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병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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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밥상에
박노해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아서
식은 저녁밥을 받습니다
푸실한 밥 한 술 입에 떠넣고
눈을 감고 꼭꼭 씹었습니다
담장 너머 경주 남산 어느 암자에서인지
저녁 공양 알리는 듯 종 울음 소리
더엉 더엉 더엉
문득 가슴 받히는 한 슬픔이 있어
그냥 목이, 목이 메입니다
함께 밥 먹고 싶어!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사는 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늘 땅에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거지
나 생을 바쳐 얼마나 열망해왔어
온 지상 식구들이 아무나 차별 없이
한 밥상에 둘러앉은 평화로운 세상을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절친한 직장 후배 가족과 동해안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올 여름은 게릴라성 폭우로 인해 휴가를 망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날씨 걱정 때문에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우레와 같은 천둥 번개가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가 약간 잦아들 무렵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속초로 가는 내내 비구름이 우리 차 위를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하니 마치 물먹은 솜방망이처럼 몸이 축 처집니다. 뒤늦은 오후에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아쉽지만 비 내리는 바닷가를 거니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이튿날은 날씨가 쾌청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을 내달려 강릉역으로 갔습니다. 강릉에서 삼척까지 운행하는 바다열차 (해안선을 따라 운행하는 관광열차, 참고로 바다 속으로 잠수는 안 합니다.)를 타기 위해 미리 예약을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역 앞에 있는 허름한 휴게실에 좌판을 벌였습니다. 집에서 각자 가지고 온 밥, 컵라면, 밑반찬을 꺼내 점심을 먹었습니다. 여행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두 아낙네의 사전 준비에 약간 당황스럽고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컵라면에 밥을 말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뚝딱 비웠습니다. 노숙자 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아주 맛있고 즐거운 만찬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별미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마도 먹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도 없을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내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 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같이 밥을 먹는 사람, 식구(食口)입니다.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금 절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그 시작은 ‘차나 한잔?’, ‘언제 식사라도 하시죠?’라는 사소한 대화였습니다. 소박한 밥상이라도 함께 먹고 마실 때 관계는 더욱 돈독해집니다.
오랜만에 며칠 동안 같이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다 보니 이만큼 큰 행복과 자유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혼자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는데 아무리 거친 밥이라도 나누어 먹으니 꿀맛이요, 살맛입니다. 그 동안 소홀했던 밥상 공동체, 자주 만들어야겠습니다.
바다 열차에 오르며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튼실한 행복 바이러스가 되겠습니다.’
IP *.189.235.111
박노해
또 하루가 저물어 갑니다
오늘도 열심히 살았습니다
침침한 독방에 홀로 앉아서
식은 저녁밥을 받습니다
푸실한 밥 한 술 입에 떠넣고
눈을 감고 꼭꼭 씹었습니다
담장 너머 경주 남산 어느 암자에서인지
저녁 공양 알리는 듯 종 울음 소리
더엉 더엉 더엉
문득 가슴 받히는 한 슬픔이 있어
그냥 목이, 목이 메입니다
함께 밥 먹고 싶어!
사랑하는 그대와 함께
한 밥상에 둘러앉아서
사는 게 별거야
혁명이 별난 거야
사랑하는 사람들끼리 하늘 땅에 떳떳이
따뜻한 저녁밥을 함께 먹는 거지
나 생을 바쳐 얼마나 열망해왔어
온 지상 식구들이 아무나 차별 없이
한 밥상에 둘러앉은 평화로운 세상을
아 함께 밥 먹고 싶어!
절친한 직장 후배 가족과 동해안으로 휴가를 다녀왔습니다. 올 여름은 게릴라성 폭우로 인해 휴가를 망친 사람이 많다고 합니다. 날씨 걱정 때문에 뒤척이다가 이른 새벽에 일어났습니다. 우레와 같은 천둥 번개가 아이들을 깜짝 놀라게 합니다. 한참을 망설이다가 비가 약간 잦아들 무렵 차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속초로 가는 내내 비구름이 우리 차 위를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점심 무렵에 도착하니 마치 물먹은 솜방망이처럼 몸이 축 처집니다. 뒤늦은 오후에 바닷가를 거닐었습니다. 아쉽지만 비 내리는 바닷가를 거니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습니다.
이튿날은 날씨가 쾌청했습니다. 우리는 한 시간을 내달려 강릉역으로 갔습니다. 강릉에서 삼척까지 운행하는 바다열차 (해안선을 따라 운행하는 관광열차, 참고로 바다 속으로 잠수는 안 합니다.)를 타기 위해 미리 예약을 했습니다. 조금 일찍 도착해서 우리는 역 앞에 있는 허름한 휴게실에 좌판을 벌였습니다. 집에서 각자 가지고 온 밥, 컵라면, 밑반찬을 꺼내 점심을 먹었습니다. 여행 비용을 절약하기 위한 두 아낙네의 사전 준비에 약간 당황스럽고 쑥스럽기도 했습니다. 컵라면에 밥을 말아 마파람에 게 눈 감추듯이 뚝딱 비웠습니다. 노숙자 같기도 하고 우스꽝스러운 모습이었지만 아주 맛있고 즐거운 만찬이었습니다. 이번 여행의 별미로 기억될 것입니다.
아마도 먹는 즐거움만큼 큰 즐거움도 없을 것입니다. 먹기 위해 산다는 말도 자주 합니다. 내 논에 물들어가는 소리와 내 자식 목구멍에 밥 넘어 가는 소리가 가장 듣기 좋은 소리라는 옛말도 있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원초적인 행위입니다. 그래서 가족은 같이 밥을 먹는 사람, 식구(食口)입니다. 같이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강력한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지금 절친한 사이라 할지라도 그 시작은 ‘차나 한잔?’, ‘언제 식사라도 하시죠?’라는 사소한 대화였습니다. 소박한 밥상이라도 함께 먹고 마실 때 관계는 더욱 돈독해집니다.
오랜만에 며칠 동안 같이 가족과 함께 둘러 앉아 밥을 먹다 보니 이만큼 큰 행복과 자유는 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혼자서 밥을 먹으면 밥맛이 없는데 아무리 거친 밥이라도 나누어 먹으니 꿀맛이요, 살맛입니다. 그 동안 소홀했던 밥상 공동체, 자주 만들어야겠습니다.
바다 열차에 오르며 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오늘도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밥 먹고 밥이 되어 튼실한 행복 바이러스가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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