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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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사고오류
정수리가 뜨끈뜨끈하다. 이것 땜에 탈모 생기면 나만 손해다. 어제 있었던 일로 새벽에 이런다. 동생은 옆방에서 자고 있다. 뒷끝 상당한 나는 벌렁벌렁한 심장을 꼭꼭 누르고 있다. 쓰레기를 묶어내다가 플라스틱들을 골라내야했다. 최근 며칠동안 과중한 일정으로 귀가 따꼼거릴 만큼 피곤했던 나는 폭발했다. 잔소리를 설사했다. 요플레통이 착착 눌려져 있던 가스통에 불을 확 싸질렀다고 봐야 한다. 그 불에 내가 데였다. 동생은 화염방사기를 어깨에 올리고 나를 향해 쏘았거든. 나는 우격다짐에 아주 취약하다. 그는 내가 화를 냈다는 것 자체에 반응하지 내용 자체는 듣지도 않는 것 같다. 찔끔거린 뒤에 내 방에서 혼자 생각해본다. 전남대 심리학과 홍성자 교수가 번역한 <자기를 사랑하기> 책에서는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자신에 대해 정확히 보길 요구한다. 그리고 일어난 일에 대해 현실적으로 해석하기를 요구한다. 언젠가 합리적 정서치료, 자동적 사고, 이런 키워드로 만난 것들이 주루룩 나온다. 자존감이 이런 것들과 어떤 영향이 있는걸까? 그 책에서는 자존감이 낮은 이들은 자신에게 불리한 방식으로 일을 해석하고, 자신에게 부정적인 점을 확대해서 받아들인다 했다. 시도해 본다.
요플레통처럼 끈적거리는 것을 재활용할 때는 한 번 헹궈야한다. 안 그러면 플라스틱 통 안에서 남은 음식이 부푼다. 통 안 이물질은 재활용률을 떨어뜨리는 주 원인이다. 오렌지쥬스병, 맥주병까지 내가 한 번씩 물로 헹궈서 엎어놓는 줄 동생들은 모른다. 보쌈과 족발을 시켜먹은 포장용기도 그냥 쓰레기통에 쑤셔져 있는 걸 내가 꺼내서 재활용통에 넣는다. 여러번 그랬다. 여름날 설거지를 담그지 말고 바로 자기 그릇은 자기가 설거지를 하면 좋겠다 두 가지에 대해 잔소리를 한다. 내 딴에는 아주 조심스럽게 눈치 잔뜩 봐서 한다. 지키지 않았지. 밥하는데는 30분 걸리는데 그릇 두개 설거지는 5분이면 될 것 같은데 일부러 어기는 모습에 화를 내고 있다. 저보다 나이 훨씬 많은 누이가 하는 잔소리인데도 듣기 싫어하고 그것을 ‘통제받음’이라고 해석하나?, ‘나는 남자다’라는 가부장제까지 끌어다대며 부아를 냈다. 정말 이해가 안된다. 어째서 손위 누이한테도 일단 이겨야 하는 건지. 어릴 때는 싸우면 일단 코피를 내야 한다. 그리고 절대로 울면 안된다. 울면 진다. 그런데 나는 너무 잘 운다. 그래서 내가 졌다고 저 놈이 생각할까봐 분하다. 화를 내면 목적은 더 달성할 수가 없다. 컴다운 컴다운.
요 정도로는 가라앉지 않는다. 아씨, 폐기용 쓰레기통에 그대로 넣어 놓은 걸 내가 고무장갑 끼고 다시 꺼내서 씻어서 재활용통에 넣는데, 어떨 때는 작은 벌레들이 꾸물거리고 있어서 진저리를 친다. 나는 그것을 할 때마다 내가 하녀가 된 느낌, 정확히는 하녀취급 받는 느낌이 든다. 동생은 그런 내 모습을 보고 ‘안하면 되지 화는 왜 내냐’고 한다. 근데 안할수는 없다. 동네방네 당연한 상식을 안하려고 하니 참 부아가 난다. 의사소통 방식의 문제일까? 도대체 뭐가 문제지?
밑줄 그은 부분은 타이핑하면서 ‘사실’과 ‘해석’을 분리한 거다. 밑줄은 모두 사실이 아니라 나의 해석이다. 일부러 어기는 건지, ‘나는 남자다’는 생각에서 그러는 건지, 나를 하녀취급하는 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내가 그렇게 해석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해서 화가 안나면 되려 이상한 일이겠다.
여자일과 남자일이 구분되고 집안 일은 순전히 여자일이었던 우리립의 성장과정을 볼 때 아들들은, 특히 나와 싸운 동생은 집안일에 익숙치가 않다. 환경운동하는 절을 다니지도 않는다. 정보와 동의 정도가 다르다. 당연한 행동이다. 시간이 필요하고, 인내와 애정을 가진 조언자가 필요하다. 환경을 생각하기 전에 청소나 잘해라, 누나, 제발 환경을 생각해서 식물이나 동물을 키우지 마라, 죽이려고 키우냐는 말을 듣는 수준이다. 화를 내는 것은 중간단계를 생략하고 바로 결과를 얻으려는 조급증이다. 어제 나는 ‘나쁜 놈’이라고 해서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번거롭지만 다음 세대를 위해서, 또 이게 다 돈이니까 재활용을 노력해보자’는 식으로 말하면 '내가 니네 학생이냐? 답답해, 가르치지 마라'는 반발을 일으킬 거다. 잔소리 시뮬레이션 하는 나도 답답하다. 누가 나한테 저렇게 말하면 나는 잘난 척 하는 이의 말씀을 우이독경 모드로 통째로 흘려 들을 거다. 장자옹께옵서 했다는 말이 생각나 다시 펴본다.
그대가 다만 무위로 처신하면 상대는 저절로 변화됩니다.
그대의 형체를 버리면, 그대의 총명을 뱉어내면
뒤섞인 채 상대조차도 더불어 잊어버리면
자연의 기와 크게 합치될 것입니다.
마음과 정신을 풀고 까마득히 정신을 비운다면
만물은 무성하게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갑니다.
각자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서도 알지 못한 채
혼돈한 상태에서 평생토로 그 근원을 떠나지 않습니다.
만일 그것을 인식하게 되면 곧 본질에서 벗어납니다.
그 이름을 묻지 않고 그 실정을 엿보지 않는다면
만물은 원래 저절로 자라납니다. (외편 11. 재유)
행동이 크게 웅변하니 긴 말 필요없고 '너나 잘 하시는' 것이 지혜로운 접근이라는군. 골고루, 꼭꼭 씹어서 싹싹 1일 1문을 먹으라고 하셨다. 일용할 1문장이 내 마음을 진화하는 응급 소화기 노릇을 해 주었다. 그런데 어째서 자기를 손해나게, 모욕하는, 못나보이게 치장하는 말, 생각이 가슴 안에 들어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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