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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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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1월 26일 11시 57분 등록

다시 사랑한다 말 할까

 

비가 온다. 하루 종일 내리지 않던 비가 글을 쓰려 앉자 내린다. 많이 내리진 않지만 가을을 보내기에는 충분한 양이다. 이로써 또 하나의 가을이 저편으로 간다. 나는 지금 가을과 겨울을 정확히 가르는 분수령에 있다. 가는 가을에 섭섭한 마음을 어쩌지 못하여 나선 길에 홍시 빛 일몰을 보았다. 대지를 데우던 태양이 바다와 섬 사이로 사라지는 모습을 보았다. 대지와 바다를 일 순간 검붉게 물들이는 모습에 넋을 놓았다. 가을 태양은 마치 절정처럼 아름다웠고 황혼은 절정 안에 그 추락을 간직한 것 마냥 순식간에 떨어졌다. 안타까워하는 내 마음은 살면서 몇 번 보지 못할 우주가 일으키는 우연이 길지 않아 조급해 했다. 사진에 담아보려 셔터를 눌러 댔다. 아름다워서 사진을 찍으려 했다. 주인의 말을 잘 듣질 않는 스마트폰은 그 광막한 장면이 내 앞에서 펼쳐지는 모습을 기어이 방해한다. 찍은 사진을 보니 보랏빛 오렌지빛 노을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내 마음에서 사라진 지 오래된 후다. 다시 열어본 사진은 그때의 감동이 없었다. 똑똑하고 영리하다 해서 스마트라 했을 진대 세상에 이런 윤똑똑이가 없다.

 

삶에는 허구가 산재해 있다. 특히 눈부신 디지털 기술은 삶의 모든 편의을 제공하려는 듯 그 효용에 어안이 벙벙할 지경이지만 실상 그것들이 나에게는 아무런 감동을 주지 못하고 있다. 내가 제대로 잘 알지 못하는 사람까지 이어주고 어렴풋한 기억의 사람을 굳이 일깨워 연결시켜 주는 네트워크킹 시스템을 자랑하고 있지만 내 관계가 그로 인해 더 넓어지진 않았다. 네트워크는 허구다.

 

내 좋아하는 영화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

 

극중 은수라는 여인에 헤어지자는 이별 통보를 받고 관계 정상화를 모색해 보려 했지만 여의치 않자 위의 말을 하며 남자(상우)는 자신의 사랑을 정리해 나간다. '사랑해' 하며 인생의 봄날을 함께 보냈던 연인들도 결국 감정의 변화 앞에서는 무너진다. 사랑해서 했던 행동과 말들이 서로를 이별에 이르게 한다. ‘너무나 사랑하여 이별을 예감’한다는 말이 있지만 이별을 전제한 사랑은 지극함에 이르지 못하여 사랑이라 부를 수 없다. 나는 우리의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다. 전화번호를 물으려 건 114서비스의 낯선 여인이 나에게 사랑한다고 한다. 전자제품이 고장 나 A/S를 요청해도 대뜸 사랑한다는 말을 먼저 해놓고 말을 이어간다. 이 난데 없는 사랑의 저열함은 내가 디디고 있는 이 세계의 저급한 감정 층위를 대변하여 슬프다. 사랑하지도 않는 사람들에게 하루에 몇 번이고 사랑한다는 말을 해야 하는 감정노동자의 감정은 이제 누구의 사랑으로 채워질 것인가. 필멸의 내가, 어찌하여 몸을 받아 사는 이 세계에, 사랑이라는 것은 이리도 천박하게 되어 있다.

 

사랑은 표현하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아무리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도 표현하지 않으면 상대방은 알지 못한다고들 한다. 나는 이런 존재론적 말들이 득세하는 요즈음이 불편하다. 존재론적 사유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나 모두가 제 존재와 사유를 표현하지 못해 안달 난 지금은 아니올시다다. 사랑한다 말하는 게 돈 들지도 않는데 뭐 그리 어려워하는가 한다. 그러니 그 사랑은 싸구려가 되는 게다. 사랑한다 말하는 순간 사랑이 아닌 게 될까 저어하는 소심함이 그리운 세상이다. 사랑도 강요되는 세상이다. 말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사랑을 서로가 알아차릴 수 있는 우리 사는 세상은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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