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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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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8월 16일 23시 49분 등록
미련하고 비현실적인 사람을 위한 질문

요 며칠 짤막한 휴가를 보냈습니다. 강원도 몇 곳과 고향집 괴산을 거쳐 부산과 거제를 돌았습니다. 문경 근처의 어느 험한 산에 들러 10년을 한 가지 일에 몰두하고 있는 사람을 짧게 만났는데, 그의 명함에는 ‘산촌지기’ ○○○라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의 땅인 1만평의 부지는 모두 험한 산의 8부 능선을 연하고 있었습니다. 개간이 된 모양새만 보면 구름도 자주 벗삼을 참 좋은 경치에 터를 앉힌 것으로 보이지만, 복귀하여 개간 전의 산으로 상상해 보면 사람 살 곳이 못 되는 땅이었습니다. 그곳을 개간해 3천 평쯤 배나무 농사를 짓는데 이것이 자식들 공부와 가족의 호구지책이라 했습니다. 일부 산은 개간해 마상무예를 체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다듬고 있었고, 나머지 산에도 이런저런 나무를 심으려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참 대단한 역사를 해내고 있었습니다.

나무를 심는다는 것은 당장을 도모하는 사람들은 결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아는 저는 그분의 10년 세월이 궁금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피차의 일정으로 다음을 기약했으나 가꿔놓은 배 밭을 모두 갈아엎은 뒤 도시 사람들을 고객 삼아 당장의 수익을 낼만한 사업으로 전향할 마음까지 먹은 적이 있다 했습니다. 현실적인 고뇌였겠구나 짐작되고도 남았습니다.

그분처럼 나무를 심는 사람은 한결같이 미련하고 비현실적인 사람들로 보입니다. 5년 이상 세월을 보내야 어떤 의도한 모습이 보일 듯 말 듯 하니 도회적 잣대로 바라보면 산 입에 거미줄 치기 딱 좋은 ‘개 꿈’ 이지요. 이제는 아주 유명해진 ‘아침고요수목원’의 한상경교수도 3년 만에 전 재산을 팔고도 감당할 수 없어 수목원을 팔려고 부동산에 내놓기 까지 했다더군요. ‘천리포수목원’의 故 민병갈 원장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며 사재를 모두 털어 오늘의 그 아름다운 수목원을 가꾼 분이고요…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나무를 심게 만들고, 무엇이 ‘산촌지기’를 자청하며 미련 맞게 살도록 하는 걸까요. 나는 왜 또 그 길을 걸으려 하는 걸까요. 휴가 내내 두고두고 묻고 답하는 시간이 제법 즐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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