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 조회 수 4768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6년 10월 6일 07시 45분 등록

종종 책을 보며 나는 어떻게 이 종이뭉치가 내게 즐거움과 기쁨과 욕망과 두려움과 슬픔과 분노를 퍼부어 주는 지 이해할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읽고 또 읽을 수 밖에 없게됩니다. 그러다 보니 나만의 괴팍한 독서술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독서술 1 밥은 아무 거나 먹어도 괜찮다. 돈이 있으면 잘 먹고 돈이 없으면 한 끼를 때우면 그만이다. 그러나 책을 아무거나 보는 것은 상대를 가리지 않는 섹스처럼 난하다. 정력과 시간을 죽이는 일이다. 반드시 눈에 드는 책, 마음을 무찔러 오는 책을 엄선하여 읽어야한다.

독서술 2 책을 읽을 때는 그 책에 어울리는 방식으로 읽어야한다. 예를 들어 사마천의 ‘사기열전’은 내용 전부를 음미하기 위해 통째로 읽는 것이 좋다. 그러나 피터 드러커 책이나 제레미 리프킨의 책은 줄을 쳐 가며 읽는 것이 좋다. 통째로 읽는다는 것은 몸매 고운 여인을 멀리서 바라보는 것과 같다. 그녀 전체를 즐기는 것이다. 줄을 쳐 읽는다는 것은 가까이서 눈썹의 찡그림과 옷의 주름, 그리고 붉은 입술 사이로 흰 치아를 보는 것과 같다.

독서술 3 책을 읽을 때는 무릎을 쳐 가며 읽으면 통쾌하다. 예를 들어 주역을 읽을 때는 간간이 불현듯 깨우쳐지는 마음의 소리에 홀딱 빠져 읽어야 한다. 그것은 일종의 엑스타시 같은 것이다. 그것은 복면을 한 여인의 눈매를 보고 그녀가 누구인지 알아차리고 재빨리 눈짓을 하는 남자의 구애 같은 것이다. 눈짓하나로 온 몸이 붉어지는 시적 응축 같은 것이다.

독서술 4 작가를 묻어 없애야한다. 책에 빠져 읽을 때는 내가 작가가 되어 책을 쓰듯 읽어야 한다. 진귀한 표현은 길이 마음에 담아 자랑하고 시시한 글귀는 부끄러워 얼른 지워 없애 버려야 한다. 그리고 졸렬한 문장에 대해서는 화를 내고 미련없이 바꿔 써야한다. 독자의 작가되기 - 이것이야 말로 꽤 괜찮은 독서법이다.

독서술 5 그러나 글이 가지는 원래의 빛깔과 향기는 마음으로 흠향하여야 한다. 그 맛을 얻지 못하면 책을 즐기지 못하는 것이다. 내 속에 들어와 내 흥취로 교감하고 공명하되 원래의 맛은 변질되지 않도록 감싸 두어야 한다. 두고두고 음미하고 교분을 나누고 향기를 맡아야 오래된 정을 나눌 수 있다.

책은 여전하되 그 흥취가 달라지는 것은 내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책으로 이정표를 삼으면 정신의 여정을 측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추석날 아침입니다. 가을처럼 풍요롭기를 바랍니다.
IP *.189.235.1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336 화요편지 - 오늘도 덕질로 대동단결! 종종 2022.06.07 622
4335 뭐든지는 아니어도 하고 싶은 것 정도는 할 수 있다는 마음 [2] 어니언 2023.11.23 634
4334 [수요편지] 똑똑함과 현명함 [1] 불씨 2023.11.15 640
4333 작아도 좋은 것이 있다면 [2] 어니언 2023.11.30 658
4332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종종 2022.07.12 660
4331 [수요편지] 장미꽃의 의미 [1] 불씨 2023.12.05 663
4330 등 뒤로 문이 닫히면 새로운 문이 열린다 [3] 어니언 2023.12.28 666
4329 [내 삶의 단어장] 오늘도 내일도 제삿날 [2] 에움길~ 2023.06.12 678
4328 역할 실험 [1] 어니언 2022.08.04 687
4327 [수요편지] 미시적 우연과 거시적 필연 [1] 불씨 2023.11.07 690
4326 [늦은 월요 편지][내 삶의 단어장] 2호선, 그 가득하고도 텅빈 에움길~ 2023.09.19 692
4325 충실한 일상이 좋은 생각을 부른다 어니언 2023.11.02 692
4324 [수요편지] 커뮤니케이션이 잘 되는 조직문화 불씨 2023.10.11 694
4323 [수요편지] 허상과의 투쟁 [1] 불씨 2022.12.14 695
4322 케미가 맞는다는 것 [1] 어니언 2022.09.15 698
4321 [월요편지-책과 함께] 인간에 대한 환멸 [1] 에움길~ 2023.10.30 700
4320 두 번째라는 것 어니언 2023.08.03 706
4319 [내 삶의 단어장] 엄마! 뜨거운 여름날의 수제비 에움길~ 2023.11.13 706
4318 용기의 근원인 당신에게 [1] 어니언 2023.12.14 708
4317 [월요편지-책과 함께] 존엄성 에움길~ 2023.09.25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