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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1월 12일 05시 33분 등록

그제 아침 산에서 내려오다 전화를 받았습니다. 스승이신 길현모 선생님의 자제분이었습니다. 우린 서로 만난 적이 없습니다. 선생님의 목소리와 억양이 묻어있는 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돌아가셨구나’하는 느낌이 전해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10일 아침에 돌아 가셨습니다.

저녁에 아내와 함께 문상을 다녀왔습니다.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났는데 선생님의 모습과 우리가 만났던 장면 장면이 스쳐 갑니다. 나는 눈썰미가 없는 사람입니다. 내가 사람을 기억하는 방법은 그 사람과 내가 만나서 나누었던 이야기나 표정이나 웃음이나 손짓 같은 특별히 인상적인 이미지를 재생하는 방식입니다. 그러니까 증명사진으로 나온 사람의 얼굴은 잘 기억해 내지 못하지만 어떤 특별한 순간의 움직임을 마치 스냅 사진처럼 기억하는 그런 스타일이지요. 선생님의 모습도 내겐 그렇게 남아 있습니다.

아침에 사람들이 많아지기 전에 다시 선생님을 뵈러 갔습니다.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향을 피우고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눈을 감으니 온몸 속으로 따스한 기운이 물밀듯이 밀려들어 옵니다. 기분이 아주 좋아 졌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나를 기억해 주신 모양입니다. 내가 찾아오면 들려주시고 싶은 좋은 이야기와 격려가 있으셨던 것 같습니다. 그 따스한 기운은 틀림없이 생전에 하지 못하신 그 좋은 이야기를 그때 들려 주셨기 때문에 내 속에서 평화롭게 퍼지기 시작한 축복일 것입니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여러 가지 멋진 인생의 장면들을 선사해 주셨습니다. 사람을 안아 품는 장면, 아주 매혹적인 웃음, 번잡하지 않고 명쾌한 사고, 원칙의 꿋꿋함들이 모두 그 분의 표정과 걸음걸이와 몸에서 우러난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선생님께서는 원칙이 삶을 인도했지만 편협한 적이 없으셨습니다. 어떻게 넉넉하게 생각하고 어떻게 당당하게 행동하고 어떻게 깊이 살아야 하는 지에 대한 생생한 장면을 삶으로 보여 주셨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선생님.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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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즐짱
2007.01.13 00:19:31 *.47.86.64
너무나 따스한 온기가 느껴지는 글입니다. 몇 번을 계속 읽다 보니 자연히 '큰 바위 얼굴'이 생각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마지막 구절은 제가 선생님의 책을 읽으며 그리고 이곳을 드나들며 만났던 바로 그 사람의 모습과 너무나도 닮았습니다. 이 글을 읽고 저도 삶을 더 열심히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해 보게 됩니다.

"내 삶의 한 모퉁이를 돌 때 마다 그 분은 거기 서계셨고, 내 인생의 갈림길 마다 나는 그 분에게 내가 갈 길을 물어 보곤 했다. 물론 직접 찾아가 물어 본 것은 아니다. 갈림길과 모퉁이를 돌아 설 때 마다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 분 이라면 어떻게 했을까?’ 삶의 중요한 순간 마다 나는 이 질문을 꼭 했고, 그래서 이나마 내 길을 즐기며 걷고 있는 것임을 안다. 지금도 이 질문은 계속된다.”

'인생에는 여러 가지 길이 있다. 스스로 모색하거라. 헌신하고 모든 것을 걸어라. 그러나 그 길이 아니라 하더라도 실망하지 말거라. 앞에 다른 길이 나오면 슬퍼하지 말고 새 길로 가거라. 어느 길로 가든 훌륭함으로 가는 길은 있는 것이다.'

구본형 칼럼 <길현모 선생님, 중요한 길목마다 그 분이 거기 서계셨다> 중에서

* "아직 말할 때가 되지 않았는데도 말하는 것을 조급하다고 하고(계씨6), 한길에서 들은 말을 한길에서 말하는 것을 덕을 버리는 것이라고 한다(양화14)." 내가 남긴 덧글을 생각해 보니, 논어의 위 구절이 되뇌어 지는 밤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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