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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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편지를 쓰려고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솔직히 말씀 드려, 지금 가슴이 심하게 요동칩니다. 얼굴은 벌겋게 달아올랐고, 식은땀이 조금 맺혔습니다. 만 명이 넘는 분들과 마주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구본형 선생님이 이 ‘마음을 나누는 편지’ 집필을 부탁하였을 때, 놀라서 하마터면 전화기를 떨어뜨릴 뻔 했습니다. 두려웠습니다. 그간의 쟁쟁한 집필진에 비해 저는 글을 잘 쓰지 못할뿐더러, 경험도 턱없이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의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승낙을 하였지만, 사실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 날 이후로 몇 일 밤잠을 설쳤습니다. 그러다가 어제 밤 꿈결에 문득 한 문장을 떠올렸습니다. 시를 곧잘 쓰던 한 선배가 자작시 몇 점을 모아 저에게 선물해 주었을 때, 제목으로 붙였던 글귀였습니다. 그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기분 좋게 잠을 깨었습니다. 선배는 이렇게 묵직히 말하고 있었습니다.
“단지 아주 조금 서툴 뿐이다.
너도, 나도.. 세상도.”
학창시절, 공부 잘하는 친구들에게 둘러싸여 있던 저는 거의 항상 저 혼자만 ‘노력파’ 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 때에 저를 구원해 주었던 한 마디 말이 이것입니다. 그 후로 일상에 지치거나 사랑이 힘겨울 때, 치졸한 제 모습을 볼 때, 두려움이 앞서 어찌할 바를 모를 때면 저는 혼자서 나직이 중얼거리곤 했습니다. ‘그래, 아주 조금 서툴 뿐이야..’ 라구요. 그간 이 소중한 말을 잊고 지냈었습니다. 오늘 아주 오랜만에 스스로에게 말해봅니다.
저는 스웨덴 출신의 가스펠 가수인 레나 마리아를 좋아합니다. 두 팔이 없고, 한쪽 다리가 짧은 불완전한 몸으로 태어난 그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없는 것이 많습니다. 때때로 아무 가진 것 없이 지내기도 합니다. 저는 두 팔이 없습니다. 그러나 노래를 잘 할 수 있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당신이 돈이 없다는 것, 배운 것이 없다는 것, 온전한 신체를 지니지 않았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여전히 주변 사람들에게 중요한 무엇인가를 가졌습니다.”
지식이 모자라 쓸 수 없다고 느꼈습니다. 능력이 없어 줄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허나 마음은 지식이나 능력으로 주는 것이 아님을 잊고 있었습니다. 마음은 함께 공감함으로서만 줄 수 있습니다. 저도, 여러분도 그리고 세상도 모두 ‘서툴다’는 공통점이 있기에, 함께 공감할 수 있고 마음을 나눌 수 있겠습니다. 그 일이라면 저도 할 수 있겠습니다.
편지에 마음을 담겠습니다. 서투른 한 걸음을 담겠습니다. 미숙한 일상 속의 작은 감동과 조그만 깨달음을 담겠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의 함성과 흥분과 절망과 고뇌를 담겠습니다. 갸우뚱 첫 걸음마를 시작한 두 살배기 아기처럼, 설레는 첫 키스를 베개에 연습하는 사춘기 소년처럼, 한발 한발 스텝을 떼어보는 늦깎이 중년의 댄서처럼… 아직은 조금 서툴지만 차근히 인생을 알아가는 좌충우돌 배움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오늘은 안개가 제법 두텁군요. 창을 열고 스산한 새벽 공기를 들이쉽니다.
휴우-.
조금 서툰 인생, 우리 오늘도 시작해 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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