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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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제에서 강연이 있었습니다. 강연이 끝나고 나는 사천 비행장에서 저녁 8시 10분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올라 올 예정이었습니다. 체크 인을 끝내고 보딩 파스를 받아들고 나니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습니다. 조용히 아무도 없이 1 시간을 혼자서 보내야 합니다. 가방 속에는 책이 한 권 들어 있습니다. 의자에 앉아 그 책을 보면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책을 보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날 그 시간에 그곳에 있다는 현장감을 즐기기로 작정했습니다. 뭐 재미나는 일이 없을까 찾아보았습니다.
내 눈은 그 작은 공항의 여기저기를 훑고 지나갔습니다. 저기 한 쪽 구석에 작은 가게가 하나 있군요. 그리고 거기에 젊은 아주머니가 한 사람 있습니다. 나는 그 곳으로 가서 1000원 짜리 한 장을 내고, 500원 짜리 동전 두 개로 바꿔 달라고 했습니다. 동전통을 뒤지던 그 아주머니가 순간 난감한 얼굴로 나를 쳐다봅니다. 500원 짜리 동전 두 개가 없는 모양입니다. 나는 그때 그 아주머니의 마음 속으로 들어가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 이 사람 귀찮게 구네. 약간 대머리긴 하지만 목소리도 좋고 생긴 것도 괜찮네. 자판기를 열면 500 원 짜리 동전이 숱하게 많으니까 조금 친절을 베풀어 줄까 ? 그러지 뭐. 할 일도 없는데. ” 그 아주머니는 열쇠를 찾아 쥐더니 가게 밖에 설치된 자판기를 열고 동전 2개를 꺼내 내게 건네주었습니다. 음, 아주 친절한 일이 생겼군요.
‘다음엔 무엇을 할까 ? 저기 저 구석에 있는 의자가 되어 보자.’ 나는 TV 앞 세 번째 줄 가장 오른쪽 의자가 되어 보기로 했습니다. 금방 그 의자의 과거가 스쳐 지나갑니다. 그 의자가 내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2살입니다. 내 위에 모두 3천 7백명의 사람들이 앉았습니다. 그 중에서 1,231명은 여자였지요. 치마를 입은 여자는 730명이었구요. 내 위에 앉아 방귀를 뀐 사람은 모두 170명이었는데 그중 참기 어려울 만큼 독한 가스를 뿜어 댄 사람은 21명이었습니다. 정말 숨쉬기 어려웠어요. 아이들이 내 위에 콜라나 쥬스를 쏟아 놓은 경우도 13 번이나 됩니다. 청소하는 아줌마가 닦아 내기는 했지만 정말 끈적거려서 싫었어요. 난 내 위에 약간 새침때기의 참한 아가씨가 앉는 것이 제일 좋아요. 도톰한 엉덩이가 따끈따끈하고 부드러운데 베고 누우면 잠이 금방 올 것 같아요” 내가 고른 두 살 짜리 의자는 사춘기 소년이고 아마 매우 말이 많은 수다쟁이였던 모양입니다.
한 시간 동안 나는 공항의 한 가운데 앉아 아주머니도 되어 보고 의자도 되어 보고 자동문도 되어 보고 화장실 벽의 타일도 되어 보았습니다. 그러자 아주 많은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들이 보고 그것들이 느낀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한 시간은 금방 지나갔습니다. 그 사람이 되어 본다든가 그 사물이 되어 보는 것은 내게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글을 쓰는 나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하고, 이 세상은 수없이 많은 숨겨진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언젠가 심심할 때, 무료한 시간을 보내기 어려울 때, 누군가 그리울 때 한번 시도해 보세요. 주술은 이겁니다. “내가바로너다. 네가바로나다 ”
공지사항 :
9월 15일 부터 17일 까지 2박 3일 동안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 시작됩니다. 관심이 있으신 분들은 홈페이지(www.bhgoo.com) 의 '프로그램 소개' -->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을 참고하여 등록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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