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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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바람 거칠게 불어 참지 못하고 바람에 실려 상하이에 잠시 다녀왔습니다. 제주도 다녀오듯 간단히 다녀왔습니다. 늘 그렇듯 상하이의 날씨는 습하고 어둡고 희미했습니다. 그러나 봄은 한국보다 먼저와 꽃은 화사하고 먼저 폈다 꽃 진 나무에는 연두색 푸른 잎이 싱싱했습니다.
오후에 나는 일천 칠백만 상해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공원 중의 하나인 홍커우 공원에 들어섰습니다. 그곳에는 모든 중국인들의 사랑을 모아 만들어진 루쉰의 동상과 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 사람입니다. 의사가 되려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가 절망하고 다시 절망을 딛고 민족을 깨우기 위해 작가가 된 중국인들의 영웅 바로 그 루쉰 말입니다. 그의 묘소가 있는 곳은 일제가 상하이사변을 만들어 상해를 점령한 후 전승기념식을 하던 바로 그 자리입니다.
1932년 4월 29일 그때 그 자리에 영원히 잊지 못할 한 한국인이 역사에 등장합니다. 그는 당시 25살 꽃다운 청년이었습니다. 강보에 싸인 두 아들을 가진 새파랗게 젊은 아비였습니다.
아침 11시 40분 일본 국가가 울리고 모든 사람들이 일장기를 향하여 부동자세를 취할 때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 청년이 들고 있던 도시락이 단상을 향해 던져졌습니다. 세상을 뒤엎는 폭음과 함께 점령군 사령관 시라카와가 쓰러지고 일본군 수뇌부들이 그 자리에 엎어졌습니다.
청년은 그 자리에서 잡혔고, 그해 겨울을 넘기지 못하고 순국했습니다. 홍커우 공원에는 그 날의 역사가 돌에 새겨져 루쉰의 동상과 함께 나란히 서 있습니다. 김구선생은 이날 아침 이 청년과 함께 아침밥을 드셨는데, ‘마치 농부가 밭으로 나가가기 전에 밥을 그득 먹는 것과 같았다’며 그 태연자약함을 칭찬했습니다.
숲이 우거진 공원의 심장부에는 ‘매정’(梅亭)이라고 현판이 붙어있는 아름다운 한국식 정자가 서있고 그 안에는 이 청년을 기념하기 위한 기념물들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나는 이 기념관을 관리하는 한 젊은 중국여인이 서투른 한국어로 이 청년을 소개하는 것을 남다른 감동으로 들었습니다.
청년이 어머니에게 남긴 편지를 서툴지만 또렷또렷하게 읽어가는 이국 여인의 어투에서 그 당시 좌절한 중국인들에게 투지와 의기를 안겨준 한 한국 청년에 대한 애정과 존경심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때 ‘중국의 100만 군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고 칭송해 마지않았으니까요.
사람들은 농담 삼아 세계의 건설장비들의 1/3이 상하이에 와 있다고 합니다. 21세기에는 ‘얼른 중국어를 배워 상하이로 달려가야한다’ 라고 이구동성으로 외칠 만큼 천지개벽을 하듯 변해버린 상하이의 심장에서 영원히 아름다운 25살의 한국인 청년 윤봉길을 만나고 돌아왔습니다. 4월이 시작 하자마자 ‘매헌’이라 불리는 이 청년을 보고 왔습니다. 꽃 같은 청년 얼굴 보고 왔습니다.
조만간 시간을 내어 잠시 상하이에 한 번 다녀오세요. 처음도 좋고 두 번째도 좋고 세 번째도 좋습니다. 세계 건축물들의 갤러리가 되어 버린 듯 21세기 최고의 도시 중 하나로 부상해가는 거대한 상하이 속에서 나는 한국의 흔적과 자취 그리고 가능성을 보고 왔습니다. '충분히 해볼 수 있다’는 힘을 느끼고 돌아 왔습니다.
여행은 우리를 용감하게 합니다. 지혜롭게 하고 보지 못하던 것을 보게 하고 대안을 찾아 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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