 언제나 이치에 맞아 발작하는 것이니 웃음만 하더라도 그러한 감정의 발로라네. 사람들의 보통 감정은 이러한 지극한 감정을 겪어 보지 못하고 보니 공연히 까다롭게 칠정으로 나누어 슬픈 감정에다가 울음을 짝 맞추어 둔 것이네. 이러므로 사람이 죽어 초상이 나면 즉시 억지로라도 아이고 하고 부르짓는 것이지. (p. 110)

 

Ü 칠정이고 오욕이고 슬프면 울 줄 아는 것이 인간이다.

 

하늘가와 땅 끝은 풀로 붙인 듯 한 줄로 기운 듯 비바람 천만 년이 이 속에서 창망할 뿐이다. 또 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이야 (p. 112)

 

Ü 연암에게 스트레이트를 맞는다. 울 줄 모르는 인간을 호통치더니 순식간에 수천 년 우주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연암 철학의 넓이다.

 

□ 오늘, 허물어진 흙벽을 삥 두르고 남아 있는 깨진 벽돌 조각 흔적을 보면서 당시 삼사가 논죄한 글을 읽다 보니 넉넉히 웅정필의 사람됨을 짐작할 수 있었다. (p. 122)

 

□ 세상에 전하는 이야기로는 옛날 어떤 촌사람이 광녕이란 곳을 가다가 길에서 웬 소년을 만났는데 소년의 말이 자기를 광우사까지 업어다 주면 절 오른쪽 열 자국 되는 지점 고목나무 밑에 묻혀 있는 금 십만 냥을 보수로 주겠다고 했다. 촌사람이 그 아이를 업고 하루아침에 걸어서 절까지 대고 보니 아이는 바로 한 개 금부처였다고 한다. (p. 128)

 

Ü 광우사 전설이다. 지금은 폐사가 되었고 중도 없다 한다.

 

성경의 이모저모

7 10일 병술일부터 7 14일까지

십리하에서 소흑산까지 도합 327

 

□ 요동벌, 천하의 힘을 끌어 모아서라도 이곳을 지킨 후에야 나라가 평안했다.오늘로 보아 이사이 백 년 어간에 세상이 잠잠한 까닭이 어찌 한갓 도덕과 교육과 정책만이 전대보다 나은 때문이라고 볼 것인가. (p. 132)

 

Ü 연암의 요동 사랑은 유별나다.

 

□ 몽고 수레 수천 대가 벽돌을 싣고 심양으로 들어온다. 수레마다 세 마리씩 붙어 끌고 있었다. 소는 흰 소가 많고 가끔 푸른 빛깔을 한 소도 섞여 있었다. 이 염천에 무거운 짐을 끄니 소 코에는 피가 흘렀다. (p. 132)

 

Ü 눈에 곧 보이는 듯 하다. 연암의 묘사가 기각 막힌다.

 

□ 강성이 보인다고 사공이 손짓하자

뱃머리에 솟은 탑은 보는 동안 더 커지네. (p. 137)

 

Ü 그림을 모르는 자는 시를 모를 것이다. (연암) 해설이 걸작이다. 시는 그림을 그리듯 눈앞에 있는 듯 그리고 떠올릴 수 있게

 

□ 이 신이 진땅에는 마침이지마는 마른 길에는 발이 부르틀 염려가 없잖구려. (p. 139)

 

Ü 풀자면 이 신발은 방수기능이 있어 진흙 길에는 기능을 발휘하지만 마른 길에는 오래 걷지 못할 수 있다. 북조선의 표현을 언뜻 볼 수 있어 좋다.

 

□ 하늘에는 주성 한 알 반짝이고 있건마는

땅에는 둘도 없는 술 샘이 여기라오 (p. 143)

 

Ü 북방 술집에 들어선 연암의 호기다.

 

□ 글쎄, 법인즉 간편하다 할 수 있겠지마는 세상에 뺨치는 형벌이란 듣도 보도 못 한 일이다. (p. 145)

 

Ü 문초 중에 마루를 내려가 죄인의 뺨을 후려치는 모습을 본 후 연암의 생각이다. 인간적으로 그러면 안 된다는 아쉬움이다.

 

□ 속재필담 (p. 148)

 

Ü 저자가 심양 시가를 구경하던 중 예속재라는 골동품점에 들렀다가 점포를 경영하는 사람들과의 이야기, 말하자면 열하일기 중의 액자 구성 이야기다.

 

□ 나는 저 사람의 아들 팔형제가 부러운 것보다 작은 마누라나 하룻밤 빌렸으면 그만이겠소 (p. 151)

 

Ü 그 시대의 웃음 코드다. 여기서 빵 터져줘야 한다.

 

□ 때는 바로 춘삼월이라 양쪽 언덕에 꽃나무와 수림은 한창 우거질 대로 우겨졌는데 나그네 몸으로 컴컴한 객창 앞 책상머리에서 쓸쓸한 밤을 지루하게 밝힐 때는 두견 소리, 원숭이 울음, 학두루미 눈물, 솔개 웃음, 이것이 빈 강 달 밝은 밤의 풍광이요. (p. 152)

 

Ü 원숭이 울음, 학두루미 눈물, 솔개 웃음이 들리는 춘삼월 밤의 풍광, 멋지다.

 

□ 유리창 (p. 154)

 

Ü 중국 북경의 골동품 백화점

 

□ 관지 款識 (p. 161)

 

Ü 쇠나 돌에 새긴 글자로서 음각을 관이라고 하고 양각을 식이라고 한다. (p. 161)

 

□ 때로 일부러 한쪽 귀를 떨어뜨리기도 하고 때로는 그릇 몸땡이까지 상처를 내어 바로 상, , , 한 적의 물건이라고 내놓는답니다. 참으로 야속한 일이지요. (p. 164)

 

Ü 골동품 짝퉁 제작 과정이다. 예나 지금이나 쉽게 돈 벌려는 인간들이 줄을 섰다.

 

□ 모꼬지 (p. 165)

 

Ü 오랜만에 들어보는 아름다운 우리말이다. 소풍이라는 뜻이었던가. 북조선 언어는 아래보다 풍요롭다.

 

□ 초묵 (p. 175)

 

Ü 묵화를 칠 때 빛깔을 내기 위함 먹빛 (각주)

 

□ 온목현 : 관동 천리에 큰 가물이 들 뻔했군

연암 : 가물이 들다니? ?

배생 : 만약에 그 용이 화룡으로 변한다면 단번에 큰 난리가 날 것 아니겠소?

 

건륭 8 1743 계해년 3월에 관외의 땅으로 여양이라는 들판에 용 한 마리가 떨어졌답니다. 그러자 구름도 없는데 뇌성 소리가 나고 비도 오지 않는데 번개가 번뜩거려 그 지방의 늦은 봄 일기가 갑자기 6월 염천으로 변하고 용이 떨어진 곳을 중심으로 백 리 어란은 이글이글하는 홍로 세계같이 되어 더위에 지쳐서 죽은 사람과 집짐승이 부지기수였답니다. (p. 176)

 

Ü 이 글에 파에톤이 연상되는 것은 억지인가. 헬리오스의 태양마차에서 번개를 맞고 떨어지던 파에톤은 아마도 가슴에 불을 품은 용이었을지도 모른다.

 

□ 우리 나라 속담에 강철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란 말이 있는데 이것은 가물이 들어 흉년이 진다는 말이지요. 그래서 가난한 사람이 무슨 일을 꾸미다가 뜻대로 되잖을 때도 강철의 가을이라고 한답니다. (p. 178)

 

□ 달 밝고 바람 맑고 나뭇잎 떨어지고 꽃 피는 시절들이 더 견디기 어렵답니다. 그러나 어쩔 도리가 있나요? (p. 179)

 

Ü 수구지심, 이거 속수무책이다. 외로움에 당한다.

 

□ 허벅다리에 송곳질하며 책을 읽는다. (p. 180)

 

Ü 6국의 재상을 겸임하던 희대의 정치가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정치9단 초고단수다. 합종하고 연횡하는 그의 정치 이력은 소통과 통합, 오늘날 정치인들이 부르짓는 모토의 현실이었다.

 

사람이 한평생에 친구 못 가진 것처럼 재미없는 일이 또 여데 있겠습니까? 몸에 천 나부랭이나 걸치고 밥술이나 먹는 작자들은 이 재미를 모릅니다. 세상에는 흔히 몰취미하고 못생긴 자들은 눈에 붙인다는 것이 옷가지나 밥술뿐이요, 친구 사귀는 낙이란 이자들의 배짱에는 눈 씻고도 찾아볼 수 없답니다. (p. 181)

 

Ü 사람은 사람에 기대지 못하면 그때부터 인생은 슬퍼진다. 가진 게 많고 풍족하게 살 더라도 말이다. 자신의 천복을 찾아라. 잇속을 찾으면 자신의 복도 인생의 복도 사라진다. 캠벨은 말한다.

 

토마토 주스가 마시기 싫다는 아이에게 아버지가 말합니다. ‘저 좋은 것만 하고 인생을 살 수는 없는 법이야. 저 좋은 것만 하고 세상을 살려고 했다가는 굶어 죽어. 나를 봐, 나는 하고 싶은 일은 평생 하나도 해보지 못하고 살았어.’ 그러니까 그 사람은 자기 천복을 한 번도 좇아보지 못하고 산 셈입니다. 천복 같은 것과는 상관없이 성공을 거두는 사람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런 성공으로 사는 삶이 어떤 삶일까 한번 생각해보세요. 평생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해보고 사는 그 따분한 인생을 한번 생각해보세요. 나는 학생들에게 늘 너희 육신과 영혼이 가자는 대로 가거라. 이런 소리를 합니다. 일단 이런 느낌이 생기면 이 느낌에 머무는 겁니다. 그러면 어느 누구도 우리 삶을 방해하지 못합니다.’

 

□ 도덕을 귀하게 잇속은 천하게 근본을 쳐주고 말단은 눌리는 까닭일 것이다. (p. 181~182)

 

남의 돈 천 냥이 제 돈 한 푼만 못하다 (p. 183)

 

Ü 간략하고 몇 글자 되지 않는 이 말에 오늘날 돈에 미쳐있는 사람들을 일갈한다.

 

□ 우왈우산, 양왈양산

 

Ü 각주) 초나라 항우와 한나라 장량이 우산 한 개를 두고 서로 제것이라고 다투는데 항우는 우산이니 제것이라 하고 장량은 양산이니 제 것이라고 했다는 말로 글자 음을 맞춰 재담을 쓴 것.

 

□ 한마디 더 말씀드릴 것은 대촌의 위인이 신선하고 속이 터져 한번 만나신다면 소개를 잘못해 올렸다는 허물을 면할 수 있을 줄로 믿습니다. 아울러 선생의 통촉을 바라오면서 이만 갖추지 못합니다. (p. 193)

 

Ü 이만 갖추지 못합니다나는 이런 표현을 만나면 왜 가슴이 뛸까.

 

원앙새 노는 모습 한 폭의 그림인가

갓 피어난 연꽃이야 저 선경을 어이 알랴! (p. 195)

 

□ 해는 땅으로부터 벌써 발 나마 올라왔건마는 그 밑에 구름층들은 수없는 금 빛깔 용 모양으로 틀어오르고 꿈틀거리고 신출귀몰하다시피 빛깔은 천번만화인데 해는 느릿느릿 중천만 바라보고 치솟을 뿐이다. (p. 202)

 

Ü 해가 솟는 풍광이다. 붉음이 일순간 대지를 삼키는 해발 8천의 오메가가 생각난다.

 

□ 탁자 위를 보니까 종이가 또 한 장 있기에 나는 곧 걸상에 앉아 신추경상이라고 한바탕 휘둘러 큼직하게 썼더니 그중 한 사람이 내가 쓴 글씨를 보고는 부리나케 여럿을 불러 탁자 앞에 몰려와서는 왁자지껄 소리를 치고 좋아라고 껄걸 웃으면서 한 사람이.

조선 명필이다.’

조선 글자도 중국 글자와 같구먼.

글자는 같지만 음이 다르다. 한다. (p. 208)

 

□ 이 늙은이 즐기는 게 산림이라오.

그대 역시 물 경치 즐김을 알리라. (p. 211)

 

□ 이런 일이 있은 뒤로는 어데서나 점방머리에서 기상새설이란 글씨만 볼 때는 틀림없는 가루집으로 알게 되었다. 가루는 부드럽기가 서리와 다툴 만하고 희기는 눈보다 더 낫다고 자랑하는 뜻임을 알았다. (p. 213)

 

Ü 연암은 앞서 전당포에서 기상새설이라는 글자를 써주고는 무안을 당한 적이 있다.

 

□ 발해는 봉천부 남쪽에 있다. 성경통지에 보면 바다가 옆으로 내민 데를 발 이라고 하는데 요동은 넓이가 2천 리로 그 남쪽이 발해라고 했다. (p. 217)

 

일신수필

7 15일 신묘일부터 7 23일 기해일까지 9일 동안,

신광녕에서 산해관까지 도합 562 (140.5km)

 

시방 여기까지 몰아쳐 쓰다 보니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구나. 먹 한 점 쿡 찍는 동안은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이요. 눈 한 번 깜빡 숨 한 번 쉬는 동안은 뒤미처 작은 옛날, 작은 오늘이 되어버리고 마니 큰 오늘과 큰 옛날은 역시 큰 눈 한 번 깜빡, 큰 숨 한 번 쉬는 동안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보잘것없는 동안에 이름을 내고 공로를 세우겠다고 날뛰는 것이야 말 것 그 아니 서글픈 일이랴. (p. 222)

 

Ü 연암의 우주적 시선이다. 연암의 사유는 불교적일 수도 있으나 보다 근원적이고 보다 신적이다. 인간의 시간으로 일생은 신의 시간으로 눈 한 번 깜빡 하는 동안이 될 수 있는데 뭐 그리 아옹다옹이냐는 것이다. 맞다. 그러나, 그래서 아웅다웅이어야 하는 것도 맞다.

 

□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 나는 똥 거름이 장관이더라. ?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 무늬를 놓기도 하고 네 쪽이 안으로 합하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기와 조각들은 서로 맞물려 알쏭달쏭 뚫릴 구멍들이 안팎으로 마주 비치면서 별별 무늬가 다 놓이고 보니 한번 깨진 기와 쪽을 내버리지 않아 천하의 문채는 벌써 여기 다 있지 않은가. 동리 집들의 문전 뜰에는 형세가 닿잖고 보니 벽돌은 깔 수 없고 오색 빛깔의 유리 기와 쪽과 냇가에서 둥글고 반들반들한 조약돌을 주워다가 얼기설기 서로 맞추어 꽃 무늬 나무 무늬, 새 무늬, 짐승 무늬를 놓아 가면서 깔아 놓아 비가 와도 땅이 질 걱정이 없이 만든다. 한 번 자갈과 조약돌을 내버리지 않으니 천하의 명화는 다 여기 있지 않은가. (p. 228~229)

 

□ 비겨 말하자면 감사가 각 군 각 읍을 순찰하는데 아침 저녁 산해진미로 떠받드는 통에 고기 반찬에 물려서 식곤증으로 구역이 날 듯하다가 산뜻한 들나물 한 접시를 만나 구미가 확 돌아오는 것만 같은데 (p. 235)

 

Ü 그런 장관. 구미가 확 돌아올 장관. 비유가 멋지다.

 

사람이 타는 수레는 이름을 태평차라고 한다. 바퀴의 높이는 팔굽까지 닿을 만하다. 서른 가닥 바퀴살이 굴대통에서 뻗어 나갔고 대추나무로 둥글게 테 바퀴를 만들고 나무테 바퀴 위에는 철편을 붙이고 쇠못을 박아 조였다. (p. 237)

 

□ 짐 실은 수레를 대차라고 한다. 바퀴 높이는 태평차와는 조금 다르다. 바퀴살이 자 모양으로 되고 짐은 8백 근쯤 싣는데 말 두 마리가 끈다.

태평차는 바퀴가 굴러가게 되었고 대차는 굴대가 굴러 가도록 되었다. (p. 238)

 

무릇 수레란 하늘이 낸 물건이로되 다니기는 땅바닥으로 다니기 마련이다. 그러고 보니 뭍에 다니는 배요 움직이는 방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에 이바지하는바 이 위에 더할 수 없고 보니, 주례에는 임금이 재부를 물을 때에 반드시 수레의 수효로써 대답하였다. (p. 239)

 

Ü 수레라는 말이 동양 천문학에서 나눈 28개 성좌 중에 수레를 의미하는 진 이라는 성좌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각주) 바닥을 기며 하늘을 받든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약속도 없이 꼭 같아지는 경우를 일철 이라고 하고 뒤에 선 사람이 앞에 선 사람이 가는 대로 따를 때는 전철 前轍이라고 한다. 성문 같은 데 바퀴 자국이 난 곳은 아주 모양으로 홈통처럼 되었다. 이것이 소위 성문의 라고 하는 것이다. (p. 240)

 

□ 중용에 배와 수레가 닫는 곳엔 서리와 이슬이 떨어지도다. (p. 241)

 

Ü 수레는 아무리 먼 곳이라도 안 가는 곳이 없다는 뜻

 

□ 황제 (p. 243)

 

Ü 중국 역사에서의 전설적인 최초의 임금

 

□ 한 가지 수레의 제도를 미루어서 만 가지 일을 알 수가 있기 때문이요, 또 몇천 년을 내려오면서 여러 성인들이 이 때문에 얼마나 고심했나를 조금이라도 알게 된 까닭이다. (p. 243)

 

□ 새벽길을 떠나다 보니 지는 달은 땅바닥 위에서 불과 두어 자 높이나 떨어져 보이는데 청승맞게도 둥글둥글하다.

괴상한 일인데! 오늘은 해가 서쪽에서 뜨누만! (p. 257)

 

Ü 달 같은 해, 해 같은 달.

 

□ 실속 없이 나이를 쉰여덟이나 처먹었소이다. (p. 261)

 

Ü 빵 터진다.

 

□ 넉점백이

 

Ü 남의 서자를 넉점백이라고도 하고 보통 점백이라고도 한다. 이는 서자라는 자에 점이 네 개 달린 것이 유래가 되어 곁말로 쓰고 있다.

 

□ 유색이라고 부르는 기생은 꽃이 부끄러워하고 달이 얼굴을 못 들 만큼 자색이 곱고 춘운이라는 기생은 가는 구름을 멈추고 남의 창자를 녹일 만큼 소리를 잘한답니다. (p. 269)

 

Ü 예나 지금이나 청이나 조선이나 유럽이나 아시아나 남자는 여자라면 뻑이 가는 모양이다.

 

이자성의 난 (p. 276)

 

Ü 명말 관내 지방, 즉 명나라 내부에서 명조를 반대하여 섬서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킨 사람. 명나라 숭정 17 (1644)에 북경을 함락시키자 명나라 의종 황제는 자살을 했다. 청나라 침략군을 막으러 요동까지 출동했던 명나라 장수 오삼계는 청군에게 쫓겨 관내로 밀려 들어오면서 명나라를 배반하고 청군을 관내로 끌어들여 청군과 합세하여 이자성을 쳐 물리쳤다. 이 바람에 청군은 힘들지 않게 산해관을 돌파하고 북경을 점령하여 명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었다. (각주) 명과 청의 언저리에 이자성이 있었구나.

 

그러고 보니 해가 채 돋기 전에는 반드시 하고많은 구름이 해의 변두리로 모여들어 마치 해돋이 앞장을 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해돋이 뒤를 따라서는 것 같기도 하고 마치 수천 수만의 수레와 말을 탄 군사가 옹위를 해 모시는 듯 오색 깃발이 휘날리고 용틀임, 뱀 굽이를 쳐 한바탕 뒤흔든 뒤에야 비로소 장관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p. 287)

 

Ü 이 또한 장관이구나.

 

□ 손님은 멀리서 오시어 연도에서 얻은 시첩 주머니가 두둑하실 테니 좋은 글귀가 있으면 한두 구 남겨 두심이 어떻겠소이까? (p. 296)

 

Ü . 이 세계, 낯선 손님에게 글을 부탁하는 글의 세계.

 

위엄은 이빨에 나타나고 반가움은 꼬리에 나타난다. (p. 303)

 

Ü 교태는 엉덩이에 자만은 어깨에 나타난다.

 

□ 강녀묘 견문기.

강녀의 성은 허씨요. 이름은 맹강인데 섬서 동관 사람이다. 범칠랑이란 사람에게 시집을 갔다. 진나라 장수 몽염이 만리장성을 쌓을 적에 범칠랑은 부역에 끌려나와 일을 하다가 육라산 아래서 죽었다고 한다. 그의 처 맹강은 꿈에 남편의 현몽을 받고 손수 옷을 지어 혼자 천리를 걸어 그 남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 찾아다니다가 이곳에 와서 쉬면서 장성을 바라보고 울다 말고 그만 돌로 화해 버렸다고 한다. (p. 310)

 

Ü 이거 어디서 들어본 듯한 이야기다.

 

□ 만리장성을 보지 않고는 중국이 얼마나 큰 줄 모를 것이요, 산해관을 보지 않고는 중국의 제도를 모를 것이요, 산해관 밖의 장대를 보지 않고는 장수의 위엄이 얼마나 장한지를 모를 것이다. (p. 312)

 

탈은 눈에서 생겼으니 벼슬하는 자들도 이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바로 떠받들려 올라갈 때는 한 층대 반 층대가 남보다 뒤떨어질까하여 더러는 동배를 떠밀고 앞을 다투다가도 급기야 몸이 높은 자리에 처하고 보면 겁이 나고 외롭고 위태로워 나아갈 곳은 한 자죽도 없고 물러설 자리는 천길 낭떠러지가 있을 뿐으로 어데를 더위잡았자 도움될 가망도 없고 보니 내려오려 해도 제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이다. 천고를 두고 통하는 이치렸다. (p. 313)

 

Ü 높은 곳에 전망을 보기 위해 올랐던 망루를 내려오려니 아찔하고 두렵다. 연암은 지금 겁먹고 있다. 내려오는 게 더 힘들다. 놓아야 함으로

 

□ 첫째 관문은 위진화이, 둘째 관문은 산해관, 셋째 관문은 천하제일관 이라고 써 붙였다. (p. 315)

 

□ 흥! 몽염은 장성을 쌓아서 오랑캐를 막고저 했는데 진나라를 망친 오랑캐는 필경 집안에서 기르게 되었고 서중산도 이 관을 지어 오랑캐를 막고저 했더니 오삼계가 관문을 열어 적군을 맞아들이기에 여가가 없었다. 천하가 무사태평한 이때야말로 공연히 장사치 길손 나부랭이나 붙들고 이러쿵저러쿵 힐난을 한대서야 난들 이 관에 대하여 무어라 말해서 좋을 지 모르겠구나. (p. 316)

 

Ü 역사의 아이러니 앞에 연암은 말문이 막힌다.

 

관내에서 본 이야기

7 24일 경자일부터 8 4일 경술일까지 열하루 동안

산해관에서 황성까지 도합 640 (160km)

 

□ 글씨의 체나 세는 비슷하게 본뜰 수 있으나 힘차고 세찬 글씨의 뼈다귀에 스며들어 있는 글씨의 감정은 도무지 찾을 수 없어 먹이 짙은 데는 먹돼지처럼 되고 여윈 데는 마른 등넝쿨같이 되는 것이 보통이다. (p. 322)

 

□ 중국서 좋은 붓은 반드시 호주치라 하여 전부 양털을 쓰고 다른 잡털을 섞지 않는다. (p. 323)

 

□ 환현 같은 사람은 자기 집에 손이 와도 혹시나 붙여 둔 서화가 더러워질까 하여 기름 과자를 대접하지 않았으니 이야말로 참말 명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p. 324)

 

□ 주렴 속에 사람 그림자는 한 일고여덟 명이나 되어 보이는데 수군수군 이야기들을 하면서 때로는 입을 막고 웃음을 참는 소리가 들렸다. (p. 326)

 

Ü 이 분들 지금은 다들 돌아가셨을테지. 아 생이여, 열하일기는 생생하여 이렇게 아득해 진다.

 

□ 길게 뻗은 성 옆구리 늠실늠실 물굽이요

아득한 벌 동쪽 머리 띄엄띄엄 산일러라. –학사, 김황원, 부벽루에 올라-

 

이렇게 짓고 나서는 아무리 머리를 짜 보아도 다음 구가 막혀 통곡을 하면서 부벽루를 내려왔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야기를 옮기는 사람들은 평양의 경치는 이 두 구절로써 다하고 보니 천 년을 가도 여기 한 구절 더 보탤 자가 없다고들 한다. (p. 329)

 

Ü 작가는 천 년의 표현을 해야 한다.

 

□ 우바새 (優婆塞) (p. 330)

 

Ü 넉넉할 우, 할미 파, 변방 새. 중이 되지 못하고 불교를 독신하는 자 (각주)

 

구름 빛깔은 독기가 서림 듯하고 해 곁에 뵈던 구름장은 벌써 해 바퀴를 반 나마 덮더니 한 줄기 흰 불빛이 버드나무 속으로 번뜩하고 지나가면서 해는 구름 속에 숨고 구름 속에서 번갈아 나는 소리는 바둑판을 미치는 듯 비단 필을 찢는 듯 버들 숲은 침침해지고 잎새마다 번갯불이 번득였다. (p. 339)

 

Ü 아름다운 표현이다.

 

□ 어짊을 구하며 어짊을 행했으니 만고의 맑은 바람 고죽국이요, 포악함으로 포악함을 바꾸었으니 천추의 외로운 절개 수양산이로세 (p. 342)

 

□ 대 위에는 누각이 있어 재수지미 在水之湄라 했고 주련에는 산은 어진 이처럼 고요하고 바람은 성인처럼 맑도다. 山如仁者靜 風似聖之淸 이라고 쓰여 있다. (p. 342)

 

Ü 의인화 된 산의 표현을 모두 모아 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 산수가 그림 같구먼

하기에 나는

자네들이 산수도 모르고 그림도 모르는 말일세. 산수가 그림에서 나왔겠는가? 그림이 산수에서 나왔겠는가? 했다.

이러므로 무엇이든지 비슷하다, 같다, 유사하다, 근사하다, 닮았다고 말하는 것은 다들 무엇으로써 무엇을 비유해서 같다는 말이다. 그러나 무엇과 비슷한 것으로써 무엇을 비슷하다고 비겨서 말하는 것은 어데까지라도 그것과 비슷해 보일 뿐이지 아주 같은 것은 아니다. (p. 345)

 

Ü 삼각형의 내각의 합이 180도 인 것은 관념으로 명확하지만 그 어떤 삼각형도 실존하지 않는다. 플라톤이 말하는 이데아가 각색을 거듭하며 서양을 지배한 철학이라면 연암은 지금 그 철학적 근간의 빈틈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는 것이다. 연암을 서양의 철학사를 굳이 들이대 구분한다면 유물론에 가깝겠다.

 

세월은 아물아물 화살같이 빠르고

강물은 동으로 흘러 다함이 없네

명리를 다투는 초로 같은 인생아.

백년 세월에 몇 명 살아남았던가.

 

어부와 초부 사이 주고 받는 이야기

봄바람 가을 달 밑 시비가 없고

제 잔 부어 제 마시고 제 노래 제 읊으니

잘한다 못한다가 소용이 없네 (p. 355)

 

두루미에 남은 술은 다 말라가고

달 아래 하염없이 그대 노래 들을 적

부귀와 공명을 나는 몰라라 (p. 356)

 

못된 놈이 무례하고 당돌하게 덤벼서 안됐소. 마음에 끼울 것 없소 (p. 363)

 

Ü , 멋진 표현. 이건 역자의 몫이다.

 

□ 선생은 그것을 베껴서 무엇 하십니까?

고국으로 돌아가면 국내 사람들에게 한 번씩 읽혀 그들로 하여금 배를 틀어쥐고 넘어지도록 웃게 하되 먹던 밥티가 벌 날 듯 튀고 갓끈이 썩은 새끼처럼 끊어지게 될 것이오. (p. 366)

 

Ü 아마 베껴 쓰려는 것은 영문이지 않을까 싶다.

 

□ 음양이란 건 원래가 한 가지 기운에서 나오는 것인데 둘로 쪼개 놓았다니 그놈의 고기가 벌써 잡되구나. (p. 370)

 

□ 북곽선생 이야기 중 범이 북곽에게

네가 세상 이치를 펴 늘어놓을 때는 걸핏하면 하늘을 둘러메고 나서지마는 참말 하늘이 마련한 대로 본다면 범이나 사람이나 마찬가지 물건이어든 천지만물이 살아나가는 어진 도리에서 본다면 범이나 메뚜기나 누에나 벌이나 개미나 다 사람과 함께 같이 살기 마련이지, 서로 등지고 지낼 터수가 아니렸다. 또 이것을 선악을 두고 따져 본다면 드러내놓고 벌과 개미집을 털어 가는 놈이 천하에 큰 도적놈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제 마음대로 메뚜기와 누에의 밑천을 훔쳐가는 놈이 의리로 보아 대적이 아니고 무엇일까 보냐. (p. 375)

 

하늘의 미련대로 따라 살다나니 무당이나 의원의 농간에 넘어갈 턱이 없고 타고난 성품에 따라 저 생긴 대로 살다나니 더러운 세상살이 잇속에 병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범이 영특하고 갸륵하다는 내력이란 말이다. (P. 376)

 

Ü 영물의 삶이다. 필사의 존재지만 영물은 신의 내면과 우주의 시간으로 살 수 있다.

 

□ 내 들으매 하늘이 높다 해도 머리를 맘대로 못 들고 땅이 두텁다 해도 발을 맘대로 못 디딘다고 했거든 (P. 378)

 

Ü 지난 밤 범에게 훈계받은 북곽선생은 다른 사람이 되어 있다.

 

□ 하늘은 말이 없이 행동과 사실로 보여 준다. (P. 379)

 

Ü (각주) 맹자의 제자 만장이 이런 뜻으로 물을 때에 한 맹자의 대답.

 

□ 의복과 모자를 정말 싸움에 편한 것으로 쳐준다면 북쪽, 서쪽 오랑캐들은 싸우기에 편한 의관이 아니던가. 그보다도 서북 땅의 다른 오랑캐들로 하여금 도리어 중국의 묵은 풍속을 따르도록 할 만한 힘이 있는 뒤에야 참말 천하에서 제일 강하다고 쳐 줄 것이다. 천하를 한목으로 욕을 보이는 구뎅이로 몰아넣고는 외치기를 너희들은 수치를 좀 참고서 나를 따라 강해지려무나 하니 나는 모를 일일러라 그 강해진다는 속을 도적 무리들만이 눈썹을 붉게 하고 머릿수건을 누렇게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가령 여기서 한 사람의 백서이라도 그가 쓴 모자를 한번 벗어 땅바닥에 동댕이치는 날은 청나라 황제는 가만히 앉아서 천하를 잃어 버렸다고 볼 것이다. (p. 380)

 

Ü 이해 가는 부분이 있고 가지 않는 부분이 있다. 곱씹어 볼 문장이다.

 

□ 계주 술 맛은 관동 제일이라 하기에 술집 한 군데 들어가서 여러 사람들과 허리띠를 끄르고 한잔 먹었다. (p. 383)

 

Ü 멋지다 연암

 

□ 점방에 들어가 잠시 쉬려니 난간 밖으로 수십 명이나 되는 예쁜 어린애들이 패를 지어 노래를 부르면서 간다. (p. 388)

 

Ü 아 무슨 노래였을까. 이 생생한 풍경이 왠지 나는 가엾다. 그 노래 부르던 예쁜 어린애들은 이제 연암의 일기에서만 살아있는가.

 

□ 나이 열여섯쯤 되어 보이는 한 처녀가 섰는데 예쁘기 짝이 없었다. 사람을 보고도 수줍어하는 기가 없이 얌전스레 서서, 하던 일을 천연스레 그대로 하고 있었다. (p. 394)

우유따르는여인.JPG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 풍경은 17세기 네덜란드의 요하네스 베르마르가 그린 이 그림과 겹쳐진다.

 

애석한 일이지마는 옛 역사에 이르기를 문자가 생기기 전의 역사를 상고할 길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문자가 생긴 이후 21 3천여 년 동안을 두고 천하를 다스리는 데는 대체 무슨 방법을 썼던가. 그것은 소위 유정유일 惟精惟一 의 정신이 아니었던가. (p. 397)

 

Ü (각주) 중구의 고대 이상적 군주들로서 일련의 철인 정치의 표본으로 치는 요, , , 탕으로부터 문, , 주공을 거쳐 공자에게까지 계승하였다는 정치 철학의 골자로서 소위 중용주의의 유일성을 의미한다.

 

□ 강한 법제를 실시한 자는 소위 상앙이 아니었던가. (p. 399)

 

Ü 그러나 상앙은 결국 그의 강력한 법제로 인해 자기의 목숨을 자기가 버리게 되는 결과를 가져온다. 사기를 잠시 인용하자면

 

상군은 달아나 변방 함곡관 부근의 여관에 들려 하였으나, 여관 주인은 그가 상앙임을 모르고 말했다.

‘상군의 법에 의하면 여행증이 없는 손님을 묵게 하면 그 손님과 관계되어 처벌을 받습니다.’

‘아! 법을 만든 폐해가 결국 이 지경까지 이르렀구나.’

 

□ 성인은 일찍이 재고, 되고, 다는 것을 한 가지 법칙으로써 규정해 왔으니 원형은 규에 맞도록 하고 모난 것은 구에 맞도록 하고 직선은 먹줄에 맞추고 본즉, 이 법칙이야말로 천하에 퍼뜨리면 천하가 지키고 걸, 주에게 퍼뜨리면 걸, 주도 지킬 수밖에 없는 움직이지 못할 법칙이다. (p. 401)

 

Ü 수로 세계를 설명하려 했던 서양의 아르키메데스, 피타고라스와 연결시킬 수 있을까. 서양의 지혜에서 러셀은 말한다.

 

기원전 4세기 말경, 수학 활동의 중심은 알렉산드리아로 옮아간다. 이 도시는 기원전 332년 알렉산드로스가 건설한 것인데 급속히 지중해 연안의 주된 상업도시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알렉산드리아는 동방국들에 대한 문호 역할을 했기 때문에 서방과 바빌로니아 및 페르시아에서 문화를 들여오는 접촉점이 되었다. 대규모의 유대인 사회가 이룩되자 알렉산드리아는 급속도로 헬레니즘화되었다이 과학적 연구의 중심에 아르키메데스가 있었다.

 

□ 이 글을 쓴 자는 누구던가? 조선의 박지원이요, 쓴 때는 언제던가? 건륭 45 8월 초하룻날이다. (p. 403)

 

세상에 한 사람이라도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정말 여한이 없을 일이거든!

애달프다. 사람들은 늘 제 스스로를 알고자 하나 제대로 알 수가 없다. 그러니 때로는 아주 위대한 백치가 되든지, 그렇지 않으면 짐짓 미친 행세를 하여 숫제 자기란 것은 없애 버리고 제 몸을 일체 만물이나 다름없이 처하게 한다. 그래야 비로소 몸 놀리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여유로우리라.

남이 나를 몰라준다 해도 노여원하지 않으면 또한 군자가 아닐까 보냐 했고

노담은 또

나를 알아주는 자야말로 드물다. 하였으니 나란 것이 귀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다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저를 알도록 하고 싶잖다는 의미다. (p. 410~411)

 

Ü 열하일기 상권의 백미다.

 

□ 관지 款識 (p. 414)

 

Ü 쇠나 돌에 새긴 글자로서 음각을 관이라고 하고 양각을 식이라고 한다. (이 책 p. 161)

 

북방여행기

8 5일 신해일로부터 8 9일 을묘일까지 5일 동안

황성에서 열하까지

 

□ 열하는 황제의 행재소다.

 

속담에 새벽길을 걸어도 대문까지 못 나간다는 격이 되겠는데 (p. 423)

 

Ü 적당한 곳에 적절하게 써 넣어 보자.

 

□ 열하에서 곧장 조선으로 돌아가라는 명령이 있다면 북경 유람은 적실코 낭패를 볼 터이다. (p. 427)

 

Ü 연암은 청 황제 알현이 아니라 연경의 유람이었다.

 

나는 말 위에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으로서 가장 괴로운 노릇은 이별처럼 괴로운 노릇이 없을 터이요 이별 중에서도 괴로운 이별은 생이별처럼 괴로운 이별이 없구나. 그까짓 죽고 사는 이별쯤이야 괴롭다 말할 거리가 못 될 것이다. (p. 428)

 

Ü 열하로 가기로 하고 일부 일행과 이국에서 생이별을 했다.

 

□ 죽은 사람들을 위하여 제 몸을 희생하였을 뿐 이미 죽은 사람으로서는 아무런 상관이 없었으니 이러고 보면 죽고 사는 이별 마당에서 죽은 자는 아무런 괴로움이 없었다고 할 것이다. (p. 430)

 

□ 이별의 괴로움에는 곳과 때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대체 어떤 곳이 이별하는 괴로움을 자아낼 만한 곳일까? 집도 아니요, 정자도 아니요, 산도 아니요, 들도 아니다. 그러나 물이란 풍정은 적실히 이별의 괴로움을 자아냄 직한 곳이 될 것이다. (p. 431)

 

Ü 비 개인 긴 둑에 풀빛이 고운데               雨歇長堤草色多

남포에서 임 보내며 슬픈 노래 부르네            送君南浦動悲歌

대동강 물이야 언제나 마르려나                  大同江水何時盡

이별 눈물 해마다 푸른 물결 보태나니.           別淚年年添綠波

 

그대를 보내는 이 강둑에서 돌아설 제

그리운 그대 모습 이로부터 멀어지네 (p. 432)

 

예 보던 그 숲 보고 내가 탄 말 울음 울 제

그대가 탔던 그 배 산굽이로 사라지네 (p. 432)

 

□ 우리 나라 대악부에도 배따라기 곡이 있다. 우리 말로 배가 떠나간다는 말인데 그 곡조가 창자를 에이듯이 구슬프다.

 

닻 감아라 배 떠나간다.

이때 가면 언제 오나.

만경창파에 가는 듯 돌아오소서. (p. 433)

 

비록 단청한 집이나 화려한 봄날도 모두가 그들에게는 이별할 곳이 될 것이요. 통곡할 때가 되는 것이다. 이런 때야말로 비록 돌로 깎은 사람이라도 한번 돌아다볼 것이요, 무쇠 창자라도 녹아 내릴 것이니 이것이 바로 우리 나라로서는 상하 없이 통분을 참을 수 없었던 때였다. (p. 435)

 

Ü 이별과 괴로움에 대한 연암의 사유는 깊다.

 

□ 한 시간 3각 동안 (p. 439)

 

Ü 한 시간은 요즈음 두 시간이요, 한 각은 15분으로 한 시간 3각은 두 시간 45분이다.

 

□ 소위 까오리(조선인)가 아무런 연통도 없이 예까지 오고 보니,

머리에 쓴 모자는 둥근 테가 널찍하고 꼭대기에는 검정 모자처럼 발라 처음 보는 눈에는 이상야릇도 했을 터이니 이것이 또 무슨 갓일꼬? 걸친 입성이란 소매는 넓디넓어 펄렁펄렁하여 활개춤이라도 출 것 같으니 처음 보는 꼴이라. 이것은 또 무슨 복장일꼬? 그 말하는 소리는 더러는 짹짹, 더러는 깍깍 처음 듣는 소리일 터이니, 이것은 또 무슨 말일꼬? 모두가 이상야릇도 하렷다. (p. 443)

 

Ü 내가 그 복장 참 불합리하다. 그러나 합리적 옷차림이 꼭 중요하고 좋은 것은 아닐 터. 그 만큼 세상에 대한 녹아있는 의복이랄 수도 있겠다. 연암의 3자적 시각이 돋보인다.

 

□ 비록 쌀은 백설같이 희고 돈은 집더미로 처쌓였더라도 쌀을 익혀 낼 재주는 없었다. (p. 446)

 

□ 주머니 속에서 붓과 벼루를 끄집어 내어 성 아래 자리를 잡았다.

사방을 돌아보아도 벼루 물을 찾을 길이 없기에 성 안에서 술을 사 먹을 적에 술을 몇 잔 더 사서 새벽 술참 삼아 안장 옆구리에 달아 둔 술병을 한목 따라 부어 별빛 아래서 먹을 갈고는 찬 이슬 짬에 앉아 붓을 들어 먹을 흠뻑 찍었다. 봄도, 여름도, 겨울도 아닌 이 철, 아침도, 점심도, 저녁도 아닌 이때, 태백성 정기가 바로 맞아떨어지는 계절, 관 마을 첫닭이 홰를 치려는 무렵, 어째서 이 자리가 우연한 자리일까 보냐. (p. 451)

 

Ü 연암의 연이은 펀치에 나는 쓰러진다. 지금 연암은 우주를 걷는다. 풍류라 함은 이 정도는 되어야 구색이다.

 

□ 옛말에 위태로운 짓을 비겨 말할 적에는 장님이 눈먼 말을 타고 밤중에 물을 들어선다고 했지. 이야말로 바로 오늘 밤 우리들을 두고 한 말일세.

하기에 나는 말했다.

이것도 위태롭기는 위태로운 일이지마는 정말 위태한 것을 알아 맞히지는 못했는걸.

두 사람이 있다가 한목으로 묻는다.

어째서 그렇단 말인가.

장님을 보는 사람은 결국 눈이 성한 사람일 것이네, 장님의 위험은 눈이 성한 사람이 보다나니 위험으로 생각되는 것이지, 장님된 자야 위험을 위험인 줄 알 재주가 없을 것 아닌가. 장님이야 보지를 못하는데 위험이고 뭐고 있을 것이 무엇이람.’

서로들 한 참 웃었다. 이 대목은 따로 하룻밤에 아홉 번 강을 건너 에 쓰기로 한다. (p. 455)

 

Ü 눈먼 장님이 눈을 뜨였다. 세상 날아갈 듯 기뻤으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눈 감겼을 때는 늘 상 찾아가던 집을 눈을 떠 보니 찾아갈 수가 없었다. 정신이 아찔해져 난감하였는데 다시 눈을 감으니 언제 그랬냐는 듯 집을 찾아가더라.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가. 본질을 보아라. 문제는 눈을 뜨나 감으나 바뀌지 않는 길이다. 그 길은 변함이 없고 변하는 것은 마음과 관념이다.

 

 

3. ‘눈 앞이 아찔해 지는 일기(내가 저자라면)

연암은 18세기를 온전히 살았다. 서양에서는 대혁명의 시기다. 계몽주의와 낭만주의가 대혁명을 이끌었고 무신론이 고개를 드는 시기였다. 종의 기원으로 촉발된 사회다윈주의는 사상과 제도의 우생학적 퇴보를 유도했지만 유물론은 뜻하지 않게 사회주의 프롤레타리아트 혁명에 녹아 들어 사상적 깨침은 진보를 거듭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 때 한반도는 어두웠다. 오랜 왕조의 끝이었으며 전쟁 이후 권위를 잃어버린 기득권들의 당파 싸움에 인민의 삶은 고달팠다. 연암은 그 싸움의 한 중간에서 비켜 서 있으며 지리멸렬한 정치판과 등을 돌리고 있었다. 그의 사상은 그 시대 당쟁과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온전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가 중국에 갔을 때 그가 이제껏 가지고 있던 사유와 감정을 쏟아낸다. 그것은 열하일기라는 장편 여행기로 녹여졌고 그의 사상과 사유, 정치 철학 등이 모두 망라된 융합적 글쓰기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우선 이 글은 시간의 순서대로 쓰여진 기행문이다. 전통 기행문의 전형이다. 날짜와 지역, 시간, 만난 사람들을 열거하고 경험했던 일들이 아주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그 기행의 모습보다도 열하일기의 백미는 그 기행의 순간 순간 연암이 들여다 놓은 그의 사유다. 이별에 슬퍼하고 백성의 삶에 분노하고 불합리에 대해 일갈하고 자연을 섬기며 우주를 이해하려는 그의 사상이다. 책을 읽으며 연암이 그 시대 조선을 이끌었다면 조선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가 되었을까를 상상한 적이 있다. 플라톤의 철인 정치에 더한 상앙, 한비자의 법가 사상과 세종의 위민이 더해져 가슴이 따뜻한 나라가 되지 않았겠는가.

 

내가 쓰려는 산에 대한 글은 연암의 글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는다. ‘이라는 동질의 주제가 연암과 나를 연결하고 있었고 사유를 들이려는 노력이 그러했다. 앞으로 남은 2~3권도 주의 깊게 읽어 연암에 나를 녹이고 나에게 연암을 녹여 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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