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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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을 키우는 마음
“애들아, 선생님 몸매 어때?”
나는 요즘 다이어트 중이다. 나의 지방세포들은 올해 1월부터 살금살금 활동을 시작하더니 몸무게를 무려 7kg나 늘려놨다. 10월 어느날,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 신발장 붙박이장에 붙어 있는 거울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나는 그 거울에 비친 피자 도우을 한 겹을 두른 듯 뚱뚱한 얼굴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 헬스 클럽에 바로 갔다. 마침 내가 회원인 헬스장에는 ‘6주 바디 체인지’라는 대회 참가자를 모집하고 있었다. 6주 동안 24번의 운동을 개인 트레이너와 함께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바로 참가자가 되겠다고 신용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리고 운동을 시작했다. 오늘은 운동 시작한지 4주째다. 몸에 변화가 조금 생겼다. 큰 변화는 아니지만 몸이 조금 작아지고 턱선이 생겼다. 매번 다이어트 하겠다고 학생들에게 선언하곤 했었는데, 이번엔 진짜로 열심히 하고 있다. 하지만 노력한 만큼의 성과가 잘 나타나지 않는다. 식습관을 개선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데, 살이 쑥쑥 빠지지 않고 느릿느릿 빠진다. 그래도 4주 전보다는 달라진 것 같아 학생들에게 물어봤다. 어떤 친구는 살이 좀 빠진 것 같다고 이야기 해주고, 어떤 학생은 매일 봐서 잘 모르겠다고 하고, 어떤 아이는 옆반 친구가 그러는데 선생님 살 빠져보인다고 했다며 말을 전한다. 그때 유정이가 질문을 한다.
“선생님, 근데 왜 살 빼시려고 해요? 선생님 살 빼시면 왠지 이상할 것 같아요. 선생님만의 매력이 없어진 달까?”
유정이처럼 반응하는 학생들이 꽤 있다. 굳이 살 빼지 않아도 되는데 힘들게 왜 고생하냐고 물어보는 것이다. 나는 운동 이유를 이야기 했다.
“건강해지고 싶고, 예뻐지고 싶어서. 그리고 무엇보다 살이 찌니까 일에 능률도 안 오르고, 체력이 급격히 떨어졌거든. 체력을 비축해서 선생님이 하고 싶은 것들 잘 해내고 싶어. 지금은 운동을 통해 살도 빼고 체력도 기르는 중이지. 밑바탕을 다지는 중이라고 해야 할까? 너희들도 체력을 잘 길러놔야 자신이 원하는 분야에서 오래 활동할 수 있단다. 성공하는 여성들을 잘 보면 모두 운동을 꼭 한다고 하더라.”
유정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아, 꼭 몸매가 예뻐지기 위해서만은 아니네요? 우리들은 무조건 굶어서 빼는데, 선생님은 꽤 과학적으로 하는 것 같기도 해요.”
내가 우스게 소리로 몸매 관리가 첫 번째 이유라고 덧붙였다. 그나저나 지금은 학생들과 수학 공부를 하기
엔 그야말로 능률이 오르지 않는 7교시다. 모두가 지쳤다. 학생들도 지쳤고, 나도 지쳤다. 일주일에 한 번은 수학이 7교시에 있기 때문에 우린 학기 초에 약속 하나를 했다. 7교시에는 수학 공부 말고 다른 이야기를 하거나 친구들의 발표를 듣기로 한 약속이다.
유정이가 나에게 왜 살을 빼냐고, 뭐하러 힘들게 운동하냐고 물었던 것을 이어 오늘 우리의 7교시 주제를 정해본다. 나는 나의 미래를 위해 기초적인 체력을 기르고,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한다. 그리고 나 스스로를 아름답다고 여기고 싶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중학교 학생들이 공부하는 것이 내가 운동하는 것과 비슷한 원리가 아닐까? 나는 주제를 던져본다.
“애들아, 근데 너희는 왜 공부하니?”
학생들이 약간 화가 난 어조로 자신들의 의견을 내밷는다. 유나가 불만 가득한 얼굴로 말한다.
“아, 그러니까요. 도대체 왜 공부하는지 모르겠어요. 전 하기 싫은데 엄마가 자꾸 하래요.”
서연이가 맞장구 친다.
“공부하기 진짜 싫어요. 특히 왜 국어, 영어, 수학은 학원까지 다니면서 해야하는지, 지긋지긋해요. 좀 쉬고 싶어요.”
계속 듣고 있으면 끝도 없다. 좋은 이야기는 나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학생들을 조금 진정시키고 질문을 던진다.
“애들아, 너희 성공하고 싶니?”
“네!”
“성공의 의미가 아주 다양하겠지만 우선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이야기 해보도록 하고……. 그럼 애들아, 너희들 키가 큰 아이들의 공통점이 뭔줄 아니?”
뜬금 없는 질문이었지만 누군가 대답한다.
“발이 커요!”
“그렇지, 발이 크지!”
만약에 키가 큰 사람의 발이 작으면 그 사람은 몸이 불균형할 것 같다. 발이 먼저 커야 키가 클 때 균형을 잘 잡아 클 수 있지 않을까? 상상해보자. 발이 아주 작은 사람이 키가 크다면 그 큰 키를 어떻게 지탱할 수 있을까? 무게에 눌려 발이 늘 피곤할 수 있다. 큰 키를 잘 지탱해주려면 키에 걸맞게 발이 커줘야 한다.
“키가 크기 전에 발이 커져야 키가 쑥쑥 잘 자라 수 있고, 키가 커도 발이 피로하지 않고 잘 지탱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니? 그 원리와 마찬가지로 너희는 지금 발이 크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게 아닐까? 너희 각자가 자신의 분량 만큼 잘커야 그 다음에 성공을 향해 쭉쭉 뻗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너희 생각은 어때?”
서연이가 말한다.
“뭐, 그렇게 생각할 수는 있겠지만, 그래도 적당히 발을 키워야지 너무 키우면 기형이 될 것 같아요. 솔직히 저희는 너무 발만 키우고 있는 거 아닐까요? 어차피 좋은 대학 나와도 취업도 못한다면서요. 성공할 확률이 적은데 발만 키우면 뭐해요?”
서연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성공에 대해 학생들이 각자 정의해 본 시간을 가진 후 이 이야기를 꺼냈으면 좀 다른 반응이 나왔을 텐데, 이미 시작한 주제이니 지금 학생들이 가진 패러다임에서 좋은 가치, 좋은 의견들을 모아보는 것이 최선이다.
“맞아. 서연이의 말에 일리가 있지. 물론 성공한다는 것이 좋은 대학, 좋은 직장에 취업이라고 단정할 수 없지만 인간에게 밥벌이란 중요한 문제이고, 기껏 발을 키워 좋은 대학에 갔는데, 취업을 할 수 없는 구조라면 절망적인 상황이라고 생각해. 그런데 애들아 오늘의 주제를 조금 좁혀볼까? 성공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 보다 공부를 하는 우리의 마음, 공부를 할 수 있게 하는 동기, 이유 등에 초점 맞춰보자. 어때?”
“네, 뭐 좋아요.”
서연이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했다. 다른 학생들도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이번주에 맹자(孟子)를 읽었어. 너희들 맹자 알지?”
“네. 들어봤어요. 공자 아저씨 같은 분이죠?”
“응. 근데 그분의 글에서 이런 문장이 나오더라.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전문적인 기술을 배우는 것은 장성해서 그것을 실행하고자 함입니다.’라고 말이야. 이것을 우리에게 맞춰 패러디 해볼까?”
유나가 말을 잇는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공부를 하는 것은 장성해서 성공하기 위함이다.”
나는 다른 학생들의 의견을 기다린다. 평소 조용한 지민이가 말한다.
“사람들이 어려서부터 여러 가지를 배우며 기초를 다지는 것은 장성해서 자신의 분야에 잘 적용하기 위함이다.”
학생이 패러디 했다고 하기엔 어른스럽고, 통찰력이 있다. 나는 유나와 지민이를 칭찬하면서 맹자 문장을 우리 식으로 풀이해본다.
우리가 지금 이렇게 공부하고 있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맹자의 문장을 빌려와서 이야기 해본다면 성인이 되어 자기가 일하고 싶은 분야에서 할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특히 현 교육과정은 학생들에게 국민이 배워야 할 기본적인 지식과 교양을 가르치도록 교과목이 구성되어 있다. 결국 다 써먹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당장은 직접적으로, 눈에 보이게 배운 교과목 내용이 실생활에 활용되지 않는 것 같지만, 키가 크기 전에 발이 크는 것처럼 나중에 지금 배운 내용들이 삶에 활용될 수 있다. 어떤 형태로든 말이다.
학생들에게 공부가 스스로를 돕는 것이라고 알려주려는 마음에서 시작하게 된 이야기다. 그런데 역시 학생들에게 주어진 과도한 공부량, 시험 스트레스는 해결해주지 못했다. 이런 의견이 나왔다.
“근데요, 선생님! 저희는 하고 싶은 공부를 하는 것이 아니라 시키는 걸 하기 때문에 공부가 더 하기 싫은 것 같아요. 좋아하는 과목이 없는 학생은 어떻게 해요? 또 좋아하는 과목이 있어도 그것만 할 수도 없고 주요과목이라는 게 있어서 그 성적이 좋아야 선생님이 말하는 발을 잘 키운게 되는 사회잖아요. 저희는 그게 너무 싫어요. 솔직히 힘들어요.”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학생들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싶었는데, 오히려 뻔한 이야기를 들려줬던 건 아닌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얼른 맹자에서 봤던 마음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해서 들려줬다.
“선생님이 오늘 맹자님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되네. 수업 끝나는 종 치기 전에 하나 더 들려줄게. 듣고 각자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맹자 선생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읽어 줄게. 들어봐. ‘바둑을 두는 것이 비록 작은 기술이지만, 마음을 오로지하고 뜻을 다하지 않으면 그것을 터득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혁추는 온 나라에서 바둑을 가장 잘 두는 자이다. 만일 혁추로 하여금 두 사람에게 바둑을 가르치게 하였는데, 한 사람은 마음과 뜻을 다하여 오직 혁추의 말을 듣고, 한 사람은 비록 듣기는 하나 마음 한편에는 백조가 날아오면 활과 주살을 당겨 쏠 것을 생각한다면, 비록 더불어 배운다 하더라도 [그의 성적은] 다른 사람만 못할 것이다. 이것은 그의 총명함이 남보다 못하기 때문인가? ‘그렇지 않다’고 할 것이다.’ 다른 생각을 했던 이는 총명함이 남보다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마음을 다하지 않았기 때문에 바둑을 잘 배울 수 없었을 거야. 청소년기가 공부해야 하는 시기이고, 너희들이 커서 하고자 하는 일을 위한 기초작업을 해야 하는 시기라면 너희는 어떤 마음으로 지금 이 시기를 보내겠니? 주어진 공부를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지만 우리에게 주어진 이 환경과 상황 안에서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스스로를 위하는 길이 될까? 바둑을 배운 두 사람의 마음을 잘 생각해보고 선택해보자. 그리고 다음주 7교시에 또 이야기 나눠보자.”
정답은 없다. 하지만 각자에게 맞는 정답을 스스로 내리길 바란다. 각자에게 맞는 좋은 답을 얻을 수 있길, 공부하는 이유를 스스로 찾을 수 있길 바라본다. 이 답을 얻게 된다면 수학을 공부하는 이유도 당연히 알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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