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 조회 수 2976
- 댓글 수 4
- 추천 수 0
4
소년은 세 번째 잎을 보면서 자신의 꿈을 상상했다. 한달 전 가족과 함께 식탁에서 밥을 먹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아빠의 얼굴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하지만, 소년은 뿌꼬 아저씨가 있어서 더 이상 외롭지 않았다. 문득 소년은
뿌꼬 아저씨가 어떻게 지구에 왔는지 궁금했다.
"아저씨는 무엇을 타고 지구에 왔어요?"
"조금 전 바람에 날려간 씨앗을 타고 왔단다"
"말도 안돼, 아저씨는 이렇게 큰 데 어떻게 씨앗을 타요"
소년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주인공
앨리스의 키가 커졌다 줄었다, 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앨리스가
아무리 작아져도 7cm였는데, 씨앗보다 작아진 뿌꼬 아저씨의
모습은 도무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우리는 아주 작은 먼지일수도 있고 작은 물방울 일수도 있어. 보는 사람이 어떤 마음인지에 따라서
우리 모습은 변화하지. 어린 아이의 마음으로 바라보면 언제든 줄었다가 커졌다가 할 수 있어. 하지만 욕심 많은 인간들이 바라보면 더러운 똥을 푸는 똥쟁이로 밖에 보이지 않아. 지구의 씨앗이 처음 우리 행성에 왔을 때 씨앗은 가장 먼저 나를 만났단다"
"조금 전 제가 씨앗을 만졌을 때의 느낌과 같았어요?"
"그래 그 느낌이었어, 아주 따뜻했지. 처음엔 낯설어서
날개를 떨고 있었는데, 마음으로 씨앗을 바라봐주자, 조금씩
온기가 느껴지기 시작했어. 그리고 씨앗도 나를 바라보자, 어느새
난 씨앗만큼 작아져 있었어. 어쩌면 바라보는 생명과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인지도 모르겠어"
소년은 뿌꼬 아저씨의 몸이 점점 작아지고 있는 것을 느꼈다. 자신보다 작아지고 있었다. 조금 전 보았던 뿌꼬 아저씨의 모습이 아닌 소년 또래의 얼굴로 변해갔다.
"뿌꼬 아저씨! 키가 작아졌어요, 저 처럼 말이예요"
"이제 씨앗보다 작아진 이유를 알겠지,그리고 네가 나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줘서 하나가 된 거야, 이 나무처럼 말이지"
"그럼, 지구에 함께 타고 온 씨앗이 여기 서 있는 큰 나무가 된 거예요?"
"그렇단다, 이제 그냥 뿌꼬라고 불러주렴, 그게 편할
것 같아"
소년은 모든 것이 신기했다.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 손가락으로
어디든 꼬집고 싶었다. 아니면 초록 정원을 온 몸으로 구르고 싶었다.
"뿌꼬 뿌꼬 뿌꼬야"
소년은 친구들이 놀렸던 "똥꼬 아저씨"라는
단어가 떠올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뿌꼬도 소년의 마음을 알았는지 함께 웃었다.
"뿌꼬, 처음 지구에 도착했을 때 어떤 느낌이었어?"
"지구에 왔을 때 난 무서웠어, 처음 도착한 곳이 도시였거든 매연과 소음으로 가득해서 숨쉬기
조차 힘들었어. 씨앗이 겨우 힘을 내서 공원으로 데려다 주었는데, 도착하자마자
씨앗과 나는 온 몸에 힘이 빠져나가 버렸지. 죽을 것만 같았어"
소년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귀를 쫑긋 세웠다.
"공원 벤치에 누워 마지막 잠이라고 생각하고 눈을 감을 때였어, 하늘에서 무언가 떨어졌어. 빗물 방울이 나를 깨운 거야. 나는 천천히 일어나서 빗물이 온몸으로
흘러 들어가게 했어. 피곤함이 사라질 때까지 몸 깊숙한 곳까지 빗물을 빨아들였지. 점점 힘을 되찾아가자, 키도 조금씩 커지는 걸 느꼈어. 새로운 생명을 얻은 것 같았어"
"그럼,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된 거야? 너의 특별한 여행을 계속 이야기 해줘."
소년은 자신이 뿌꼬가 된 것처럼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소년의 눈에는 뿌꼬가 긴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영웅처럼 보였다. 마치 그 여행을 함께 다녀온 동료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여행의 출발점에 자신이 함께 하고 있다는 가슴설렘이 느껴졌다. 뿌꼬의 목소리가 낯설지가 않고 너무 생생해서 소년은 이미 그의 이야기에 빠져들어가 버렸다. 뿌꼬는 호흡 가다듬고 그 동안 지구에서 겪었던 이야기를 풀어 놓기 시작했다.
5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어, 벤치 옆에 서 있던 나무가 속삭이는 것 같았어"
뿌꼬의 모든 감각이 이전처럼 돌아오면서 그 목소리는 더 또렷하게 들려왔다. 뿌꼬는 나무 가까이
마술처럼 끌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나무에 가까이 다가갈 수록 따뜻한 느낌이었다. 지구에 와서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낯선 곳에 와서 많이 힘들었지. 나도 매일 이 비를 기다리곤 했어. 이런 숨막힘이 이제는 일상이 되어버렸어. 넌 이런 도시가 아닌 더
나은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렴. 내가 주는 씨앗을 가지고 가면 그 곳을 안내해 줄 거야."
나무는 자신의 씨앗을 뿌꼬의 손 위에 올려주었다. 그리고, 나무는
뿌꼬의 또 다른 씨앗이 환한 불빛을 내며 두근거리는 모습을 보았다. 나무는 다시 말했다.
"이 씨앗은 어디에서 가지고 왔니? 오래 전, 같은
나무에서 함께 지낸 씨앗이 틀림없어. 난 그 기운을 느낄 수 있단다.
분명 나의 씨앗과는 다른 힘이야. 지금까지 느낄 수 없었던 신비한 느낌이란다. "
"난 뿌꼬라고 해. 내가 있는 먼 행성까지 이 씨앗이 찾아 왔다면 믿을 수 있겠니?"
나무는 뿌꼬의 얼굴을 자세히 들여다 보았다.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인간들과는 다른 내면을
가지고 있었다. 나무는 뿌꼬의 운명을 느낄 수 있었다. 한참
시간이 흐른 뒤에 나무는 말했다.
"뿌꼬, 너는 앞으로 아주 특별한 여행을 하게 될 거야. 너는
인간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거란다. 그건 네가 너의 꿈을 잊지 않고 굳게 믿기 때문이지. 여행 중에 어려운 순간이 와도 실망할 필요는 없어, 극복해 갈수록
너의 꿈은 점점 커져 갈 거야. 아무리 어려운 시련도 너를 막지 못할 거란다. 네 안에는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이 있기 때문이야. 인간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르지"
나무는 자신이 준 씨앗을 가리키며 이어서 말했다.
"위기의 순간이나 도움의 순간이 왔을 때, 두 씨앗은 환한 빛을 내며 두근거릴 거야. 그 순간, 너는 내면에서 들리는 목소리에 귀를 기울려야 해. 그 느낌이 너를 올바른 길로 안내해 줄 테니까. 그리고, 두 씨앗을 손에 쥐고 기도를 해보렴. 네 소원을 이뤄줄 거야.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게 있어, 단 두 번만 사용할 수 있어. 그 이후에는 평범한 씨앗으로 돌아갈 거야. 네 꿈은 언제나 너와
함께 할 거야. 무엇보다도 네 가슴에 품은 사랑이 큰 힘이 되어 줄 거야"
뿌꼬는 고개를 끄떡이며 말했다.
"고마워 나무야, 포기하고 돌아가려 했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줘서 말이야. 잊지 않고 다시 널 보러 올께"
"저기 똥 푸는 아저씨가 보이지, 빗물과 함께 똥차를 타고 가렴, 그리고 깨끗한 공기가 느껴지는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는 거야. 그럼
그 나무는 자라서 내가 될 테니까"
뿌꼬는 함께 타고 온 씨앗과 나무에게 건네 받은 씨앗을 주머니에 넣고는 빗물을 타고 똥차 안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272 | 쌀과자#31_마음의 근력 [1] | 서연 | 2012.12.03 | 2633 |
3271 | 공자도 공부가 부족한 자로를 사랑했다네 [1] | ![]() | 2012.12.03 | 5577 |
3270 | 알려지지 않은 신 5 [1] | 레몬 | 2012.12.03 | 2577 |
» | 꿈쟁이 뿌꼬 #4 [4] | 한젤리타 | 2012.12.03 | 2976 |
3268 | 알려지지 않은 신 4 [1] | 레몬 | 2012.11.28 | 2440 |
3267 | 알려지지 않은 신 3 | 레몬 | 2012.11.27 | 2215 |
3266 | 내가 사랑하는 것들 100가지 [3] | 콩두 | 2012.11.26 | 5582 |
3265 | 다시 사랑한다 말 할까 | 장재용 | 2012.11.26 | 2426 |
3264 | 숫자가 신이 되는 사회 | 세린 | 2012.11.26 | 2423 |
3263 | 예지는 시간을 넘어선 것이다 | ![]() | 2012.11.26 | 2162 |
3262 | 쌀과자#30_선택그리고 리스크 | 서연 | 2012.11.26 | 2625 |
3261 | 국민을 향한 커뮤니케이션 : TV토론 | 샐리올리브 | 2012.11.26 | 2069 |
3260 | 진정한 자아의 발견 [1] | 학이시습 | 2012.11.26 | 3568 |
3259 | 꿈쟁이 뿌꼬 #3 [2] | 한젤리타 | 2012.11.26 | 2565 |
3258 | 완벽주의 유감 [2] | 이희석 | 2012.11.20 | 4043 |
3257 |
2013년 산소통 프로젝트 ![]() | 샐리올리브 | 2012.11.19 | 2850 |
3256 | 우산을 챙길까? 말까? (확률론) [4] [3] | 세린 | 2012.11.19 | 3342 |
3255 | 천 가지 자기를 사랑하는 방법 [1] | 콩두 | 2012.11.19 | 3199 |
3254 | 늦가을 만보 [5] | 장재용 | 2012.11.19 | 5459 |
3253 | “대화가 있는 식탁” [1] | 학이시습 | 2012.11.19 | 50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