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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6일 07시 45분 등록

종종 책을 보며 나는 어떻게 이 종이뭉치가 내게 즐거움과 기쁨과 욕망과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를 퍼부어 주는 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게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괴팍한 독서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독서술 1 밥은 아무 거나 먹어도 괜찮다. 돈이 있으면 잘 먹고 돈이 없으면 한 끼를 때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책을 아무거나 보는 것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섹스처럼 난하다. 정력과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반드시 눈에 드는 책, 마음을 무찔러 오는 책을 엄선하여 읽어야한다.

독서술 2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읽어야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내용 전부를 음미하기 위해 통째로 읽는 것이 좋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 책이나 제레미 리프킨의 책은 줄을 쳐 가며 읽는 것이 좋다. 통째로 읽는다는 것은 몸매 고운 여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녀 전체를 즐기는 것이다. 줄을 쳐 읽는다는 것은 가까이서 눈썹의 찡그림과 옷의 주름, 그리고 붉은 입술 사이로 흰 치아를 보는 것과 같다.

독서술 3 책을 읽을 때는 무릎을 쳐 가며 읽으면 통쾌하다. 예를 들어 주역을 읽을 때는 간간이 불현듯 깨우쳐지는 마음의 소리에 홀딱 빠져 읽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엑스타시 같은 것이다. 그것은 복면을 한 여인의 눈매를 보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재빨리 눈짓을 하는 남자의 구애 같은 것이다. 눈짓하나로 온 몸이 붉어지는 시적 응축 같은 것이다.

독서술 4 작가를 묻어 없애야한다. 책에 빠져 읽을 때는 내가 작가가 되어 책을 쓰듯 읽어야 한다. 진귀한 표현은 길이 마음에 담아 자랑하고 시시한 글귀는 부끄러워 얼른 지워 없애 버려야 한다. 그리고 졸렬한 문장에 대해서는 화를 내고 미련없이 바꿔 써야한다. 독자의 작가되기 - 이것이야 말로 꽤 괜찮은 독서법이다.

독서술 5 그러나 글이 가지는 원래의 빛깔과 향기는 마음으로 흠향하여야 한다. 그 맛을 얻지 못하면 책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내 속에 들어와 내 흥취로 교감하고 공명하되 원래의 맛은 변질되지 않도록 감싸 두어야 한다. 두고두고 음미하고 교분을 나누고 향기를 맡아야 오래된 정을 나눌 수 있다.

책은 여전하되 그 흥취가 달라지는 것은 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으로 이정표를 삼으면 정신의 여정을 측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추석날 아침입니다. 가을처럼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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