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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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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01시 19분 등록

네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너를 압도하거든

한 그릇의 밥, 한 줄기의 물, 한 방울의 눈물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가거라.

엄마가 보증할게. 그들에게 줌으로써 너는 얻게 된다.

네가 필요한 모든 위로와 새 희망을 말이야.

- 공지영,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매주 녹음해서 들려드린다구요?”

“네. 들으면 그렇게 좋다고 하시네요.”

 

지난 주 토요일, 성가발표회가 있었습니다. 성가대에서는 1년 전부터 준비를 했습니다. 발표곡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소개되는 조지 비젯 Georges Bizet 이라는 작곡가의 Te Deum(떼 데움, 주님을 찬미하나이다) 이라는, 발음만큼 어려운 곡입니다. 성당설립 20주년을 기념하는 음악회라고 오케스트라를 초청하여 협연을 하고 2부에서는 교사회, 청년, 유치부, 노인대학도 노래를 하는, 지역본당으로서는 이례적인 커다란 잔치입니다.

 

저는 넉달 전부터 합류했습니다. 부족한 성가단원을 채우기 위해 밴드 구성원들도 용병(?)으로 긴급 투입된 것입니다. 성가를 부르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발성과 호흡법이 일반노래와는 다르고 파트 음을 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사람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고음영역의 테너를 맡아서 더 어려웠습니다. 다행히 20 대에 청년성가대를 했던 경험이 있어서 그런대로 소리를 낼 수 있었고 테너 솔로까지 맡았습니다.

 

음악은 신비로운 힘을 갖고 있습니다. 밝은 노래를 들으면 온 세상이 밝아지고, 우울한 노래를 들으면 마음이 가라앉습니다. 힘찬 군가를 들으면 씩씩하게 행진을 하고, 가톨릭 미사음악을 들으면 거룩한 성심이 우러납니다. 그래서 베토벤이 ‘음악은 신의 언어’라고 말한 것일까요?

 

합창은 음악의 힘을 보여주는 가장 매력적인 장르 중의 하나입니다. 신들린 기타소리, 경쾌한 드럼 같은 화려함은 없지만, 사람의 목소리보다 훌륭한 악기는 없습니다. 합창은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목소리가 얼마나 아름다운가를 일깨워 줍니다. 때로는 웅장하고 장엄하게, 때로는 갸날프고 애절한 화음을 자아내는 그 선율은, 직접 소리내어 경험하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짜릿한 전율입니다.

 

청중들의 열광적인 호응을 받으며 발표회가 끝나고, 칭찬과 축하가 이어졌습니다. 성가대 단원들은 실력있는 합창단도 아니었고, 전문적 음악공부를 한 사람들도 아닙니다. 대부분 동네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아저씨와 아주머니들입니다. 연주곡 CD를 아침 모닝콜로 사용하고, 라틴어를 한글로 일일이 바꾸어 놓은 악보를 보고 외우며, 노래를 불렀기에 그분들의 감회가 더 새로울 것 같았습니다.

 

특히 세 분이 기억에 남았습니다.

 

인생에는 ‘술과 성가대 밖에는 없다.’ 고 말하는 베이스 파트의 최고령 어르신, 이혼한 사모님을 독립군이라고 부르며, ‘성가대가 아니면 난 죽었을거야.’ 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암에 걸려 성가연습을 하는 6개월이 남편의 암 투병 기간이 되었다는 알토파트의 누님. 연습을 할 때마다 기도로 생각하고 노래를 불렀다는 누님에게도 발표회는 특별한 시간이었을 것입니다.

 

매주 성가대에서 연습한 곡을 녹음해서 누워 계신 친정 엄마에게 들려드린다는 소프라노의 자매도 있습니다. 그녀는 안면마비가 와서 거동을 못하는 어머니를 모시고 있습니다. 5남매의 막내인데도 오빠들이 아픈 어머니를 돌보지 않는 것을 보다 못해 본인이 모시기로 했다고 합니다. ‘녹음해서 들려드리면 정말 그렇게 좋아하시느냐?’ 고 되묻자, 과거에 노래를 하셨던 분인데, 내 딸이 노래를 해서 너무 행복해 하신다고, 그래서 낮에 일하고 밤에 어머니를 돌보며 아무리 피곤해도 성가대를 안 나올 수가 없다고 합니다. 제가 얼마나 힘든지 알겠다고, 병원에 있으니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하라고 명함을 주었더니, 금새 눈물을 글썽입니다.

 

발표회 3부에서 여성들은 멋진 드레스, 남성들은 검정양복에 나비 넥타이를 메고

별, 내가 만일, 나뭇잎 배 같은 서정적인 노래들을 불렀습니다.

청중이 함께 부르는 그 노래들을 부르면서, 문득 음악은 ‘안아주는 친구’ 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이 되는 위로는 선물이나 도움이 아닙니다.

내가 아플 때는 나를 가만히 안아주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슬픔이 나를 압도할 때,

정말로 혼자가 되어 따뜻하게 안아주는 친구가 필요할 때,

음악이 우리 모두에게 '나를 안아주는 친구' 가 되어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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