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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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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일 22시 41분 등록
강풀의 순정만화 3편 “그대를 사랑합니다”를 보다가 줄줄 울었습니다. 김만석 - 76세, 우유배달, 송씨 - 77세, 파지수거, 장군봉 - 79세, 주차관리... 내일 당장 죽어도 하나도 이상할 게 없는 나이에 처한 사람들의 ‘애틋한 마음’에 대한 만화인데요, 우리 모두 깊은 곳에 간직하고 있을 순정성을 이끌어내는 작가의 공감능력에 깜짝 놀랐습니다.


“니미 씨부럴”을 입에 달고사는, 목소리 크고 행동거칠지만, 전형적인 외강내유형인 김만석은 힘겹게 살아온 송씨에게 반응하고, 이름을 지어줍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표현되어야 한다고,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라는 손녀딸에게 김만석이 하는 말,


“우리 나이엔 당신은 아내밖에 없어. 당신이란 말은 못 쓰지... 내 먼저간 당신에게 예의를 지켜야지”


그래서 송씨는 ‘그대’가 됩니다. 보청기를 안해서 정확하게 들리지는 않지만, 자신을 걱정해주는 것이 분명한 송씨 앞에서 그는 말합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바로 그 순간, 못박힌듯 서 있는 김만석과 송씨의 배경에서 출근하던 남녀들이 날아오르며 춤을 춥니다. 내 마음도 따라서 날아오릅니다. 환희에 찬 교향곡이 들려오는 것같습니다. 한 컷의 만화가 이토록 많은 것을 말해주다니요.


만화라는 장르가 다른 어떤 것보다 효율적이라는 증거는 여기저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순정만화 1편에서 하경이 전 애인과 자주 가던 벤치에 앉아있는 장면, 어느날 그녀는 문득 깨닫습니다. 자기가 기다리는 것은 떠나간 연인이 아니고, 지금 다가오고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을요. 이렇게 미묘한 감정이, 전 애인의 모습 한 컷, 조금씩 흐려지는 실루엣, 그리고 그 자리를 차지하는 새로운 연인의 모습으로 충분히 전달됩니다.


길고 지루한 설명과 교훈을 싫어하고, 짧고도 분명한 이미지를 좋아하는 청소년에게 만화가 참으로 유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3편에서는 어르신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표현의 간극이 더러 느껴지지만, 1편에서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젊은이들의 정서와 언어로 진솔한 사랑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사랑의 교과서로 손색이 없습니다.


인물을 등장시키고 연결하는 능란한 기술, 적절한 비속어와 궁시렁거리는 속마음으로 표현되는 유머감각, 돌멩이 하나에도 역할을 부여하는 디테일, 무엇보다도 스토리텔링 능력이 뛰어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강풀에게서 돋보이는 것은, 사람이 사람을 생각하는 진정성은 누구의 마음도 움직이며, 그렇게 마음이 전달되는 환희의 순간이 우리 삶의 알맹이인 것을 잘 알고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 모두 사람을 그리워한다, 마음은 표현되어야 한다, 진실은 힘이 세다, 강풀은 그런 순정함을 이끌어내는데 성공했습니다.


의례적이고 표피적인 만남, 상투적인 대화, 돌아서면 잊어버리는 허황한 얼굴에 지칠 때면, 순정만화를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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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명석
2007.08.02 01:02:34 *.209.97.152
지난 주에 이어, 오늘도 메일을 발송하는 중에 프로그램이 멈춰버려 앞부분에 받는 분들에게는 두번씩 발송이 되었을겁니다. 미안합니다. 요즘은 세 시간이 넘게 걸릴 때도 있기 때문에 다시 시도하고 자러갑니다. 멈추지 말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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