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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8일 06시 42분 등록

요즘 며칠이야 말로 한국의 가을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날씨입니다. 이런 날은 도저히 방안에 그대로 앉아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대한 모독입니다. 이런 생각이 물밀듯 밀려오면, 나는 얼른 커다란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옵니다. 나에게 작은 뜰이 하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가능한 만큼 모두 옷을 벗어 버립니다. 그리고 바람이 나를 스쳐가게 만듭니다. 햇빛을 내 몸으로 담아 보려 애를 씁니다. 책을 한 권 들고 나오 긴 하지만, 내가 그 책을 찾을 때는 그 한가한 무료함에 지칠 때 뿐입니다.

언젠가 어느 성당에서 신부님을 한 분 뵌 적이 있습니다. 배가 불룩하게 나온 신부님인데 참 좋은 분입니다. 그 분은 이런 날에는 창문을 열고 커튼을 걷고 햇빛이 최대한 방안으로 밀려들도록 해 둔답니다. 그리고 옷을 모두 벗고 방안을 어슬렁거립니다. 그러면 영혼이 얼마나 자유로워지는지 모른다고 합니다.

그 신부님 방에는 ‘아담아, 네가 어디 있느냐’고 쓰여진 액자가 하나 책상 위에 놓여 있었습니다. 어떤 외국인 신부가 한국말로 개발새발 쓴 액자랍니다. 그 액자 속의 글귀와 발가벗고, 깊게 방안을 무찔러 들어오는 가을 햇빛 속을 천천히 걸어다니는 배불뚝이 신부님을 함께 연상하는 것은 참 재미있는 그림입니다. 나도 그 기분을 압니다. 나도 가끔 해보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햇빛이 꽝꽝 쏟아져 버리는 날에는 내 영혼이 어디 있는 지 물어 봐야 합니다. 너 어떻게 살래 물어 봐야 합니다. 그러다가 ‘냅 둬. 나 이대로 살래‘ 하고 외쳐야 합니다. 이렇게 좋은 날엔 여기 있다는 것 자체가 행운입니다.

내 살갗 한 쪽을 스쳐가는 태양의 입자 하나와 내가 만났다는 경이로움에 취하면 됩니다. 질문도 없고 대답도 없습니다. 존재만 있습니다. 이런 날엔 갑자기 칠흑 어둠 속에서 ’응애‘하고 햇살 속으로 쑥 태어난 기분입니다.

오늘은 걸치고 있던 모든 어두운 것들 다 집어 던지고 바람과 햇빛으로 몸을 씻는 날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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