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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8월 24일 07시 47분 등록

제자들과 함께 몽골에 다녀왔습니다. 8월 어느 날 일기 한 쪽을 여기에 올려둡니다. 그저 그 아름다운 날 한 쪽을 떼어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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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에서 깨어났을 때 난로에는 장작이 타고 있었다. 타다닥 타는 소리가 들린다. 불길은 스스로 소리를 내어 타오르는 맛을 즐길 줄 안다. 따뜻함이 밀려 내 주위를 감싼다. 이불은 보송거리고 나는 일어나기 싫다. 아침이 이렇게 일어나기 싫은 침대의 기쁨으로 시작하는구나. 천막의 지붕에서 비가 몇 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이곳은 모든 것이 자신의 존재를 선명하게 표현할 만큼 조용하다. 내 숨소리도 들린다. 내가 존재하는구나.

아침이 되고 해가 떠올랐다. 우리는 말을 타러 갔다. 내가 타고 있는 말은 옅은 갈색에 이마에 하얀 점이 있는 소년 말이다. 힘을 주체 못하고 마구 달리려 하지만 몇 시간 뒤 돌아오는 길엔 늘 힘이 달려 하는 귀여운 놈이다. 쉴 때 쓰다듬어 주면 내 팔에 슬그머니 제 머리를 얹어 놓는다. 안아 주면 살살 고개를 가슴에 비벼 댈 줄 안다. 말은 아름다운 근육을 가지고 있다. 손으로 툭 쳐주면 북처럼 떨리는 되울림을 느낄 수 있다. 긴 눈썹이 깜빡일 때는 쓰다듬어 주지 않을 수 없다. 이놈이 나를 좋아하는구나. 초원을 달리던 천둥벌거숭이 같은 이놈이 내가 저를 좋아 하는지 아는구나.

나는 이놈에게 ‘달리는 흰점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이놈은 내게 초원의 끝을 향해 바람 속을 달리는 맛과 간혹 뜬금없이 머리채를 마구 흔들며 큰소리로 통쾌하게 웃는 법과 연속으로 방귀를 뀌어 대 속도를 더하는 법과 발굽으로 땅을 쳐 먼지를 일으키는 법과 두두두두 영화 속 그 경쾌한 말발굽 소리를 들려주었다. 둘러 앉아 양푼 비빔밥에 큰 숟가락으로 점심을 퍼먹고, 바람 부는 텐트 밑에서 한 숨 자고, 푸른 하늘과 하얀 구름 사이의 초원을 달려 들어오니 하루가 익을 대로 익었다.

나는 내 직업이 얼마나 좋은 지 모른다. 회사를 나온 이후 나는 한 번도 회사에서처럼 일을 해 본적이 없다. 글을 쓰고 강연을 하고 사람을 만나고 연구원들과 함께 노는 일은 참 재미있는 놀이다. 어쩌면 한국에서 놀고 나는 이곳에서 지금 아주 열심히 일하고 있는 지도 모른다. 아무데서도 일하지 않고 어디서나 일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과 놀이는 내게 모호한 경계다. 말을 탈 때, 하늘을 볼 때, 몽골인 바타르의 얼굴을 볼 때, 고요한 초원을 지나는 바람소리를 들을 때, 때때로 나는 물어 본다. 내 책의 어디에 어떤 특별한 아름다움으로 이 날 이 모든 것들을 배치할까 ? 생각은 사물을 유심히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러다가 어떤 몰입의 순간은 나와 글 사이의 간격은 사라지고 글만 혼연일체의 강물처럼 흘러가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듯 나는 다시 일상으로 되돌아오곤 한다.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존재하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다. 달려 행동함으로 우리의 존재를 펼쳐낸다. 즐거움은 이렇게 만들어 진다. 간절한 열망은 늘 기쁨으로 이어진다 ”
- 단테 알리기에리

기쁨으로 시작한 오늘은 기쁨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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