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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3일 10시 47분 등록

A. 박지원 열하일기 저자소개

글쓴이 박지원 ( 책 날개에 있는 부분) 1737- 1805년

 

 

노론 명문가인 반남 박씨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벼슬에 뜻이 없어 과거를 보지 않았다.

신분을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며 학문을 닦았다. 북학파의 핵심 멤버인 박제가와 이덕무, 천재 과학자이자 음악가인 홍대용, 괴짜 발명꾼 정철조, 조선 최고의 창검술을 자랑한 백동수 등이 그의 자랑스러운 친구들이었다.

삼십대 중반 즈음, 연암은 전의감동에 혼자 기거하면서 이 모임을 이끌었다.

연암과 그의 친구들은 매일 한곳에선 풍류를, 다른 한편에선 명상을, 또 한쪽에선 세상의 이치를 논하는 모임을 이어갔다.

벗이 있었기에 진정 행복햇고, 벗이 있었기에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은 시절이었다.

 

 

쉰 살 넘어 정조의 부름을 받고 선공감역, 안의현감들을 지냈다.

황해도 금천의 골짜기인 연암골을 찾고는 그로부터 몇 년 뒤에 가족들과 함께

이곳에 정착하였다. 박지원의 호는 여기서 유래하였다

42살 종로 생활을 청산하고 연암골로 들어감.

 

 

박지원이 연암골에 정착하기 직전 그의 절친한 친구였던 유언호는 “자네는 어쩌자고 홍국영의 비위를 거슬렸나. 자네에게 심히 독을 품고 있으니 무슨 화가 미칠지 모르겠네. 그 자가 자네를 해치려 틈을 엿본지 오래지만 자네가 조정의 벼슬아치가 아니라고 늦추어 온 것 뿐이라네. 이제 복수의 대상이 다 제거되었으니 다음 차례는 자네일 걸세. 자네 이야기만 나오면 그 눈초리가 심히 험악해지니 필시 화를 면하기는 어려울 걸세. 이 일을 어쩌면 좋겠나? 될 수 있는 한 빨리 서울을 떠나게나”(이종묵, [조선의 문화공간]에서 재인용)라고 권하였다는 것이다.

 

 

같은 해 6월 압록강을 건넌 뒤 북경을 거쳐 열하, 그리고 다시 북경을 거쳐 10월말 서울로

돌아오기까지 약 5개월여의 기간 동안 박지원은 신세계를 경험하게 되었다. 열하는 건륭황제가 별궁을 건설하면서 북경에 버금가는 청나라의 정치와 문화의 중심지였다. 박지원은 사행 기간 동안 청국의 학자를 비롯해 몽골과 티베트 사람까지 접하면서 그들의 학문과 문화를 접하며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돌아와서 몇 년의 작업 끝에 그동안 오랑캐로만 치부하였던 청나라의 경제적, 문화 적 발전상을 소개하며 북학론을 개진한 역작 [열하일기]를 발표하였다. [열하일기]는 내용에서뿐 아니라 그 문체에서도 당시로써는 파격적이면서 직접적이고, 해학적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박지원이 후배 박제가의 [북학의]에 대해서 지은 서문을 인용하고자 한다.

여기서 그는 당시 조선 내 지식인들의 허위의식을 통렬하게 비판하였다.

“우리를 저들과 비교해 본다면 진실로 한 치의 나은 점도 없다.

그럼에도 단지 머리를 깎지 않고 상투를 튼 것만 가지고 스스로 천하에 제일이라고 하면서 ‘지금의 중국은 옛날의 중국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 산천은 비린내 노린내 천지라 나무라고, 그 인민은 개나 양이라고 욕을 하고,

그 언어는 오랑캐 말이라고 모함하면서, 중국 고유의 훌륭한 법과 아름다운 제도마저 배척해 버리고 만다. 그렇다면 장차 어디에서 본받아 행하겠는가. …(중략)…

 

 

 

남들은 물론 믿지를 않을 것이고 믿지 못하면 당연히 우리에게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는 성품은 편벽된 기운을 타고난 데서 말미암은 것이요,

그 말을 믿지 못하는 원인은 중국의 산천을 비린내 노린내 난다고 나무란 데 있다.”(박지원, [연암집] ‘북학의서’에서)

 

 

 

c .내가 저자라면

박지원의 묘사력은 소름이 돋을 만큼 섬세하고 치밀하다.

하지만 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난 나의 생각이 다른 곳으로 날아가는 것을 안다.

이런 묘사를 읽는 것이 힘들다는 것을 알았다. 다시금 생각을 잡아와서 책 안으로 쑤셔 넣어본다.

300여년 전의 일을 어제일 처럼 머릿속에 그려지게 만드니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대화는 마치 옆에서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나의 시선을 끄는 것은 여행기에 상황 묘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까지 드러내 보인다.

 

 

“짐짓 응석을 부려 내게 정성을 보이려고 하는 꼴이 한편으로는 밉살스럽고 한편으론 우습다.

허나 술은 내가 즐기는 바요, 닭알 까지 가져왔으니 눈을 감을 밖에. ”

 

 

 

95 “나는 이자의 꼴이나 말이나 생각이나 뜻하는 것이 용렬하고 더럽고 아니꼬워서

데리고 이야기할 위인이 못 되기에 오래 앉았기가 견디기 어려워 곧 일어섰다.”

 

96 “불과 몇장 밖에 안 적은 이따위 책을 가지고 턱 없는 값을 앗아내려 드니 염치가 없다 해도 심하지 않은가.

 그러나 기왕 빌려온 것이요, 또 처음 보는 것들이니 우선 베껴놓고 돌려주기로 하였다. ”

 

 

서민적이고 유머러스하고 거기다 자신의 기분을 그때 그때 솔직하게 묘사하고 있으니 사람들은 그의 솔직함에 반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랑캐라고 청나라를 우습게 볼 때 그는 다른 시각으로 청나라를 배워야 할 나라로 생각하고 길을 떠난 점에 박수를 쳐 주고 싶다. 난중일기에서 보았듯이 연암의 여행기에도 날씨 이야기가 잘 묘사되어 있었다.

만일 그림을 그리는 듯한 묘사를 할 정도였으니 스케치를 넣었으면 더 좋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다음은 정민교수의 글이다.

열하일기를 찬찬히 읽다 보면, 마치 영화 필름이 눈앞에서 돌아가는 것만 같다.

18세기 후반 청나라 변경과 북경의 풍경이 생생히 되살아난다.

책 속의 수많은 이야기들은 끊임없이 지적 호기심을 유발시키고, 미묘한 담론을 만들어낸다. 섬세한 묘사와 절묘한 비유에 얹혀 전해지는 지성의 힘에 독자들은 자꾸 위축된다.

 

문장의 묘미는 또 어떤가?

치고 빠지는 특유의 너스레와 층층이 포개진 행간을 헤아리는 일은

무척 즐겁고 매우 괴롭다.

 

몇 해 전 나는 연암의 길을 따라 북경에서 열하를 찾았었다. 그의 자취가 담긴 곳곳을 지나면서 한 위대한 정신이 과거를 어떻게 현재화 하는지 절감했다. 연암은 현재진행형이다. 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살아있고 힘 있다. 나는 그 앞에서 늘 맥을 출 수가 없다.

 

 

 

그의 사유는 현대적이고 기호학적이다. 그가 보고 느낀 사물의 세계, 인간의 질서는 지금도 하나 변한 것이 없다. 그의 글이 갖는 파괴력은 바로 여기서 나온다. 그는 얽매임 없이 툭 터진 지성이다. 고백하건데, 나는 연암과 만나서 크게 변했다. 생각도 달라졌고, 글쓰기도 변했다. 그의 글을 꼼꼼히 읽어본 독자라면 내 말이 결코 과장이 아닌 줄을 잘 알 것이다.  북한에서 국가적 사업으로 간행된 고전문학선집 100책이 앞으로도 ‘겨레고전문학선집’이란 이름으로 속속 간행되리라고 한다. 고전에는 남북이 없다. 이념도 없다. 고전을 통해 남북이 만나고, 시대를 넘어 옛 정신과 만나, 우리의 내면 또한 나날이 풍요로워 질 것을 믿는다.

 

 

 

 

연암은 현재 진행형이라는 것에 희망을 갖는다.

또 그의 꼼꼼하고도 섬세한 필력, 치고 빠지는 것이 어떤 것인지 2권과 3권은 자세히 읽어야 겠다고 생각했다.

책 왼편 날개에 북녘의 고전 출간사업에 난 적잖게 놀랐다.

더구나 이 사업은 모든 대중이 고전을 읽도록 한다는 원칙에 따른 다는 것이다.

남북이 하나되어 고전을 읽는 모습에 미래의 희망과 기대를 건다.

부담 스러운 분량이긴 하지만 보여주는 글쓰기를 한 연암의 2권 3권을 다시금 마음을 다잡고 시작해봐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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