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경영연구소-김용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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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지식물
비가 장하게 내리던 지난 주 수요일 오후. 군인을 대상으로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눠 달라는 청을 받고 망설임 끝에 어느 부대를 찾았습니다. 꽤 많은 장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피교육생이 되어 자리에 앉으면 장군도 졸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수동성의 환경을 넘기 위해 우리는 퀴즈를 풀 듯 청춘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답자에게는 상품으로 영화(DVD)와 책도 나누며 진행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한 이등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언어는 시종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공격적이었으며 모습은 지쳐 보였습니다. 영혼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지휘관에게 들으니 그는 입대 전 자살을 기도하고, 몇 번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는 청년이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죽고 똑 같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생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 이등병은 불쑥 ‘다르게 살아야죠!’라고 답했습니다. 몇 가지 다른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 저는 그의 대답이 기회만 된다면 현재(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전복(Reset)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감히 그의 과거를 알 지는 못하나, 절망으로 가득찬 그의 심정만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유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의 나이였을 때의 내가 떠올라 저는 음지식물 이야기를 들려 주며 자리를 마무리 했습니다. 대강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숲 속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는 늘 빛이 부족하다. 하지만 가끔 바람이 불어 상층부의 나뭇잎이 흔들리면 그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데, 그렇게 잠시 들어오는 빛이 음지식물에게는 생명의 근원이 된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강렬하게 내리쬐는 이 빛에 줄기를 키우고 잎새를 키워 자신의 꽃을 피워 내는 것. 거기에 음지식물의 아름다움이 있다.
빛 한 조각 마저 놓치지 않고 삶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는 이 음지식물들에게 ‘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아마 ‘생명이 주어졌으니까’ 라고 말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식물은 과거나 미래를 사는 법이 없다. 아픈 과거, 답답한 미래를 일거에 전복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오늘을 온 힘을 다해 살 뿐이다. 그것이 음지에 태어난 운명을 수용하고 또 넘어서는 법칙이다.’
돌아오는 길. 거센 빗줄기 사이로 그 이등병의 얼굴이 그 나이의 제 얼굴과 오버랩 되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부디 그가 인생을 살아볼 만한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강렬한 빛 한 조각이라도 찾아 자신의 줄기와 잎을 키워가길… 마음을 다해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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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장하게 내리던 지난 주 수요일 오후. 군인을 대상으로 두어 시간 ‘이야기’를 나눠 달라는 청을 받고 망설임 끝에 어느 부대를 찾았습니다. 꽤 많은 장병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군복을 입고 피교육생이 되어 자리에 앉으면 장군도 졸음을 피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수동성의 환경을 넘기 위해 우리는 퀴즈를 풀 듯 청춘과 행복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고, 정답자에게는 상품으로 영화(DVD)와 책도 나누며 진행을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만난 한 이등병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의 언어는 시종 냉소적이었고 태도는 공격적이었으며 모습은 지쳐 보였습니다. 영혼에 깊은 상처를 안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쉬는 시간에 지휘관에게 들으니 그는 입대 전 자살을 기도하고, 몇 번 자해를 시도한 적이 있는 청년이라 했습니다.
만약 우리가 죽고 똑 같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 생을 반복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라면 여러분은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그 이등병은 불쑥 ‘다르게 살아야죠!’라고 답했습니다. 몇 가지 다른 질문과 대답의 과정을 통해 저는 그의 대답이 기회만 된다면 현재(까지)의 삶을 송두리째 전복(Reset)하고 싶다는 의사표시인 것을 알았습니다. 감히 그의 과거를 알 지는 못하나, 절망으로 가득찬 그의 심정만은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는 유희의 대상으로 여겨지는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절망의 대상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의 나이였을 때의 내가 떠올라 저는 음지식물 이야기를 들려 주며 자리를 마무리 했습니다. 대강 이런 이야기였습니다.
‘숲 속 음지에서 자라는 식물들에게는 늘 빛이 부족하다. 하지만 가끔 바람이 불어 상층부의 나뭇잎이 흔들리면 그 사이로 햇살이 비추는데, 그렇게 잠시 들어오는 빛이 음지식물에게는 생명의 근원이 된다. 비록 짧은 순간이지만 강렬하게 내리쬐는 이 빛에 줄기를 키우고 잎새를 키워 자신의 꽃을 피워 내는 것. 거기에 음지식물의 아름다움이 있다.
빛 한 조각 마저 놓치지 않고 삶의 자양분으로 받아들이는 이 음지식물들에게 ‘왜 사는가’라고 묻는다면 뭐라 답할까? 아마 ‘생명이 주어졌으니까’ 라고 말할 것으로 나는 믿는다. 식물은 과거나 미래를 사는 법이 없다. 아픈 과거, 답답한 미래를 일거에 전복하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주어진 오늘을 온 힘을 다해 살 뿐이다. 그것이 음지에 태어난 운명을 수용하고 또 넘어서는 법칙이다.’
돌아오는 길. 거센 빗줄기 사이로 그 이등병의 얼굴이 그 나이의 제 얼굴과 오버랩 되어 다시 떠올랐습니다. 부디 그가 인생을 살아볼 만한 대상으로 받아들이고, 강렬한 빛 한 조각이라도 찾아 자신의 줄기와 잎을 키워가길… 마음을 다해 빌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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