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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2월 17일 11시 56분 등록

집으로 가는 길

 

 

 

집으로 가는 꿈을 꾸며 일어난 오늘은 상견례 날입니다. 1시에 부가세 붙는 식당을 예약해 두었다 들었어요. 입학식, 졸업식, 학부모공개수업, 방문평가, 인사 가는 날 모두 입었던 단벌 원피스는 금요일 회식을 삼겹살집에서 하는 바람에 남의 살 태우는 누린내에 훈제되었습니다. 식육식당 냄새분자 좀 겨울바람이 빼가라고 베란다에 걸어놓았어요. 그거 빨래 안 한 채 나는 토요일 종일 이불을 싸고 누워 보냈습니다. 두문불출, 풀잠은 변화에 대한 두려움때문일테지요이런 나를 데리고 자신감이 있다는 건 어쩐 말인지, 나는 어디 물어볼 데 없나 두리번거리다 잠들었습니다먹튀가 안되자면 밥값을 반팅해서 내야지 싶습니다. 오늘 새벽 꿈입니다.   

 

 

0. 잘 차려입은 옷으로 쪼그리고 앉아 설거지하는 고모, 그리고 앞집할매를 보다

 

 

고모015.jpg 

 

 

나는 옛 고향집에 있다. 나는 마루에 앉아 있다. 아랫채 끝 봉당에 쪼그리고 앉아 고모가 골많은 자신물 통에 손을 넣어 설거지를 하고 있다. 고모는 마로 된 옷을 입고 있다. 옥양목 같기도 하다하늘색이다. 나는 그 남방을 유심히 본다. 제법 격식 갖춘, 그러니까 다려 입은 옷이다. 그런데 옹송거린 어깨는 할머니의 것이다. 평생 마음 편할 날 없고, 몸 편히 쉴 날이 없던. 눈물이 날 것처럼 그 어깨가 반갑고 슬프다. 앞집 할매도 나를 보러 왔다. 나는 안방 앞에 앉아 있다. 마루 끝에 앉아 있는 나를 앞집할매가 찬찬히 들여다 본다. 2012. 12. 16 오늘

 

 

나는 앞집 할매가 나를 찾아와 주어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언젠가 그 할매가 두 번 접은 만 원짜리를 주면서 서울 올라 가는 길에 밥을 사 먹으라 했습니다. 혼나고 올라가는 길이었는데요. 그 앞에서 나는 '뭐도 못하고 뭐도 못하고' 라면서 내 흠을 잡았습니다. 앞집할매가 괜찮다다 잘 될거다, 사람마다 자기 때가 다르다고 말해주었지요. 꿈 때문에 머리라도 쓰다듬긴 기분으로 나는 일어나 다림질을 시작했습니다. 다리미 온도를 모에 설정해 놓고 손수건을 한 장 깔고 하는 간접 다림질입니다. 미용실은 못 가고 말았어요.     

 

집으로 가는 꿈을 살펴보고 싶어졌어요누굴 찾아 집에 가는 걸까요? 어떤 상황에서 집으로 가는 꿈을 꾸게 되는 걸까요? 이런 꿈을 어릴 때도 많이 꾼 것 같습니다. 꿈들은 요 아래에 죽 베껴 써 놓았어요. 그림은 그 당시에 그려둔 걸 그대로 스캔했다고 밝힐 것도 몇 개 있는 것 같은데 열 몇 개 써놓고 며칠을 어영부영 흘려보냈어요. 꿈얘기는 쓸데없는 (, )소리라는 말 들을까봐 겁나고요남들이 꿈꾼 이야기에 뭔 관심이 있을까 싶기도 해요.

 

근데 박근혜씨의 18대 대통령 당선이 확정된 날 새벽에 나머지 것들을 다 찾아서 타이핑을 했어요. 집으로 가는 꿈들입니다. 고향 동네에 들어가 우리집을 향하는 방향을 가진 것들만 모았어요. 4년 반, 햇수로는 5년치 입니다. 오늘 꿈은 조 위에 써 놨구요. 먼 데로 내려가며 살폈어요. 이게 내림차순인가 올림차순인가. 항상 이게 헤깔려요. 다른 이들에게는 이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저는 미안하고 답답합니다. 안 읽으셔도 되구요. 꿈마다 내용을 요약하는 제목을 달아 두었어요. 

 

대선과 꿈얘기가 뭔 상관이냐구요? 그이의 대통령 당선에는 우리 사회의 어른들, 특히 전쟁과 가난을 경험한 어른들의 아픔과 가난을 벗어나게 한 사람에 대한 고마움이 표현되었다고 저는 읽었어요. 세월은 갈 거고, 아이들과 나무들은 자라겠지요. 어쩌면 나의 꿈작업은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 도시빈민이 되든가 농촌에 남아서도 성장과 개발 위주의 계획표를 짜놓고 우선순위로 삼은 당면과제를 쳐나가느라 미처 에너지를 주지 못했던 부분에 대한 것일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평범한 한 사람이 4년 정도 꿈을 관찰하는 작업이 이런 거창한 것과 관련이 될까? 아직 모르겠습니다. 그냥 저는 그런 마음으로 적어놓기로 했어요. 부모님한테 받은 것은 생물학적 친자가 아니라도 아래 세대에게 갚는 거니까요. 나도 손톱만큼 그런 고모였으면 좋겠는데요. 

 

애초에는 나의 마흔맞이 3년에 대한 정리라고 생각을 했고요. 어쨎든 이런저런 방식으로 나의 마흔 즈음을 정리해놓고 사십대를 살아가면 되는 거니까요. 벌써 12월이 열흘 남았습니다. 이 작업을 더 번듯멀쩡한 기회나 방법을 기약하며 미루면 영영 못할 것 같습니다. 잃을 게 없는 빈손의 저로서는 이래도 본전, 저래도 남는 장사입니다. 서른 일곱에서 마흔, 제일 재미있었던 건 모닝페이지와 꿈작업이었어요. 이 말에 첫 책도 쓰고 여러 권의 책을 출산한 선배님들은 고개를 흔들었어요. 네, 저도 이게 책이 될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하겠어요. 어차피 신화에 대한 책을 첫책, 첫 사랑으로 쓰기로 했고요, 그 전 2월까지 쓰는 <천일 간의 자기사랑>은 나(만)를 위한 거니까요. 젤 나를 매료시켰던 걸 소재로 정리해봐도 좋을 것 같습니다. 꿈일기를 썼던 이로 이현주목사님과 미국 화가의 The dreaming way 그림책이 떠오르는군요. 이현주목사님은 일종의 영성일기이고요. 저 그림책은 자신의 어릴적 가족내성폭력 경험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2년간의 꿈을 그리면서 알아간 과정을 만든 책입니다. 어찌 될 지 모르지만 일단 고! 일단 써볼랍니다.

 

 

써본 후 느낀 점. 잘은 모르겠지만 집으로 가는 꿈 자체가 나에게 위로를 주는 것 같습니다. 거기 갔다 오면 마음이 많이 촉촉해집니다쪽대문집, 앞집할매네 집, 친구집은 모두 내가 머물길 좋아했던 곳입니다. 그 집들은 가난했고, 사별했고, 고부갈등과 치매 가족이 있었지만 집 안에 누군가가 있었어요. 따뜻함이 있었던 걸까요? 따뜻함인 지는 모르겠어요. 어쨎든 마음 깃들 데가, 사람이든 장소든 있었어요즐거웠던 곳, 행복한 자리로 되가는 걸까요? 자연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을까요? 이건 좀 더 두고 봐야겠습니다. 우리 엄마와 할머니는 내가 가는 집에 없을 때가 많습니다. 그걸 빌미로 엄마 탓을 하면서 자기연민에 쩔어볼까 하는 마음이 제법 질기고 뻣뻣해서 쉬 접어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옛 집으로 가는 길 자체가 엄마고 할머니구나 싶습니다. 늙은 사람이 된 뒤에도 이미 사라져버린, 내 기억 속에서는 여전히 살아있는 그 옛집으로 나는 가겠지요그리고 또 하나 피를 나누든 나와의 관계가 무엇이든 내게 사랑과 돌봄을 주었던 장소, 사람은 모두 나의 고향이고 품앗이 양모인 듯 합니다. 앞집할매처럼 말입니다. 아이들은 니들을 위해 돈 벌러 간다고 말한 것에 설득당하지 않고 부재는 부재로 감지하는 것 같습니다. 모든 아이는 모르겠고 저의 경우는 그래요. 숨기거나 속일 수 없네요. 죄송합니다. 부모님. , 알고 있습니다. 나의 오늘은 더 열악한 상황에서 좋은 것만 자식에게 주려고 한 내 부모님의 헌신과 굽신의 결과라는 것도요.

 

무서워졌어요. 왜 무서우냐고요? 집으로 가는 나의 꿈을 들여다보면서 이걸 일반화하기는 어렵겠지만서도요, 퍼뜩 드는 생각은, 지금도 집에 남겨진 아이들이 많을 거라는 겁니다. 탄광촌이어서 산골벽지 점수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서울에서도 선생님들이 내려왔던 우리 고향 동네처럼 가난한 집 아이들이겠지요가난해도 마음까지 가난하지만 않으면 되는데 마음이란게 거푸집처럼 구멍이 뚫린 채, 범퍼나 당의정 코팅 없이 전달될 때도 있어서 말입니다. 나는 출산율을 올리자면 태어난 아이들을 잘 기를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특히 애착이 형성되는 만3살까지와 어린이로 보호받아야 하는 만13세까지 아이들이 빈 집에서 지내다 빈 집처럼 되지 않도록 해얄 것 같습니다. 아이들을 그렇게 해야만 하는 부모들의 멍든 가슴을 만드는 여건도 좋아져야 할테구요. 혼자서 유급 육아휴직, 직장내 보육시설 같은 키워드를 궁시렁거리고 있습니다. 만 3살은 귀에 따가리가 앉도록 들은 법륜스님의 주례사 때문에 생긴 선입견이고요, 13살은 독일에서는 부모들이 아이 혼자 밤에 두고 외출하면 부모가 처벌된다는 말을 얼핏 들었어요. 거기서 온 선입견입니다. 아이들이 빈집이 되지 않는 결정적인 시기가 있을까요? 있다면 그 시기까지는 양육을 모두 우리 아이라는 마음으로 해야 하지 않을까, 어떤 경로로 온 아이든지요. 생각이 달려갑니다. 너무 나갔나요? 나의 생각을 허황되다 할랑가요?   

 

제레미 테일러는 꿈작업이 사회적기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는 목사이며 1960년대부터 그룹꿈작업을 해 오고 있습니다. 그 자신 역시 그룹꿈작업을 인종차별운동에서 상처받은 흑인과 백인 자원봉사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시작했습니다. 꿈을 가지고 나누는 것에는 인종, 계층, 언어, 남녀가 별다른 차이가 없이 보편적이고 평등하다는 걸 그는 발견했습니다. 그리고 매우 깊은 수준에서 교감할 수 있고요. 그는 지금 인류와 지구 공동체가 당면하고 있는 전지구적 위기가 사람들의 꿈에 나타나고 있고, 원형이 진화하고 있다고 봅니다. 꿈의 상징과 비유법은 신화와 비스무리하고요, 거짓말을 하지 않는 거울, 무의식이 수수께끼로 주는 해답 또는 힌트, 유랑극단의 한 판 극놀음으로 꿈을 보는 건 무척 흥미롭습니다. 동화를 읽듯 꿈을 읽는 그의 꿈작업 중 그는 그룹투사를 좋아합니다. 이 또한 집단지성의 과정일겁니다. 그리고 투사는 어차피 내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고 나는 이렇게 느끼고 생각했다'는 걸 마구 브레인스토밍 하는 거니까요

 

저는 꿈작업의 개인적인 의미에 더 관심이 있습니다. 모닝페이지를 글쓰기가 아니라 정서불안 민간약으로 시작했듯이 꿈작업도 일종의 자기치유, 자기발견의 방편으로 생각합니다. 그는 꿈이 개인의 건강과 전일성(wholeness)를 돕기 위해 온다더군요. 한 개인의 삶에서 의식화되지 못한 것은 무의식에 보관된 채, 창고세를 지불하듯 개인의 에너지를 잡아먹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준비가 되면 개인의 치유와 건강을 위해 치올라 온다구요. 창고세로 낭비되던 에너지가 창조적이고 자발적인 것에 사용되니 생산적이고 신나는 일입니다. 개인이 이런 힌트를 받을 수 있다니 저는 입맛이 다셔지고 솔깃해요. 내가 드러내길 원치 않는 수상쩍은 게 드러날까봐 나의 노출증으로 달갑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허나 눈 있는 이가 볼 것이고요, 나는 그런 눈 없는 사람이고요. 꿈작업에 대해서는 이 사람의 책을 가장 많이 읽었습니다. 직접 만난 적도 있어요. 그의 책을 다음에 정리해볼 겁니다. 그럼 나열식 꿈모음장 발췌 나갑니다

 

 

2012

 

1.  개울가에서 돌로 집을 쌓다

나는 고향 동네 개울가를 올라가고 있다. 거기 도랑에서 돌을 가지고 뙤약볕 아래에서 성을 쌓고 있다. 내가 만든 것은 집이었다. 나는 성 안에 있고, 문과 벽, 공간을 구획하며 쌓으며 무척 즐겁게 논다. , 뙤약볕, 매미소리, 잠자리 날개, 까마중, 달개비, 달맞이꽃과 같이 놀고 있다. 손으로는 그걸 쌓고 마음으로는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 엄마, 엄마! 노는 아이인지 꿈 꾸는 나인지가 소리 내지 못하고 속으로 부르는 소리가 에코처럼 울린다. 울면서 일어났다. (2012.6.30)

 

2. 눈 쌓인 밭을 가다.

나는 눈이 소복하게 쌓인 항시미기에 서 있다. 삼거리다. 동네, , 학교. 눈이 발목이 빠지게 온다. 지나간 발자국이 모두 묻혔다. 나는 학교 쪽으로 내려가려고 한다. 그런데 항시미기 우리 과수원 밭 쪽에 누가 서있다. 몽실언니 머리를 한 소녀다. 열 네살, 열 다섯 살 되었을까? 옥순이다. 편안한 성품이었던 아이, 도시락 반찬으로 시금치무침과 두부부침을 싸왔던 아이, 나는 날아가고 있다. 눈길을 혼자서 걸어가는 옥순이 뒷통수 가리마를 보며 난다. 지금은 들길에 발자국이 아주 많다. 경운기 자국이 있고 사람 발자국도 많다. 나는 계속 날아서 옥순이 위로 따라 간다. 옥순이는 오빠와 사이가 아주 좋았다. 나는 정성이 담긴 도시락보다 그게 더 부러웠었다. (2012.6.23)

 

3. 공동묘지에서 친구의 쌍둥이 딸을 만나다

동네 뒤쪽 공동묘지를 오솔길로 오른다. 그 곳에 전에 온 적이 있다. 2. 모퉁이를 올라간다. 거기에 쌍둥이를 낳은 친구가 있다. 그 친구의 어린 딸 중 한 명, 18개월 된 딸이 거기 있다. 친구의 눈이 딸을 놓치지 않는다. 그 야산에 내가 알아 볼 수 없는 다른 많은 이들이 쪼그리고 앉아 있다. 허름한 옷을 입고 앉아 있다. 그들이 나를 쳐다 본다. (2012. 6. 14)

 

4. 축하 합창을 들으며 유년의 숲을 지나 동네를 나오다.

고향 동네에 갔다. 유년의 숲을 통과해 밖으로 나가고 있다. 그네 옆에 새벽송을 도는 합창단이 있다. 남자와 여자 혼성 합창단이다. 남자가 독일어로 노래를 부른다. 성가 같기도 하고 사랑노래 같기도 하다. 여자가 받아서 상당히 선동적인 목소리로 부른다. 느낌은 축하노래다나를 향해 부른다. (2012. 6.6)

 

5. 쪽대문집 여자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낀 후 책을 찢어 먹다

나는 쪽대문집으로 갔다. 이 집에 전에 와 본 적 있다. 왜 골목 끝에 있는 우리집으로 안가고 이 집에 들러 그들의 이야기가 끝나길 기다리는 걸까? 그녀들은 자기네들끼리 이야기한다나는 거들떠도 안본다. 왼쪽 여자는 진초록색 가죽옷과 검정색 옷을 입었다. 예쁘다. 오른쪽 여자는 존재만 느껴졌다. 그 집 마루에 많은 사람이 둘러 앉아 있다. 나는 끊임없이 그녀들쪽을 쳐다본다. 나를 바라봐주길 바라는 시선을 보낸다그런데 그 모둠은 그러질 않는다. 좀 전의 두 여자가 이야기를 마쳤는지 바바리나 얇은 야상점퍼를 폼나게 챙겨입고 쪽대문을 나선다. 나는 따라 나선다. 그제서야 들고 온 검정 비닐 봉다리 속의 책을 꺼내 쭉쭉 툭툭 찢어서 씹어 먹기 시작했다. 그 책은 붉나무 작가의 생태놀이책처럼 생겼다. 표지가 노랗고 얇다. ,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것인지 모르겠다. 한 장 한 장 찢어서 먹는게 아니라 빵을 손으로 자르듯 뚝 분질러서 우걱우걱 먹는다. 맛있있다. (2012. 4.6)

 

6. 산 꼭데기 집의 옷싸개

산 위 꼭데기에 있는 집을 보고 있다. 다리를 저는, 호떡팔던 그 엄마네 집과 같은 위치다. 집 지붕이 지평선이다. 방 한칸 부엌 한 칸의 들마루가 있는 집이다. 시멘트가 아직 덜 말랐다. 창틀은 흰 색이고 벽은 연그린 또는 올리브그린이다. 그 집 마루에 흰 옥양목 커튼이 펄럭인다. 십자수로 수놓은 혼수용 옷싸개 비슷하다. 두 장이다. (2012.4.3)

 

7. 친구집을 얼쩡거리다

고향 동네 친구 집에 있다. 나는 우리집이 아니라 감나무 집을 얼쩡거리고 있다. 장면전환 나는 커다란 사각의 빌딩 위를 날아다닌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날아가는데 건물이 점점 더 높아진다. 이유는 어떤 아이가 건물을 올라오고 있기 때문이다. 암벽등반하듯 기어서 올라온다. 내가 옮기면 그 아이가 나를 잡으러 따라온다. 그 아이의 애씀이 싫다. 건물 여섯 동을 날았다. 3번째에서 4번째 건물에서 걸려있던 가오리연을 보았다. (2012. 2. 4)

 

2011

 

8. 들로 가는 삼거리 원통형 기계 속에 와서 죽은 새들

고향의 항시미기 길목 삼거리 논뚜렁에 내가 있다. 늦여름이거나 가을 해질녁이다. 나는 거기서 기계를 청소한다. 처음보는 기계다. 양수기인가 싶은데 아닌 것도 같다. 둥근 원통들이 이리저리 구부러져 있다. 위를 향한 두 개의 구멍에 손을 넣어 닦는다. 두 번째 구멍이 막혀있는게 고장의 원인이었다. 그 불순물은 뽀얀 첫물 사골 육수 빛깔이고 새의 날개죽지며 부리들이 들어있다. 새 곰탕인가, 새들의 무덤인가 왜 여기와서 죽었지 굼금하다. 역한 냄새를 참으며 손질을 계속한다. 2011. 11.23    

 

꿈 손자와 함께 있는 엄마의 마루밑을 치우고 올케와 두 딸과 함께 있다.

 

엄마가 손자 2명과 안방에 엎드려 있다. 손자들은 수영선수 박태환, 또는 버리데기 그림책, 옥황상제에게 벌을 받아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는, 버리데기가 결혼한 더꺼머리 총각처럼 생겼다. 하악이 발달하고 순박해보인다.

우리집 큰 올케가 마루 밑을 치우고 있다. 나도 손바닥만한 네모난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인다. 올케의 옆에 건강하고 밝은 여자아이 두 명이 네모난 게임을 펴놓고 저희들끼리 재잘거린다. 내가 물걸레를 가지고 닦는다. 올케가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다. 재를 떤지가 오래 되어 재가 길게 꼬부라져있고, 불꽃이 빨갛다. 올케가 말한다. “나는 여기가 좋아요내가 말했다. “나는 여기는 답답해. 허리를 펴고 앉아 있을 수 없어.”  2011. 11.21

 

9. 장례식에서 노래 부르다

나는 장례식이거나 죽음이 예상된(사형) 이의 가족을 조문하러 갔다. 죽거나 죽을 사람은 두 명의 어버지란다. 앞에서 내가 노래를 부른다. 유품으로 나온 물건들을 자세히 본다. 그 물건들은 고향 안방의 장롱 위에 진설되어 있다. 여덟 개의 물건 중에는 내 아버지의 윗옷이 한 개 있다. 실로 짠 도꾸리다. 놀라서 깨어났다. 2011.11.8

 

10 연탄불을 꺼트리다.

고향집 부엌에서 연탄불을 갈고 있다. 거의 꺼져가는 불 위에 적목 모양의 연료를 갖다 올려놓고 시간을 벌고 있다. 불 갈다 말고 나는 저쪽에서 뭔가를 바쁘게 하고 있다. 아마도 반찬을 만들거나 설거지를 하고 있다. 연탄이 모두 타버리고 불은 꺼졌다. 불씨도 꺼졌다. 다시 태우려면 번개탄이 필요하다. 후회스럽다. 2011. 10.18

 

11. 앞집 언니네 집에서 물끄러미 보다 

앞 집 언니네 집에 갔다. 나는 그 집 부엌과 중간방을 들여다볼 수 있는 봉당쯤에 서 있다. 나는 아이인 듯 하다. 누군가를 찾고 있는 듯 하다. 아니면 어떤 장면, 느낌을 찾고 있다. 내가 눈길을 주는 곳은 중간방이다. 그 집 둘째딸과 혼인한 새 신랑이 와 있다고 했다. 내가 올 곳이 아닌가 싶어 물러 나온다. 2011. 10. 16   

 

12.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다

고향집에 어른인 내가 성큼성큼 걸어들어간다. 큰 소리로 엄마를 부르며 간다. 고요하다. 부엌으로 가서 문을 연다. 부른다. 없다. 등을 돌리고 마당을 본다. 부엌은 어둡지만 마당은 밝다. 부엌살림살이가 낡고 바랬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눈부시다. 2011. 10. 14

 

13 부엌에서 떡을 먹어치우려는 막내를 안쓰러워하다.

고향집 부엌에 내가 갔다. 아궁이 쪽이다. 막내가 자기가 썰은 여러 종류의 떡을 가지고 왔다. 연탄아궁이에 버리려 한다. 내가 놀라서 하지 말라고 말린다. 자기가 잘못 썰은 떡을 모두 먹어치워서 책임지려고 하는데 그게 안되어서 모두 들고 나왔다는 거다. 좀 안쓰러웠다. 2011. 9.29

 

아랫동네가 변했다.

고향집에 가려고 버스에서 내렸다. 아랫동네 신작로다. 집으로 가는 길을 찾으러 골목으로 들었다. 골목이 골목으로 연결되더니 낯선 강가로 나를 데려간다. 내가 알던 동네가 관광지 전집으로 변했다. 조약돌 위의 휘장 아래 전집에서 부침개 굽는 걸 구경한다. 내가 먹고 싶은 방식의 경상도식 전이 아니라 카레를 넣어서 부치고 있다. 먹고 싶어지지 않았다. 2011.9.2

 

꿈 증조할머니 방에서 할머니가 법륜스님으로 변하는 꿈

나를 키운 증조할머니의 방으로 갔다. 할머니가 방문을 열어놓고 있다. 밖을 내다 본다. 내 기억 속 그 방이다. 자세히 보니까 할머니가 법륜스님으로 바뀌어 있다. 똑 같은 자세로 똑 같은 표정으로 똑 같은 풍경을 바라보고 있다. 담뱃대가 없는 것만 다르다. 2011.9

 

꿈 어떤 의식을 치르고 있는 남녀를 위한 축가를 부르는 남자

고향집이다. 마당가에 놀거나 부엌으로 가지 않았다. 어떤 의식을 지켜본다. 그러다 집에 대해 느껴진다. 이 집은 기초공사가 부족했다. 한 단 깔고 그 위에 지어진 게 아니라 바로 봉당을 놓았다. 신발이 어지럽게 늘려져 있다. 그 모양을 보고 집주인의 마음 살림살이가 살펴져 안스러워진다. 옛날식 개다리소반에 대나무로 된 것이 2개씩 꽂혀있는 그릇이 있다. 대나무는 20센치 정도고 잎은 없다. 지름은 3센치 정도다. 누런 빛이 난다. 여러 개의 상마다 이 대롱이 2개씩 놓여 있다. 

옆에는 정안수 그릇처럼 보이는 사발에 쌀이 담겨있고, 그 위에 초가 꽂혀 있다. 할머니방 호곡하던 아침마다 밥을 올리던 자리에 하나, 가문벅이라 불리던 소죽 끓이던 뒷 부엌에 하나 또 하나는 예전에 나뭇가리를 쌓아두었던 데 하나가 놓여있다.

그 앞에 내 아버지와 재혼한 부인이 서 있다. 그 이는 내가 아는 엄마는 아니다. 두 남녀가 서 있는 앞에 축가를 남자가 부른다. 아버지의 사촌이라고 했다. 그가 아버지의 어깨를 토닥토닥한다. 두 사람 사이에는 깊은 공감이 있다. 거의 연애감정 이상의 깊고 진한 감정이다. 서로를 측은히 여기고 내가 니 마음 다안다는 느낌이다. 에로틱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아주 특별한 정서적 유대감이었다. 옆에 서 있는 여자는 자기 옆의 남자에 대한 앎이 적고 얕다. 나는 안 지 얼마 안되는 여자와 남자가 결혼하는구나 생각했다. 그 남자는 입술이 붉고 키가 크고 곱슬머리이고 내 아버지보다 키가 컸다. 잠에서 깨어날 때는 그가 부르던 축하노래를 거의 외울 듯 했다.  2011. 2.6

 

부르지 못하는 말이 종소리처럼 울리다

나는 집으로 가고 있다. 마당은 고요하고 텅 비어 있다. 아빠, 아빠, 엄마, 엄마를 소리쳐 부르려고 하는데 입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 말이 북소리나 종소리처럼 집 전체에 공기와 햇빛 속에 진동을 울리고 있다. 물 같은 그리움이 뻑뻑하다. 덜컥 이러다 아빠, 엄마가 죽어버리면 어떻하지 무서워졌다. 울면서 일어났다. 2011. 1.23

 

부엌에서 빈약한 도구와 재료로 비빔밥을 만드는 걸 들여다 보는 1살 여자아이

고향집 부엌에서 요리를 하고 있다. 메뉴는 비빔밥이라 했다. 우리 식구들만을 위한 밥상이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 했다. 일밥. 근데 엄마는 어디 가고 없고 내가 요리를 한다. 어둥댔지만 어떤 재료가 있는 지 순서는 뭔지 도무지 갈피가 안 잡힌다. 내가 쓰는 도마는 나무로 된 것인데 오래 써서 가운데가 움푹 패였다. 칼은 무딘 조선 칼이다. 당근을 썰자고 들면 휘청 굽어졌다. 누군가 밥상을 보고서 나물 색깔이 별로 없네라고 말한다. 참치를 손으로 쥐어 짜내다가 일부를 더러운 자신물 그릇에 빠뜨렸다. 짜증을 내며 얼른 주워서 씻었지만 버려야했다. 당근은 굵지 않고 알이 작았고, 잔뿌리가 더럭더럭 난 거다. 그나마 칼이 안들어 채 치지 못하고 뚝뚝 썰어놓았다. 내가 그러고 있는 양을 어떤 1돌 남짓된 어린 여자아이가 들여다 보고 있다. 그 아이가 창문에 버둥버둥 매달려 있다. 그 밑에는 수채구멍이 있다. 나는 놀라서 뛰어가 아이를 창문에서 떼어 놓았다. 얼마나 애가 탔는지 모른다. 아랫도리 옷을 입지 못한 여자아이의 보드라운 엉덩이가 내 팔에 느껴졌다. 나는 아이더러 화를 낸다. “언니가 그러지 말라고 했지? 위험하다고 했지? 다친다고 했지? 인제 다시는 그러지 마” 2011.2.19

 

 

2010

 

가지나물을 찢다

고향집 마루에 앉아 땀을 뻘뻘 흘리면서 데치거나 찐 가지나물을 찢는 꿈을 꾸었다. 양이 퍽 많았다. 마음이 바빴다. 옆에 있는 이는 도와주지 않았다. 2010.8.21

 

보리 방구 내 아들을 엄마가 데리고 가다

엄마가 나 어릴적 놀던 놀이터 미끄럼틀에서 너댓살 짜리 남자아이를 부른다. 귀엽게 우리 보리 방구. 인제 가자.”고 한다. 보리방구라고 애칭으로 불리는 아이는 내 아들이다. 흐뭇하고 신기했다. 반바지를 입고 내 어머니의 손을 잡고 따라나서는 그 아이는 찬찬해 보이면서 잘 생긴 얼굴이다. 사랑스럽다. 핏줄의 땡김이 느껴진다. ‘어이구, 내 강아지, 어이구 금쪽 같은 내 새끼라고 물고 빨고 싶은. 2010.8.7

 

고향집이 2/3쯤 땅에 묻히는 꿈

내 고향집이 땅으로 꺼지는 꿈을 꾸었다. 눈에 묻히듯 땅에 들어가 있다. 그걸 보는 내 느낌은 어떡하지, 어떡하지 동동동 철렁하면서도 그럴 때가 된 것처럼, 이 세상 모든 고향집들은 때가 되면 땅속으로 꺼져가는 거야, 당연한 법칙을 목격하듯 받아들이고 있다. 하지만 두렵고 떨렸다.

 

임신한 쥐의 배를 가르는 이들

내고향 입구다. 어둡고 검은 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고스트 버스트처럼 비밀 업무를 담당하는 것 같다. 그들의 임무는 어둠 속에 있는 쥐의 배를 가르는 거다. 어둠에 눈이 익자 매우 빨라서 보이지 않던 그들의 순식간의 작업이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들은 주먹만한 전기톱을 내려서 꺼낸 후 길가 전신주에 꽂는다. 칼날이 윙 돌아가며 쥐들의 배를 가른다. 그 쥐는 죽고, 그 안에서 아직 태어나기 전인, 임신 중인 쥐들이 여러 마리 나온다. 그 새끼 쥐들은 태어나기 전에 어미가 배를 갈렸으므로 솎아진 풀처럼 힘없이 죽을 거다. 그 새끼 쥐들을 휙 던진다. 이 모든 것은 매우 빠른 순간에 일어났다. 나는 잠잠히 그 전 과정을 지켜본다. 2010.5.10

 

싹을 낸 씨앗을 밭에 내어 심자

고향 마을에 내려갔다. 도랑건너집 아지매가 모판에다가 무씨를 뿌려서 모종을 길렀단다. 밭에다 옮겨 심어야 한다고 했다. 내 보기에는 싹이 거의 안 났고, 안 날 것 같다. 어디 푸른 싹이 보여야 말이지. 엄마가 모판 흙을 만져보고 냄새를 맡아본 후에 말했다.

시큼하니 썩으려고 하네. 더 두면 하나도 못 건지겠어. 지금 밭에다 옮겨심어야 그나마 건질 게 있겠어. 때를 놓치면 농사 완전히 접겠어. 근데 모종이 저 상태니까 포실포실한 밭에다 심어. 그러면 되겠어.”

그 말을 들은 내가 안심이 된다. 경험많은 이의 이야기에 신뢰가 가기 때문이다. 2010.4.13

 

마루의 두 남자를 대접하다가 과부가 된 여자들을 생각하다

고향집 부엌에서 일하고 있다. 손님이 두 명 와서 대접을 하고 싶어한다. 내 옆에는 젊고 발랄한 여자가 있어 나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준다. 마루에 손님이 와 있다. 2명의 남자와 한 무리의 사람들이다. 한 남자는 카리스마 있고 한 남자는 부드럽게 생겼는데 사람(아이) 좋아하고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나는 그 두 남자가 모두 만만하다. 양쪽 모두가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그들이 고향집에 놀러온 것이 기쁘게 느껴진다. 제법 손님을 대접하는 내 모습이 능숙하다. 그런데 문득 미정이네 엄마가 생각나면서 고향 동네에 여자들이 사별후 모두 혼자 살고 있는 게 느껴졌다. 내 어머니도 그렇고 나도 그럴 것이 느껴졌다. 2010. 4.5

 

일행을 배웅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례행렬을 만났다. 상여가 이쁘다.

김정인, 서유미씨와 고향동네 골목을 걸어나온다. 뭔가 인수인계를 했다. 내가 인혜학교에 가서 뭔가를 하겠다(가져오겠다)고 하니까 그러라고 한다. 그들은 돌아갔다. 보슬비가 내린다. 혼자서 그 비를 맞으면서 돌아온다. 자전거를 타고 간다. 계절은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초입이다. 잔디의 누런 느낌이 그대로 있다. 항시미기로 가는데 그 비오는 오후에 장례행렬이 있다. 사람들이 아주 많다. 내가 분명하게 본 것은 흰색 상여와 벼슬이 빨간 닭장식이다. 굴건제복을 입은 그 집 며느리가 사람들을 둘러다니며 뭔가를 먹이고 있다. 나이가 많은 안어른이 돌아갔다고 했다. 호상인듯 했다. 나는 흰 천, 휘장에 여러가지 예쁜 장신구를 꽂은 그 상여가 퍽 예쁘다고 느낀다. 2010. 3.31 

 

왼쪽 뺨의 벌레가 떨어지지 않는다.

아버지인지 엄마인지 부모중 한 분은 돌아가시고 한 분은 병들어서 돌봄이 필요한 상태였다. 나는 직장을 쉬면서 돌보고 있다. 여름. 키가 큰 미루나무가 심겨진 길을 휠체어를 밀면서 간다. 마음 속에 생색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뭔가 마음이 복잡하다. 왼쪽 뺨에 작은 벌레, 불개미보다 더 작은 벌레들이 붙어있다. 아무리 비벼도 떨어지지 않는다. 왼손으로 훑어내도 더 붙어 있다. 살을 파고 들어가 물어뜯기는 느낌이다. 화들짝 놀라 진저리를 치면서 일어났다. 2010. 3.12

 

골목할매를 만나다

고향집 공동샘에 갔다가 귀동할매를 만났다. 내가 반가이 인사를 하는데 누군지 알아보지 못하고 난 누군지 모르겠어..’ 하시며 미안해한다. 2010.2.23

 

옛집 마당에 지어진 양옥집을 임신한 올케에게 아버지가 주었단다.

유년을 자란 옛집 마루에 서 있는데 갑자기 마당 가운데에서 벽돌집이 지어지기 시작한다. 뚝딱 지어졌다. 아버지가 올케한테 지어주는 집이라 했다. 집이 이쪽을 보면서 지어졌다. 단층의 네모난 양옥집인데 남방계 스님의 가사색깔이 떠오르는 주황색으로 칠해졌다. 내가 손을 대니까 손에 묻었다. 손을 씻다가 일어났다. 올케가 활달하게 웃으면서 몰라요, 아버님이 저 가지래요.” 말해서 좀 질투를 했던 것 같다. 올케는 여름 임신복을 입고 있었다. 2010.1.21

 

집이 물에 잠겼다.

우리 골목, 우리 집 가기 전 나무로 된 쪽대문집에 내가 있다. 갑자기 집 전체에 물이 차기 시작했다. 거의 내 턱까지 차올랐다. 집 전체가 젖었다. 내 발이 땅에 안 닿으려고 하자 나는 덜컥 겁이 나고 허우적거리게 된다. 물이 자꾸자꾸 흘러들고 있다. 2010. 1.6

 

 

2009

 

새로 난 길로 기차를 타러 가다

옛 고향 동네 맨 꼭대기에 내가 있다. 다른 집과 길이 더 뚫어지고 세워져서 큰 길이 나 있다. 예전에는 보지 못하던 것이다. 코발트블루 청치마를 입은 여자가 2시 기차를 탄다며 늦었다며 내 앞을 지나간다. 그 위에 기차역이 있었나 궁금해졌다. 나도 그 여자를 따라간다. 산은 점점 높고 숲은 점점 깊어진다. 그러나 그 길을 가야한다고 느낀다. 2009. 12. 9

 

도망간 집이 우리 집이 아니라 남의 집이어서 울었다.

나는 쫒기고 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에게. 뛰어서 우리집으로 숨어들었다. 집은 벽이 노란색이다. 그런데 그 집은 우리집이 아니다. 창이 많고 문들은 굳게 닫혀있고, 풍경, 모양이 낯설다. 나는 엄마, 엄마 부른다. 아무리 불러도 그 집의 어떤 문도 열리지 않는다. 누구도 나와 보지 않는다. 울면서 일어났다. 너무 무서웠다. 그런데 내가 뭘 두려워하는지 직접 쳐다는 보자며 그 쪽을 향해 보려는 노력이 있었다. 보지는 못했다. 2009.12.7

 

헤어진 나에게 증조할머니가 오시다.

그가 왔다. 우리 고향집과 구조가 비슷한 집으로 그가 왔다. 술을 먹고 와서 내 이름을 부른다. 나는 <조제 호랑이 물고기> 영화에서 조제가 숨어있던 벽장과 비슷하게 생긴 벽장에 숨었다. 무서워서 숨었다. 벽장은 나무색 페인트로 칠해진 문을 옆으로 밀고 들어가면 2단짜리로 되어 있다. 아마 윗쪽에는 이불이나 베개를 올려놓고 아래는 뭔가를 놓아두는 데 같았다. 무서운 와중에 나는 그 벽장 안이 안온하고 마음에 든다. 내가 누우니 딱 맞다. 밖에서는 술을 먹은 그가 평소라면 내가 상상하지 못했을 땡고함과 난폭한 모습으로 찾아내라며 난동을 부린다. 벽장에 누워있다가 슬그머니 뒷마당으로 나갔다. 뒷마당은 서늘하다. 하늘에 겨울 찬 달과 구름이 있고 나무들은 모두 잎을 떨구고 있다. 그는 술이 깨고 나자 다시 멀쩡해져서 평소의 순한 남자가 되어 울면서 돌아가는 것 같았다.

 

그와 마주앉아 상추쌈을 싸 먹었다. 그의 손, 상추 이파리를 한참 본다. 웃음, 이야기 소리, 즐거운 분위기..마음이 싸르르 아프다.

 

장면전환. 돌아가신 증조할머니가 나를 보러 오셨다. 할머니 오셨다고 소고기불고기를 요리하려고 분주하다. 소고기불고기를 드시는 것이 할머니의 목적이 아닌가보다. 내 요리가 끝나기 전에 가신다. 호들갑 떨지 말고 그냥 할머니 얼굴이나 더 보고 있을걸 후회스럽다. 2009.11.23

 

집으로 가는 길의 새 유치원 공사 책임을 맡다

고향마을에 갔다. 골목을 지나는데 그 집을 유치원으로 새로 짓는다고 했다. 이우룡교장선생님이 교장이라고 해서 마음이 놓인다. 그런데 그 집짓는 업무를 내가 맡아야 한다고 했다. 누런 서류봉투를 옆구리에 끼고 우리 집을 향해 간다. 그 유치원 건물을 기초공사한다. 바닥에 보석이 깔려 있다. 맨발로 지나오는데 발바닥이 아프다. 하지만 감수할만하다. 우리집으로 다시 가는데 1학년 여자아이들이 우루루 따라나와 안녕히 가세요.” 인사를 한다. 내가 그 아이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이 일을 얼마나 좋아하는 지 알게 된다. 2009. 11.20

 

부엌청소를 하는데 산업용 기차가 1량 있어 의아하다.

부엌에 갔다. 아버지가 나를 데려갔다. 그런데 부엌이 더러워 청소를 해야했다. 빗자루로 쓴다. 가문 날처럼 흙먼지가 많이 나서 음식 다루는 곳인데 여간 조심스럽지 않다. 몽당빗자루를 들고 살살 쓴다. 그런데 부엌 안에 커다란 산업용 기차가 1량 있다. 시멘트나 철, 석탄을 실어나르는 무쇠로 된 기차다. 그 안에 뭐가 들었는지 모르지만 저렇게 커다란 것이 어울리지 않게시리 내 부엌 안에 있다는 것이 이상하다.

그 기차 뒤를 살펴보니 호박씨 껍질과 땅콩껍질이 있다. 쥐가 먹은 것인가 자세히 보니까 사람이 손으로 까서 먹은 것이다. 누가 일부러 훔쳐 먹고 거기 버렸나 싶으다. 부엌은 가마솥이 있던 옛집 부엌 같기도 하고 씽크대가 놓인 요즘 부엌 같기도 했다. 2009.11.18

 

세 여자가 합의해서 아이 엄마와 우리집을 더 이상 찾지 않고 거기서 살면서 키우기로 한 꿈

나하고 어떤 여자 둘이서 강보에 쌓인 아기 하나를 데리고 애 엄마를 찾고 있다. 그리고 우리집을 찾고 있다. 그런데 집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여자가 애를 그냥 우리가 데리고 있자고 그냥 여기 머물자고 했다. 나는 겉으로는 펄쩍 뛰었지만 속으로는 그 말이 반가웠다. 겉으로 "그럼 아기는 어떻게 하냐? 우리는 애 키울 줄도 모르잖아?" 물으니까 옆에 있는 할머니를 가리키면서 "저 할머니를 같이 있자고 하면 된다"라고 했다. 할머니한테 애기를 안겨주면서 그 이야기를 하니까 그러자(여기서 우리가 키우자)고 했다. 할머니는 "나는 밥도 잘 하고 애도 여럿 키워봤다" 며 반긴다.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도 우리는 알고 있었다. 지금 세 여자가 공모해서 남의 아이를 유괴하기로 했다는 것을.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이러면 안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도 아이를 여기서 같이 키워도 된다는 것, 또 우리집을 찾으러 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몹시 다행스러웠다. '그래도 이래도 되나?' 갸웃거리며 일어난다.  2009.93

 

잃어버린 남동생들이 안방에서 편안히 자고 있는 꿈

쫒기는 꿈을 꾸면서 남동생을 어디선가 잃어버렸다. 예전 고향집을 문으로 못 들어가고 부엌으로, 도장방으로 들어갔더니 거기 어린시절 본 장농이 있고(마호가니 빛에 장미가 조각된 것을 보면 어린 시절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어릴 때 안방에 있던 것은 새와 장미나무 그림이 있었고 큰 거울이 있었는데 꿈 속의 장롱은 거울은 없이 전체가 손으로 공들여 깎은 장미문양이었고 번들거리지 않고 빛깔이 기품 있었다. 약간 붉은 빛이 나는 고급 목재였다.) 이불이 깔려있고 어른이 된 세 남동생이 거기 지금 만나는 어른의 모습으로 잠자고 있어서 안도했다. 그들은 모두 거기서 편안히 자고 있는데 나 혼자서 그 난리를 겪은 것인지도 모른다. 2009 9 2

 

제복입은 남자들이 자는 동안 손금을 고치고 고향집에 간 꿈

제복입은 남자들이 자고 있는 미로같은 방을 지나갔다. 방의 출입구가 복도를 사이에 두고 배치된 것이 아니라 한 방에서 다음 방으로 가도록 되어 있다. 그런데 밤인지 똑같은 헤어스타일, 똑같은 옷을 입고, 똑같은 이불을 덮은 남자들이 방마다 자고 있다. 나는 그들이 깨지 않도록 매우 조심했다. 그래서 어떤 사람(수염이 나고 머리가 희고 기골이 장대한 남자 어른-영화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간달프 같은 이미지다) 앞에 도착했다. 성별은 기억이 안나는 5~6명의 사람들이 나와 함께 줄을 서서 오른손인지 왼손인지 한 손의 새끼 손가락 아래를 그 남자가 칼로 긋는 걸 견뎠다. 그가 칼을 댈 때 매운 고추가 닿는 것처럼 손의 살이 잠자고 있는 내게 실제로 아프게 느껴졌다손금을 고친다고 생각했다. 그런 다음 예전 내가 살던 고향집으로 갔다할매방 밖에서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고, 뭔가를 했는데 기억이 잘 안난다. 2009.92

 

집에서 법회를 열어 법륜스님 강의를 듣는 꿈

한자 공부를 다시 하기 위해서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큰아버지를 모시고 공부를 하는데 갑자기 공부하러온 인원이 150이나 160명으로 늘어났다. 00법사님과 법륜스님도 계셨는데 내가 강의하는건 말도 안된다 싶어서 허락도 받지 않고 00법사님으로 강사를 바꿔 소개했는데 결국 스님이 거기 모인 사람들을 위해서 강의를 하셨다. 새로짓기 전 고향집이다. 나는 강사 소개 잘못 한 것에 대해서만 전전긍긍했을 뿐 다른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2009,82

 

내가 집이 되어야 한다는 꿈조각

'내가 집이 되어야 하는데, 내가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일어났다. 내용은 생각나지 않고 일어나며 중얼거린 그 말이 결론인 듯 했다. 2009 72

 

고향동네의 돌아가신 어른들과 활달하게 대화하는 꿈

00네 아버지가 앞집할매, 다른 돌아간 이들과 도랑건너 두부집에서 즐겁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나도 거기 있다. 오래 전에 보고 다시는 보지 못했던 돌아가신 어른들이다. 어려서, 수줍어서, 사는 형편이 달라서 아무 얘기도 못했는데 꿈 속의 나는 그 모든 이들과 껄껄껄 웃으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그들도 어릴 때 나처럼 수줍어서 말못하던 이들이 없고 하나같이 활달해져 있다. 꿈 속의 내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이 꿈을 꾸는 내게 크게 들린다. '이제 내가 먼저 다가가서 말 걸고 비웃음 당해도 내 얘길 먼저 하는거야. 왜 진작 그러지 못했는지 후회스러워' 그이들이 보고 싶고, 현재의 어른 내가 낯설다. 12 30. 2009.71

 

어미새의 관심 끌려는 어린 새 꿈

나는 아직 날개의 뼈와 근육이 다 자라지 않은 어린새다. 계속 날개짓을 해야했는데 파닥거리는 느낌이 힘겹다.  근데 엄마새는 아무리 내가 자주 들여다봐도 다른 일, 아마 다른 새끼새를 돌보느라 바빠서 건성으로만 뒤를 돌아다보며 ', 그래'할 뿐이었다. 나중에는 내가 깻잎찜을 멈음직스럽게 만든 후 그것을 보아달라고 칭찬받기 위해 뒤에 한참을 들고 서 있었다. 근데 김이 다 식을 때까지도 역시나 귀찮은 듯 잠깐 돌아다보며 ', 그래' 그랬다. 나는 어미새의 다른 새끼를 돌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고 있는, 어미새의 눈길을 받기 위해 조그만 날개를 퍼덕거리며 오르락내리락하고, '나 좀 봐달라'며 계속 기다리지만 다른 새끼새를 돌보느라 바빠서 ', 그래'라고만 하는 뒷모습만을 봐야하는, 그리고 둥근 찬합에 담긴 김이 모락모락 나고 실고추 썬 것이 얹혀있는 음식을 든 채 슬프게 내려다보고 있는 그 새를 지켜보는데 처음에는 연민이 느껴졌다가 나중에는 그 어미새에게도 그 상황에도, 그 어린새에게도 화가 부글부글 났다. 2009 63

 

2008

 

오래동안 열지 못했던 집안의 상자를 열 수 있는 열쇠를 받는 꿈

어떤 사람이 열쇠를 우리집에 배달해서 집사가 그걸 받았다. 열쇠는 오랫동안 열지 못하던 집 안의 어떤 상자에 꼭 맞는 것이었다. 철컥 상자가 열리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집의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아버지가 심약한 아들을 방에 불러다놓고 '죄를 회개하라'는 식의 강압적인 설교를 하고 겁에 질린 그 아들이 한 톤 높아진 불안한 음성으로 한 주 동안 잘못했던 것을 줄줄이 늘어놓으며(이미 성인이기 때문에 아버지한테 말할 필요도 없는 것, 잘못이 아닌 것들도 말하면서) 용서를 비는 것을 방 밖에서 듣고 있었다그 아버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초상화처럼 양복 정장에 흰 와이셔츠 깃을 끝까지 채우고 단정하게 이발하고 수염을 기르고 체인이 늘어진 시계줄을 조끼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있었다. 방으로 들어가는 문도 서양식의 저택의 마호가니빛이었고, 내가 살고 있는 집은 기둥이 매우 커다란 집이었다. 밖에는 꽃이 피어있는 잘 가꿔진 정원이 있고 조금 건조하면서도 나른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대기가 밝았다. '이런 나를 주님이 용서하실까요?' 하면 그 아버지는 제 것도 아니고 제 권한에 속하는 일도 아닌 용서와 사랑을 남발하며(그가 그런 말을 할 때 그 단어가 더럽혀진 느낌을 받았고 구역질이 날 만큼 불쾌했다) 가없은 그 아들을 통제하고 조종하는 것을 즐기고 있는 것을 분노에 차서(분노는 가히 죽여버리고 싶을 만큼 컸다지켜보는 꿈을 꾸었다끔 속에서 그들은 내 아버지와 내 오빠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내내 지켜보기만 했다. 그 기분은 고1때 무섭게 생긴 국어선생이 우리반 친구를 불러일으켜 세워서 모욕 주고 깔짝거리는데도 가만히 앉열아있었던 느낌과 비슷했다. 2008.12.14

 

오래 기다려온 남자를 만난 꿈

고향 지도의 남서쪽 어딘가가 집인 남자를 만났다. 지도를 펴고 한참 지역을 설명했는데 면 이름이 생각이 안나서 가물가물하다. 그는 얼굴이 검고 다부지고 퉁실한 체격의 중키에 머리가 직모의 남자였다. 그는 나의 가까이에 있었던 사람이다(직장이나 생활 가까이) 내가 그에게 동갑이니까 말을 트자고 했고 그는 심드렁하게 그러자고 했다. 말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는데 사투리가 심했다. 어느 지방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그가 내가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그라는 걸 직감적으로 알았다. 2008.11.24

 

돌아가신 할머니를 업고 다니는데 아픈 꿈

장면이 전환되어 내가 할머니를 업고 있다. 돌아가시기 직전의 미라처럼, 마른 장작처럼 깡마른 몸을 애기처럼 들춰업고 애기를 재우듯 토닥이며 걸어다니고 있었다. 할머니의 거칠고 작은 발이 시려워 보여서 큰 양말을 신겼다. 할머니가 자꾸 쳐져서 위로 추키면서 업고 다니는데 어디선가 누군가가 할머니더러 파잎을 먹으라고 했다. 나는 그게 좋은 건줄 알고 할머니가 많은 파잎을 다 입에 넣는 걸 그냥 보고 있었다. 꾸역꾸역 집어 넣는 느낌인데...근데 파잎을 먹은 후로 체력이 떨어져서 완전히 정신을 잃고 축 늘어졌다. 그 상태로 할머니를 업고 다니며 애를 태우는데 어디선가 할머니가 파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끈적한 액체와 함께 파잎을 모두 토해내는 동안 계속 업고 있었는데 죄책감이 들었다. '저렇게 괴로와하시는데 왜 미리 말리지못했나? 나땜에 아팠나?' 여전히 할머니는 가볍고 측 늘어져있지만 토하고 난 후 휠씬 작고 가벼운 몸으로 편안하게 내 등에 업혀 있었다. 토한 곳은 고향집 골목 언니네 집 뒤였다. 그러다 잠을 깼다. 2008.11.15

 

고향동네 산 아래 집에서 복숭아를 받아먹으며 수석의 시를 읽는 꿈

고향동네를 찾아갔다. 산에서 첫번째 집에 갔다. 그런데 실제 그 집은 산으로 난 길이 왼쪽에 있는데 꿈 속의 집은 길이 오른쪽으로 나 있다. 내가 들어가니 젊은 아가씨 두 명이서 있다가 나를 맞는다화들짝 반기는 건 아니고 그냥 오면 오고 가면 가나 보다 하면서 앉을 자리를 주고 먹을 것을 주는 무심한 반김이다. 산은 가을날 안개가 끼고 단풍이 들고 뭔가 신비로움, 그리움, 안도감, 떠나고픈 느낌을 느끼게 한다. 그 아름다운 산을 보고, 곁에 있는 것만도 위로가 된다. 그 집 아가씨 두명이 반 바지를 입고 아무렇게나 누워서 복숭아를 깨물어 먹고 있다가 나에게도 복숭아를 주었다. 전혀 덜 익어서 크기만 한 복숭아와 조금 더 익어서 흰빛이 나는 큰 복숭아를 내밀어서 내가 더 잘 익은 쪽 복숭아를 골랐다. 나더러 방에서 먹을 건지, 방 밖의 대청 마루에서 먹을 건지를 물었다. 나는 '산으로 가는 길이 좋아요'라고 대답하면서 겨우 한 사람이 누울락말락 한 방-그 방은 노란 장판이 깔려있고, 벽이 뚫려 있어서 산으로 올라가는 길이 보였다.-에 누워서 복숭아 한 알을 남김없이 아작아작 베어서 먹었치웠다

복숭아 먹으면서 그 방에서 돌을 보았다. 수석을 모아놓은 것 같기도 하고 수석의 사진이 실린 책을 본 것 같기도 했는데 잘 모르겠다. 어떤 수석에는 시가 적혀 있고 어떤 수석에는 사진이 찍혀있고, 그 사진을 찍는데 도움을 준 사람들 이름이 적혀 있기도 했다. 꿈을 깬 순간에는 시의 구절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생생했는데 잊어먹었다. 2008.11.10

 

검은 바다를 수영해서 고향으로 돌아가 엄마를 만난 꿈부엌 꿈

나는 검은 바다를 수영한다수영 못하는 사람이 깊은 물에 들어갔을 때의 불안하고 두려운 느낌이다. 발이 땅에 닿지 않아서 계속 손발을 움직여 뜨거나 진행해 가고는 있지만 움직임을 멈추면 곧 가라앉거나 물을 먹거나 죽을거라는 공포가 있고, 자꾸만 몸이 가라앉으려고 해서 물이 전혀 편안하질 않다. 물이 두려운 나는 땅을 짚어서 헤엄을 치려고 한다. 내가 서있던 얕은 물가에서 금방 9m도 넘는(꿈에서 그랬다. 9m 이상이라고) 바다로 나아갔다. 물을 먹진 않았지만 잘 되지도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검은 바다를 헤엄쳐서 다 건넜다. 근데 이 바다는 직선적이지 않고 원형이다. 섬을 둘러싼 것처럼. 나는 죽자사자 수영을 해서 원형을 그리며 빙글 돌아 제 자리에 왔고 갑자기 검은 바다 수영은 끝이 났다. 해 냈다, 해치웠다는 느낌의 수영이지 전혀 즐겁지가 않았다. 그렇지만 다시 해내야하는 상황이면 나는 또 그 검은 바다에 뛰어들어 수영능력이 있든 말든, 두려움이 있든 말든 헤엄쳐 건너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도달한 곳은 고향동네다. 두 가지 장면이 있다. 하나는 내가 엄마를 찾아다니다가 찾은 거였다. 근데 엄마는 남의 집일을 해주고 밥을 얻어먹고 있었고, 내가 검은 바다를 헤엄쳐 찾아갔는데도 전혀 반가워하지 못하고, 거의 아는 체도 안하고 지치고 절박한 표정으로 상추쌈을 싸서 입에넣고 있었다. 과수원 주인 여자가(잘 웃고 사람 좋아보이는 넉넉함을 가졌다) 나를 반색한다. 근데 그 옆, 엄마 옆에 역시 지치고 피곤한 첫째동생이 역시 말없이 쭈그리고 앉아 내가 봐도 나를 반기거나 아는 체를 하지 않고 상추쌈을 싸 먹고 있다. 나는 갑자기 어른스러워진 아이가 된 느낌으로 ', 우리 엄마는 나한테 줄것이 없다. 엄마도 과수원 주인의 의식을 가진 것이 아니라 품팔이 일꾼 의식을 가졌다. 오히려 내가 엄마한테 밥을 주고 일자리를 주어야 하는 거구나그게 내 사명이구나. 근데 그것도 모르고 나는 힘들때 엄마를 찾아가 의지하려 들고 그래서 원망했구나' '근데 왜 동생은 거기 있지?' 생각한다.

두번째 장면은 언제나 내가 어려울 때, 힘들때 꿈 속에서 찾아가는 어릴 때 살던 집 부엌이다. 나더러 무슨 음식을 요리하라고 해서(누가 그랬는지는 생각 안 난다) 그 부엌에서 요리를 한다. 근데 찬장에는 먼지가 가득 쌓여있고 성한 그릇이 없고 황량하다. 가마솥에다 누군가를 먹이려는 건지는 생각이 안 나는데 뭔가를 만든다. 2008.6 27(3기 모닝페이지 지원서를 보내고 혼자서 모닝페이지를 써 보는 첫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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