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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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에 차를 타고 광화문 앞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퇴근길이라 세종로는 차량으로 가득 했습니다 봄비가 제법 많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길이 막혀 답답했습니다, 문득 지켜야할 급한 약속도 없는 저녁, 전혀 급할 것 없는 사람이 이 정도의 정체에 왜 그렇게 답답해하는 지 궁금해졌습니다. 심호흡을 한 번 하고 달려갈 듯 급한 마음을 내려놓았습니다.
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차 지붕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가 그때서야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제법 많은 빗줄기가 만들어 내는 비 내리는 소리는 아까부터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급한 마음의 속도 속에서 앞차가 움직이는지만 주목했던 모양입니다.
비 내리는 소리는 참 좋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으니 차분해 집니다. 자연 속에는 서둘러 급하고 늦음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문득 하루가 유리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라는 유리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별로 한 일 없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하루라는 유리컵이 텅 비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득실을 따지지 않고 곰곰이 하루를 돌이켜 보니 나는 오늘 네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는 점심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동안 모르던 것을 조금 씩 더 알게 되었습니다. 득실을 따지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이익이 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득실에서 벗어나자 내 하루라는 유리컵은 1시간 반 만큼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시간 반 정도를 서로 이야기 했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잠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느 골목길을 같이 걸어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 만남만큼 특별했습니다.
다시 나는 한 카페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한 밝고 작고 영리한 기자였습니다. 우리는 또 한 시간 반 정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러자 내 유리컵은 다시 한 시간 반 만큼 차올랐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들어 올 때의 모습으로 서둘러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작은 회사의 사장인데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회상했고 한 젊은이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리고 서로의 미래에 대하여 조금씩 격려해 주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시 하루라는 유리컵이 한 시간 남짓 더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세 사람과의 만남은 오늘이라는 컵을 네 시간 만큼 특별한 하루로 채워주었습니다.
만남이 그것 만이었을까요 ?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오늘만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시간들이 손을 들고 나타납니다. 심리학자며 행동 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을 만나 두 시간 남짓 함께 보냈습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책으로 만났지만요. 다시 두 시간만큼 내 하루의 유리컵이 차오릅니다. 모두 여섯 시간 만큼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지요. 여섯 시간 만큼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가 되었군요. 그리고 나는 지금 비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도 들었고, 경복궁을 지나면서도 들었고, 막 물이 올라 귀엽기 그지없는 자하문 언덕길 앞에서도 그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하루라는 컵이 네 사람들을 만난 특별함으로 차오르고 다시 그 비어있는 부분이 봄비로 가득 차오르는 듯 했습니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 집니다. 득실을 따지지 않으니 비어 있음도 여유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가득 참’이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라는 컵은 얼마나 어제와 다른 내용물로 채워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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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신기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차 지붕에 내리는 빗방울 소리가 그때서야 선명하게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히 제법 많은 빗줄기가 만들어 내는 비 내리는 소리는 아까부터 들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듣지 못했습니다. 그저 급한 마음의 속도 속에서 앞차가 움직이는지만 주목했던 모양입니다.
비 내리는 소리는 참 좋습니다. 조용히 듣고 있으니 차분해 집니다. 자연 속에는 서둘러 급하고 늦음이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마음 속에 있습니다. 문득 하루가 유리컵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 하루라는 유리컵을 들여다보았습니다. 별로 한 일 없이 지나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하루라는 유리컵이 텅 비어 있는 듯합니다. 그러다 득실을 따지지 않고 곰곰이 하루를 돌이켜 보니 나는 오늘 네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첫 번째 사람과는 점심을 먹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이야기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그동안 모르던 것을 조금 씩 더 알게 되었습니다. 득실을 따지면 그 사람과의 만남이 얼마나 이익이 나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득실에서 벗어나자 내 하루라는 유리컵은 1시간 반 만큼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1시간 반 정도를 서로 이야기 했고, 맛있는 점심을 먹었고, 잠시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느 골목길을 같이 걸어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는 그 만남만큼 특별했습니다.
다시 나는 한 카페에서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작년에 대학을 졸업하고 신문사에 입사한 밝고 작고 영리한 기자였습니다. 우리는 또 한 시간 반 정도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들로 그 시간을 즐겼습니다. 그러자 내 유리컵은 다시 한 시간 반 만큼 차올랐습니다. 그녀는 서둘러 들어 올 때의 모습으로 서둘러 자신의 일터로 되돌아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작은 회사의 사장인데 우리는 서로 처음 만났을 때의 이야기를 회상했고 한 젊은이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 했고 그리고 서로의 미래에 대하여 조금씩 격려해 주고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헤어졌습니다. 다시 하루라는 유리컵이 한 시간 남짓 더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세 사람과의 만남은 오늘이라는 컵을 네 시간 만큼 특별한 하루로 채워주었습니다.
만남이 그것 만이었을까요 ? 아닙니다, 여기저기서 오늘만의 특별함을 주장하는 시간들이 손을 들고 나타납니다. 심리학자며 행동 경제학자인 다니엘 카너먼을 만나 두 시간 남짓 함께 보냈습니다. 직접 본 것은 아니고 책으로 만났지만요. 다시 두 시간만큼 내 하루의 유리컵이 차오릅니다. 모두 여섯 시간 만큼 나는 새로운 사람들을 만난 것이지요. 여섯 시간 만큼 오늘은 어제와 다른 하루가 되었군요. 그리고 나는 지금 비내리는 소리를 듣고 있습니다. 광화문에서도 들었고, 경복궁을 지나면서도 들었고, 막 물이 올라 귀엽기 그지없는 자하문 언덕길 앞에서도 그 빗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내 하루라는 컵이 네 사람들을 만난 특별함으로 차오르고 다시 그 비어있는 부분이 봄비로 가득 차오르는 듯 했습니다. 기분도 덩달아 좋아 집니다. 득실을 따지지 않으니 비어 있음도 여유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가득 참’이었습니다.
당신의 오늘이라는 컵은 얼마나 어제와 다른 내용물로 채워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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