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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박승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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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3월 24일 07시 47분 등록

7살의 한 남자아이가 어머니의 손을 붙잡고 계단을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둘 중 누군가가 계단을 잘못 디뎠고, 어머니와 아들은 심하게 굴러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사고로 어머니는 죽고, 아이는 시력을 완전히 잃었습니다. 어둠 속에서 아이는 홀로 어머니의 기억을 더듬으며 오열했습니다.

8년이 지나 그가 열 다섯 살이 되었을 때, 소년은 기적적으로 시력을 회복합니다. 그는 자신의 시력 회복을 ‘일시적인 축복’ 이라 생각했기에 미친 듯이 독서에 탐닉하기 시작합니다. 눈을 혹사시키는 것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말입니다. 다시 눈이 멀기 전에 읽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읽어 치우고 싶었던 것이지요.

열 여덟이 되던 해에 아버지마저 돌아가시자 그는 아버지의 친구분들이 모아준 300달러를 들고 길을 떠납니다. 그가 캘리포니아로 향한 까닭은 단순했습니다. 노숙할 수 있을 정도로 날씨가 따뜻하고, 길가에는 오렌지가 열려 있어 굶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무튼 그 이후로 에릭 호퍼(Eric Hoffer)는 생애의 대부분을 떠돌이로 지냅니다.

그는 막노동, 레스토랑 웨이터 보조, 과일따기, 사금 채취, 부두 야적장 일 등 여러 직업을 전전합니다. 호퍼는 그렇게 ‘일하고, 책 읽고, 연구하는 일과’를 마음에 들어 했습니다. 그의 풍찬노숙(風餐露宿)은 다분히 의지적인 것이어서 정주의 유혹을 느끼는 순간 곧바로 짐을 꾸려 길 위로 돌아간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스스로 “나는 삶을 관광객처럼 살았다“ 고 고백합니다. 사람들은 그런 그에게 ‘길 위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의 교육 철학이 담긴 두 구절을 옮겨봅니다.

“변혁의 시대에는 ‘배우려는 사람’들이 세상을 물려받게 되어있다. 이미 배운 것으로 만족하는 사람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 세상에 스스로가 가장 적합한 인물이라고 착각하는 동안에.”

“교육의 주요 역할은 배우려는 의욕과 능력을 몸에 심어 주는 데 있다. ‘배운 인간’이 아닌 ‘계속 배워 나가는 인간’을 배출해야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간적인 사회란 조부모도, 부모도, 아이도 학생인 배우는 사회이다."


그는 한번도 정규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지만 끊임없이 배우고 익혔습니다. 그의 생활은 단순하고 소박했습니다. 항상 사회의 가장 낮은 곳에 몸을 둔 채 독서와 사색만으로 독자적인 사상을 구축해 세계적인 사상가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는 단지 읽고, 일하고, 걷고, 생각할 뿐이었습니다.

창을 여니 구름이 걷히고 해가 떠오르는군요. 바람이 시원합니다.
감명 깊었던 책 한 권을 들고 어딘가를 떠돌고 싶은 하루입니다.




* 지난 주 메일 서버 문제로 구본형 선생님의 이름으로 제 편지를 받아보신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IP *.189.235.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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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gie
2008.03.24 15:27:14 *.193.194.22
2004년 3월 찬바람에 바로 에릭 호퍼의 책과 다른 몇 권을 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 봄, 예술의 전당에 친구와 함께 그림보러 가기전 다음고전음악카페에 접속해보았는데 회원 누군가가 화가로 전시를 하고 있다는 글을 보고 갔기에 거기서 작가와 인사를 하게 되고 작가와 다른 지인들과 카페회원들과 저녁을 함께 먹었어요. 지금도 그 환한 그림이 전시되고 있다고 하네요. 저는 그분의 찔레꽃 그림을 좋아해요. 점심이면 초등학교 뒷길을 산책하는게 습관이 되었어요. 어느집에 새순이 돋는 찔레나무을 입은 담장위로 작년의 열매가 빨강게 아직도 달려있어요. 26일까지인데 구원선이라는 미술선생님이세요. 가지는 못했지만. 그 책을 주신 분은 출판사의 이사님이셨는데 강한 인상을 남겼었지요. [에릭 호퍼] 성북동공부방에서 읽어내려갔던 기억이 갑자기 떠오릅니다. 승오님 바쁘지만, 구원선 화가의 전시를 보러 예술의 전당에 누군가와 갈 생각은 없는지요? 전시가 저녁 8시까지 계속된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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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리스
2008.03.24 22:37:28 *.252.102.135
감동적인 이야기입니다. '에릭 호퍼' - 이번주 주제로 삼아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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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박
2008.03.25 11:44:21 *.218.202.165
선이누나. 구원선 화가님의 전시회 알아보니 내일까지네요? ㅠ_ㅠ 제가 내일까지 저녁에 계속 약속이 있어요.. 아쉽네요. 그래도 누나 생각해서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앨리스님, 늘 보기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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