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 조회 수 2981
- 댓글 수 0
- 추천 수 0
3/26
꿈 꾸지 않으면 사는 게 아니라고.. 후배가 즐겨 듣던 노래 가사가 좌뇌에 싸이렌을 울렸다. 급기야 오지 않을 것 같던 이 날이 왔다. 비행기만 타면 원정의 절반은 성공이라 했는가. 지난 힘들었던 훈련과 밤새며 한 원정 준비가 기억에 스쳐간다. 승리하며 시작한다.
네팔 카트만두 도착
한국도로공사 산악팀, 열 손가락이 없는 산악인 홍빈이형, KBS ‘산’ 취재팀을 잇따라 만났고 사지로 들어선 느낌은 그나마 반감된다. 로버트 할리 여사의 대리인과 인터뷰를 하고 원정에 대한 전체 개요를 설명했다. 잠을 이룰 수 없다.
3/29
내일부터 시작될 카라반을 위해 수송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카라반 기간에 사용할 식량, 장비와 베이스캠프로 곧바로 올려야 할 짐을 분류했다. 1차 수송짐은 1,200kg으로 헬기로 운반한다. 이미 상보체에 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내일 수송할 2차 수송짐은 587kg이다. 차편으로 가서 야크와 포터를 고용하여 운반한다. 컨디션은 나쁘지 않다. 해 낼 수 있을까? 잡념이 끊이지 않는다. 새벽에 뒤척이다 잠이 깨어 카트만두 시내를 홀로 한참을 바라보았다.
3/30
보험을 들었다. 부상 또는 사망 시 헬기 지원 및 치료비 일부가 보상된다. 또한, 사망 위로금과 장애보조금 등을 cover 한다. 엽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언이라 생각하고 이제껏 차마 못했던 말을 쓰는데 내가 잘못했던 일만 생각난다. 속수무책이다.
3/31
카트만두에서 카라반 시작점인 루클라로 단번에 올랐다. 여기까지 헬기와 소형 경비행기로 수송된 짐은 다시 베이스캠프까지 야크와 포터를 고용해 수송해야 한다. 귀가 멍하고 기침이 끊이지 않는다. 감기 기운까지 있어 컨디션은 좋지 않다. 팍딩으로 가는 길에 한 아이의 모습에서 아들놈 얼굴이 겹쳐졌다. 잠들기 전 기침완화제 프리비투스 1포를 복용했다. 몸이 알 수 없을 만큼 느려진다. 야크로 운반할 때 60kg 기준 900루피를 지불한다. 사람이 운반할 때 60kg 기준으로 800루피를 지불한다. 야크가 사람을 능가한다.
4/1
조르살레로 가는 길에 아주 길고 불안한 다리를 건넜다. 공사판 구멍 뚫린 발판을 이어 붙였지만 휘날리는 룽다와 출렁거리는 다리의 리듬감이 악보의 음표 사이를 걷는 듯 하다.
이날, 남체에 도착했다. 남체는 세계 각 국의 트레커, 등반 팀들이 모이는 조그만 축제의 장이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우면서도 높은 시장이 있다. 분주함 속에 정연함이 있으며 높은 히말라야 준봉들이 둘러쳐진 신비로운 곳이다. 오늘은 각 국에서 온 트레커들과 대화하며 즐겁게 걸었다. 정숙과 세현이 보고 싶어 탐세루크 봉우리를 하염없이 바라 보았다.
바람조차 파도같이 부서지는 이 곳 남체에서 고소증세가 시작되었다.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잠을 이루지 못했다. 속도 좋지 않았고 열 감기를 앓는 듯한 느낌이 지속되었다. 출발하기 전 친구가 준 소화제를 30알 정도 매 식후 복용하기 시작했다. 혈관확장제를 두 알 먹었는데 조금 나아지는 듯하다. 분당 맥박수 103회, 10초당 19회, 산소포화도 86이다. 대원들 중 수치가 가장 좋지 않다. 신의 영역에 들어섰음을 알리고 있다. 내 맥박이 요동을 친다.
4/3
세계에서 가장 높이 있다는 사원 텡보체에 들러 절을 했다. 200루피를 시주하고 살려달라 빌었다. 108배를 하고 싶었지만 숨이 차서 할 수 없었다. 저녁에 도착한 디부체 lodge에서 미국 워싱턴에서 왔다는 질풍노도의 아이들이 시끄럽게 떠들고 있었다. 소란하다는 생각 이전에 그네들은 고소증세를 완벽하게 극복한 것 같아 보여 부러웠다. 그네들은 정규 교육 커리큘럼의 하나로 이곳에 왔다고 했다. 국가 대중의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되는지 똑똑히 보고 느꼈다. 오늘 걷는 중에 한 야크의 발굽을 뚫어져라 보았다. 척박함에 처한 모든 생명을 위해 기도했다.
4/6
로부체 lodge 골방에 모두 모여 내 mp3에 저장된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듣는데 눈 시울이 붉어졌다. 어두워서 서로를 보진 못한다. 눈물을 맘껏 흘렸다.
4/7
여기 고락셉을 지나면 길은 곧바로 베이스캠포로 향한다. 지구의 용마루와 운명적인 첫 만남을 앞두고 다시 두통이 찾아 온다. 고소증세가 다시 왔다. 다리에 힘이 풀렸는데 익히 들었던 최악의 상황이 연출될까 혼자 노심초사했다. 그러나 고락셉 lodge의 저녁 식사는 훌륭했다. 연인이 함께 왔는지 다정해 보이는 남녀가 재잘거리며 밥을 먹는다. 프랑스에서 왔다 한다. 사랑은 고소증세도 확 날려버리는 모양이다. 아들놈 나이 또래의 lodge 주인 아들에게 내 가진 간식을 모두 줬다. 속이 좋지 않아 먹지도 못할 간식, 죽으면 썩어 질 몸.
4/8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다. 여기까지의 여정조차 힘에 부친다. 그는 보이지 않았다. 9일을 쉼 없이 걸었지만 끝내 그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대지의 여신을 엿보는 일 조차 이만한 대가로는 어림없는 모양이다. 푸모리의 웃는 얼굴 만이 우리를 반긴다. 머리는 어지럽고 귀청을 때리는 엄청난 굉음의 눈사태에 두려움만 커져간다. 앞에 우뚝 솟은 촐라체의 위용에 주눅든다. 그래도 여기는 해발 5400m 베이스캠프다. 우리는 베이스캠프에 온 것이다. 말 그대로 신의 영역으로 들어가는 철옹성의 입구로 입성한 것이다. 자축한다.
어지러운 중에도 포터, 야크의 운송비용을 정산했다. 카라반 비용을 총정리하고 정산했다. 이제부터 본격 등반이 시작될 터다. 나는 어찌 될 것인가? 오를 수 있을까? 살 수 있을까?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3292 | 원정대는 한라로 간다 [1] | 장재용 | 2012.12.17 | 2665 |
3291 | 변화를 수용하라 [1] | ![]() | 2012.12.17 | 2341 |
3290 | 오상아(吾喪我)가 주는 기쁨 [1] | 학이시습 | 2012.12.17 | 5709 |
3289 | 알려지지 않은 신 7 | 레몬 | 2012.12.17 | 2426 |
3288 | 꿈쟁이 뿌꼬 #6(수정) [2] | 한젤리타 | 2012.12.15 | 2794 |
3287 | 마흔엔 자신의 소망을 찾아라 | ![]() | 2012.12.11 | 2438 |
3286 |
참숯은 젖었고 나는 불판이 없다 ![]() | 콩두 | 2012.12.11 | 6460 |
3285 | 쌀과자#32_리어왕의 노후설계 | 서연 | 2012.12.11 | 3184 |
3284 | 알려지지 않은 신 6 (수정) | 레몬 | 2012.12.11 | 2617 |
3283 | 국민할매 김태원과 K상무 스토리 [2] | 샐리올리브 | 2012.12.11 | 2537 |
» | 들어선다 | 장재용 | 2012.12.11 | 2981 |
3281 | 꿈쟁이 뿌꼬 #5 | 한젤리타 | 2012.12.11 | 2019 |
3280 | 위험을 무릅쓴 선택 | 학이시습 | 2012.12.11 | 3011 |
3279 | 당신의 생일은 언제 인가? | 세린 | 2012.12.11 | 4369 |
3278 |
[재키제동의 커리어토크 1] 경력 전환의 딜레마 ![]() | 재키 제동 | 2012.12.04 | 3780 |
3277 | 쓰레기 분리수거에 대한 사고오류 [1] | 콩두 | 2012.12.03 | 2689 |
3276 | 발을 키우는 마음 [1] | 세린 | 2012.12.03 | 2274 |
3275 | 그리하여, 어찌 살아야 하는가 [1] | 장재용 | 2012.12.03 | 2279 |
3274 |
사투리는 어떻게 고치나요? ![]() | 샐리올리브 | 2012.12.03 | 2412 |
3273 | 경영자의 마음이란? [1] | 학이시습 | 2012.12.03 | 259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