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 조회 수 3357
  • 댓글 수 0
  • 추천 수 0
2007년 8월 10일 07시 24분 등록

쉰 살이 되던 해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세계를 떠돌아다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후 4년 째 나는 여행의 길이와 방식을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선택하여 다녀오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보름 정도 다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주일 정도 다녀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내와 함께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이와 또 어떤 때는 친구나 제자들과 함께하거나 또 어떤 때는 나 홀로 떠납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마음을 풀어 놓기 위해 섭니다. 그래서 여행을 ‘바람되기’라고 부릅니다. 그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곳 사람들이 되어 그곳에 갇히기 전에 얼른 그곳을 떠나 다른 곳을 거쳐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되돌아 와 다시 이곳 사람이 됩니다. 여행은 고착된 삶의 방식을 세척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들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이곳에서의 삶을 관찰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번 여행은 아주 좋았습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코펜하겐에서 반값 세일을 하는 이태리 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머리가 살짝 벗겨졌기 때문에 나는 머리털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래서 바람에 휙 넘어가는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털입니다. 아내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살짝 대머리를 감출 수 있는 좋은 모자를 보면 얼른 사주려고 합니다. 어쨌든 나는 그 모자를 쓰고 썬 글라스를 끼고 나머지 며칠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울 속의 나는 약간 건달 같아 보였습니다. 그게 내 맘에 쏙 들었어요. 난 좀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늘 그런 건달의 바람을 필요로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 안전 요원이 내게 모자를 벗어 속을 보여 달라 합니다. 그러면서 ‘모자 속에 토끼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요 ?“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토끼도 없고 비둘기도 없어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웃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지금 돌아와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내 허파 속에 신선한 자유의 바람을 가득 채워 넣어 둡니다. 종종 일상의 반복과 이곳에서의 방식이 나를 공격할 때 나는 내가 떠돌아 다녔던 산야와 다른 방식으로 축조된 도시의 건물 사이를 떠돌던 기류를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만들어 내는 그 바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웃게되고 부드러워 집니다. 그리고 기원하게 됩니다.

하나님 당신이 만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망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기울였던 모든 좋은 노력들을 작은 것들까지 기억해 주시고 그런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IP *.189.235.111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056 고인돌 [4] 제산 2018.05.14 812
4055 [일상에 스민 문학] 우리가 빚어내는 최고의 문학은- [5] 정재엽 2018.09.12 812
4054 [수요편지] 떠난 자리 [2] 장재용 2019.03.13 812
4053 돈과 시선과 관계되지 않은 자기만의 창조적인 일 [1] 어니언 2022.01.27 812
4052 목요편지 - 어머니의 자서전 [2] 운제 2018.04.19 813
4051 [금욜편지 37- 추신: 지난 10년 이야기를 마무리하며] [4] 수희향 2018.05.18 813
4050 가족처방전 – GMP를 기억하시나요? [2] 제산 2018.09.17 813
4049 따로또같이 프로젝트 - 화요편지, 가족의 정의 [1] 종종 2022.05.03 813
4048 [금욜편지 39- 신화속 휴먼유형- 헤라클레스형 1-자기고백] 수희향 2018.06.01 814
4047 “노을치맥” 한번 해보실래요? file [2] 차칸양 2018.07.03 814
4046 [금욜편지 62- 기질별 인생전환 로드맵- 1번 완벽주의자- 로드맵] 수희향 2018.11.09 814
4045 [자유학년제 인문독서] 30. 독서는 모든 것의 기본이다 2 제산 2019.07.15 814
4044 [화요편지]3주차 워크숍_내 안에서 가장 서럽게 울고 있는 그녀 file 아난다 2019.07.30 814
4043 [화요편지]필살기, 가장 잘 할 수 있는 차별적인 전문성 아난다 2020.03.10 814
4042 화요편지 -종종의 종종덕질, 나를 넘어 너에게 가기 위해 성장하는 기적 [2] 종종 2022.01.25 814
4041 화요편지 - 일요일밤에 코미디를 보는 이유 [2] 종종 2022.03.08 814
4040 백열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2기 나비들에게 [2] 재키제동 2017.07.14 815
4039 가상화폐에 투자해서는 안되는 3가지 이유(마지막편) [2] 차칸양 2018.02.13 815
4038 [금욜편지 92- 드라마와는 다른 현실속 관계] 수희향 2019.06.14 815
4037 [수요편지] 불안의 짐짝들에게 장재용 2019.10.23 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