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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19일 03시 54분 등록

1. 연암의 작품세계에 대하여

 

<열하일기>는 남아있는 연암의 저작 전집중 절반정도를 차지하는 분량이며 그의 사상과 예술을 가장 집중적으로 또 다각적으로 표현한 작품이다. 연암의 창작생활의 과정을 세시기로 나누어 볼수 있는데 중기에 속하는 작품이다.

 

중국여행을 전후한 시기는 연암의 불우한 일생 중에도 가장 곤란한 시기였다. 당시 세도 귀족의 추적을 피하여 황해도 금천 연암이라는 산골에서 피신생활을 하였다. 연암이란 별호도 이시기에 지은 것이다. 그의 문필은 양반 계급을 모용한다 하여 권력계그브로부터 백안시되고 주의 인물로 되다시피 생활하였다.

 

1780 (조선 정도4) 영조 임금의 셋째 사위였던 금성위 박명원이 당시 청국의 황제인 건륭의 70세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사절단의 수석 지위인 정사로 임명되어 북경까지 가게되자 아무런 공직도 없이 정사의 사설 수원으로 동행하게된다. 당시 동행한 일행이 280여명이나 되었다고 함. 그들은 육로로 624일 압록강을 건너 81일 부경에 도착하였으나 건륭황제는 열하 행국에 피서하고 없어서 다시 열하로 간다. 그곳에서 6일간 체류하다가 북경을 거쳐 귀국함. 왕복 만리(4000킬로)에 가까운 행정과 4개월 기간의 영행을 이용하여 <열하일기>26권을 저술한다.

 

이 작품은 정조도 읽었던 작품이나 연암이 죽은 뒤에도 금서가 되어 100여년동안 밝은 날을 못보다가 1900년 한학자 김택영의 발의로 연암선집을 서울서 간행하게됨.

 

제목은 여행일기이나 포함된 작품들의 형식은 오늘날로 보면 기행, 평론, 소설. , 실화문학, 펠레톤, 탐방보도, 스케치, 수필, 등 동서고금의 문학장르를 모두 구사하였고, 내용면에서는 정치 경제 천문 지리 철학 역사 과학 기술 종교 미술 음악 연극 언어 의학 서지학등 거의 모든 테마를 언급했다.

 

열하일기 전편에서 조국을 문명하고 부강한 나라로 개조코저 하는 애국주의 정신에 불타는 연암의 일념이 전편을 통하여 흐르고 있다. 연암은 철저한 무신론자로, 물질의 구성과 생의 발생에 대한 과학 인식론, 인민 대중의 빈곤과 고통을 동정하는 인도주의적 정열.등을 느낄수 있다.

 

후기 작품으로 <허생전>열하일기에 실려있다. 이 작품은 현실비판으로부터 전진하여 혁명적 계몽기의 선봉 역할을 한 무명 인텔리 허생이 사회 개혁의 실천적 인물로 등장한다. ‘이상의 주인공이 아니라 투쟁의 주인공으로비약함.

 

초기작품들은 20대 작품으로 자기의 비판적 사실주의 방법을 확립.

 

사상적 지향의 명확성과 풍부한 인민성, 본질적인 사회적 모순의 적발과 날카로운 비판의 기백 심각한 정치적 성격과 사실주의적 전형화의 솜씨로 작가로서의 확고한 지위를 쌓음.

 

광문자전(연암의 처녀작)

 

광문을 중심한 거지 아이들의 관계를 묘사하면서 그들의 헐벗고 굶주인 세상에서 버림받은 가엾은 존재들이지만 양반들이 따를 수 없는 의리와 인정을 간직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말거간전

 

소유자 사회의 도덕의 위선성, 백성의 정치 도덕적 우월성의 주제를 심화함.

 

예덕선생전

 

인간 노동의 유용성, 고귀성에 대한 주제. 연암은 주인공의 입을 통하여 소박하고 오직 사회적 부의 생산을 위하여 부지런히 일하고 있은 엄행수를 가장 고귀한 존재로 내세움.

 

민 노인전

 

18세기 봉건 사회의 정치 경제적 위기에 의하여 초래된 귀족 계급의 내부 모순을 적발하고 있다. 양반출신으로서 자기 계급과 사상적 관계를 끊고 그를 반대하는 세력으로 전환하게 되는 요인들과 과정을 정당하게 해명하고 있다. 저자의 견해에 의하면 장수자란 생리적 연령을 가리킬 것이 아니라 독서와 견문을 통한 체험에 의하여 세상일을 많이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피력함.

 

양반전

 

문벌을 재물로 하며 조상 덕만 팔아먹는 선비들의 모든 생활의 종말에 대한 문제를 주제로 삼고 있다. 연암의 사상적 지향, 예술적 높이를 뚜렷이 보여주는 단편의 명수. 사회의 본질적인 부정면을 웃음으로 규탄하는 풍자작가로서의 면모를 확연히 드러내줌.

 

연암의 시

 

연암이 남긴 시들은 정론시보다 자연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단순한 풍물시가 아니라 격동적인 시대 정신으로 일관되고 있으며 사실주의 시 문학의 새 경지를 개척한 걸작들이다. 대표작은 29세에 지은 총석정 해돋이이다. 그는 그림을 모르는 사람은 시를 모른다고 했다. 그림을 평한 수산해도가 시와 문장의 본성과 과업을 논한 좌소산인에게밭갈이하는 농부와 수확에 바쁜 모습을 그린 농가도 있다.

 

나의 의견

 

연암의 69년 일생은 그리 녹녹하지 않은듯하다. 오십이 되어서 관직에 나아갔고 어린시절에는 울증으로 고생을 하기도 했다. 그는 술을 좋아하고 달을 좋아한 듯 하다. 작품 곳곳에 찢어지게 밝은 달빛을 노래한 부분이 많이 등장한다. 우주삼라만상 모든 분야에 관심이 많았고 민초들의 삶에 무한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선비였다. 두 달여의 여행기에 그가 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담아놓은 듯하다.제목은 여행기이지만 일기형식으로 30%정도 되어 있고 나머지 부분은 자신의 생각들을 여행중 보았거나 알게 된 것들과 연계한 내용들이다. 여행후 8~9년정도의 시간을 가지고 쓴 작품임을 감안하면그의 의도는 여행을 통한 자신의 철학을 피력한 것으로 보인다. 주류의 생을 살수 있는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관직의 길을 접고 조선의 봉건사회가 가지고 있는 부패와 불합리에 대한 비판을 문학활동으로 대변했고 자신이 하고자 했던 말들을 작품을 통해서 하느라고 그의 평생은 불우했다. 이런 생을 살다간 연암이 있어서 18세기의 조선이 21세기의 대한민국으로 거듭날 수 있는 것이란 생각이 든다. 혼돈의 시간을 살다간 지식인의 진정한 모습을 엿본다 아쉬운 점도 있다. 단테가 당시 지식인들의 언어인 라틴어보다  토스카나방언으로 신곡을 지음으로 이탈리아어를 확립시켰고 대중들이 읽을 수 있는 텍스트가 되었듯이. 연암의 글이 언문으로 쓰여졌었으면 어떠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중국을 여행하면서 연암은 이야기한다. 번역이 소통에 어려운점과 청나라 사람이 생각을 말로 하는것과 조선인이 생각을 글로 옮기는 것의 차리를. 당시 언문으로 글을 쓰는 모습까지 갔었더라면 조선의 역사가 바
뀌었겠지...

 

2. 내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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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학관에 머물면서<太學留館錄>

 

28 달이 이토록 좋은 밤에 아니 마시고 무엇하랴. 언뜻 가만히 따라 한 잔 가뜩 부어 마시고는 촛불을 불어 끄고 뛰어 나왔다. 홀로 뜨락에 서서 찢어지듯 밝은 달을 쳐다보고 있노라니 담장 밖으로부터 낄낄하는 무슨 소리가 들렸다. 장군부에서 약대가 우는 소리였다.

 

29 담배를 한 대 붙여 물고 뛰어나오자니 표범 우는 소리 같은 개 소리가 장군부로부터 들렸다. 밤번을 서는 조두 소리들은 깊은 산중의 두견새 소리인 양, 나는 마당 한 복판을 거닐면서 우르르 뛰어 달려 보기도 하고 점잖게 뽐내어 걸어 보기도 하여 달 그림자를 동무 삼아 한참 놀았다. 명륜당 뒤뜰에 선 늙은 고목은 어두컴컴하게 그늘이 짙을 대로 짙은데, 찬 이슬은 방울방울 맺혀잎새마다 구슬을 드리운 듯 연주 같은 구슬들은 달빛에 비치어 반짝반짝하였다. 때는 삼경 두 점을 쳤다. 애닯다. 좋은 이 밤 밝은 달 아래, 같이 놀 님이 이토록 없다니, 이럴 녘에 어쩌면 우리 권솔들만 저렇게들 쿨쿨잘꼬, 도독부 장군님도 잠들었구나. 에라! 나도 방으로 들어가 숫제 베개를 베고 나뒹굴어질거나.

 

48 기공은 나를 이끌고 같이 밖으로 나와 달 구경을 하였다. 달빛이 대낮같이 밝았다. 나는 있다가, “만약 달 속에 또 한 세계가 있어 달로부터 땅덩이를 바라보는 작다 있다면 역시 우리처럼 난간에 기대고 서서 땅빛이 달에 가득찼다고 땅 놀이를 할 터이겠지!” 했더니, 기공이 난간을 치면서 용한 말이라고 하였다. 

 

53 대체로 중국 사람들이 술 먹는 법이란 얌전하디 얌전하여 아무리 한여름철이라도 으레 데워 먹는다. 비록 소주라도 역시 데워서 잔은 은행 깍지만큼씩 한 것으로 이빨에 걸고 쪽쪽 빨다가는 그나마 잔에 남겨 탁자 위에 놓았다가, “, , 맛이군.”하니 좀처럼 취해 거꾸러지는 일이 없다.

 

55 황성에서도 수림 사이로 붉은빛, 자줏빛, 푸른빛, 초록빛, 기와 지붕이 솟아났고 더러 전각집 꼭대기에 금으로 호로병처럼 만든 것을 씌운 것은 있었으나 아직 지붕을 인 황금기와는 보지 못했던 터에 시방 여기서 보는 전각집은 순금인지 도금인지는 모르겠지마는 금기와을 이었다. 2층으로 된 큰 전각이 두 채, 누각이 한 채, 대문이 세 채다. 다른 전각들의 오색 유리 기와들은 안색조차 없을 뿐 보잘것도 없었다.

 

57 겹겹이 선 전각, 첩첩이 선 정자, 굽이굽이 튼 회랑들은 다만 날아가는 듯한 처마와 지붕만 따서 그릴 뿐, 아로새겨 물린 정교한 세공에 이르러서는 화가로서 그릴 수 없는 것이다. 이는 예로부터 내려오는 화가들의 천추의 유한으로 공자님도 벌써 이 두 가지를 탄식하여 말씀하기를, “글은 말을 다 할 수 없고, 그림은 뜻을 다 할 수 없다.” 하였다.

 

61 수염은 반백인데 나이는 예순밖에 안 되어 보이고 봄바람이 부는 듯 화기가 넘쳤다고 한다.

 

63 숙소로 돌아오니 중국 양반들은 모두들 내가 반선을 만나 본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하고 부러워하면서 입에 침이 없이 그의 도술이 신통한 것을 치켜세웠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아첨은 세상에도 못 볼 풍조로서 예로부터 세상 인심이 얼룩덜룩 하고 좋고 나쁜 것은 모두가 우두머리에 달렸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학지정의 처소에서 술을 한잔 했다. 이 밤에 달빛은 찢어지게 밝았다.

 

65 무대는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지마는 깊숙하고도 음침한 것이 꿈속에 보는 음식상같이 맛을 알 수 없었다.

 

그는 얼굴이 쪽 뽑은 듯이 맑고 날카롭고 경망하게 생겨 덕이 없어 보였다.

 

69 이날 밤 달은 찢어지게 밝아 기공과 함께 명륜당으로 나가 난간 아래를 거닐었다. 나는 달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달의 몸뚱이는 언제나 둥글어 햇빛을 빙 둘러 받고 보니 이 때문에 지구에서 본 달은  찼다가 기울다가 하는 것이 아닐까요? 오늘 밤 저 달을 온 세계가 한목으로 본다고 치면 보는 장소에 따라서 달은 살찌고 여위고 깊고 옅음이 있지 않을 까요? 별은 달보다 크고 해는 땅덩이보다 크되 보기에는 그와 달라 보이는 것이 멀고 가까운 까닭이 아닐까요? 만약에 이것이 참말이라면 해와 땅과 달들은 모두 허공에 둥둥 뜬 별들이 아닐까요? 별에서 땅을 볼 때도 역시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요? 땅과 해와 달이 한 줄에 꿴 듯이 이어져 반짝반짝 세 개로 놓여 있는 것이 河鼓하고나 다름없을 것이 아닐까요?

땅 위에 붙어 있는 온갖 만물은 어떤 것이고 모양이 둥글둥글 할 뿐 하나도 네모가 진 물건을 볼 수 없는데 다만 방죽과 익모초 줄기가 네모졌다지마는 이것도 네모 반듯한 물건이라고는 할 수 없으니 네모 반듯한 물건은 과연 찾을 수 없거늘 무엇 때문에 땅덩이만 네모난 물건이라고들 할까요? 만일에 땅덩이를 네모졌다고 하면 월식 때 달을 검게 먹어 들어가는 변두리가 왜 활등같이 둥글어 보일까요? 땅덩이가 네모라 주장하는 자는 무어나 방정해야 된다는 대의에 비겨서 물체를 인식하려 들고 땅덩이가 둥글다고 주장하는 자는 실제에 보이는 형체를 믿고 대의는 염두에 안 두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로 보아 땅덩이란 실지 물체는 둥글고 대의로 말한다면 방정하다고 말함이 아닐까요? 해와 달은 오른쪽으로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 도는 궤도가 해는 크고 달은 작으며 도는 속도가 늦고 빠름이 있어 한 해와 한 달은 일정한 도수에 맞고 있거늘 해와 달이 땅을 둘러싸 왼편으로 돈다는 말은 우물 속에서 보는 견식이 아닐까요?

 

땅덩이의 본바탕이란 둥글둥글 허공에 걸려 사방도 없고 아래 위도 없이 쐐기 돌 듯 돌다가 햇빛을 처음 받는 곳을 날이 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닐까요? 지구가 더 돌아 처음에 해와 마주 대하는 데는 차차 어긋나면서 멀어져 정도도 되고 해가 기울기도 하여 밤과 낮이 되지 않을까요? 비해서 말하자면 창구멍이 뚫어진 데로부터 햇살이 새어 콩알만 하게 비친다고 합시다. 창 아래 햇살 비치는 자리에 맷돌을 놓고 바로 햇살 비치는 자리에 먹으로 표를 해 두고는 그 다음에 맷돌을 돌리고 보면 먹 자욱은 햇살 비친 곳에 그대로 남아 있을까요? 그러찮으면 서로 떨어져 사이가 벌어져 갈까요? 맷돌짝이 한 바퀴를 돌아 다시 그 자리에 돌아오면 햇살 비치는 자리와 먹 자욱은 잠시 마주 포개졌다가는 또다시 떨어지게 될 것이니 지구가 한 바퀴 돌아 하루가 되는 것도 이런 이치가 아닐까요? 또 등불 앞에 놓인 물레를 가만히 두고 보면 물레바퀴가 돌 때는 물레바퀴의 군데군데가 등불빛을 받고 있으니, 그렇다고 등불이 물레바퀴를 돌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구의 밝고 어두운 이치도 역시 이런 것이 나닐까요? 그러면 해와 달은 원래가 뜨고 지는 것이 아니요, 또 오고 가고 하는 것도 아닌데 사람들은 땅이 움직여 돌지를 않고 언제나 한 자리에 박혀 있다고 너무 믿기 때문에 생긴 착각이 아닐까요?

명백한 이론은 찾지 못한즉 이 땅의 춘 하 추 동을 가리켜 그 방위를 따라 논다고 해 버렸으니 결국 논다는 것은 나가고 물러서고 하는 것을 말함이요.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서 이미 논다고 할 바엔 차라리 돈다고 함이 어떨까요? 저 착각을 한 자는 말하리다. 땅덩이가 돌 때는 땅 위에 실렸던 일체 물건들은 엎어지고 자빠지고 기울어져 떨어질 터라고, 만약에 쏟아져 떨어진다면 어느 땅에 떨어질까요? 만약에 이렇다면 저 허공에 달린 별과 은하는 기운 대로 돌다가 무엇 때문에 떨어져 쏟아지들 않고 그대로 있을까요? 움직이지도 않고 돌지도 않는다면 생명 없는 죽은 덩어리에 지나지 않을 텐데, 그렇다면 어째서 썩지도 부서지지도 흩어지지도 않고 그대로 남아 견딜까요? 땅덩이 거죽에 생물들이 붙어서 살 때는 쭝방울 같은 가장자리 에다가 발을 붙이고 어디서나 머리에 하늘을 이고 있는 것을 비겨 본다면 수없는 개미와 별들이 더러는 꼿꼿하게 선 바람벽에 기어가기도 하고 더러는 천장에 붙어서 사는 것을 누가 바람벽에 가로 붙어 섰다고 할 것이며 누가 천장에 거꾸로 붙어 섰다고 하겠습니까? 시방도 이 땅덩이 밑창에는 역시 바다가 있을 터인데 만약에 땅거죽에 붙어 사는 생물들이 안 떨어지는가 의심을 한다면 땅밑창 바다는 누가 동뚝을 쌓아 두었길래 물이 안 쏟아지고 그대로 있을까요? 저 하늘에 총총한 별들은 그 크기가 얼마씩이나 될 것이며 역시 거죽 껍질은 지구나 다름이 없지 않을까요? 별도 껍데기가 있을진데 생물이 붙어 살 터이니 역시 그럴까요? 만약에 생물이 있다면 따로 또 세상을 배판해 놓고 새끼까지 쳐 가면서 살겠지요? 지구는 둥글게 생겨 원래 음양이 없을 터인데 해로부터 불기운을 받고 달로부터 물기운을 얻어 흡사 살림꾼이 동쪽 이웃에게 불을 빌리고 서쪽 이웃에게 물을 얻는 것이나 다름없으매 한쪽은 불이요, 한쪽은 물인지라 이것이 소위 음양이 아닐까요? 억지로 오행이라고 이름을 붙여 쇠와 나무와 물과 불과 흙이 서로 낳고 저마끔 이겨 낸다고 한다면 바다에 큰 풍랑이 일 적에 불꽃이 너우너울 타오르는 현상은 무슨 까닭이라고 할까요? 얼음 속에는 누에가 살고 불 속에는 쥐가 살고 물 속에는 고기가 살아 가지각색 생물들은 어디나 붙어 있는 곳이 저들로 보아서는 다 땅입니다. 만약에 달에도 세계가 있다면 오늘 이 밤에 두 명의 달세계 사람이 난간 머리에 마주 서서 달빛 아닌 땅빛이 차고 기우는 이야기를 아니 한다고 누가 알겠습니까?”

 

74 남의 꿈속 길을 동행할 수야 없지요.

 

76 거문고 위에 묻은 때는 소위 사자학獅子瘧 이라고 하며, 거문고 줄 위에 묻은 손때는 앵무장鸚鵡瘴이라고 하며, 생황의 부는 구멍에 말라붙은 침은 봉황과라고 하며 종이나 경에 앉은 파리 똥은 나화상이라고 한다.

 

78 실상 내가 연암에 가서 살게 된 것은 일찍부터 목축에 뜻을 두었던 때문이다. 연암이 자리잡은 곳은 첩첩산중에 양쪽이 펀펀한 골짜기인 데다가 수초가 좋아서 소, , 노새, 나귀 수백마리를 치기에 넉넉했다. 내가 일찍부터 말했지마는 우리 나라가 이토록 가난한 탓은 대체로 목축이 제자리를 잡지 못한 까닭이다.

 

81 무릇 생물들의 성질이란 사람이나 다름없이 고달프면 쉬고 싶고, 답답할 때에는 시원한 데를 찾고 싶고, 구부러든 놈은 펴고 싶고, 간지러우면 긁고 싶고 본즉 비록 사람이 먹을 것을 주면 먹는다 하더라도 때로는 제 맘대로 신을 풀기 위한 경우가 얼마든지 있다. 그러므로 말도 반드시 이따금 굴레와 고삐를 풀어 놓아 물역 같은 시원한 곳에 놀게 하여 답답증을 풀도록 할 것이니 이것이 말하자면 생물의 성질에 따라 그 뜻을 맞추어 준다는 것이다.

 

82 대체로 목마른 고통은 배고픈 고통보다도 심한 법이다.

 

88 누씨는 차를 다 마시자 내일은 부디 다른 데 출입을 말아달라고 재삼 부탁을 하기에 고개를 끄덕인즉 그는 곰곰이 섭섭해하는 빛을 보이면서 절을 한 번 꾸뻑 하고는 나갔다.


92 “
내 나이 늙고 보니 이제야 아침 이슬이나 다름없나 보외다. 선생은 방재 좋은 나이로 또다시 황성 걸음이 계실 터이니 응당 오늘 밤 생각을 하실 거외다.” 하고는 술잔을 들고 달을 가리키면서, “달 아래 이별을 하고 보니 다른 날 만리 밖에 계신 선생이 그리울 적은 저 달을 보고 선생을 대하듯 하리다. 보아하니 선생은 술도 잘 자시고 또 놀기도 좋아하시는 터인데 부디 몸조심을 하소. 18일은 나도 황경으로 돌아가겠는데 선생은 그 쩍에 귀국하지 않으시거든 부디 한번 우리 집에 들러 주시오. 우리집은 동단 패루 제2호동 제2택인데 대문 위에는 대경편액이 붙었습니다. 거기가 바로 제 집입니다.” 하였다. 마침내 서로 악수를 하고 작별하였다.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서

 

96 우리 나라 인사들 중에 멀리 중국의 각 지방을 유람한 자로 신라에는 고운 최치원이 있고, 고려 시대에 와서는 익재 이제현 등이 비록 서촉 지방과 강남지방을 두루 돌아다닌 일이 있지마는, 이곳 새북 지방은 아무도 온 사람이 없었다. 앞으로 천백 년을 두고 몇몇 사람이 또다시 이곳까지 올는지 모르겠지마는 나는 이번 걸음에 뜻하지 않은 여러 곳을 지나오면서 옛 사람들이 먼지를 휘날리며 지나간 수레와 말발굽 자국이 눈에 삼삼한 듯하고 보니, 어허 인간 세[상살이가 이토록 앞일을 짐작 못할 만큼 덧없을까?

 

99 수레 속에 있던 부인들은 뒤창을 열고 서로들 머리를 내놓는데 구름같이 틀어 올린 머리채 위에는 갖은 보물꽂이로 다 치장해 금빛깔 꽃이며 비취 구들들은 데룽데룽 한들한들 요염하기는 꿈만 같고 이쁘고 곱기는 맑은 냇물에 놀란 기러기라고 할까 싶은데 얼른 창을 닫더니 그만 가 버린다. 모두 세 사람으로 다들 예왕의 첩들이라고 했다.

 

119 세도란 이토록 믿을 수 없는 것이나 세력이 있는 곳엔 우르르 덤벼들었다가는 눈 한번 굴리는 동안에 때는 가고 일은 식어 어디고 등 닿을 곳이 없을 때는 진흙으로 만든 소가 바닷물에 들어가 풀어지듯, 얼음 산이 볕을 본 듯 녹아 버리고 마니 이 어찌 서글픈 일이 아닐까보냐.

 

120 우리나라에는 작은 배는 거루라 하고, 나룻배를 나로라 하고, 큰 배를 만장이라고 하고, 짐을 실어 나르는 배를 물웃배라하고, 관서 지방에서는 배를 가리켜 마상이라고 한다. 제도들은 각각 다르지마는 단지 한 글자로 이라 할 뿐이다.

 

128 서로들 손을 맞잡고 길가의 술집으로 들어갔다. 푸른 깃발에는 주막집 버드나무에 말을 매고서 반가운 그대 만나 잔을 나누리라고 써 붙여 놓았다. 오늘이야말로 말을 술집 수양버들에 매놓고 술을 마시게 되니. 옛날 사람이 지은 시들은 예사롭게 눈에 띄는 일을 묘사한 것에 불과하지마는 사람의 근경을 여실히 표현하여 주고 있었다.

 

경개록

 

경개傾蓋란 말은 <공자가어>란 책에 나온 말로 공자가 담이란 지방을 가다가 정자란 인물을 만나 서로 마차를 가지런히 세운 채 종일 친숙하게 이야기를 하다 보니 마차 덮개 일산이 서로 부딪쳐 기울어졌다 하여 친숙한  사이를 형용하는 말로 쓰고 있다.

 

황교문답

 

황교는 서장 지방에서 성행하는 불교의 종파로서 라마교의 별칭이다.

 

152 돈과 곡식은 나라의 허실에 관계된 일이요, 군대는 나라의 강약에 관계된 일이요, 산천과 지세는 관물과 요새에 관계되므로 이를 문답하는 것은 좋지 못한 것이다.

 

천자는 무엇이 부족해서 이런 새외의 쓸쓸한 벽지에 와서 거처를 할까? 명목은 피서라고 하지마는 실상은 천자 자신이 변방을 방비하고 있는 것인즉 여기서 몽고의 강한 품을 알 수 있을 것이다.

 

160 “귀국의 불교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요?” 하고 물었다. 나는 소연의 나라 대통(大通527~528)연간에 중 阿道가 신라에 처음으로 들어왔는갑소.

 

174 ‘라마란 말은 서번 말로 도덕이란 뜻인데 소위 라마라면 모두 중을 말하는 것입니다.

 

185 “황교라면 황로의 도를 말함인가요. 그렇지 않으면 연금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천지간에는 별스런 세상, 별스런 사람도 있어서 그 도야말로 명색 없는 것을 귀하게 여기며 맑고도 참되고 평안하고도 일없이 사는 것이 그들의 생이라면 때를 맞추어 그대로 없어지는 것이 그들의 죽음이랍니다. 세상에 났다고 그리 좋아할 것이 없고 죽는다고 해서 슬플 것도 없이 번갈아 가면서 환생을 하여 억만 년을 변함이 없다고 하며 벼슬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아늘 것도 모르는 듯, 모르는 것도 깨달은 듯, 무엇이 무엇인지 모르도록 혼돈하여 자연의 면모 그대로 지켜 난리나 살벌을 좋아하지 않으며 이 세상을 꿈속같이 여깁니다. 모든 사물을 요망한 것으로 보고 모든 언어를 거짓으로 보고, 세상에 붙어 사는 것을 허탄한 노릇으로 보고, 사랑이니 정이니 하는 것을 부질 없는 장애로 보아 염불도 아니요, 참선도 아니요, 생각도 없고 근심도 없습니다. 이야말로 세상에도 별천지요, 별난 학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203 파사팔巴思八이 태어난 내력은 이렇다. 토파의 한 여자가 새벽에 물을 길러 갔다가 수건이 물 위에 떠 있는 것을 주워서 몸에 찼더니 수건이 차차 기름덩이로 엉키면서 이상한 향내가 나고, 먹어보니 달콤했다고 한다. 필경 웬 사람이 나와 인도를 하자 감촉되어 낳은 것이 파사팔이니,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신성하였다.

 

214 연암은 이르노라. 여기서 조용히 말하자면 옛날의 제왕들은 상대되는 그로부터 먼저 배운 것이 있은 뒤에야 그를 신하로 삼았으므로 더욱 갸륵하다고 쳐주었고, 천자의 몸으로서 성명 없는 평민을 친구로 사귀되 그것이 자기의 위신에 손상된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더욱 크게 되었으나, 뒷날 세상에는 이런 법이 없어졌다.

 

219 찰십륜포는 우두머리 큰 중이 거처하는 곳이라는 서번 말이다.

 

224 통역은 이중 통역이 되어 저 편이나 우리 편이나 통관들은 도리어 벙어리 놀음이 되어 흡사 벌판에 나가 괴상한 귀신이나 갑자기 만난 듯 무엇이 어떻다고 요량을 할 수 없었다. 사신은 비록 적당히 할 말이 있었다 하더라도 장황하게 늘어놓을 수가 없었고 저 편도 역시 그렇들 못했음도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다.

 

252 <맹자>에 이르기를 그 예절을 보아 정치를 알고 그 음악을 듣고 도덕을 알 수 있으니, 이 진리는 백세를 지난 뒤에 백세 이전의 왕을 비교해 보아도 틀리지 않다.”

 

257 엄계 꽃나무 아래 몇 잔 술을 마시면서 망양록곡정필담을 뒤적거리다가 이내 꽃이슬에 붓을 적시어 이 글을 써서, 앞으로 중국에 유람하는 자가 주자를 반박하여 늘어놓는 자를 만나더라도 그를 범삼찮은 선비로 알고 함부로 이단이라고 배척하지 말고 말씨를 좋게 하면 점차로 그 정체를 밝힐 수 있으니, 이것으로써 천하대세를 엿볼 수 있게 하고자 한다.

 

265 율이란 법률의 율과 마찬가지입니다.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이미 높고 낮고 맑고 탁하고 굵고 가는 구별이 있을진대 귀로써 이를 들을 수 있는 한 악기를 만들어 이를 일정하게 고루 잡게 되었으니, 비유하자면 문법에는 일정한 차들이 있어 제가끔 법칙에 맞는 것이나 같습니다. 다만 소리가 먼저 나기를 기다려서 이 소리를 맞추어 표준을 삼았으므로 육률은 헛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볼 것입니다.

 

266 나는 말했다.

악기는 말하자면 골짝과 같고, 소리는 말하자면 바람과 같을 터인데, 골짝을 고칠 수 없는 것으로 친다면 바람 자체는 변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람에도 거센 바람, 잔잔한 바람, 회오리 바람, 찬 바람의 구별이 있은 즉 이로써 본다면 음률에서 예와 지금이 다른 점이 있다면 이는 악기가 고쳐진 것이 아니고 소리가 변한 것일까요?”

 

267 한 골짝 바람 중에도 거세고 잔잔하고 맴돌고 찬 구별이 있고 새벽과 아침과 낮의 변화가 있는 것과 같습니다. 이는 이 곡조의 정취가 달라지고 듣는 자가 달라지는 데 따라 때로는 음이 격앙하였다가 소침하였다가 하는 변화가 생겨 비로소 음악의 고금이 달라지고 正聲淫聲이 구별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 짓이 어찌 화살을 따라다니며 과녁을 그리고, 취하는 것을 싫어하면서 술을 억지로 마시는 것과 다를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269 넑고 깊고 크고 우람찬 소리를 옛날부터 일러서 궁음이라하고, 높고도 찌어지듯 빠르고 급한 소리를 옛날부터 상음이라 했고, 정확하면서 뚝 그치는 소리를 옛날부터 각음이라 했고, 빠르고도 급히 쳐드는 소리를 옛날부터 치음이라 했고, 가라앉고 가는 소리를 옛날부터 우음이라 했습니다.

 

279 ‘무릇 소리라는 것은 사람의 마음을 거쳐서 난다하였으니, 대체 몸이 극히 귀하고 오랜 수를 누리는 사람은 목소리가 큰 종소리 같고 내뽑는 힘이 웅장하고 화창하여 때로는 육률의 기본음인 황종률에 맞을 수 있습니다.

 

293 형산이 대체로 중국의 악공은 晉진나라 때 망했고 악기는 수나라 때 망했고, 잡곡과 여러가지 놀음이 아악을 어지럽게 만든 것은 당나라 현종이 장본 책임을 져야 할 것입니다.

 

춘추 시대에 세상은 비록 어지러웠으나 지나간 옛날이 그리 멀지 않았고 진, 한 이래로 비록 큰 나리가 자주 일어났으나 환난은 나라 안에서 있었기 때문에 악공이고 악기고 옮겨 가지 않았고 제도는 그대로 남았으며, 나라를 차지한 자도 창과 칼을 버리고 먼저 악기를 찾았습니다.

 

295 수나라 문제는 본래 학문을 좋아하지 아니하고 성정이 또 음악을 좋아하지 않았으나 이미 천하를 얻고 본즉 부득불 음악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299 대체로 음악의 덕이란 계절 따라 나오는 벌레나 새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재주란 시정에 비할 수 있고, 음악의 사업이란 역사에 비길 수 있고 음악의 이름이란 시호에 비길 수 있습니다.

나는 물었다.

벌레와 새란 무슨 뜻일까요?”

“:여치와 쓰르라미는 본래 같은 벌레요, 꾀꼴새와 황조는 원래가 한 새인데, 때에 따라 변화하여 우는 소리가 각각 다르다는 말씀이지요.”

시정이란 무슨 뜻인가요?”

저자에서는 화목을 볼 수 있고 우물터에서는 질서를 볼 수 있습니다. 물건을 서로 교역하는 데 파고 사는 두 편 뜻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저자의 도덕이요, 뒤에 물을 길러 온 자가 먼저 온 자를 원망하지 않고 그릇을 벌여 놓아 차례를 기다리다가 제 뜻에 찰 때에 돌아가는 것이 우물터의 도덕입니다. 대체 역사의 본질은 정직하여야 하고 시호란 것은 잘잘못을 들어 밝히는 것입니다.”

 

300 싱싱한 푸른 대는 그대의 모습

    듬직한 바윗돌은 그대의 말씀

    부채를 펼치고 그대 위해 그릴 제

    손목을 잡고 나니 마음은 하나.

 

301 말하자면 유쾌한 사람은 안 웃을 수 없고 슬픈 자는 안 울 수 없고 배고픈 자는 밥을 안 욀 수 없고 목마른 자가 물을 안 외칠 수 없어 여기는 허위와 가식이 없고 무리나 부자연이 없습니다. 이같이 마음에 한번 감촉되자 비록 즐거우면 음탕해지고 너무 슬프면 병이 나는 폐가 없지 않지마는 모두가 마음 속에서 우러나지 않는 것이 없으니, 소위 시 삼백 편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사심 없는 생각이란 말이 이것입니다.

 

304 성인도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은 입니다. 차기도 하고 이지러지기도 하고 자라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는 것은 하늘의 이요, 외롭기도 하고 번창하기도 하는 것은 땅의 입니다. 오래되면 변화를 생각하고 묵으면 새것을 찾고 막히면 터뜨리고 싶어하는 것은 에 있어서 한 개 기회가 될 것입니다.

 

고기는 사람마다 즐기는 것이지마는 오랫동안 앓는 사람에게 비록 한 가마솥 고깃국이라도 내새만 맡고도 헛구역이 날 수 있고 비록 풀뿌리와 나무 열매라도 흔연히 입맛에 붙을 수 있습니다. 또 비록 아무리 잘 부르는 노래곡조라도 늘 부르면 듣던 좌중도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으로 오래 폐단이 생기고도 이를 뜯어 고치지 않으면 이야말로 변통수 없는 교주고슬膠柱鼓瑟이라고 할 수 있으니. 이는 어데나 다름없는 사람의 인정입니다. 그러므로 요순의 정치가 없이는 비록 소무 같은 좋은 음악이 있더라도 찬성과 반대의 틈에 끼어 귀신과 사람의 마음에 맞기 어려울 것이니, 이것은 성인도 세상 운수의 순환에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348 토론 과정에서 박지원은 일방 곡정의 발언을 완곡하게 유도를 하면서도 때로는 본의 아닌 자기의 입장을 짐짓 변명하듯 표시하려고 고심했다.

 

지광설, 지구 원형설, 지동설, 물질의 본테, 생물의 기원 및 진화에 관한 철학적 과학적 견해는 연암이 지닌 진보적인 유물론적 세계관을 보여주고 있어 탁월한 연암 사상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350 밥을 먹으면서 이야기를 해 종이를 서른 장이나 바꾸어 가면서 인시부터 유시까지 무려 열여섯 시간 동안 이야기를 하였는바 학공은 늦게 와서 먼저 돌아갔으므로 이야기를 한 초지를 정리하여 곡정필담이라고 한다.

 

359먼지와 먼지는 서로 의지를 삼아, 먼지가 엉키면 흙이 되고, 먼지가 거친 놈은 모래가 되고, 먼지가 더우면 불이 되고, 먼지가 엉켜 맺혀서는 쇠가 되고, 먼지가 자라면 나무가 되고, 먼지가 움직이면 바람이 되고, 먼지가 더위에 뜨고 기운이 복받치면 이내 여러 가지 벌레로 화하는 바, 오늘 우리 사람이란 곧 이 여러 가지 벌레의 한 종목일 것입니다.

 

361 “하늘은 원래 모난 물건을 만들어 낸 적이 없습니다. 비록 모기다리와 벼룩 궁둥이와 빗방울, 눈물 방울조차 둥글지 않은 물건이 없어 이제 보아 산과 물과 대지와 일월성신이 모두 하늘이 만든 것이건만 아직 모난 별들을 본 적이 없은즉, 지구가 둥글다는 것도 의심할 게 없습니다.

 

364 선생의 변론은 매우 자세하여 조선 삼베옷에서 바늘 실밥이 낱낱이 똑똑하게 보이는 것만 같습니다.

 

395 우리나라 속담에 약한 놈을 업신여겨 무슨 물건 빼앗는 것을 어린 아이 눈물 적신 떡이라 하고 또 난쟁이 턱 차기라고도 한다.

 

399 평생을 두고 글을 읽어도 세상에 뜻대로 아 되는 것이 열에 여덟, 아홉이니 어찌 속병이 생기들 않겠습니까?”

글을 읽으실 때마다 세 번씩 한숨을 지으신다면 선생의 한숨은 가의가 문제에게 올린 상소 속의 여섯 번 한숨보다 많을 것 같소.”

곡정은 웃으면서,

세상일이란 매양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건너느냐 못 건너느냐 하는 싸움이라고 할 수 있지요. 제가 <논어>를 일다가도 공자가 강물에 이르러 말하기를 내가 물을 못 건너는 것은 하늘의 마련이다.’란 구절에 이르러 미상불 세 번 탄식하였고, ‘항우가 오강을 못 건넜다는 구절에 와서는 미상불 세 번 탄식했고, ‘留守유수 가 강물을 건너라고 세 번 외쳤다. 는 구절을 대하고 미상불 세 번 탄식을 하였으니, 이만해도 아홉 번 탄식한 것으로 벌써 가 태부의 여섯 번 탄식보다 많은 갑소이다.

 

404 예로부터 의리라고 하는 것은 비하자면 쇠를 녹여서 거푸집에 붓는 것과 같습니다. 쇠가 절로 무슨 물형이 되는 것이 아니라 거푸집에 따라 그릇이 되는 것입니다. 또 조개 껍질을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조개 껍질은 일정한 제 빛이 있겠지마는 보는 자가 바로 보고 옆으로 보는 데 따라 그 빛도 각각 다릅니다. 동쪽으로 트면 동쪽을 터지고 서쪽으로 트면 서쪽으로 터지는 것은 다만 물 자체에 달린 문제입니다.

 

419 흥하고 망하는 판에는 귀신의 조화 실적도 거짓과 진실이 전갈아 이용되며 성실과 휼계가 한목 쓰여 어떤 사람이 천하를 얻을 때에 하늘은 반드시 기꺼이 한 건 아니겠지마는 일부러 공교히 도와 주는 것 같고, 또 어떤 사람이 천하를 잃을 때는 꼭 하늘이 미워한 것은 아니겠지마는 잔인하고 지독하기가 무슨 흉악한 원수나 다름없었던 것은 무슨 이유였을까요?”

하니 곡정이 말했다.

우리 청조에 패륵 박락博洛이 군사를 거느리고 절강 군사를 양자강 언득으로 옮기는데, 이때도 조수가 연일 들지 않았답니다.

 

430 대체 임금에게 잘 보이면 백성에게 인심을 잃고 백성들의 마음에 맞게 하면 임금에게 의심을 사는 법입니다. 한 시대의 임금을 도와 정치를 한다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시렁을 떼어 두고 난간을 막아 두어 손 한번만 실수하면 넘어져 아래로 떨어지게 되는 법입니다.

 

435 “목전에 급급하게 서두는 것은 모두가 늘그막 준비입니다. 누에가 늙으면 절로 고치를 짓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비단옷을 입히고자 목적한 것은 아닙니다.”

 

흰 머리로 과거를 본다는 것은 선비의 수치니까요

 

436 “천산은 백여 리 길을 돌게 되고 또 길이 바빴기 때문에 그저 하늘 끝에 점점이 튼 머리쪽 같은 산봉우리 몇 개를 바라보았을 뿐입니다.”

 

441 중국은 곧장 문자가 말이므로 경전이고 사기고 학설이고 문집이고 모두가 입속에서는 말로 되는 바 기억력이 별달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이래서 억지로 시문을 지을 때는 벌써 그 정곡을 잃어버리고 글과 말은 판연히 두 가지 물건이 되어 버리는 까닭이다. 우리나라에서 글을 짓는 자는 알쏭달쏭 뒤틀리기 쉬운 옛날 글자로서 다시 알기 어려운 방언을 한 차례 번역을 하기 때문에 그 글 뜻은 캄캄해지고 말 속은 모호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내가 고국에 돌아와 두루두루 이런 이야기를 한즉 많이들 안 그렇다고 했다. 참말로 개탄할 노릇이다.

 

450 대체 물소리란 듣기에 달린 것이다. 연암 산골 내가 사는 집 문앞에는 큰 개울이 있어서 해마다 여름철이 되어 소낙비가 한번 지나가면 개울물은 갑자기 불어서 언제나 수레 소리, 말 달리는 소리, 대포 소리, 북소리를 듣게 되어 필경에는 아주 귀탈이 날 지경을 귀에 젖어 버린다

 

451 나는 언젠가 문을 닫고 누워 소리나는 종류에 따라 이를 사물에 비교해 들어보았다. 깊숙한 소나무가 퉁소 소리를 내는 듯하니 이는 청아한 취미로 들은 탓이요, 산이 찢어지고 절벽이 무너지는듯 한 것은 분노하는 소리로 들은 것이요, 뭇 개구리가 저마끔 우는 소리는 발칙스러운 것으로써 들은 것이요. 수없는 대가치가 서로 마주 어울려 내는 듯한 소리는 성난 소리로써 들은 것이요. 벼락 소리, 천둥 소리인 듯한 것은 공포심으로 들은 것이요. 찻물이 부글부글 끓는 듯한 소리는 취미로 들은 것이요, 거문가가 궁성, 우성에 맞게 나는 듯한 소리는 슬픔으로 들은 것이요. 종이 문창에 풍지 우는 듯한 소리는 의심스럽게 들은 탓이다. 무엇이나 올바르게 듣지 못하고 더구나 가슴속에 무슨 딴 생각을 먹고 있으면 그것이 귀에서 소리가 되는 것이다.

 

452 나는 오늘에야 이치를 알았다. 마음의 눈을 감은 자는 육신의 귀와 눈이 탈이 될 턱이 없고 귀와 눈을 믿을수록 보고 듣는 힘이 밝아져서 더욱 병통이 되는 것이다. 오늘 내 마부가 발을 말발굽에 밟혀서 뒷수레에 실려 가고 보니, 나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고삐를 늦추어 물에 들어갔다. 무릎을 구부려 발을 모으고 안장 위에 앉았다. 한 번만 까딱하면 강물 바닥인지라 물로 땅을 삼고, 물로 옷을 삼고, 물로 몸을 삼고, 물로 마음을 삼으니 이때야 내 마음속에는 벌써 한 번 떨어질 것을 각오한 바라. 내 귓속에는 드디어 물소리가 없어지고 무릇 아홉 번이나 물을 건너는 데도 마치 의자 위에서 앉고 눕고 기동하는 것처럼 아무렇지도 않았다.

 

453 소리와 빛깔은 외계로부터 듣고 보는 데 따르는 것이라 이는 언제나 귀와 눈에 탈이 되어 이렇게도 사람으로 하여금 똑바로 보고 듣는 힘을 잃도록 만든다. 더구나 사람이 한 세상 살아감에 그 험하고 위태함이야 강물보다 더한지라 보고 듣는 것이 즉시로 병이 될 것이 아닌가? 내가 사는 산중으로 돌아가 다시 앞 개굴의 물소리를 들으면서 이를 가늠해 보니 영락없이 맞았다. 그리하여 나는 이로써 어떤 사람이나 자신이 처세술에 능란하여 스스로 총명한 체하는 자들에게 경계하는 바이다.

 

473 가루 집에서 밀을 갈 때에 작고 크고 가늘고 굵은 것이 뒤섞여 바닥에 흩어지나니 무릇 맷돌의 작용이란 도는 것뿐이다. 가루가 가늘고 굵은 데야 처음부터 맷돌로야 무슨 마음을 먹었을 것인가. 그런데 이야기하는 자는 말하기를 뿔이 있는 놈에게는 이빨을 주지 않았다고 하여 만물을 창조하는 데는 무슨 결함이나 있듯이 생각하나 이는 잘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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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피서록은 내가 피서산장을 유람할 때에 기록한 것이다. 열하에는 경치 좋은 곳이 서른여섯 군데 있다고 하여 강희 황제는 경치 좋은 곳에 전각을 지었다.

 

22 모두가 사람의 힘으로는 될 바가 아니요. 꽃다운 벌판을 빌려 절로 만들어진 것이다. 서까래를 새기고 기둥을 단청할 비용이 필요 없고, 숲과 물이 가진 자연 그대로의 담박한 정신을 즐길 수 있다. 고운 물새는 푸른 물결을 희롱하는데 사람을 피하지 아니하고, 사슴들은 석양빛을 띤 채 떼를 지어 출몰한다. 솔개는 날고 고기는 뛰되 제 천성을 따라 오르락내리락할 뿐 먼빛으로 자줏빛 아지랑이에 싸인 아름다운 풍광을 절로 열어 놓았으니, 이것이 피서산장의 경치다.”

 

58 소월대   月臺

찢어지듯 밝은 달밤

소월대에 홀로 서니

버들 바재 서리 듣고

기러기 떼 적막코야

 

외마디 울음소리

가을구름 쪼갤 적

만리 허공에는 달님 얼굴 내밀었네.

 

90 ‘우성偶成

 

적막한 산골 집엔

갓망건도 소용 없네

늘그막에 하는 노릇

한가롭고야.

 

섬돌 위 양지 볕은

조용도 한데

하늘 밖에 뜬 구름은

산뜻도 하이.

 

푸른 숲 찾아 들어

꾀꼴새 울음 울 제

아롱다롱 고운 꽃

청춘을 보내누나.

 

내 뜻이자 하늘 뜻

어김이 없으리라

타고난 모습대로

살고 크고 자랄거나

 

91

 

하늘 밖 금서땅은

산 지나 또 산일세

집터를 잡고 보니

한가롭기 그지없다.

 

외봉우리 솟은 바위

창공에 비껴 섰고

오솔길 그윽한 꽃

아롱다롱 점쳤구나.

 

나는 새도 조금스레

비 맞은 채 지나가고

꿀벌만 너도나도

꽃향기로 배 불리네

 

흥겨운 그날 그날

지팡이로 짝을 삼아

보고 읊고, 읊고 보고

이 나그네 즐겁고야.

 

94 낮잠을 자면서 <午枕>

 

낮잠을 자다나니

찌는 듯 덥구나.

만사에 게을러져

손 닿기도 싫어라.

 

읽던 책 채 못 덮어

먼지만 케케 앉고

벼루에 남은 먹은

파리 배만 불리네

 

오솔길 지나치는

나그네  묻는 말에

묵밭 매던 내 마누라

짜증만 내누나.

 

별안간 솟아오른

맑은 달빛을

해님이 돋는 줄만

잘못 알았지.

 

147 반양 盤羊

 

반양이란 짐승은 몸뚱이는 사슴같이 생기고, 꼬리는 가늘고, 두 개 뿔이 등덜미 위에 어울려 있고, 우글쭈글한 무늬가 있다. 밤이 되면 뿔을 나뭇가지 위에 걸고 자는데, 다른 짐승의 공격에 대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모양은 노새와 같은데 떼를 지어 몰려다니고 더운 여름날에는 먼지와 이슬이 서로 엉켜 뿔 위에는 풀이 돋는다고 한다.

 

172 만어  蠻語

 

만어로 애막리 愛莫離란 말은 중국말로 묵은 인연이 있다는 말이요.

 

186 보감 寶鑑이란 무슨 뜻일까? 비해 말하면 햇빛이 뚫고 비치는 곳에는 어둠을 헤치고 살을 쪼개고 베듯 사람들로 하여금 책을 손에 잡으면 환하게 밝아 거울과 같음이다.

 

사람이란 오장뿐이요. 병은 칠정에 그칠 것이매 그 사이에 기품을 타고나는 데서 온전스럽고 편벽된 구별이 있을 것이요. 병이 감염해 들어가는 데도 깊고 얕은 구별이 있을 것이요. 징후의 변화에는 통하고 막히는 구별이 있을 것이요. 양후 兩候 간의 맥박 동태는 뜨고 갈앉고 중간 세 층이 있어 자세히 살펴본다면 밭고랑을 째 갈라 놓음과 같아서 간대로 넘나들 수 없고 화톳불을 피워 놓은 듯 간대로 가릴 수 없는 것이다. 대황이 체한 것을 내리는 줄 알면서도 찬 기운에 중독됨을 알지 못하고, 부자附子가 보허補虛를 하는 줄 알면서도 다시 건질 수 없는 독을 끼치는 줄 모른다.

 

187 이러므로 뛰어난 명의는 병을 고치는 데 병이 들어 눕기 전에 고치는 것이요. 병이 다 든 후에 고치지는 않는 것이다. 병이 다 든 후에 고친다는 것은 병을 치료하는 법에서는 아주 하책일 것이다. 그나마 다시 아무것도 모르는 땡땡이 의원에게 병을 내맡긴다면 어찌 병이 나을 것인가? 심한 자로서 탐내는 자는 본디 병 없는 사람을 상대로 하여 공로를 세우고 처음으로 츼원에 종사하는 자는 심지어 사람을 희생해 가면서 의원 공부를 한다 <주역>에서 말한 병은 약을 먹이지 않고 절로 낫게 한다는 말과 <논어>남방 사람들은 간특하여 돈 벌기에만 몰두한다.’는 말은 그들을 두고 한 말인 것 같다.

 

편작은 말하기를 사람들의 병통은 질병이 많은 것이요. 의원의 병통은 치료 방법이 적은 것이라고 하였다.

 

한 가지에 집착하는 자는 올바른 치료법을 해치고 있으니, 사람의 병을 치료코져 하면서도 사람의 마음을 치료하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을 치료코저 하면서도 사람의 뜻과 통하지 못하는 까닭이다.

 

193 하늘이 살기를 내면 귀신이 울부짖는 법이요, 땅이 살기를 내면 용과 범이 달아나 숨는 법이요. 사람이 살기를 내면 천지가 뒤집어지는 법입니다. 요순도 도덕이 있으매 온 세상이 조공을 하였고, 우 임금과 탕 임금은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니 만국이 손을 잡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또 진 시황은 자주 흉노를 정벌하다가 그이 몸은 썩은 고기가 되었고, 거란은 중원땅을 한번 유린하다가 몸은 소금에 절인 돼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194 무릇 전쟁이란 두 편이 다 이기는 법이 있을 수 없고, 복이란 두 편에 한목 오는 법이 없습니다.

 

207 사람은 젊을 적에는 전정이 멀고 보니 자기는 늙을 날이 없을 듯이 무슨 이야기를 하다가도 노인을 업신여기는 실수를 가끔 한다.  이런 경박한 악소년이나 건방진 자는 흔히 앞날의 복을 받지 못할 것이니 불가불 조심해야 할 일이다. 인조때 천성 민형남이 나이 일흔이 넘어 손수  과실나무 접을 붙이니 같은 마을에 사는 여러 젊은 명관이 이를 웃으면서 공께서는 아직도 백 년 계획을 세우시나요?” 할 때에 민공은

바로 그대들을 위하여 선물로 남길 것이네!”

하였다. 그 후 민공은 아흔네 살이 되어 여러 명관들의 제삿날 과일을 손수 따서 제사에 부조했다고 한다.

 

217 중국의 관등 놀이는 정월 대보름날 밤에 하는 놀이로 14일부터 16일까지 한다.

우리 나라 관등 놀이는 반드시 48일에 한다. 이날은 부처의 생신으로 일러 아마도 고려 때 풍속을 그대로 지키는 것만 같다. 석가여래는 정반왕의 태자로 주나라 소왕 24년 갑인년(기원전1029) 48일에 나서 42년 임신년(기원전 1011)에 태자 나이 열아홉에 태자의 위를 버리고 출가하여 도를 닦다가 목왕3년 계미년(기원전999)에 이르러 도를 터득했다고 한다.

 

256 “자네들이 모르는 말일세. 데체로 남에게 아쉬운 사정을 말하는 자는 언제나 제 의사를 떠벌려 먼저 신의를 자랑하면서도 어디고 그의 얼굴빛은 비굴하고 이야기는 증언부언하는 법이네. 그러나 아까 그 손님은 비록 옷과 신발이 허술하기는 하나 말은 간결하고 눈초리에 뱃심이 나타나고 얼굴에 수줍은 빛이 없으니 이런 이는 재물이 없어도 자족하는 사람일 것이네. 그가 시험해 본다는 일이 필시 작은 일이 아닐 터이니, 나 역시 그 손을 한번 시험해 보겠네. 안 주면 몰라도 돈 만 냥을 이미 줄 바에야 이름은 알아서 무엇 할 것인가?”

 

허생은 돈 만 냥을 얻어 가지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안성은 경기도, 충청도의 접경이요, 삼남의 길목인지라 허생은 이곳에 자리를 잡고 장사를 시작하였다. 허생은 대추, , , , 석류, 감자, 귤 등속을 시가의 배 값으로 무역해 두었다. 허생이 과일을 무역해 쌓아 둔 뒤로 국내에서는 잔치고 제사에 소용할 과일이 없어져서 허생에게 배 값을 받아 갔던 장사치들이 이번은 열 배 값을 내고 되사게 되었다.

 

허생은 다시 칼, 호미, 마포, 백목 등 피륙을 가지고 제주로 들어가 말총을 있는 대로 끌어 모으면서, “몇 해를 못 가서 온 나라 사람들이 머리르 싸 동이지 못할걸!” 하였더니, 과연 얼마 안 되어 망건 값이 열 배로 뛰어올랐다.

 

257 사공이 있다가, “사람 없는 빈 섬에 누구와 함께 살 것입니까?” 하니 허생은

덕이 있는 곳에 사람이 붙는 법이거든! 덕이 없음을 걱정할 일이지 사람 없는 걱정이야 할 것 없네!”

 

259 내가 여기서 기다릴 터이니 자네들은 각각 백 냥씩만 가지고 가서 여편네 한 명, 소 한 마리씩만 데리고 오려무나.

 

내가 처음 자네들과 함께 이 섬에 들어온 후 먼저 살림살이부터 풍족하게 만든 뒤에 따로 글자도 만들고 제도도 장만할 작정을 했더니, 땅은 작고 또 내 덕이 박한지라 나는 오늘로 떠나겠네. 아이를 낳거든 오른손으로 수저를 잡도록 가르치고, 하루라도 먼저 난 이에게는 사양해서 먼저 먹게 하도록 가르치게.”

 

260 변씨는 깜짝 놀라서,

당신의 얼굴빛이 옛날보다 조금도 나은 데가 없으니 만 냥 돈을 치패보지나 않았소?”

하니, 허생은 웃으면서 말했다.

재물 때문에 얼굴이 돋보이는 것은 임자네들 일일 것만 같소. 만냥 돈이 어찌 도를 살찌울 수야 있겠소?”

 

263 벌써 돈을 꾼 다음에는 돈 임자의 복을 빙자해 장사를 했으므로 손만 대면 성공하게 되었으니 만약에 내 자신의 돈으로 했다면 성공과 실패를 단정하지 못할것이오.

 

278 썩은 나무둥치만 남아 빛은 허옇고 무슨 나무인지 분간할 수도 없었다.

 

308 지금 천주당 가운데 바람벽과 천장에 그려져 있는 구름과 인물들은 보통 생각으로는 헤아려 낼 수 없었고 또한 보통 언어 문자로는 형용을 할 수 없었다. 내 눈으로 이것을 보려고 하는데 번개처럼 번쩍이면서 먼저 내 눈을 뽑는 듯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나는 그들이 내 가슴속을 꿰뚫고 들여다 보는 것이 싫었다. 내 귀로 무엇을 들으려고 하는데 굽어보고 쳐다보고 돌아보는 그 들은 먼저 내 귀에 무엇을 속삭였다. 나는 그것이 내가 숨긴 데를 꿰뚫어 맞힐까 봐 부끄러워하였다. 내 입이 장차 무엇을 말하려고 한 즉 그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가 돌연 우렛소리를 내는 듯하였다. 가까워 가서 보매 성근 먹이 허술하고 거칠게 묻어, 다만 그 귀, , , 입의 짬과 터럭과 살결 사이를 희미하게 그어 갈라 놓았을 뿐이다. 터럭 끝만 한 치수라도 바로잡았고, 꼭 숨을 쉬고 꿈틀거리는 듯 음양의 향배가 서로 어울려 절로 밝고 어두운 데를 나타내고 있었다.

 

318 옛날에 도적 세 명이 함께 남의 무덤을 파서 금을 도적하고는 저들끼리 말하기를, 오늘은 돈도 많이 벌었으나 꽤 곤하니 술이나 한 잔 사다가 먹자고 하였다. 그중 한 명이 선뜻 일어서서 술을 사러 갔다. 가는 도중에 이자는 제 스스로 축하하기를, “하늘이 시키는 좋은 기회로구나. 금을 셋이 나누는 것보다는 독차지하는 것이 좋을 것이 아닌가?” 하고는 음식에 독약을 타 가지고 돌아가자, 남아 있던 두 도적은 갑자기 일어나 이자를 때려 죽었다. 두 도적은 술을 갈라 먹고는 금을 반분하려고 했는데 얼마 못 되어 함께 무덤 곁에서 죽고 말았다. 슬프다! 이 금은 반드시 길 옆에서 굴러다니다가는 또다시 딴 사람이 주워 얻게 될 것이요. 이렇게 주워 얻은 사람은 가만히 하늘에 감사를 하면서도 이 금을 무덤 속에서 파냈고 독약을 먹은 자들의 유물이며 또 앞사람 뒷사람을 거쳐 또 몇쳔, 몇백 명을 죽게 할는지 몰랐을 것이다. 그런데도 세상 사람들은 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어째서 그럴까? <주역>두 사람이 마음을 합치면 그 날카로움은 쇠라도 끊는다. 하였다. 이것은 바로 도적질을 전제하는 말이다. 어째서 그럴 것인가? 끊는다는 말을 기른다는 말이다. 가르는 것이 금일진대 마음을 합치는 것도 잇속이라는 것을 넉넉히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의리를 말하지 않고 잇속이라고 했은즉 불의의 재물인 것도 넉넉히 알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도적질이 아니고 무엇이랴? 바라건대 천하의 인사들은 돈이 있다 하여 꼭 기뻐할 것도 아니요. 없다고 하여 슬퍼할 것도 아니니, 아무런 까닭 없이 갑자기 돈이 앞에 닥칠 때는 천동처럼 두려워하고 귀신처럼 무서워하여 풀섶에서 뱀을 만난 듯이 머리끝이 삐죽하여 뒤로 물러설 일이다.

 

357 석고石鼓는 열개인데 갑, 을 병 차례로 대성문 좌우 극문 안에 각각 다섯 개씩 벌여 두었다. 이 석고는 주나라 선와이 기산남쪽에서 대규모의 사냥 놀이를 하고는 돌을 깎아 북을 만들어 그 사적을 기록한 것이다. 높이가 두 자 남짓하고 폭이 한 자나 된다. 돌에 새긴 글자가 기이한데 사관 주의 필적이고 새긴 글은 천자의 사냥을 찬미하는 노래 종류였다.

 

363 천하를 얻을 수 있는 위엄과 무력이라도 한낱 지사의 절개를 꺾지는 못한다. 이야말로 지사 한 사람이 버티는 절개가 백만 명의 군대보다도 강한 것이요. 만대를 통하는 떳떳한 도덕과 규범은 당대에 한 나라를 차지하는 것보다도 더 소중할 것이매 이 역시 천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395 중은 한 명도 없고 거처하는 사람들은 모두 복건, 절강서 온 낙제한 수재들로 고향으로 돌아갈 노자가 없어 이곳에 많이들 유숙하고 있다. 함께 저작도 하고 각판도 하여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거처하는 사람들은 전부 서른한 사람으로 남의 글품팔이를 하기 위해 아치에 나가서 아직 돌아오지 않아 한 사람도 없어 절 안은 적적하였다.

 

415 몽고 사람들도 역시 여름철에 갓을 쓰는데, 가죽으로 만들어 도금칠을 하고 거죽에는 구름무늬를 그린 것이 많다. 우리나라 풍속에는 겨울에도 갓을 쓰고 눈 속에도 부채를 놓지 않아 다른 나라 사람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다.

 

420 서황이 내게 말했다. 책 종이를 좀먹지 않게 하려면 한식날 밀가루에다가 臘日납일날<동지뒤3> 받은 눈 녹인 물을 섞어 풀을 쑤어 장정을 하면 된다고 했다. 검정콩 깍지가루를 내어 책 속에 넣어 두어도 역시 좀먹지 않는다고 하였다. 이 방법은 송나라 왕문헌에게서 나왔다고 했다. 붓을 잘 보관하려면, 붓을 보관하기 전에 유황을 끓여 붓촉을 펴서 담근다. 소동파는 황련을 끓인 물에 경분을 섞고 붓촉을 적셨다가 마르기를 기다려 건사했다고 하며 황산곡은 전초와 황벽을 달인 물에 붓을 적셔 건사하면 더욱 좋다고 했다.

 

425 고려 인삼을 찬미하는 글에 세 가지에 다섯 잎, 양지 볕을 등지고 응달을 향한다. 그를 구하려면 자작나무 밑을 찾으라.”는 말이 있다. 또 중국의 문헌에는 많이들 이 글이 실리고 있다. 자작나무 잎은 오동나무 잎 같아서 매우 크고 그늘이 많이 지므로 인삼이 이런 응달에서 자란다고 했다. 자작나무는 우리나라에서 책 판각에 쓰는 나무로서 우리 나라에는 매우 흔한 나무다. 중국에서는 산소에 이 나무를 많이 심는데 청석령 같은 데는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았다.

 

425 <대당신어 大唐新語>

당나라 이습예는 성품이 검소하고 독서를 좋아하여 베낀 책이 수만 권이나 되었다. 그는 자제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토록 가난하다. 그러나 서울에는 황제가 주신 열흘갈이 밭이 있어 밥은 먹을 만하고, 하남 지방에는 뽕나무 천 주를 심어 두어 옷을 입을 수 있고, 책 만권을 베껴 두었으니 넉넉히 벼슬자리를 구할 만하다. 너희들이 함께 이 세 가지 일에 근면하다면 어찌 다른 이들에게 아쉬운 소리를 할 것인가? 하였다.”

했는데, 나 역시 성질이 재물을 좋아하지 않으므로 이렇게 가난하게 되었다. 그러나 평생에 베낀 책을 점검해 보면 불과 열 권도 되지 못하고, 연암 골짝에 손수 심어 둔 뽕나무가 겨우 열 두 포기로서 긴 가지라 해도 겨우 어깨노리에나 닿을까. 나는 서글픈 한숨을 금할 수 없었다. 이번에 요동벌을 지나오면서 끝없는 뽕밭이 무연히 펼쳐졌음을 보고는 또다시 정신만 얼떨떨해졌다.

 

442 소위 이학理學을 한다는 자들은 석가와 노자를 욕질하는 것으로써 스스로 이학자로 자처하고 있으나 이 버릇은 대체 어떤 경전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일이다. 무릇 이학이란 실천궁행을 귀중히 여기는 데 있다 만약에 허투루 석가와 노자를 비방하는 것으로써 이학을 삼는다면 이는 천박한 생각이다. 국가가 이학을 떠받드는 뜻은 본래 이 가은 뜻이 아니다. 만약에 요망한 말로 사람들을 미혹시키고 간사한 짓을 하여 죄를 범하는 자가 모두 중들이라 한다면 그들이 자기 교리에 실천궁행이 없는 이상 기율을 범하고 법을 무시하는 행동이 어찌 이 교의 책임이라고 할 것이랴. 또 근래 중죄를 범하고 극형을 받은 자가 하필 승려와 도사들 뿐이랴. 법이 공평하지 못하면 천하를 다스릴 수 없고 주장하는 이론이 공평하지 못하면 사람의 마음을 감복시킬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에 타이르는 바이다.

 

474 중국에서는 겨울철 창문살에 종이르 붙일 때 유리 조각을 사용하여 인물과 화초 그림 그린 것을 물린다. 안에서 밖을 볼때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죄다 보이게 되고 밖에서 안을 볼 때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는 원래 송나라 때 구양초의 어가사라는 시에 나오는 꽃 창문이다. 연로의 저자에서 채색그림을 그린 유리를 파는 자가 매우 많은데, 이것이 모두 창문살에 물리는 것이다.

 

명나라는 270년 동안 세가지 기이한 일이 있었는데, 태조 고 황제는 중으로 몸을 일으켰고, 건문 황제는 중으로 늙었고, 숭정 황제는 머리를 풀고 나라를 위해 죽었다는 것이다.

 

487 산길을 여행하다가 길을 잃을 염려가 있을 때는 향충한마리를 잡아서 손에 쥐고 가면 길이 분명히진다고 <물류상감지>에 적혀있다.

 

489 구기자 기름을 짜서 등불을 켜고 책을 읽으면 시력을 더 좋게 할 수 있다.

 

쇠 연장에 베었거나 다쳤을 때는, 외톨이 밤을 말려 갈아 가루를 내어 붙이면 곧 낫는다.

 

501 양기를 돕는 데는 가을 잠자리를 머리와 날개와 다리를 떼어 버리고 아주 곱게 갈아서 쌀뜨물에 반죽을 하여 환을 만들어 먹는 것이 좋다. 세 홉을 먹으면 아이를 낳을 수 있고 한 되는 먹으면 노인이 젊은 여자와 장난을 할 수 있다.

 

목차와 뼈대에 대하여

 

한양에서 압록강까지의 여정은 책에는 없다. 압록강가에서부터 여행기는 시작하는데 624~820일까지는 일기형태로 기록하고 중간중간에 챕터를 넣은 것도 있고 일기가 끝나고 난 다음 내용들은 여행중 보고 들은것들을 자세히 기록하는 형태이다. 그 중 곡정필담은 16시간동안 주고받은 담화내용을 기록한 것인데 내용으로보아 곡정의 입을 통하여 연암의 주장을 피력한것으로 평가하기도 함. 전체적인 내용이 짜임새 있다고는 보기 어렵다. 줄거리를 하나로 꿸수 없는 형태를 가지고 있다. 아마 26권의 책으로 된 열하일기를 옮기는 과정에서 3권으로 묶어 놓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내용을 파악하기 힘든 부분이 많아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당시의 사회 문화등 우리나라와 중국의 다른점이나 그곳에서 보고 들은 내용들이 수록되어있는데 그것을 이해할수 있는 기저공부가 되어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압록강을 건너서

1780 624 ~79일 일기

구요동 견문기, 요동 백탑 견문기, 관제묘 견문기, 광우가 견문기

 

성경의 이모저모

710~714일 일기

속재필담, 상루필담. 골동이야기, 성경의 절 구경, 산천 이야기 몇마디

 

일신수필

715~723일 일기

북진묘 견문기, 수레 만든 법식, 극장, 저자, 점방집, 다리, 강녀묘 견문기, 장대 견문기, 산해관견문기.

 

관내에서 본 이야기

724~84

열상화보, 이제모 견문기, 난하에 배 띄우고, 사호석 이야기, 범의 꾸중, 동악묘 견문기

 

북방여행기

85~89

 

태학관에 머물면서

89~814

 

북경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815~820

 

경개록

황교문답

반선시말

찰십륜포

행재잡록

심세편

망양록

곡정필담

산장잡기

요술구경

피서록

구외이문

옥갑야화

황도기략

공자묘를 참배한 감상

앙엽기

동란섭필

금료소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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