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승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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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을 하며 스스로에게 선물을 하나 하기로 했습니다. 내 마음 속에 떠오른 물건은 만년필입니다. 10년 정도 함께 일상을 나눌 친구로 적합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여러 브랜드 중에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몽블랑’이었습니다. 몽블랑 만년필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부러웠고, 귀동냥으로 들은 명성도 있었습니다. 또 하나, 그 즈음 읽은 사진가 윤광준 선생의 책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에서 그는 명품을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내가 보는 명품이란 실질적인 사용가치를 웃도는 아우라를 지닌 물건을 의미한다. 시간을 더해 원숙해진 인간의 경험과 예지가 담겨 있을 때 비로소 아우라는 생긴다. 이를 읽어낼 줄 아는 사용자와의 교류가 더해져 물건은 세련되어지고 생명력을 갖게 된다.”
이 기준으로 보면 몽블랑은 명품이 분명했습니다. 그럼에도 쉽게 결정할 수 없었습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최소한 10년을 함께 할 관계이기에 동전 던지듯 정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찾아보고, 몽블랑 매장을 가서 이런저런 제품을 살펴봤습니다. 결정하지 못했습니다. 다시 정보를 수집하고 며칠을 고민하고 매장을 또 찾아갔습니다. 고민 끝에 마침내 몽블랑 만년필의 기본라인에 해당하는 ‘마이스터스튁(Meisterstuck) P146’을 나의 애기(愛器)로 선택했습니다. 올해 산 물건 중 가장 고심하며 고른 물건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경험을 하고 나니 <윤광준의 생활명품 산책>에 나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이해가 되었습니다.
“물건에도 격이 있다. 마음 내키는 대로 최고급 물건을 살 수 있는 사람들은 어렵게 알아가는 내밀한 즐거움을 모른다. 격이 있는 물건에 도달하기까지 겪는 수많은 일들, 그것이 내 삶의 내용이고 역사가 된다.”
왜 하필 몽블랑이었을까?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의 오디오 평론가 스가노 오키히코는 “좋은 물건은 때론 사람을 가르치고 해답을 주기도 한다”고 말했고, 철학자 비트겐슈타인은 “나는 펜으로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어떤 펜을 사용하는가도 생각에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글 쓰는 사진가’ 윤광준 선생의 말처럼 “호랑이 이빨 부적을 지니면 호랑이의 힘과 용맹이 자신에게 옮겨질 것을 믿는 토테미즘처럼 이 만년필이 지닌 상징적 권능이 내게 옮겨지길 바랐던 것”입니다.
투사와 주술에는 힘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힘은 외부의 것에 좌우됩니다. 힘의 방향을 돌려 내 안에서 에너지의 원천을 발견하고 내면화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고심해서 손에 넣은 물건도 한낱 사치품에 불과합니다. 그것 때문에 마음만 쓰인다면 애물단지로 전락할 게 자명합니다. 물건의 가치는 물건의 존재감과 함께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의 의식 수준이 결정합니다. 몽블랑 만년필이 100년 넘는 동안 진화하고 원숙해진 것처럼 나도 꾸준히 단련해서 좀 더 깊어지고 정교해지면 좋겠습니다.
윤광준 저, 윤광준의 생활명품산책, 생각의나무, 200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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