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 조회 수 3493
- 댓글 수 1
- 추천 수 0
나는 만년필을 좋아합니다. 글을 쓰기 전부터 그랬습니다. 글쟁이에게 속하는 어떤 취향이 원래 있었던 모양입니다. 애정이 있다 보니 이래저래 몇 개가 생겨 내 필통 속에 여러 개 누워 있습니다. 그러나 요새는 잘 쓰지 않습니다. 작업을 거의 전부 컴퓨터로 하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그렇게 누워 있는 것들이 가여워서 내가 좋아하는 초록색 해바라기 노트북을 꺼내 몇 자 적어 보았습니다. 그저 아직도 잘 써지는지 보려고 그냥 하얀 백지 위에 끄적였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말이지요.
사랑한다. 사랑한다
나보다 더 너를 사랑한다
내가 너를 사랑한 일이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한 일이다.
만년필은 아주 잘 써집니다. 푸른색 잉크가 흰 백지 위를 달리며 만들어 둔 기호들이 모여 돌연 의미를 전달합니다. 갑자기 흰 백지 위에 햇살이 빛나고, 나는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는 기쁨으로 가득해 집니다.
환한 햇살 속에 모든 것이 정지하고 온 우주가 몰려들어 나는 황홀함 속에 앉아 있습니다. 살아있다는 느낌이 밀려듭니다. 서로 교류하고 통하고 연결된다는 교감이 온 몸의 실핏줄 하나하나의 끝까지 통쾌하게 전진합니다. 만년필 한 자루가 내 몸 속의 모든 것들을 깨어 놓습니다. 삶을 위한 모든 전투의 여신들이 깨어나 듯 늘어진 핏줄 속으로 싱싱한 피들이 몰려들며 외쳐댑니다.
사랑하라. 지독하게 사랑하라. 삶은 꽃과 같으니 오늘의 꽃은 오늘 따야함을 잊지 마라.
댓글
1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57 | 나는 메모한다. 고로 꿈꾼다 | 오병곤 | 2007.12.10 | 3756 |
356 | 인간은 영혼이 외로워 예술을 만들고 [1] | 구본형 | 2007.12.07 | 3040 |
355 | 사.람.사.이. [2] | 한명석 | 2007.12.06 | 3247 |
354 | 존재하는 모든 것은 다 배움을 준다. | 문요한 | 2007.12.04 | 3330 |
353 | 내 삶의 물음표, 느낌표, 그리고 쉼표 [3] | 오병곤 | 2007.12.03 | 4321 |
352 | 가족 [1] | 구본형 | 2007.11.30 | 3106 |
351 | 단순하게 사랑하라 | 한명석 | 2007.11.29 | 3614 |
350 | 몸과 마음의 굳은살 [1] | 문요한 | 2007.11.27 | 3752 |
349 | 지금 여기서 우리 [4] | 오병곤 | 2007.11.26 | 3375 |
» | 사랑한다 사랑한다 [1] | 구본형 | 2007.11.23 | 3493 |
347 |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4] | 한명석 | 2007.11.22 | 3668 |
346 | 당신은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기를 바라는가? | 문요한 | 2007.11.20 | 3741 |
345 | 시련을 극복하는 비법 [1] | 오병곤 | 2007.11.19 | 3766 |
344 | 글쓰기의 즐거움 혹은 괴로움 [1] | 구본형 | 2007.11.16 | 3384 |
343 | 지상에서 가장 관능적인 독서기 | 한명석 | 2007.11.15 | 3704 |
342 | 열정과 재능 [1] | 문요한 | 2007.11.13 | 3580 |
341 | 책, 연애편지에 조미료를 뿌리듯이 읽자 [3] | 오병곤 | 2007.11.12 | 3454 |
340 | 10 년 전 책을 다시 내며 스스로에게 묻다 [2] | 구본형 | 2007.11.09 | 3654 |
339 | 누구도 관계를 피해갈 수 없다 [2] | 한명석 | 2007.11.08 | 3580 |
338 | 사랑을 거부하는 당신에게 | 문요한 | 2007.11.06 | 41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