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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10일 07시 24분 등록

쉰 살이 되던 해 일 년에 한 달 정도는 세계를 떠돌아다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후 4년 째 나는 여행의 길이와 방식을 그때그때 내키는 대로 선택하여 다녀오곤 했습니다. 어떤 때는 보름 정도 다녀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일주일 정도 다녀오기도 합니다. 어떤 때는 아내와 함께 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아이와 또 어떤 때는 친구나 제자들과 함께하거나 또 어떤 때는 나 홀로 떠납니다.

내가 여행을 떠나는 이유는 마음을 풀어 놓기 위해 섭니다. 그래서 여행을 ‘바람되기’라고 부릅니다. 그곳에서 그곳 사람들이 되어 보기도 하고, 그곳 사람들이 되어 그곳에 갇히기 전에 얼른 그곳을 떠나 다른 곳을 거쳐 오기도 합니다. 그리고 되돌아 와 다시 이곳 사람이 됩니다. 여행은 고착된 삶의 방식을 세척하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다른 세상 다른 방식의 삶들을 구경하고 다니면서 이곳에서의 삶을 관찰하는 힘을 얻게 됩니다.

이번 여행은 아주 좋았습니다. 여행이 끝나갈 무렵 나는 코펜하겐에서 반값 세일을 하는 이태리 모자를 하나 샀습니다. 머리가 살짝 벗겨졌기 때문에 나는 머리털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것 중의 하나는 그래서 바람에 휙 넘어가는 숱 많고 부드러운 머리털입니다. 아내는 그것을 알기 때문에 살짝 대머리를 감출 수 있는 좋은 모자를 보면 얼른 사주려고 합니다. 어쨌든 나는 그 모자를 쓰고 썬 글라스를 끼고 나머지 며칠을 보내게 되었는데, 거울 속의 나는 약간 건달 같아 보였습니다. 그게 내 맘에 쏙 들었어요. 난 좀 쓸데없이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늘 그런 건달의 바람을 필요로 합니다.

돌아오는 길에 공항 안전 요원이 내게 모자를 벗어 속을 보여 달라 합니다. 그러면서 ‘모자 속에 토끼가 들어 있는 것은 아니지요 ?“ 라고 물었습니다. 나는 ’토끼도 없고 비둘기도 없어요 ” 라고 대답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웃었습니다. 주위에 있는 사람들도 웃었습니다. 그렇게 여행을 끝내고 지금 돌아와 있습니다.

여행을 통해 나는 내 허파 속에 신선한 자유의 바람을 가득 채워 넣어 둡니다. 종종 일상의 반복과 이곳에서의 방식이 나를 공격할 때 나는 내가 떠돌아 다녔던 산야와 다른 방식으로 축조된 도시의 건물 사이를 떠돌던 기류를 기억해 냅니다. 그리고 다른 세상 속에서 다르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옷자락이 만들어 내는 그 바람을 기억해 냅니다. 그러면 웃게되고 부드러워 집니다. 그리고 기원하게 됩니다.

하나님 당신이 만든 세상은 참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망치지 않도록 도와주십시오. 우리가 기울였던 모든 좋은 노력들을 작은 것들까지 기억해 주시고 그런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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