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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9일 23시 44분 등록
더불어 살지 못하는 숲

김기덕 감독. 그의 작품을 관람하는 일은 늘 불편했습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을 좋아합니다. 그가 이별을 선언했더군요. ‘<시간>이라는 작품의 개봉을 끝으로 더 이상 이 땅의 영화관에서는 자신의 작품을 개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소식을 라디오 뉴스로 들었습니다. 정황으로 볼 때 대형화된 배급사와 영화관들의 수익 우선 본능에 따라 개봉관 잡기가 쉽지 않고, 관객도 적어 겪어야 하는 설움에 대한 자기 항거로 판단하게 됩니다.
한편, 토종식물들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있다는 소식이 TV의 한 시사다큐 프로그램을 통해 방송되었습니다. 앙증맞고 예쁜 지네발란, 자줏빛 예쁜 꽃을 단 며칠만 피우고 져, 더 그리운 깽깽이풀, 한 해 만을 살면서도 고고한 꽃을 피워내는 가시연… 모두 무분별한 남획과 서식 환경의 악화 탓으로 사라져 가고 있다 합니다.

언론은 김기덕 감독을 부를 때 ‘한국이 나은 세계적 감독’이란 수식어를 달지요. <악어>를 비롯해 13편의 영화를 제작하고 베를린과 베니스 영화제에서 각각 최우수 감독상을 수상했으며 그 외의 해외 영화제로부터 다양한 주목을 받아온 감독이니 손색이 없는 수식어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서 그는 홀대받는 비주류입니다. 정규 학교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았고 방황도 많았습니다. 가난은 배낭에 넣고 열정은 가슴에 품은 채 프랑스로 건너가 그림 공부를 하다가 귀국해 영화에 몰입한 사람. 성격도 독특하고 생산하는 작품에도 특유의 색채와 메시지를 가득 담아내는 사람. 영화를 보고난 관객들에게 종종 불편한 마음을 안고 귀가하게 하는 사람. 태어난 나라에서는 관객과 자본으로부터 외면받고 마침내 ‘예술적 망명’ 까지 선언한 사람. 1천만 이상 관객동원을 자랑하는 큰 영화 뉴스 옆에 단신 소식으로 다뤄지는 사람.

말대로라면 그의 영화 <시간>은 ‘한국에 살고 있는, 한국이 나은 세계적 감독’의 마지막 한국 상영작이 될 전망입니다. 국내 배급사로부터 외면받아 해외로 넘어간 작품 <시간>을 다시 역수입해 상영하는 이 기이한 현상 앞에 ‘한국이 나은…’이라는 표현이 무색해 지지 않나요?
백합과의 토종식물 ‘솔나리’의 사연도 씁쓸합니다. 국내에서는 무분별한 남획과 무너지는 환경으로 사라져 가고 있지만, 해외에서는 우리 토종식물을 개량하여 대량으로 수출하고 있다는 군요.

이 모두 다양성이 공존할 수 있도록 배려하지 못하는 이 사회의 안타까운 아이러니로 생각됩니다. 그것은 또한 주류가 부리는 과욕의 산물로도 보입니다. 주류의 식욕이 과하면 독창적인 비주류의 공간은 서서히 사라지기 마련입니다. ‘더불어 살지 못하는 사회’가 시작되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덩치 큰 식물의 번식욕이 과하면 작은 식물들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다양한 식물이 ‘더불어 살지 못하는 숲’은 숲이 아닙니다. 결코 아름다울 수도 없습니다. 숲 전체의 황폐화로도 이어지고 맙니다.

착잡한 뉴스를 접하니 ‘더불어 사는 아름다운 숲’에 들고 싶은 마음이 점점 더 간절해 집니다. 저만 그런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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