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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10월 20일 07시 17분 등록

얼마 전에 연구원들과 함께 몽산포 바닷가에서 수업을 했습니다. 우리는 ‘자신을 찾아 가는 나만의 방법’에 대하여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신두리 모래언덕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곳은 아, 참 좋았습니다. 아스라이 긴 모래사장 뒤로 바람에 날린 모래들이 모여 모래 언덕을 쌓고 다시 그 위에 알 수 없는 풀이 자라 이국적인 초원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초원에서 놀다 모래밭으로 걸어 나가 잔잔한 파도 앞으로 갔습니다. 웃고 떠드는데 일행 중의 한 명이 조금 떨어 진 곳에서 모래 위에 무엇인가를 쓰고 이내 일어서더니 그걸 카메라로 찍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습니다. 틀림없이 자기 이름 하고 여자친구 이름을 쓰고 그 사이에 하트를 그려 놓고 그 사랑이 영원하기를 기원했겠지요.

문득 한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한림옥로’라는 시화집에 있는 이야기로 기억됩니다. 남송시대 황정견이라는 유학자가 황룡사에 회당 조심이라는 스님을 찾아 왔습니다.

회당이 황정견에게 “논어에 ‘내가 너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라는 말이 나오는데 무슨 뜻이냐고 물었습니다. 황정견이 여러 번 답을 하려 했으나 답하는 이도 듣는 이도 영 마뜩찮았지요. 그때 문득 더위가 물러가고 서늘한 기운이 감돌며 홀연 황룡사 뜰 안이 가을 향기로 가득했습니다.

회당이 물었다. ” 물푸레 나무의 향기를 맡았는가 ”
황정견이 대답했다. “맡았다”
그러자 회당이 말했다. “내가 그대에게 숨기는 것이 없다”

그러자 황정견이 무너지며 깊이 깨달았다 합니다. 이것은 매우 유명한 이야기여서 유학자가 그 핵심을 풀지 못한 논어의 문장을 선승이 ‘공안’을 풀어가는 선불교의 방식으로 여유있게 해설한 것이지요.

사랑은 스스로를 숨길 수 없습니다. 그들은 사귄지 그때 열흘 밖에 되지 않았다는 데 그에게는 모든 사람이 그녀였던 모양입니다. 갑자기 그 아름다운 바다가 몰려들자 그녀가 그 아름다움의 옆에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까웠던 것이겠지요.

가을이 깊어 갑니다. 그 숨길 수 없는 향기가 오늘의 삶에 스며들면 좋겠습니다.

*****************************************
알립니다.
약간의 배달 사고가 있었습니다.

어제 목요일 '낙엽, 그 간결함' 이라는 글은 '김용규'님의 편지 입니다. 보내는 사람이 '구본형'으로 되어 있어, 어떤 분은 제가 산속으로 들어가는 줄 알고 놀라는 분들도 있었지만, 저는 서울에 있습니다. 김용규님은 '행복숲'을 꿈꾸며, 그 숲을 만들어 내는 것에 자신의 남은 인생을 걸고 싶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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