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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08시 16분 등록

오상아(吾喪我)가 주는 기쁨

 

이 용어는 장자가 한 말인데, 의미는 내가 나를 장사 지낸다면 나를 죽임을 청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자살 하라는 말이 아니라, 오히려 황홀한 삶을

누리라는 말이다. 자신을 죽인 이후에야 비로소 다른 사람을 받아드리고 더 큰 뜻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 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도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이지만, 떨어져 죽으면 열배, 삼십배, 백배의 결실을 이룬다고 기록하고 있다.

큰 나무 일수록 새들이 와서 둥지를 틀고 사는 법이다.

 

나는 이런 질문을 나에게 던져 본다.

나에게 지식이 더 해진다고 해서 내가 더 사랑 스러운 마음을 지니는가?

나에게 지식이 더 해진다고 해서 내가 더 인자 해 지는가?

나에게 지식이 더 해진다고 해서 내가 더 그윽한 얼굴을 지니는가?

 

어느날 장자는 책상에 기대 앉아 하늘을 우러르며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쉰다.

멍하니 자기의 몸을 잊은 것 같다.

모시고 있던 제자(안성자유)가 그 앞에 모시고 서 있다가 물었다.

어찌 된 일입니까?

육체란 본래 고목처럼 될 수 있고, 마음도 (애초) 불 꺼진 재가 될 수 있다는겁니까?

지금 책상에 기대신 모습은 예전에 기대고 계시던 모습과는 다릅니다.

장자가 대답하길, “언아(제자 이름), 너 참 훌륭한 질문을 하는구나.

지금 나는 나 스스로를 잊어버렸다.

너는 그걸 알 수 있겠느냐.

너는 사람의 퉁소 소리는 들어도 땅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고, 또 땅의 퉁소 소리를 듣는다

해도 아직 하늘의 퉁소 소리를 듣지 못했겠지…….

대지가 내쉬는 숨결을 바람이라고 하지.

그게 일지 않으면 그뿐이지만 일단 일었다 하면 온갖구멍이 다 요란하게 울린다.

너는 저 윙윙 울리는 멀리서 불어 오는 바람 소리를 들어 봤겠지.

산림 높은 봉우리의 백 아름이나 되는 큰 나무 구멍은 코 같고 입 같고 옥로 같고 술잔 같고 절구 같고 깊은 웅덩이 같고 얕은 웅덩이 같은 갖가지 모양을 하고 있지.

그게 바람이 불면 움직이기 시작해.

콸콸 거칠게 물 흐르는 소리, 씽씽 화살 나는 소리, 나직히 나무라는 듯한 소리, 흐흑 들이키는 소리, 외치는 듯한 소리,

울부짖는 듯한 소리, 웅웅 깊은 데서 울려 나는 것 같은 소리, 새가 울 듯 가냘픈 소리등 갖가지로 울리지.

결국 땅의 퉁소 소리는 여러 구멍의 소리이고 사람의 퉁소 소리는 피리 소리군요”……(장자의 재물론 제2 중에서)

이 우화에서 구멍은 인간이나 사물의 덧없음을, 소리는 시비를 일삼는 사고나 언설을, 바람은 좀처럼 포착하기 힘든 도를 나타내고 있다.

 

훌륭한 지혜는 한가하고 너그러우나 세속적인 하잘것없는 잔꾀는 사소한 일을 따지려든다.

세속적인 인간은 잠들면 꿈을 꾸어 마음이 쉴 새가 없고, 깨어나면 또 육체가 활동을 시작하여

쉴 새가 없다. 그들은 또 서로의 교제에서 분쟁을 일으키고 날마다 다툼질로 속을 썩이는데,

그 중에는 우유부단한 자도 있고 음흉한 자도 있으며 깐깐한 자도 있다.

그들은 늘 남의 지탄을 두려워하면서 두려움이 작을 때는 흠칫흠칫 놀라지만 그것이 커지면

그만 넋을 잃고 기운을 못 차린다.

그들의 마음이 시비를 가릴 때 그 모질기란 쇠뇌나 활을 당겼다 세차게 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승리를 끝까지 지키려 할 때 그 끈덕진 고집이란 맹세를 지키는 것과 같다.

그들이 외물과의 싸움으로 날로 기운이 쇠약해 가는 것은 가을과 겨울에 초목이 말라 시듦과

같다. 또한 그들이 늙어서도 더욱 욕심이 많아질 때 그 억눌린 모습은 꼭 봉해 막는 것과 같다.

이미 죽음에 가까워진 마음(정신 상태)  두 번 다시 회생 시킬 수는 없는 법이다.”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의 의미는 아직도 어떤 가치에 묶여있어, 찌그러지고, 장례되지 않은

나를 죽이므로 새로운 나를 찾게 된다는 뜻 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 이런 오상아의 경험을 해 본 적이 있는가?

성경의 신약서 중 상당 부분을 기록한 사도 바울은 분명한 체험을 가지고 있다.

그는 당대 가장 유명한 율법과 학식에서 뛰어난 학자였지만, 그가 그리스도를 다메섹 도상에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만난 이후 그의 삶은 변화하여 그리스도를 피박하는 자가 변화 하여그리스도

사도로써의 삶을 살아간다.

그 후 사도 가 된 바울은 그의 인생에서 많은 고난을 겪게 된다.

바울은 로마 감옥에 갇히기도 하고, 태장으로 맞는 매를 수 없이 견디어야 했고, 돌로 맞고 버려진

후 부시시 일어나 다른 선교지로 떠나기도 하고, 배가 파산하여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내기도 했다.

이런 상태에서도 그는 자신이 아는 지식을 모두 배설물 처럼 여기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소중하다고 말 한다.

그는 늘 자신을 그리스도 십자가 앞에 복종 시키는 훈련과 자신이 매일 죽는 일을 선택 했다고 한다.

감동적인 삶의 변화이고, 놀라운 '일'을 이루웠다.

그러나 그는 그가 한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 고백 한다.

 

나는 이런 경험을 나의 삶 속으로 가져와 일상에서도, 일터에서도

이런 변화들을 경험할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굳이 위대한 성인 만 논 할 일은 아닌듯해서 도전한 일이기도 하다.

나(우리)의 일상에서도, 일터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이다.

얼마전 회사 내부 Manager 워크 샆을 가졌는데, 핵심 사항은 회사에서는Manager Mind 를 가진 리더가 정말 필요 하다. 그렇면 Managerial Mind를 가진 리더로 어떻게 성장 할 수 있는지? 

Manager Worker 와의 차이점은 무엇인지? 를 놓고 피터 드러커의 생각을 듣는 시간이 있었다.

Managerial Mind의 핵심은 공헌력에 달려 있다.

 

공헌력은 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에서 출발 한다.

내가 하는 일이 나의 명성과 나 만의 성공만을 향해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속 해 있는 조직에서 공헌력을 발휘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일에 대한 올바른 태도란 과연 어떤 자세여야 하는가?

일의 성과는 결과로 말 할 수 있어야 한다.

조직은 평범한 개인의 합을 뛰어넘는 비범한 성과를 올릴 수 있어야 한다.(피터 드러커의 말)

비범한 성과를 올리기 위해 조직 내 일하는 방법은 영원한 계주 게임과 같아야 한다고 한다.

기회의 주자가 경쟁자 보다 한달 이라도 앞 선 상태로 바통을 작업주자에게 넘겨 주고

작업주자는 최선을 다해 뛰면서 이을 완수하고, 그 안에서 또 다른 기회를 찾아 다른 작업

주자에게 바통을 넘겨주는 릴레이를 통해 회사의 성과를 높여 갈 수 있다.

성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문제에 자원을 투입하지 말고, ‘기회에 자원을 투입 하도록 의사

결정을 만들어 간다.

 

결론적으로 장자가 말하는 오상아는 일상에서 접하는 자신의 업무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죽음의 목전까지 가 본 사람은 세상을 달리 본다고 한다.

못쓸 병에 걸려 세상에 더 이상 미련을 갖지 못하게 되었을 때, 후회 하는 내용을 듣다 보면

 , 그렇게 살았지?” 라고 묻는다.

예전 처럼 조금 아는 지식만 믿고 큰 소리 치고, 거만스런 행동으로 속해 있는 공동체에 해()가 되는 일을

서슴지 않는 경우를 볼 때도 비슷한 생각을 하게 된다.

 

오늘의 나는 매일 죽고, 내 안에 새로운 내가 탄생하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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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06:39:59 *.154.223.199

단순 실무자가 아니라 매니저 마인드(=공헌력)를 갖는 것이 오상아, 일신우일신의 비결이군요. 흥미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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