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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 21일 09시 42분 등록

지난 밤 손님들이 돌아간 다음부터 비는 점점 큰 소리로 쏟아져 내렸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창문을 모두 열고 그 앞에 의자를 가지고 나가 앉았습니다. 산들은 엎드려 긴 잠에 빠지고 불빛 속에서 빗방울들은 바닥에 떨어져 깨져 더 작은 미세한 방울들로 무수히 흩어져 구릅니다. 풀잎과 나뭇잎에 떨어지는 ‘솨’하는 커다란 바탕음 뒤로 낙하한 물체에 따라 달라지는 반향들로 어두운 밤은 가득 채워지고 다시 비워지고 다시 흐르듯 펼쳐집니다.

긴 의자에서 얼핏 선잠이 들었다 깨어나니 비는 여전히 쏟아져 내리고 있었습니다. 무섭게 몰입하는 이 비가 부디 누군가의 불행이 되지 않기를 바라다 잠이 들고 이내 아침이 되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실거미줄처럼 가늘어 졌습니다. 겨우 처마에서 한 방울씩 고여 떨어지는 물방울이 홈통에 부딪혀 내는 소리만 지난 밤 웅장했던 하모니의 잔해로 남아 있습니다. 밤새 몰아쳐 온 그 엄청난 오케스트라에 투입된 비의 양은 얼마나 될까요 ?

자연에는 목적이 없고, 인위적 목적이 없이 ‘살아지는 대로 사는 것’ 이어서 자연이라 불립니다. 가장 창조적인 시스템이면서 가장 낭비적인 시스템이기도 합니다.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의 비만 내리는 법은 없습니다. 통제되거나 관리되지 않는 것이 창조성입니다. 창조성이란 낭비 구조 속에서만 피어나는 생산력이니까요. 그래서 가장 창조적인 인물들은 모두 생활인이 아닌가봅니다. 그들의 하루는 생활에 투자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재능에 투입됩니다. 나는 창조가 어제 내린 비처럼 미친 듯 쏟아지는 몰입과 열정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나는 나에게 그렇게 쏟아져 내린 적이 있는 지 물어 보게 하는 긴 밤이었습니다.

곧 비가 개고 추석 즈음엔 머리가 벗겨지듯 청명한 가을이 계속되겠지요. 그땐 또 자연이 미친 듯 편집광적으로 파란 하늘만을 고집하겠지요. 과일들은 마지막 여름의 햇빛들을 제 몸 속에 가득 갈무리할 것이구요. 여러분의 가을도 그렇게 깊어지길 기원합니다. 어떤 마음의 역동, 어떤 욕망, 어떤 제어할 수 없이 뻗쳐오는 힘을 모두 자신에게 되 쏟아 붓는 그렇게 빨간 창조적 가을을 만들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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