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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3일 11시 09분 등록

커피한잔 사 줄까요?”

내려오세요

 

2 51이다. 3 오늘 시장이 마감이다. 시간대를 맞춰서 걸려온 전화이다. 오전에 몸살기운이 있다고 하니 지나는 길에 들렀을 게다. 근래에 고객상담 건으로 자주 통화를 하다보니 나의 근황을 제일 잘 아는 편인 친구이다. 주말에 겨울살림준비를 했다. 절인 배추를 사면 일이 수월해지지만 굳이 배추를 사서 절여서 김장을 한다. 누군가를 믿지 못하는 탓도 있고, 경제적으로도 직접하는 편이 낫다. 또 다른 이유는 김치의 기본은 좋은 재료라는 나의 생각이 늘 수고를 더하게 만든다. 큰아이가 많이 도와주었음에도 하룻밤을 자고 나니 광배근부위가 아프다. 어쩌다 쓰는 근육은 자신이 그곳에 있었음을 알려준다.

 

나의 사무실은 9, 1층 탐에서 기다리겠노라고 했다. 좀 쉴까 하던 차에 온 전화라 펼쳐놓았던 노트와 하루 종일 벌려놓은 책상을 대충 정리하고 내려갔다. 오후3의 카페는 빈자리가 없었다. 흡연을 위한 자리도 금연을 위한 자리도 모두 한자리씩 차지하고 앉아있는 사람들 틈에 나를 기다리는 사람도 앉아있다. 커피가 뜨거운 온도는 가셨다. 따끈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낮은 온도일 게다.  

 

상담중인 고객을 화제로 이야기를 하던 중이었다.

자금중개수수료는 통상 얼마나 받나요?” 처음에는 잘 못 알아들었다. “무슨 중개수수료?”

자금을 중개해주고 받는 수수료말입니다.” 앞뒤의 정황을 생각해보니 무슨 질문을 하는지 이해가 되었다. 질문의 요지는 몇 년전에 우리가 투자했던 주식을 중개하고 담당직원A가 얼마만큼의 수수료를 챙겼을까 하는 말이었다.

 

직원 A는 내가 근무했던 전 회사에서 부하직원으로 데리고 있던 사람이다. A를 그 회사에 입사시킨 것도 나였다. 증권회사는 지점장이 같이 근무할 직원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이다. 나름의 기준으로 심사 숙고하여 입사시킨 직원이었다. B A가 나와 함께 일하던 무렵에 만난 사람이다. 서로의 고객을 공유함이 도움이 되었기에 비즈니스파트너로 일하는 중이다.

 

같은 해에 만난 두 사람은 일의 재미를 알게 해 준 사람들이다. 그 해 연말 세 사람은 좋은 인연을 축하하며 저녁을 함께했었다.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그것과 비례하여 성과도 좋았다. 뜰 앞에 일을 축하하는 사람이 있을 때 대문 앞에는 불행을 위문하려는 사람이 와 있는 법이라고 했던가. 재난과 행복은 바로 이웃하고 있어서 그것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나타날지 알 수가 없는 일이다. 믿음의 크기만큼 실패의 크기는 비례했다. 그것을 바닥의 경험이라고 하면 맞을까? 아니다. 아직 살면서 어떤 실패를 경험할지 모르니 단정하기는 힘들다. 현재까지라고 한정 짓는다면 가장 커다란 실패이지 싶다. 그리고 그 후유증이다. 벌써 몇 년이 지난 일이건만 아직 정리되지 못한 부분이 남아있다. 다른 일이 생기면 또다시 그 일이 생각나는 모양이다. 사람의 마음은 쟁반의 물과 같다고 했다. 바르게 놓고 움직이지 않게 한다면 지저분하고 탁한 것은 아래로 내려가고 맑고 밝은 것은 위에 있게 된다. 그러한 물에서는 수염과 눈썹까지도 비추어 보고 잔주름까지도 살필 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미풍이라도 불어오면 지저분하고 탁한 것이 아래편에서 움직이고, 맑고 밝은 것이 위편에서 어지러워져, 큰 형체조차도 올바르게 비추어 볼 수가 없게 된다.

 

무엇이 B의 쟁반을 흔들었을까. 몇 해가 지나오면서 다른 투자자들은 비슷한 종류의 이야기를 해오고 있었다. A가 고객의 자금을 투자하면서 커미션을 챙기지 않았겠느냐는 이야기였다. 당사자가 아닌 나로서는 어떤 이야기도 해 줄 수 없었지만 그 동안 내가 보아온 A는 그렇지 않았을 거라고 말하곤 했었다. 투자자의 수익을 위한 선택이었음을 의심치 않는다고 이야기해왔다. 그런데 오늘 B의 질문은 내게는 많이 의외였다. 몇 년 동안 한번도 하지 않던 이야기를 오늘 문득 하고 있는 것이다. B와 헤어지고 난 후 줄곧 내 머릿속은 복잡하였다. 나는 B와 같은 생각을 한번도 하지 않았나? 자문해본다. 해보지 않았다.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사람이면 자신의 투자자금이 모두 공중분해 되어버린 지금 충분히 해봄직한 생각이다. 함께 일한 동료직원이라는 명분과 또 내 손으로 들여놓은 사람에 대한 신뢰, 다른 하나는 그에 대한 신뢰상실은 나에 대한 신뢰의 상실이기도 해서일까?  모든 것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는 위치이다.

 

이제라도 한번 물어볼까? B와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의 대변자 자격으로. 아니면 진실을 물어볼 필요는 있으니까생각을 하다가 나는 생각을 접었다. 내 마음은 물어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A를 믿어주지 않더라도 그것이 나의 믿음까지 흔들지는 않았다.

 

증자는 아들 증원에게 이렇게 말한다.

 

물고기와 자라. 큰 자라 악어는 깊은 못도 얕다고 생각하고 그 곳에 다시 굴을 판다. 매와 솔개는 높은 산도 낮다고 생각하고 그 위에 다시 둥지를 만든다. 그런데 그것들이 잡히는 것은 반드시 먹는 미끼 때문이다. 그러므로 군자는 진실로 이익 때문에 의로움을 해치는 일이 없어야만 한다. 그러면 치욕스런 일이 닥칠 수가 없는 것이다<순자 김학주옮김 985쪽 을유문화사>

 

나와 A그리고 B 우리와 함께했던 투자자들 모두는 치명적인 미끼를 먹은 탓에 실패를 맛보았고 그리고 당시의 상황을 돌이키며 누군가를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얇디 얇은 마음의 쟁반을 흔들 때마다 마음속에 가라앉아있던 분별심들이 올라올 것이다. 속담에 흘러간 탄환은 움푹한 구덩이에서 멈춰지고, 근거 없는 말은 지혜 있는 사람에 의해 멈춰진다고 했다. 이 투자의 실패는 나에게서 멈추는 것이 맞겠다는 생각이 든다.

 

투자의 세계는 모든 상황이 종료되어봐야 그 결과를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함께하는 선택의 연속이다. 마음의 근력이 왠만해선 견뎌내기 힘든 것도 이 세계이다. 흔들어도 흔들리지 않는 호수와 같은 마음의 깊이도 필요하고, 그래서 동기부여가 되는 매력적인 세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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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03 23:32:43 *.194.37.13

저도 이번 노자를 읽으면서 인내와 수용에 대한

마음의 근력을 키웠습니다. 하지만 노자는 근력대신

물처럼 살라고 합니다. 그냥 흐르고 흘러서

모든 것을 포용하는 바다처럼 살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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