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오늘의

마음을

마음을

  • 구본형
  • 조회 수 4105
  • 댓글 수 3
  • 추천 수 0
2008년 6월 27일 06시 04분 등록

이번 주 내내 책 정리를 했습니다. 이 집으로 이사온 후 몇 년 동안 매일 하나 둘 늘어나기 시작한 책들은 공간이 있는 곳이면 어디나 제멋대로 쌓여가기 시작했습니다. 버리기를 수도 없이 했지만 그 정도를 가지고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동안 몇 번 대대적인 개혁을 시도하지 않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맘을 먹고 버려야할 책들을 고르다 보면 어느 새 그 책을 열심히 읽고 있는 나를 만나기 시작합니다.

어떤 책 속에는 아주 많은 젊은 날의 기억이 담겨 있습니다. 줄친 곳 속에서 그때의 내가 갑자기 튀어나와 되살아나기도 합니다. 통째로 기억하려면 50년 정도는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에 불과 합니다. 그러나 그 많은 밤과 낮들은 이렇게 여러 흔적들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습니다.

몇 시간이 흐르지만 버리려고 뽑아 놓은 책들은 최근에 여러 출판사에서 보내 온 책들입니다. 나와 아무런 인연을 맺지 못한 책들, 취향과 스타일이 달라 만나자 마자 틀어진 미팅 상대처럼 아무 미련없이 헤어질 수 있는 책들만이 버려야할 바구니에 담기곤 했습니다.

몇 년간 참아온 아내가 나섰습니다. 그녀는 해결사입니다. 1/4의 책들을 박스에 담아 보관할 장소를 찾아 주었습니다. 그 정도를 통 째로 비우고 나니 비로소 나머지 책들을 그럭저럭 분류하여 책장 안에 끼어 넣을 수가 있게 되었습니다. 그 일을 일주일 내내 시간이 날 때 마다 했습니다.

그렇게 찾던 책이 여기 숨어 있었구나. 이런 책이 우리 집에 있었네. 왜 이 사람 책이 이렇게 많은거야. 그렇구나, 그때 이 사람에게 필이 꽂혔었지. 이 사람의 모든 것을 다 읽어 내고 싶었었지. 그래, 이 두꺼운 책을 옆에 끼고 6월의 장미원 그 옆, 그 빛나는 젊음 사이를 걸었었지. 이 책을 사고 참 좋아 했었는데. 이런, 이런, 이 책을 왜 두 권이나 될까 ? 하나는 분명히 내가 샀는데, 또 하나는 도대체 어디서 누구를 통해 내게 왔을까 ?

지난 일주일은 그렇게 지나갔습니다. 아주 즐거웠습니다. 오늘은 퇴근한 후에 책장을 정리해 보세요. 먼저 손에 목장갑을 하나 끼세요. 순서는 버릴 책을 먼저 골라 내야해요. 그게 가장 어려워요. 정이 많은 사람은 지난 책을 버리기 어렵고, 냉정한 사람은 새 책을 버리기 어려워요.

그러나 버리지 않고는 책장이 헐렁해 지지 않아요. 헐렁해 져야, 책들을 제자리에 분류해 다시 배치해 둘 수 있습니다. 마치 인재를 적재적소에 배치하듯.
IP *.189.235.111

프로필 이미지
김신효
2008.06.27 08:16:43 *.241.31.178
구선생님!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통째로 기억하려면 50년 정도는 속절없이 지나간 세월에 불과 합니다.'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구본형
2008.06.28 07:02:42 *.160.33.149

인생 오십이 하루 아침에 지난 듯 합니다. 신은 채찍 대신 세월을 통해 우리를 가르친다 합니다. 순식간에 지난 오십년이지만 그 안으로 들어 가 보면 나쁘지 않은 하루하루 였습니다. 그중에 어떤 날들은 생생하게 손으로 만져지는 참으로 빛나는 날들이었지요.
프로필 이미지
김신효
2008.06.30 08:44:43 *.241.31.178
그렇군요.^^
오늘 아침 전자 시집 잘 받았습니다.
이렇게 당연한 듯 공짜로 받아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변경연 식구분들 모두께 감사드립니다. 꾸벅.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876 백스물다섯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실수 재키제동 2017.11.17 853
3875 엄마가 시작하고 아이가 끝내는 엄마표 영어 [1] 제산 2019.04.22 853
3874 [수요편지] 장대비 내리던 어느 주말 오후 [1] 장재용 2019.05.15 853
3873 [수요편지] 호찌민에서 만난 쓸쓸한 표정의 사내 장재용 2019.09.11 853
3872 [용기충전소] 여행산책, 어떠세요? [2] 김글리 2020.04.03 853
3871 먼저, 정보공개서부터 확인하세요 [2] 이철민 2017.09.28 854
3870 [일상에 스민 문학] - 낯선 남자와의 데이트 [2] 정재엽 2018.03.07 854
3869 [수요편지] 세월이 카톡에게 (월급쟁이 四龍天下 마지막 회) [2] 장재용 2020.02.26 854
3868 [금욜편지 21- 심연통과 5: 책쓰기 전략 (상편)] [2] 수희향 2018.01.19 855
3867 가족처방전 – 이상한 정상가족 file 제산 2018.05.21 855
3866 [화요편지] 주시는 대로 받겠습니다. [2] 아난다 2019.02.19 855
3865 목요편지 - 고1 음악시간 [4] 운제 2019.03.07 855
3864 [화요편지]11주차 미션보드 _스스로의 기쁨으로 열어가는 길 file 아난다 2019.11.12 855
3863 강남순 제3강 < 남성성의 신화와 ‘형제 코드 (Bro Code)' > 제산 2020.03.02 855
3862 화요편지 - 생존을 넘어 진화하는, 냉면의 힘 [1] 종종 2022.07.12 855
3861 백열여덟번째 편지 - 1인 기업가 재키의 가을 아침 [2] 재키제동 2017.09.22 856
3860 [금욜편지 53- 성격에 따라 달라지는 인생전환 로드맵] [4] 수희향 2018.09.07 856
3859 [수요편지] 오토바이, 그 자유의 바람 장재용 2019.09.18 856
3858 [월요편지 122] 아내와 유튜브를 시작한 이유 [6] 습관의 완성 2022.09.18 856
3857 [금욜편지 91- 일은 진짜 프로답게] [2] 수희향 2019.06.07 857