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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1일 11시 45분 등록

쩍쩍 갈라지는 논바닥을 보는 농부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단비가 내렸다. 한번쯤은 들었던 평범한 이야기이다. 설명이 필요치 않은 세익스피어의 리어왕이다. 윌리엄 세익스피어(1564-1616)는 영국인들이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고 했던 세계 최고의 극작가이다. 많은 천재들이 동시대에 인정을 받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로 생을 마감한 것과 대조적으로 세익스피어는 동시대와 후세 모두 인정받은 작가이다. 그의 사후 400년이 지난 지금도 전세계인에게 가장 사랑 받는 작가중의 한 사람이다. 그의 작품 4대 비극 <햄릿 오델로 리어왕 멕베스>는 세계문학의 절정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그 중 <리어왕>은 절대적인 허무와 강렬한 고통의 체험을 그려내고 있을 뿐 아니라, 신의 섭리를 통한 어떠한 구원의 빛도 제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비극의 비극이라 불리 우는 작품이다. 줄거리를 간단히 소개하자면… 늙은 왕<리어>의 세 딸에 대한 애정의 시험이라는 설화적 모티프를 바탕으로 혈육간의 유대와 파괴가 우주적 질서의 붕괴로 확대되는 과정을 그린 비극이다.

 

리어왕에게는 세 딸이 있었는데, 첫째 고너릴, 둘째 리간, 셋째 코딜리아 이다. 어느 날 리어왕은 딸들에게 왕국을 나누어 주기로 결심을 하고, 딸들을 불러놓고 이렇게 말한다. “왕국의 통치권과 영토의 소유권을 너희들에게 넘겨 줄려고 하니 누가 나를 가장 사랑하는지 말해보아라”

 

첫째 고너릴은 “전하, 제 사랑은 말로 표현 못 합니다. 시력이나 걸림 없는 자유보다 소중하게, 가장 값지다거나 희귀한 것 이상으로 은총, 건강, 미와 명예를 갖춘 삶에 못지않게, 일찍이 자식은 사랑하고 아버지는 받는 만큼, 입 열고 말하면 빈약해질 사랑으로 모든 한계 다 넘어 전하를 사랑하옵니다.” 라고 말한다..

 

둘째 리간은 “전 언니와 타고난 자질이 같사오니 사랑도 같은 값이옵니다. 진심으로 언니는 제 사랑을 조목조목 밝혔어요. 다만 크게 빠뜨린 부분은, 저는 가장 민감한 인간의 감각이 누리는 다른 모든 기쁨을 적이라 공언하고 오로지 전하의 귀중한 사랑 속에서만 행복해진다는 사실이옵니다.”라고 말했다.

 

두 딸의 말에 리어왕은 흡족해 하며 제일 사랑하는 막내딸의 말을 기다린다. 그런데 셋째 코딜리아는 “소녀 비록 불운하나 제 마음을 입에 담진 못하겠습니다. 전 전하를 도리에 따라서 사랑하고 있을 뿐, 더도 덜도 아닙니다.” 고 말하고 아버님은 저를 낳아 기르시고 사랑해 주셨기에 전 그에 합당한 의무로 보답고자 복종하고 사랑하며 가장 존경합니다. 라고 이야기를 한다.

 

막내딸의 대답을 기대하고 있던 리어왕은 있는 그대로 도리에 맞는 말 만하는 코딜이아에게 분노한다. 막내딸의 말을 들은 왕은 혈연관계를 부인하고 셋째 딸 몫으로 생각한 지참금까지 두 딸에게 나누어주어 버린다. 그리고는 앞으로는 내 눈에 띄지 말라고 명한다. 막내딸은 졸지에 아버지를 잃고 무일푼으로 쫓겨 난다.

 

그러나 인생말미에 믿고 의지할 자녀에게 사랑을 시험코저 한 일이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된다. 두 딸에게 모든 재산을 내어준 리어왕은 자신을 그렇게 사랑한다던 두 딸에게는 버림받고,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막내딸에게 의지하는 처지가 된다. 두 딸에게 받은 상처를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팔십의 노인 리어왕은 그 동안 자신의 행동에 대하여. “난 대단히 어리석고 멍청한 노인이오”라고 솔직하게 인정한다.

 

리어왕은 4백여 년 전의 이야기이다. 또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기도하다. 자녀에게 재산을 물려준 후 돌보지

않는 자녀를 상대로 재산반환소송을 하는 노인의 이야기가 뉴스화되는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인간의 욕망은 변하지

않는다. 살아가는 형태가 조금씩 바뀌어갈 뿐이다.  자식에 대한 맹목적인 사랑으로 판단력이 흐려진 부모, 눈앞의 이익을

위하여 과장된표현으로 판단을 흐리게 하는 자녀. 특히 경제력이 가지고 있는 위력은 무시 못한다.

 

인생 100세시대가 화두로 떠오른다. 노후설계란 단어는 이제 식상하기까지 하다. 경제력만이 노후설계는 아니다. 연금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지도 않는다. 함께하는 가족과의 관계, 잉여시간 사용의 문제, 성인이 된 자녀와의 관계, 상속이나 증여의 문제. 길지도 않고 짧지도 않은 인생이다. 사계절이 있는 우리나라는 겨울이 가면 봄이 온다는 것을 의심하는 사람은 없다. 허나 하루살이가 밤을 모르듯이 사람의 인생도 하루살이와 같다. 태나서 죽기까지 단 한번의 삶이다.

 

칠순의 여 선생은 십년전 남편과의 사별을 계기로 퇴직을 하셨다. 서울의 유명 사립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하셨었다. 지금은 영어로 교육을 시킨다고 더욱 유명세를 타고 있는 학교였다. 젊은 시절 선생님은 자신의 아이들과 함께 일터로 갔었다. 21녀 세 자녀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하셨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장성한 자녀들은 모두 자신의 가족을 꾸려서 독립을 했다. 선생님의 집은 잘 정돈되어 있었다. 25평아파트이다. 온 가족이 함께 살던 집을 정리하고 혼자만의 공간을 마련하셨는데 지하철종점부근이라 밤이면 전철이 들어오고 나가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했다. 그 시끄러움도 시간이 흐르니 정겹다고 하셨다. 식탁유리 밑에는 사진이 몇 개 넣어져 있다. 세 아이와 그 아이들의 가족이 있는 사진이다. 식사시간이 되어 밥과 국 반찬을 차리고 자리에 앉으시면서 “얘들아 엄마 이제 밥 먹는다…” 하시면서 수저를 든다. 선생님은 나를 바라보며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미쳤다고 하겠지? 혼자 살면서 하루 종일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으면 말하는 것을 잊을지도 몰라서 이런 습관을 만드셨다고 했다.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오신 선생님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청소년 상담봉사를 하고 등산을 하고 날씨가 좋지 않은 날에는 집에서 걷기와 기체조를 하신다. 운동은 하루도 빼먹는 날이 없다고 하셨다.

 

선생님께 고민이 생겼다. 둘째 아이의 사업이 잘 되지 않아서 엄마의 도움을 청하러 왔었다고 했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내어 달라고 하는 주문이었는데,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더 이상 살수가 없다고 협박을 하고 갔다고 하셨다. 선생님의 재산이라고는 사는 집이 전부였다. 다행히 연금이 조금 있기는 하다.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와서 상담을 하면 당연히 자식의 요구를 들어주지 말라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그것이 맞는 답인 것도 안다고 하셨다. 그러나 내게 그런 일이 생기니 다른 선택을 할 수가 없었노라고 하신다.

 

선생님의 아들이 사업을 잘 키워서 성공했는지 어쩐지는 잘 모른다. 누구보다 지혜롭게 살아왔지만 자식의 일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보편적인 지혜가 답이 될 수 없음은 분명하다. 계획대로 살아지지 않는 삶이나 선택 후에 책임을 어디까지 져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을 하며 살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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