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본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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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여러분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려고 책상에 앉았습니다. 책상 위에 아주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나타났습니다. 보는 순간 종이를 집어 누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놈이 너무 작아 내 속에 일었던 살의가 옅어졌습니다.
이 놈이 쏜살같이 내 노트북 위로 기어오릅니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니 저도 가만히 나를 지켜봅니다. 몸길이가 겨우 50 미리나 될 까요 ? 꼭 개미처럼 생긴 거미였습니다. 그러나 다리는 꽤 길어 제 몸 보다 더 긴 것이 반으로 접혀있군요.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으니 여간 귀여운 게 아닙니다. 연필을 들어 그 위로 태워 보리라 생각했습니다. 이 놈이 잘 올라가지 않네요. 자꾸 다른 곳으로 도망갑니다. 그러자 나도 열심히 연필로 진로 방해를 해 봅니다. 드디어 이놈이 연필에 올라탔습니다.
나는 창문을 열기위해 일어섰습니다. 그러자 이놈이 연필 위에서 스르르 밑으로 떨어지면서 거미줄을 만들어 내는군요. 비행기에서 밑으로 낙하하는 특수 부대원처럼 연필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습니다. 나는 서둘러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리고 그 놈을 밖으로 내 보냈습니다. 기분이 참 좋습니다. 이 까닭모를 즐거움은 어디서 올까요 ?
오늘 아침 작은 인연이 스쳐갔습니다. 그 작은 거미는 누구였을까요 ? 왜 우리는 잠시 서로 쳐다 보았을까요 ? 마음 속에서 거미줄 하나가 생겨나고 이내 수십 수 천개의 거미줄이 퍼져나갑니다. 우리는 이렇게 연결되어 있군요. 내가 우주와 연결되어 있군요. '네가 바로 그것이다'Tat tvam a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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