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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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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11시 05분 등록

원정대는 한라로 간다

 

피를 토하지 않는 노력 없이는 갈 수 없는 곳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에 훈련 기록 하나 하나를 빠뜨리지 않고 기록해 그 빛나거나 무참했던 경험들을 열거하고 싶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어 한편으로 그 기억들을 나의 마음속에 영원히 살게 하여 기록으로만 사는, 혹은 그 기록을 다시 찾지 않으면 잊어버리고 살아가는 어리석음을 피하고 싶었다. 그것이 내가 말하는사무침이겠다. 이 기록들과 그 사무침들을 그날 그 곳에서 나를 살린 원정대원들과 함께한다. 그 고마움에 한 참을 고개 숙인다.

 

15도 경사의 아스팔트길 5km를 전력을 다해 오르면 숨이 턱을 넘어간다. 환하게 웃는 것인지 거친 숨이 입을 통해 자지러지는 것인지 알 수 없다. 1월의 추운 겨울, 원정을 앞두고 불안한 마음을 다 잡으려 올랐던 진해 안민고개의 그 기억이 한라산 개미능선에서 추락 훈련을 하는 중에 불현듯 생각이 났다. 원정대는 한라로 간다.

 

한라산 관음사 관리사무소 앞 주차장에 내팽겨쳐졌다. 나를 실어준 차가 떠나고 배낭과 나, 찬바람이 횅 불어온다. 배낭을 짊어지려 땅바닥에서 몇 번을 파다닥거렸다. 앞으로 엎어지고 뒤로 자빠지기를 두어 번 한 끝에 푸른색 배낭은 나의 어깨에 찰싹 달라붙었다. 외마디 날숨과 함께 '크헉'. 살인적인 무게다. 그 무게를 짊어지고 오르는 산 길은 딱 죽지 않을 만큼만 가팔랐다. 중간에 먼저 갔던 대원들이 나를 마중하러 내려와 나의 짐을 십시일반 하지 않았다면 그야 말로 '주글 지경'까지 갔을 거다. 세상엔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다. 그대..환영사 한번 지대로 하는구나. 한라산은 나에게 얄밉게 말한다. 'Oh~ Welcom!'

 

 '능히 은하수를 끌어당길 수 있다하여 한라(漢拏)라는 이름을 얻었으나 은하수는 당기지 않고 낑낑대며 오르는 나의 발목만 당기는 것이냐. 그러나, 좋지 않은 날씨 속에 간간히 제 속살을 드러내며 갖은 애교를 부리는 모습에 내 친히 너를 용서할 것이다.'

 

제주도를 중심으로 동서로 뻗은 장대한 모습이 대한민국 남단 최고봉의 면모를 잃지 않는다. 그 속에서 보낸 4일의 원정 훈련, 다큐멘터리감이다. 그래서인지 24일 아침부터 오후 훈련이 끝날 때까지 KBS 제주방송국에서 우리를 앵글에 담아갔다. 방송은 20101/28() 아침 8시에 방영되었다. 열 일을 제쳐두고 보았다.

 

야간훈련을 위해 바람으로 인해 곧추 섰다 누웠다 하는 텐트 안에서 밤이 오기를 기다린다. 9, 벼락같은 바람이 부는 속에 우리는 출정했다. 장구목의 북쪽 사면은 크고 사나웠다. 오랜 시간 걸었고 많은 눈을 밟았다. 험한 설사면에 위안이 되는 것은 같이 걷는 대원들이다. 야간 설상 훈련을 마치고 설사면에 눈을 파내고 큰 동굴을 만들었다. 설동이라 불리는 그 공간은 세상 어느 집보다 아늑했다. 타워펠리스가 부럽지 않다. 어찌나 편했던지 두어 시간 가면 상태로 대기하다 백록담으로 오르려는 비박 훈련 계획은 침낭 속으로 들어감과 동시에 무너졌다. 시간이 많이 지났음을 뒤늦게 알고 퍼뜩 일어나니 옆에 대원들은 주검처럼 누워 긴 호흡만 거칠게 하고 있다. 사방은 고요하다. 5마리 큰 짐승들이 동면하듯 뭉쳐있다.

 

4일째 훈련이 시작되었고 한라산 정상을 오른 뒤 우리는 BASE로 하산했다. 손톱 사이의 시커먼 때, 추위에 불어터진 눈두덩이, 며칠째 감지 못한 머리, 정신을 차리고 보니 더러워 봐 줄 수 없는 몰골이다. 그러나 마음만은 눈부신 1월의 햇살처럼 깨끗할 수 없고 산을 향한 의지는 심장을 뛰게 했다. 탐라골 용진각 산장터를 기쁘게 둘러보고 한라산에 이별을 고한다. 마음속의 눈물이 한라산에 박혀 간간히 삐져나와 나의 심금을 울린다. 한라여 원정대를 보우하라.

IP *.51.14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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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2.21 06:33:29 *.154.223.199

설동이 춥지 않고 아늑하군요. 3번째 문단부터는 좌악 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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