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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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경영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참여한지 1년이 되었습니다. 그 1년간 우리는 매주 두꺼운 인문학 책 한 권씩을 읽어 정리했고, 매주 한 꼭지씩의 칼럼을 썼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씩 주말에 모여 그 달의 테마 과제와 팀 프로젝트를 논의했습니다. 직장을 다니면서 업무 외 시간 중 일주일에 40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힘겨운 수련의 과정이었습니다.
지난 토요일, 1년을 마무리하는 특별한 행사가 있었습니다. 여러 출판사의 대표들을 초대하여 연구원들이 향후 1년간 각자 쓰게 될 책에 대해 발표하는 북페어(book fair)를 개최한 것입니다. 기량 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하려는 출판사의 수요와 좋은 출판사의 기획력을 얻으려는 예비 작가의 수요가 만나는 장이었습니다. 그날의 분위기는 뜨거웠습니다.
종윤형은 자신의 중독 경험을 살려 ‘행복한 중독’에 대해 쓰기로 했습니다. 정화누나는 그림에 대한 재능을 활용하여 ‘꿈을 그려주는 화가’로서, 도윤형은 ‘영감 건축가(Inspiration Architect)’ 로서 순식간에 독자의 가슴과 머리 사이 간격을 좁히는 글과 그림을 내어놓기로 했습니다. 영훈형은 복지부동의 공무원 엉덩이를 찰싹 때려주는 글을 쓰고, 써니 누나는 후련히 살다 홀연히 사라지고 싶은 자신의 인생 자서전을 쓰고 있습니다. 저는 제 경험을 바탕으로 젊은이들의 강점 발견을 통한 ‘방향 찾기’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1년 전, 우리의 첫 번째 수업은 남해의 조그마한 바닷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바다를 등진 채 선생님은 우리를 바라보며 말씀하셨습니다.

“바다는 늘 푸르다. 그러나 그 안에 푸른 것만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색색의 산호초와 울긋불긋한 생명체들을 담고 있다. 검은 색의 폐수와 쓰레기, 여러분의 오줌도 섞여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늘 푸른 빛을 띤다. 자신의 고유한 빛깔을 유지한다는 것, 그것이 바다의 훌륭한 매력이다.
바다는 곧 그대들의 본래 모습이다. 앞으로 내가 그대와 바다 사이의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에릭 홉스봄이나, 조안 시울라 등의 작가들이 서 있을 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보아야 할 것은 나나 작가들이 아니다. 그대는 바다를 보아야 한다. 나를 통해 드넓은 바다를, 그대 자신을 들여다 보아야 한다. 앞으로 1년간은 돕기 위해 내가 이 자리에 서 있을 것이다."
(갑자기 선생님의 모습이 바위에서 털썩 내려와 시야에서 사라졌습니다. 검고 푸른 바다가 눈 앞에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 1년간은 여러분 혼자서 가야 한다. 자신의 바다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다. 어때, 두근거리는가? 자, 가자."
이제 광대무변한 세계의 문턱에 서 있음을 실감합니다. 두근두근. 두렵기도, 흥분되기도 하는군요. 결코 자신을 속이지 않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세상에 아부하는 작가가 되지 않겠습니다. 알기 때문에 쓰는 것이 아니라 배우기 위해 쓰는 것임을 늘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강을 건너는 사람의 고뇌와 흥분, 절망과 희망을 모두 담겠습니다.
선생님은 사라졌습니다.
이제 홀로 흐르고 흘러 자아라는 이름의 바다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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