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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도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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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2월 14일 08시 33분 등록




"신화는 당신이 걸려 넘어지는 곳에 당신의 보물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 조셉 캠벨



저녁 무렵, 길을 나섰습니다. 무작정 해가 떨어지는 곳을 향해 걸었습니다. 바닷가 산책로를 따라 겨울 오후의 햇살 속을 걷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미처 넘어보지 못한 언덕을 만났습니다. 잠깐 망설이다, 인도는 없이 차도만 있어 조금 위험해 보이는 언덕길을 올랐습니다. 길 옆 우거진 나무들 사이로 조금씩 어둠이 내리고 있었습니다.

언덕의 고개를 넘어설 무렵, 개 한 마리가 컹컹, 짖으며 파란 정적을 깹니다. 어디선가 진한 거름 냄새가 코를 찌릅니다. 그리고 다시 수풀 사이로 모습을 드러낸 저 너머 쪽빛 바다에는, 오늘의 해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아주 잠깐 동안, 세상이 고요히 숨을 죽였습니다.

언덕 너머에는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앞 바다에는 철새들이 가득 모여 있는 조그만 섬 하나가 놓여 있고, 사방이 고만고만한 산들로 둘러싸인 평화로운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저는 남의 마을에 몰래 들어선 이방인이 되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마을 앞 부둣가로 내려갔습니다. 그렇게 해가 내린 뒤의 어스름 속을 거닐었습니다.

저녁 바다는 잔잔히 일렁이고 있었고, 소박한 집들 사이로 밥을 짓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 올랐습니다. 배 몇 척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부둣가엔 저녁 놀이 내려앉았습니다. 그렇게 어둠이 찾아옵니다. 마을 앞 가로등 하나, 감색 눈을 뜹니다. 바람이 잠시 멈춰선 시간, 저도 이제 집으로 돌아가야 할 때입니다.


***


오랜만에 고향에 내려갔습니다. 긴 연휴라 생각했는데 가족들과 이야기 나누느라, 친구들 얼굴 보느라, 또 친척들을 뵙느라 생각보다 시간이 부족합니다. 잠시 짬을 내어 동네 산책을 했습니다. 매일 지나다니면서도 무심코 지나친 길들이 많았습니다. 잘 알고 있는 듯 하지만 낯선 풍경 속을 걸으며 생각했습니다.

"나는 얼마나 좁은 삶을 살고 있었던가?"

지루한 일상에 지쳤을 때, 무언가 꽉 막힌 듯 생각이 떠오르지 않을 때, 잠시 짧은 여행을 떠나보세요. 굳이 먼 곳이 아니어도 좋습니다. 그저 동네 주변을 잠시 거닐어보세요. 그러다 익숙한 길 사이, 미처 가보지 못한 길을 만나게 되면 그냥 발걸음 닿는 대로 따라가보세요.

그 곳에서 당신은 바로 곁에 숨어있던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될 지도 모릅니다. 당신의 영혼 속에 잠들어 있던 그 무언가가 신화 속의 주인공들처럼 먼지를 툭툭, 털며 몸을 일으킬지도 모릅니다.





(2008년 2월 14일, 일곱 번째 편지)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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써니
2008.02.14 09:29:10 *.70.72.121
두 편이 되어도 좋을 듯.

영상이 너무 멋지군요. 흐린 날에는 흐리게 띄울 수도 있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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