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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4일 22시 53분 등록
쓸모없는 나무…

소요유(逍遙遊)를 턱없이 흉내내며 경복궁 언저리를 걸은 적이 있습니다. 동십자각을 지나 건춘문 앞에 이르러 만난 인상깊은 나무가 있었는데, 잊고 있다가 얼마전 다시 생각이나 공부해 보니 가죽나무 가로수였습니다.

중국이 원산지인 가죽나무는 고래로 쓸모 없는 나무로 이름값을 해왔습니다. 참죽나무가 가진 진승목(眞僧木)이나 향춘수(香椿樹)의 이름에 비해 가죽나무는 그 이름조차 가짜 중나무, 가승목(假僧木) 또는 냄새나는 나무라는 의미의 취춘수(臭椿樹)라는 한자명을 달고 있습니다.

참죽나무의 어린 잎은 식용할 수 있고 그 목재도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지만, 가죽나무는 목재로서의가치가 낮고 잎을 먹을 수도 없으며 약간 좋지 않은 냄새마저 지녔으니 조상들이 무용지물의 가치없는 나무로 여겼을 법도 합니다. 실제로 조선시대 많은 선비들이 임금의 성은을 받들면서 스스로를 ‘보잘 것 없는 가죽나무에 비유’하는 문장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곤장용 나무로나 적합한 취급을 받았을 뿐, 이렇듯 ‘무용지물’로 취급받아온 가죽나무는 그러면 쓸모가 없는 것일까요? 모든 생명에게는 우주가 준 가치가 있다고 믿는 저는 이 의문을 풀고 싶었습니다.

해서 찾아보니, 관련하여 장자의 일화 한 토막이 있군요. 중국 송나라의 사상가 혜자가 어느 날, 장자를 쓸모 없이 크기만 한 가죽나무에 빗대었다 합니다. 장자는 이렇게 받았습니다. “비록 몸통은 울퉁불퉁하고 가지가 굽어져 쓸모는 없으나 벌판에 서 있으면 사람들이 찾아와 그늘 밑에서 쉬고, 목수가 도끼로 자르려 해도 힘들고 쓸모는 없어 내버려두니 이것이야말로 大用이 아닌가”

또한 시인 도종환 선생은 가죽나무라는 시에서 이렇게 그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나는 내가 부족한 나무라는 걸 안다. /내 딴에는 곧게 자랐다 생각했지만 / 어떤 가지는 구부러졌고 /어떤 줄기는 비비 꼬여 있는 걸 안다. / 그래서 대들보로 쓰일 수도 없고 / 좋은 재목이 될 수 없다는 걸 안다. / 다만 보잘 것 없는 꽃이 피어도 / 그 꽃 보고 기뻐하는 사람 있으면 나도 기쁘고 / 내 그늘에 날개를 쉬러 오는 새 한마리 있으면 / 편안한 자리를 내주는 것 만으로도 족하다. (이하 중략, 전문은 찾아 읽어 보십시오. 감동이 클 것입니다.)

제가 본 경복궁 건춘문 앞의 가죽나무는 한 아름에 가깝습니다. 가죽나무는 공해에 강해 가로수로 제격이요, 한방에서는 그 껍질을 해열제와 이질 치료제로 쓴다 합니다. 그 잎은 살충 효과가 강해 거미나 벼룩의 살충제로도 쓰인다 합니다.

살며 혹시 스스로나 타인을 무용(無用)하다 대한 적이 있으신지요? 돌이켜 보니, 부끄럽게도 저는 참 많이 그래 왔군요. 철 들며 생각하니 가죽나무 곤장을 맞을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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