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구본형
- 조회 수 3912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어제 아내와 함께 장을 보러 갔습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일로 말다툼을 하게 되었습니다. 너무 사소한 일이라 무엇 때문에 다투게 되었는지는 벌써 잊었습니다. 어쨌든 아내가 제법 싸늘한 눈초리로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당신은 생각이 없어. 이 무뇌야."
무네 ? 무내 ? 생각이 없어 ? 무뇌 ? 그러니까 뇌가 없다는 뜻이군요. 순간 깡통이 연상되며 황당했습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마음이 너무 편해지는거예요. 머릿속에 뇌가 텅빈 머리가 떠오르더군요. 내가 아내를 쳐다 보았을 때 이미 그녀는 웃고 있었습니다.
나는 뇌가 텅빈 그 빈 깡통에 파란 바닷물을 담아 보았습니다. 흰구름 한 조각 뜬 하늘도 담아 보았습니다. 설악산 계류를 담아 보기도 했지요. 만발한 들꽃을 가득 꽂아 두기도 했습니다. 뇌가 깡통처럼 비었다는 것이 이렇게 좋은 것이군요.
2년 전에 초아 선생이 나를 처음 보고 '일산'(日山)이라는 호를 써 주었습니다. '해 떠오르는 산'이라는 뜻인데, 뜻이 너무 커서 감히 자주 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내게 딱 맞는 호를 하나 지어 주었습니다. 무뇌 구본형. 언젠가 죽을 때쯤이면 이 호가 '무내'로 바뀔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무내 - 내가 없다" 그렇게 생각하니 일산이라는 호도 맘에 듭니다. 내 앞이마가 좀 벗겨졌기 때문에 해 떠오르 듯 반짝일테니 일산이라는 호도 제격입니다. 일산이라는 호도 살면서 더 자주 써 보아야겠습니다.
여러분들은 호가 없는지요 ? 아내나 남편에게 하나 지어 달라고 그러세요.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면 스스로 지어야겠군요. 쉬는 날은 호 짓기 좋은 날입니다. 나는 오늘 내 빈 깡통 속에 흰 국화를 가득 담아두겠습니다. 오늘 내 머리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꽃을 꽂을 수 있는 화분이군요.
댓글
3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 4354 | 엄마, 자신, 균형 [1] | 어니언 | 2024.12.05 | 1440 |
| 4353 | [수요편지] 능력의 범위 | 불씨 | 2025.01.08 | 1450 |
| 4352 | 삶의 여정: 호빗과 함께 돌아본 한 해 [1] | 어니언 | 2024.12.26 | 1460 |
| 4351 | 목요편지 - 아내의 눈물 [2] | 운제 | 2018.10.18 | 1483 |
| 4350 |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 종종 | 2022.07.12 | 1489 |
| 4349 | [일상에 스민 문학] 에필로그 [4] | 정재엽 | 2018.12.26 | 1507 |
| 4348 |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이야기 1. | 정재엽 | 2018.08.15 | 1509 |
| 4347 | [수요편지] 발심 [2] | 불씨 | 2024.12.18 | 1516 |
| 4346 | [금욜편지 89- 21세기에 프로로 산다는 것은] [4] | 수희향 | 2019.05.24 | 1522 |
| 4345 | 목요편지 - 요가수업 [2] | 운제 | 2019.05.09 | 1524 |
| 4344 | 어린이날 어떻게 보내셨나요? | 제산 | 2019.05.06 | 1538 |
| 4343 | 세 번째 생존자 [1] | 어니언 | 2022.05.26 | 1539 |
| 4342 | 핀테크는 왜 '개인금융의 미래'라 불리는가?(2편)-레이니스트 [2] | 차칸양 | 2017.10.10 | 1542 |
| 4341 | [금욜편지 32- 서울산업진흥원 창업닥터] | 수희향 | 2018.04.13 | 1543 |
| 4340 | [일상에 스민 문학] 휴가 책 리스트 | 정재엽 | 2018.07.24 | 1543 |
| 4339 | [금욜편지 98- 내가 만드는 나의 미래] | 수희향 | 2019.07.26 | 1544 |
| 4338 | [수요편지] 니체가 월급쟁이에게 | 장재용 | 2020.03.04 | 1544 |
| 4337 | [일상에 스민 문학] - 수녀원에서 온 편지 | 정재엽 | 2018.01.24 | 1545 |
| 4336 | [금욜편지 80- 익숙한 나 Vs 낯선 나] [4] | 수희향 | 2019.03.15 | 1545 |
| 4335 | 모자라는 즐거움 [2] | -창- | 2017.08.26 | 154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