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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5월 30일 07시 02분 등록

그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 아름다운 5월이 하순으로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여자처럼 예쁘장한 얼굴이었는데 밀짚모자를 끈으로 묶은 얼굴은 무슨 일을 하다 왔는지 땀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산 속 개울 옆에 집을 짓고 혼자 삽니다. 농사짓고 목수일도 하고 그리 사는 듯 합니다. 소년 같은 얼굴입니다. 우리는 여럿이 시냇가에 둘러 앉아 고기를 구워 산에서 따온 취에 싸먹었습니다. 산 속 개울가에 해는 저물고 아름다운 하루도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떠나올 때 그가 왜 그곳에 사는지를 알려 주는 말을 했습니다.

"고추 짓는 사람은 자기가 재배한 고추를 먹지 않고, 토마토를 키운 농부는 자기가 키운 토마토를 먹지 않습니다. "

흙에서 자란 농부의 마음이 먹고 사는 이익을 따라 비닐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다 보니 제철이 아닌 작물을 농약과 비료로 키워 자기는 먹지 않는 음식을 만들어 출하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아마 자신이 키운 농산물을 먹고 싶고, 그런 농산물을 키워 다른 사람을 먹이고 싶어 거기에 그렇게 살고 있나 봅니다.

돌아오는 길에 나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작가 역시 자신이 키운 책을 즐겨 먹을까 ? 세상에 제 손으로 쓴 책을 팔기 위해 때깔 나게 비료주고 벌레 안 생기게 농약쳐 자기도 믿지 않는 잡설을 부지런이 내 놓는 것은 아닐까 ? 농부가 흙에서 자란 마음을 떠나면 이미 농부가 아니고, 작가는 마음의 땅에서 솟는 영혼의 샘물을 잊으면 이미 죽은 사람입니다.

어떤 직업인이든 자신의 직업에 자부심을 갖지 못하면 그 직업을 지켜 낼 수 없습니다. 자부심은 어디서 올까요. 한사람에 대한 사랑에서 오는 것 같군요.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고 싶다는 마음에서부터 비롯된 땀. 그게 바로 자부심이 아닐까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 비록 그 일을 지금 그리 좋아 하지 않더라도, 오늘 하루는 지극정성을 다해 보세요. 어쩌면 이 일이 가리고 있던 진짜 내 일로 가는 오솔길이 얼핏 보일 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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