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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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한 대가 큰 무대 위에 놓여 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없습니다. 한 사내가 무대로 걸어 나옵니다. 청중을 향해 인사를 합니다. 어딘지 조금 어색하고 수줍어하는 듯합니다. 이 사내가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산처럼 편안하게, 아주 오래 전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렇게 피아노 앞에 앉습니다.
이윽고 짧은 정적이 지나고 곡이 흐릅니다. 새가 날개를 펴고 끝없이 푸른 창공을 날아오르는 듯하다 돌연 까마득한 하늘에서 수직으로 낙하합니다. 개울물이 소리 내어 흐르는 듯 정답더니 꽃이 피어나는 소리가 들리는 듯 적막이 흐르다 돌연 번개와 천둥이 쏟아져 내립니다. 장작으로 건반을 패듯 격렬한 한 때가 지나고 땀이 흥건한 가운데 감미로운 바람이 스치고 삶은 이내 평화로워 집니다. 사랑이 귀밑의 속삭임을 지나 온 몸을 감싸고 향기처럼 지나갑니다.
이 모든 퍼포먼스가 한 사람에 의해 만들어 집니다. 백건우는 베토벤의 피아노 소나타 32 곡 전곡을 7일에 걸쳐 나누어 연주합니다. 그의 시대 사라진 소리들을 2007년 12월 서울로 모두 불러 들였습니다. 음악은 허공에 사라진 소리들을 초혼처럼 다시 불러들이는 작업이니까요. 그의 연주가 나를 기쁨으로 열정으로 환희로 그리고 고요함으로 온통 휘몰아 넣었습니다. 재능을 가진 한 사람이 평생 그 재능을 땀 흘려 수련하면 영혼을 감읍하게 하는군요.
지난 일주일은 ‘나는 무엇으로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고 인생을 다시 시작할 수 있는 힘을 줄 수 있을까 ?’ 라는 질문을 던지게 하는 날들이었습니다. 글을 쓰기 시작한 지 10년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겨우 스스로 작가라고 불러도 거부감을 가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 사람의 음악처럼 글을 쓰고 싶다는 욕망으로 가득한 한 주일이었습니다. 참 좋은 일주일이었습니다.
* 공지사항 :
‘익숙한 것과의 결별’ 그리고 ‘낯선 곳에서의 아침’ , 10년 전 두 권의 책 개정판이 출간 되었습니다. 하나는 나를 혁명하게 한 책이었고, 또 하나는 내 혁명이 일회성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게 해준 책입니다. 10년이 지나 이 책들이 ‘독자에게 무엇이었는지’ 물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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